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베란 토미치: 파리의 스파이더맨>
2010년 5월 20일, 프랑스 파리에서 프랑스 역사상 최대의 예술품 도난 사건이 발생한다. 파리시립현대미술관에서 페르낭 레제의 <샹들리에가 있는 정물화>, 앙리 마티스의 <목가>, 파블로 피카소의 <비둘기와 완두콩>, 조르주 브라크의 <에스타크의 올리브 나무>,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부채를 든 여인>이 도난당한 것이었다. 현대 미술에 큰 족적을 남긴 이름들로, 비록 다섯 작품이지만 자그마치 1억 달러 이상의 가치를 지녔다. 미술관은 보안을 어떻게 했기에 도난당했고 도둑은 어떻게 도난을 행했을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베란 토미치: 파리의 스파이더맨>(이하, '베란 토미치')이 2010년 5월 파리시립현대미술관 도난 사건의 '진범'에게 직접 얘기를 들어보며 당시를 생생하게 되짚는다. 그는 왜 그리고 어떻게 프랑스 역사상 최대의 예술품 도난 사건의 주인공(?)이 되었는가. 흔치 않게 진범이 직접 인터뷰에 응했으니 궁금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한편 파리시립현대미술관은 루브르, 오르세와 함께 파리 3대 미술관으로 일컬어질 만큼 대단한 곳으로 주로 20세기 미술의 역사를 담고 있고 현대 및 동시대 미술 분야에선 유럽 정상급이다. 그랬기에 절도범 베란 토미치에겐 다른 의미로 환상적인 곳이었을 테다. 마지막으로 크게 한탕하고 프랑스를 떠나 평범하고 한적하게 살고 싶은 그의 바람을 들어줄 안성맞춤 범죄 대상이었으니 말이다.
도둑질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
베란 토미치는 프랑스 태생으로 어머니는 몸이 아팠고 아버지는 폭력적이었다. 그가 불과 한 살 때 집을 나와 보스니아로 보내져 친척들과 살았고 10년 뒤 돌아왔다. 어릴 때부터 도둑질을 일삼았다. 혼자 사는 데 익숙해졌고 사회에서 거부당하는 느낌이 들었고 그도 사회가 필요 없어졌다. 파리에서 지내며 손에 닿는 무엇이라도 훔쳤다. 그의 말마따라 짐승처럼 살았다.
18살에 입대해 등반 실력을 쌓았다. 제대해 사회로 돌아왔지만 그는 여전히 도둑이었다. 이왕이면 부자가 되겠다고 마음먹곤 부촌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군대에서 배운 등반 실력을 뽐냈다. 그는 부자들의 기만적이고 세속적이며 거짓된 모습을 목격하고 아무런 가책 없이 절도를 일삼았다. 하지만 1997년부터 2005년까지 사람들은 집에 현금이나 보석을 보관하지 않았다.
토미치는 미술품으로 시선을 돌렸다. 복제할 수 없는 예술품의 값어치를 따져보기 위해 공부도 했다. 르누아르 작품들을 훔쳤다가 잡힌 이후 '파리의 스파이더맨'으로 불렸다. 수차례 감옥에 들락거리다가 마지막으로 크게 한탕하고 자취를 감춰 버리기로 했다. 그는 왜 절도를 시작했고 또 꾸준히 하고 있는 걸까. '인정' 받고 싶은 욕구가 큰 것 같다. 태어나자마자 부모한테 버려졌으니 말이다. 그런데 잘할 줄 아는 게 도둑질밖에 없다. 문제는 도둑질 잘했다고 인정해 주는 이는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다.
절도도 폭력이라는 사실
작품에는 베란 토미치 자신뿐만 아니라 사건 당시 프랑스 문체부 차관, 파리시립현대미술관 관장, 미술평론가, 경찰 수사팀장, 절도 피해자, 노숙자 친구 등이 인터뷰이로 나온다. 그들이, 특히 절도 피해자가 말하는 건 절도도 엄연한 '폭력'이라는 것이다. 모든 게 더럽혀지고 훼손된 기분이고 지울 수 없는 흔적이 남으며 고통이 끝없이 반복된다.
하지만 토미치는 피해자는 생각하지 않는다. 관심도 없다. 그에게 피해자는 곧 부자들인데, 그들의 가식이 싫다. 돈을 하찮게 여기는데 돈이 많으니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부자인 피해자의 돈을 가난하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가난할 자신이 훔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절도가 폭력은커녕 기부의 일환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겠나?
그가 들여다본 부자들이 가식적이고 돈을 하찮게 여기는 건 맞을지 모른다. 그가 바라본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것도 맞을지 모른다. 물론 그조차 굉장히 축소되고 편향적인 시선이지만, 그렇더라도 절도의 합당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또한 절도 자체가 폭력이 맞다. 누군가는 상처를 입으니 말이다. 절도에 관한 토미치의 생각은 완전한 궤변이다.
파리시립현대미술관 도난 사건 이후
파리시립현대미술관에 침입해 걸작들을 훔치는 베란 토미치의 작전과 실행은 완벽했다. 오랫동안 경비의 동태를 살피고 보안 사항을 점검했으며 매일 새벽에 와서 섬세하기 이를 데 없는 작업을 6일 동안이나 했으니 손쉬웠다고 할 순 없겠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관치곤 손쉬웠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게 20세기의 걸작들을 무사히 훔쳐 판매상 장-미셸 코르베즈에게 가져간다. 그는 토미치에게 작품당 5만 유로를 약속한다.
돈이 생기는 대로 흥청망청 써 버리는 삶을 살아온 토미치, 이번에도 그렇게 했다. 그러다가 노숙자 기욤을 만났는데 잘 들어주니 토미치가 이것저것 떠벌렸다. 그중엔 파리시립현대미술관 도난 얘기도 있었다. 사건이 벌어지고 8개월이 지나도록 범인의 털끝에도 접근하지 못하고 있던 경찰은 우연히 토미치를 특정했고 기욤에게 접근했으며 도청하다가 미술관 도난 사건 범인의 실마리를 잡는다. 이후 꽤 오랜 시간 공들여 판매상 코르베즈와 또 다른 판매상 요나단 빈을 잡아들인다.
범죄는 완벽했다. 하지만 토미치로서는 도난 범죄 역사에 길이남을 사건의 주인공(?)이 자신이라는 걸 아무도 모를 것이었다. 그러던 중 술에 취해 평소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는 노숙자에게 발설했고 결국 그 말이 다시 자신을 옥죈 것이다. 하지만 그는 코르베즈를 원망한다. 그가 제때 돈을 주지 않아 손을 털고 자취를 감출 수 없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그가 흥청망청 돈을 써 버리지 않고 프랑스를 떠나 유유자적한 삶을 살았을까. 차라리 체포되어 감옥에 간 게 낫지 않은가. 그가 감옥에 간 건 40대 후반, 2022년 출소한 때는 50대 중반이었다. 새로운 삶을 사는 데 충분한 나이다. 50~60대부터 제2의 인생이라고 하지 않나. 이제라도 그 '대단한' 능력을 다른 데 써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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