본문 바로가기

신작 열전/신작 영화

휘몰아치는 운명에 휘둘려도 살아가는 청춘들

반응형


[신작 영화 리뷰] <그리고, 살아간다>

 

영화 <그리고, 살아간다> 포스터. ⓒ미디어캐슬

 

이쿠타 토코는 1994년에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큰아빠 손에서 자란다. 그들은 점차 서로를 아빠와 딸로 받아들인다. 토코는 자라서 연기 생활을 했고 2011년 3월 12일, 도쿄로 오디션을 보러 가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고 오디션이 아닌 자원봉사로 도쿄를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시미즈 키요타카와 눈이 맞는다. 키요타카도 어릴 적 부모를 잃고 큰고모네 손에 자랐다고 한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토코와 키요타카, 키요타카는 곧 국제개발컨설팅 회사에 취직해 필리핀으로 향하고 토코는 다시 한 번 오디션에 도전하는데, 오디션 직전 쓰러진다. 알고 보니 임신, 키요타카의 아이였다. 하지만 토코는 키요타카를 너무나도 사랑한다며 그에게 알리지 않기로 한다. 그렇게 토코와 키요타카는 서로를 향한 마음을 접어둔 채 헤어진다.

키요타카는 필리핀에서 일을 하다가 너무나도 큰일에 휘말려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는다. 그때 우연찮게 그의 앞에 나타난 토코의 한국인 친구이자 자유로운 영혼 한유리와 함께 산다. 한편 토코는 키요타카의 아이를 유산하고 어느 날 갑작스레 나타난 학창 시절 후배 쿠보 신지와 가까워진다. 토코와 키요타카, 키요타카와 토코는 삶을 휘몰아치는 소용돌이를 잘 헤쳐 나갈 수 있을까? 그들은 과연 다시 이어질까?

 

볼 만한 일본 청춘 멜로

 

츠키카와 쇼 감독은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너와 100번째 사랑> <너는 달밤에 빛나고> 등으로 일본 청춘 멜로의 기수로 평가받고 있다. 와중에 <그리고, 살아간다> <유유백서> 등이 드라마 연출에도 참여했다. <유유백서>는 넷플릭스 일본 오리지널로 의미 있는 흥행 성적을 내기도 했다. 한편 6부작 <그리고, 살아간다>는 축약본과 미공개본을 합쳐 재편집해 극장판으로 개봉했다.

우리나라에도 건너와 2024년 새해에 극장 개봉한 <그리고, 살아간다>는 연기력과 흥행력을 겸비한 스타 배우들인 아리무라 카스미와 사카구치 켄타로를 주연으로 내세웠다. 일찍이 일본 영화계에 진출해 커리어를 이어오고 있는 카라의 강지영과 명품 조연으로 활동하고 있는 오카야마 아마네가 튼튼하게 뒤를 받쳤다.

원작 드라마가 하이 퀄리티 드라마들로 유명한 제작 방송사 'WOWOW'의 작품일 만큼 좋은 작품성을 담보하고 있기에, 축약 재편집하여 전체적으로 매끄럽지만은 않아도 충분히 볼 만했다.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배경의 자장 아래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도 잘 자란 이들의 로맨스가 참혹한 일들과 얽히고설켜 일어난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동일본 대지진에 휘말린 삶

 

일본에서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이 갖는 의미는 특별할 것이다. 인명 피해와 손실 규모는 물론 수습 과정 문제와 해결 이후의 논란까지 21세기뿐만 아니라 영원히 이어져도 이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는 보편적인 이야기에서 개별적인 사례를 추출해 특별하게 만드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리고, 살아간다>의 토코 이야기가 그렇다.

토코는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생이 바뀌었다, 요동치기 시작했다. 인생의 큰 전환점들 중 하나였다. 꼬였다면 꼬인 그녀만의 인생사, 하지만 누구나 겪었음직한 일들의 연속이다. 결국 제자리를 찾아갈 것 같다. 다시 동일본 대지진으로 돌아가, 수많은 사람이 죽으며 부모를 잃고 자식을 잃은 경우가 부지기수일 것이다. 영화는 간접적으로 보여주려 한다.

토코의 경우 어릴 적에 사고로 부모를 잃었고 키요타카의 경우도 어릴 적에 부모를 잃었다. 한편 토코, 키요타카, 유리 등이 봉사활동을 한 사카모토 이발사는 지진으로 아내와 딸을 잃었다. 그들 모두 불의의 사고로 가족을 잃었지만, 그래도 살아간다. 어떻게든 살아가 보려 한다. 토코와 키요타카의 삶에 휘몰아치는 소용돌이가 걷히길 바랄 뿐이다.

 

운명에 휘둘려도, 살아간다

 

사실 이 영화는 클리셰의 끝없는 연속이다. 드라마를 재편집해 만든 것이기에 더 그렇게 느껴질 텐데, 두 주인공의 삶을 뒤흔드는 주요 사건의 디테일을 거의 완벽하게 유추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종국엔 관객으로 하여금 눈물짓게 한다. 그동안 쌓아온 감정이 한 번에 터진 것이다. 둘의 로맨스에서 비롯된 것 같지만 각자 스스로의 삶을 위로하고 서로의 삶을 응원하는 모습이다.

여운이 깊진 않지만 소소하게 그리고 길게 남는다.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은, 그 선택조차 후회로 남을, 너무나도 강하고 짙은 운명에 처절하게 흔들리는 주인공들의 삶의 여정이 결코 남일 같지 않다. 그들이 겪었고 겪고 있으며 겪을 일들이 엄청 커 보이지만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제목을 되새겨 본다. 왜 '그래도, 살아간다'가 아니라 '그리고, 살아간다'일까. 어감상 또 메시지상 '그래도'가 더 임팩트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오히려 '그리고'에 메시지를 담은 게 아닌가 싶다. 토코와 키요타카의 삶에 큰 소용돌이들이 휘몰아쳤지만 '그래도'를 붙일 만큼은 아니었을까. 그저 '그리고' 살아갈 뿐이다. 이런 일이 있으면 저런 일이 있고 힘든 일이 있으면 기쁜 일도 있는 게 인생이라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인생사 새옹지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