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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찬사와 비난을 온몸으로 받아내면서 '오직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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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베컴>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베컴> 포스터.

 

세계 축구 역사를 대표할 만한 5명을 추려 보라고 하면 수없이 많은 이가 이름을 올릴 수 있겠지만 펠레, 디에고 마라도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리오넬 메시의 이름은 반드시 올라가지 않을까 싶다. 누구도 넘보기 힘든 수치의 경력 또는 능력을 보여줬고 여전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들은 공통적으로 '축잘못'도 이름을 알 만한 정도로 유명하다. 그렇다면 마지막 1명에 누구를 넣을 수 있을까? '누구나 알 만한 이름'으로 한정짓는다면 단연 데이비드 베컴일 것이다.

단순히 축구계를 넘어 전 세계 뭇남성들의 워너비였을 만큼 잘생긴 외모와 출중한 패션을 겸비했기에 셀럽이자 슈퍼스타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 더군다나 이른 나이에 당대 최고이자 역사상 최고의 걸그룹으로 남아 있는 스파이스 걸스의 빅토리아 애덤스와 결혼했으니 그 유명세는 상상초월 역대 최고였다. 하지만 베컴은, 알 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누구보다 축구를 사랑하고 열심히하며 또 잘하는 축구선수였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베컴>은 지금도 여전히 축구계에서 활동하며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데이비드 베컴의 탄생부터 현재까지를 훑는다. 몇몇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해 대략이나마 알고 있는 이들이 많을 텐데 당사자가 직접 밝히면 또 다른 재미를 느끼지 않을까 싶다. 그런 한편 베컴 또한 인생에서 누구도 겪어 보지 못할 롤러코스터 행보를 보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럼에도 그는 굴하지 않고 축구를 했다.

 

인생 최대 위기에서 인생 최대의 절정기로

 

베컴은 영국 런던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아주 어렸을 적부터 축구와 함께했다. 축구를 너무나도 좋아했지만 잘하진 못했던 아버지 테드 베컴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매일같이 공을 차고 차고 또 찼다. 일찍이 축구팀 유스에 들어가 기량을 뽐냈다. 와중에도 테드는 아들을 지극히 엄하게 다뤘다. 끊임없이 담금질했고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나무랐다.

아버지의 담금질과 베컴의 실력이 더한 결과물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유스팀이었다. 1986년 침체기에 있던 맨유에 부임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눈에 띄었던 것이다. 1988년부터 5년간 유스팀에 있었고 1993년부터 1군에서 뛰기 시작했다. 잠깐 임대를 다녀온 뒤 1996~1997 시즌 개막전에서 역사에 남을 초장거리슛을 성공시키며 본격적인 성공 시대를 열어젖혔다. 얼굴도 초절정으로 잘생겼는데 실력도 초절정이었다.

활약을 이어가던 중 인생 최대 위기에 맞닥뜨린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르헨티나와의 16강전에서 상대팀의 디에고 시메오네에게 발차기를 시전하며 퇴장을 당해 버린 것이다. 팀이 이겼으면 묻혔을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졌고 베컴은 전국민적 역적으로 몰린다. 가는 곳마다 질타가 이어진다. 베컴은 오직 축구만 바라보며 이겨내려 한다.

오래지 않아 1998~1999 시즌 맨유 역사적인 트레블(리그, 챔피언스, FA컵 우승) 달성의 한가운데 선다. 보고도 믿기 힘들 만큼 기적의 연속이었다. 맨유가 예전의 명성을 완벽하게 되찾는 순간이었다. 베컴도 마찬가지였다. 곧이어 빅토리아 애덤스와 결혼한다. 인생 최대 위기에서 인생 최대의 절정기로 한순간에 이동해 버렸다. 그의 앞날은 크게 요동칠 것이었다.

