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
1972년 10월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 대학생 아마추어 럭비팀이 가족과 지인들을 데리고 칠레 산티아고로 떠난다. 졸업 전 마지막 여행이라 남다른 의미를 지녔다. 40명이 넘는 인원을 태운 비행기는 설원의 안데스 산맥을 지나가려 하는데 기체가 심하게 계속 흔들린다. 이곳에선 다 그렇다며 넘어가려는데 오래지 않아 거짓말처럼 비행기가 추락한다.
선체와 후미가 갈라지며 많은 이가 죽었고 추락 과정에서 많은 이가 심각한 부상을 입는다.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비교적 멀쩡한 이들이 수습하지만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밤이 되자 어찌할 방도가 없다. 그저 뜬눈으로 서로 체온을 나누며 버티는 것뿐. 날이 밝으니 부상자들 몇몇이 죽었다. 이제 인지한다, 아무것도 없는 설원에서 죽지 않고 버티며 구조대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추위와 배고픔을 버틸 대로 버텨 보지만 점점 한계가 찾아온다. 구조대는 올 생각 없어 보이고 부상자들이 하나둘 죽어간다. 일련의 무리가 저 멀리 떨어진 비행기 후미를 찾아 외부에 연결할 수 있는 뭐라도 찾고 먹을 만한 뭐라도 얻어 보고자 한다. 그런 한편 일련의 무리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걸 인지하고 인육을 먹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한 이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살아남는다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의 실화 재난 생존 드라마
'안데스의 기적'이라 부르는 사건이 50여 년 전 남미 안데스 산맥에서 일어났다. 승객 40명과 승무원 5명을 태운 '우루과이 공군 571편'이 설원의 안데스 산맥에 추락했고 16명이 살아남아 사건 발생 72일 후에 생환했다. 생존자들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전했는데, 전 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줬다. 문명화된 인류에게 가장 터부시되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었다.
일찍이 1993년 이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 <얼라이브>가 개봉했다. 뿐만 아니라 수없이 많은 다큐멘터리와 TV 프로그램에서 자세히 다뤘다. 와중에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이 다시 한 번 이 사건을 영화로 재탄생시켰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이 탄생한 경위이자 기대되는 이유다.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는 <오퍼나지> <더 임파서블> <몬스터 콜>, 그리고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까지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크게 성공하고 찬사를 받은 작품들을 고루고루 만들어 왔는데 5년 만에 실화 재난 생존 드라마로 돌아왔다. <더 임파서블>이 떠오른다. 광활한 자연의 불가피한 상황에 처한 이들의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묘사하려 하기에 오히려 더 처절하고 끔찍하다.
생존이 우선인가, 신념이 우선인가
재난에 맞닥뜨리면 처음엔 부정한다.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알기 힘들고 알고 싶지도 않다. 이 상황이 금방 지나갈 거라 생각한다. 이내 분노한다. 이 끔찍하고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다가 타협한다. 신을 찾고 기도를 드리기도 하며 그동안 생각지도 않았던 일을 벌이기도 한다. 하지만 더 이상의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 우울해진다. 무력감에 빠져들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결국 모든 걸 수용하고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기에 이른다.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에서 생존을 이어간 이들이 겪은 일련의 심리 변화와 일치한다. 그들은 부정하다가 분노에 휩싸였다가 타협해 죽은 자들의 인육을 먹으면서 생존까지 갈 수 있었다. 물론 너무나 오랫동안 구조대가 오지 않아 우울해지고 종국엔 희망 없음을 수용해 버렸다. 와중에 영화의 화자인 '누마'의 선택이 인상적이다.
누마는 25살을 앞둔 전도유망한 미래의 변호사이자 그 누구보다 투철하게 신을 믿는 종교인이기도 하다. 그는 누구도 참을 수 없었던 식인을 거부하고 끝내 굶어 죽는 걸 택한다. 친구들은 그에게 살아남아야 한다며 인육을 권하고, 이 처참한 상황에서 누마가 믿는 신 따위는 없거니와 오히려 인육 고기를 자르는 손이야말로 신이라고 말하지만 누마는 끝끝내 인육을 거부한다.
인육을 먹을 수밖에 없는 이들의 마음과 죽더라도 인육을 먹을 수 없는 누마의 마음이 둘 다 처절하게 다가온다. 두 마음 모두 이해되고 받아들일 수 있다. 생존이 우선인가, 신념이 우선인가 정답은 없고 옳고 그름도 없다.
죽음이 다가올수록 삶의 의미를 찾는다
영화는 걸작이다. 설원의 절경이 일품인 한편 그래서 오히려 살아남으려는 자들의 생존 바람이 더욱 처절하게 다가온다. 정녕 아무것도 찾아볼 수 없으니 아름답지 않겠는가. 그들은 그런 자연에 반할 수 있는 그 무엇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저 버티고 버티고 또 버틸 뿐이다. 누구나 살면서 겪어봤음직한 버팀의 강도에 '억만 배'는 강할 것이다. 상상조차 하기 힘든 만큼.
생존자들은 죽음이 다가올수록 오히려 삶의 의미를 찾는다. 힘듦이 몸을 잠식하고 정신에 가닿으니 삶을 지속할 이유를 찾을 수 없다. 고통만이 몸과 마음을 지배하는 이 아무것도 없고 아무도 찾지 않는 설원의 한가운데서 더 이상 살 이유가 없다. 잠든 채 눈 뜨지 않으면 평온해질 수 있다. 그런데 그럴 수 없다. 집으로 돌아가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시 만나고 싶다. 만나야 한다.
'기적'이라 칭하는 이 사건의 실상은 비극일까, 그럼에도 기적일까. 인간이 인간답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을 우선시해야 하는가. 인간의 생존 본능이 우선인가, 신념이 앞서는가. 보통의 상황에선 비교적 답하기 쉬울 수 있다. 하지만 극한의 상황에 처해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결코 쉽게 답하지 못할 것이다. 철학적인 질문을 하고 나름의 답을 찾을 수밖에 없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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