 

맨유에서 레알 마드리드로의 역대급 이적

 

이미 인생의 극단을 경험한 베컴, 모두의 예상을 깨고 주장직을 단 채 출전한 2002년 월드컵 예선에서 큰 활약을 펼치며 팀을 본선으로 진출시킨다. 1998년 월드컵의 악몽을 말끔히 씻어냈다. 하지만 2003년 다른 누구도 아닌 아버지같은 퍼거슨 감독과의 불화가 들이닥쳤고 기류를 눈치챈 레알 마드리드 CF가 베컴을 낚아챘다. 2003년 여름 베컴은 세상이 놀랄 만큼 전격적으로 레알 마드리드 이적을 완료한다.

베컴의 레알 마드리드 이적의 이면에는 플로렌티노 페레스 회장의 신개념 영입 정책 '갈락티코' 1기가 있었다. 루이스 피구부터 시작해 지네딘 지단, 호나우두, 데이비드 베컴까지 데려왔다. '가장 비싼 선수가 실제로는 가장 싼 선수다'라는 발언으로도 유명한 바, 이른바 슈퍼스타 마케팅의 일환이다. 가장 잘한다는 선수를 가장 비싸게 데려와 홍보를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그 지점에서 갈락티코 1기는 완벽하게 성공했다.

하지만 성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 리그 우승도 하고 챔피언스 리그도 우승했지만 그정도로는 턱 없이 부족했다. 와중에 베컴은 롤러코스터 행보를 보인다. 같은 포지션에 피구라는 전설적인 윙어가 버티고 있었기에 방황하다가 포텐을 터뜨리며 자리를 꿰찼다. 그러던 찰나 파비오 카펠로 감독이 부임하자 다시 방황하다가 그 유명한 '택배 크로스'를 양산하며 팀 우승에 절대적으로 공헌한다. 하지만 그곳엔 더 이상 그의 자리가 없었다.

 

찬사와 비난을 온몸으로 받으며, 오직 축구!

 

베컴 축구 인생 3기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미국 MLS(메이저 리그 사커) LA 갤럭시 이적은 당대 가장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세계 축구계의 지각 변동이 시작되던 참이기도 했다. 이후 수많은 축구의 별이 말년을 MLS에서 보냈다. 최근에는 리오넬 메시가 다름 아닌 베컴이 구단주이자 회장으로 있는 인터 마이애미 CF로 이적하는 역대급 행보로 주목받았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SPL(사우디아라비아 프로페셔널 리그)로 이적한 것과 더불어 세계 축구계의 평준화를 이끌고 있다.

베컴은 LA 갤럭시에서 짧고 굵게 활약하며 이탈리아의 AC 밀란으로 임대도 갔으며 프랑스의 파리 생제르맹 FC에서의 활약을 마지막으로 2013년에 은퇴했다. 선수 인생 내내 축구계를 아득히 뛰어넘는 전지구적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베컴은 은퇴 이후에도 세간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주지했듯 돌연 미국으로 가서 구단을 만들지 않나 몇 년 지나 역대 최고의 선수로 우뚝 선 메시를 데려오지 않나. 앞으로 더 무슨 일을 저지를지(?) 궁금하기 이를 데 없다.

베컴만큼 이미지가 덧씌워진 축구 선수 그리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는 축구 아닌 것에 몸과 마음을 빼앗겨 본 적이 없고 아내 외에 다른 여자에 몸과 마음을 빼앗긴 적이 없다. 그런데 세간에선 베컴이야말로 축구는 그저 그렇게 하는 편인데 너무나도 잘생기고 또 관종이라 인기가 많다는 식으로 알려져 있거니와 그가 외도를 했다는 루머가 광범위하게 퍼지기도 했다.

스포츠 선수 다큐멘터리는 단순히 역사에 길이남을 만큼 잘했다거나 커리어가 좋다고 해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여타 선수들을 압도할 만큼 사람들이 궁금할 만한 소구점이 있어야 한다. 베컴이 존경스럽기까지 한 게 바로 그 지점이다. 그는 그때나 지금이나 회피하지 않는다. 찬사와 비난을 온몸으로 받아내면서도 흔들리지 않으려 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 돌파구엔 언제나 축구가 있다. 나에겐 그리고 당신에겐 '베컴의 축구'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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