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길레인 맥스웰: 괴물이 된 사교계 명사>
미국의 자수성가한 억만장자 금융가이자 역대 최악의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이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중 2019년 8월 10일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변호인들은 자살이 아닌 타살이라고 주장했으나, 생존자(피해자)들의 질타에서 벗어나려는 수작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생존자들로서는 엡스타인이 자살로 자신을 옥죄는 상황으로부터 도피했다고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후 엡스타인 사건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그 이름 '길레인 맥스웰'은 언제 체포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FBI의 추적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행방이 오리무중이었다는 점인데, 끈질긴 추적 끝에 제프리 엡스타인 자살 11개월 후인 2020년 7월 초 미국 북동부 뉴햄프셔 산장에서 붙잡혔다. 과연 또다시 권력과 돈이 정의 실현을 가로 막을 것인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길레인 맥스웰: 괴물이 된 사교계 명사>(이하, '길레인 맥스웰')는 '제프리 엡스타인 미성년자 성범죄 스캔들' 핵심이자 설계자이자 공모자이자 학대범인 길레인 맥스웰의 일그러진 삶을 조명한다. 거의 모두가 제프리 엡스타인의 천인공노할 짓거리만 보고 들었지만, 이 사건의 진정한 배후는 길레인 맥스웰이라고 한다. 그녀는 도대체 누구인가.
길레인 맥스웰 가족에게 일어난 일
지난 2020년 7월, 길레인 맥스웰이 체포되었을 때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제프리 엡스타인: 괴물이 된 억만장자>가 공개되었다. 당시는 제프리가 자살한 지 1년여 가까이 흘렀음에도 이런저런 잡음이 계속 이어지고 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 작품 <길레인 맥스웰>은 <제프리 엡스타인>과 같은 컬렉션으로, 범죄 다큐멘터리의 대가 '조 벌링거'가 두 작품 모두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다.
두 작품이 분리되어 있지만 하나로 면밀히 이어져 있는 것처럼, 제프리와 길레인도 엄연히 결혼도 하지 않은 사이지만 긴밀히 하나로 이어져 있다. 둘은 1990년대 초 뉴욕 사교계에서 만난 후 급격히 가까워졌고 누구도 상상하기 힘든 유대 관계를 형성하며 오랫동안 사귀었다. 그 시작은 맥스웰 가족에게 일어난 일 때문이었다.
길레인 맥스웰은 1980년대 말에 뉴욕 사교계에 혜성같이 나타나 주축이 되었는데, 본인의 외모와 능력과 성격 등도 한몫했지만 아버지 로버트 맥스웰의 존재가 큰 몫을 차지했다. 그는 재계의 거물이자 여자를 물건으로 취급하는 사람이었는데, 길레인이 절대적으로 의존했다. 그러던 1991년에 요트를 타고 여행을 하다가 대서양 한복판에서 실종되었다. 곧 시체가 발견되었는데, 문제는 그가 거액의 회삿돈을 횡령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었다. 졸지에 길레인은 빈털털이가 되었고 대체자를 찾았다. 바로 제프리 엡스타인이었다.
제프리 엡스타인 미성년자 성범죄의 기획 총괄
길레인 맥스웰은 제프리 엡스타인의 그림자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투철한 동조자이자 공모자로 활동한 것인데,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제프리의 성 착취 범죄의 핵심이었던 것이다. 사교계 인사들이 모두 문란하다고 할 순 없지만 그런 환경에 상대적으로 많이 노출되어 있는 사실이지만, 길레인의 문란함은 애초에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고 한다. 그녀의 옛 지인들의 증언이 잇따른다.
문제는 그녀의 문란함이 향하는 방향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여자를 물건 취급하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었기로서니, 그녀 자체도 여자를 물건 취급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는 것이다. 거기에 앞서 주지했듯 그녀가 절대적으로 추종했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제프리를 새롭게 추종했고, 그도 차원이 다른 문란함을 앞세워 미성년자 착취에 앞장섰으니, '소녀 공급책'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역대 최악의 성범죄를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 공모해 저질렀다는 게 너무나도 치명적이다. 그야말로 조직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성범죄를 행한 것인데, 사실이 분명하나 믿기 힘들 정도다. 성범죄의 기획 총괄이 따로 있고 실행자가 따로 있는 꼴이니 말이다. 그녀는 직접 데려온 소녀들과 감정적 교류 후 그 앞에서 손수 옷을 벗고 성적 얘기를 하는 등 성적 민감도를 낮추는 동시에 성착취를 일상화했다. 길레인은 소녀를 공급했을 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 성범죄에 가담했다고도 한다. 물리적으로 빠져나올 수 없는 덫을 놓고 정신적으로 빠져나올 수 없게 길들이기를 한 건 다름 아닌 길레인 맥스웰이었던 것이다.
서방 사교계 치부가 낱낱이 드러나다
2022년 6월, 미국 뉴욕 남부연방법원은 길레인 맥스웰에게 징역 20년형을 선고했다. 2020년에 체포되어 수감 생활을 하고 있었고 올해 60세이기에 70대 후반까지 감옥에서 보내게 되었다. 애초에 검찰은 30년형을 구형했으나 10년 줄은 20년형이지만 권력의 특권에 휘둘리지 않고 정의가 실현된 건 맞기에 생존자 측에선 반기는 분위기였다. 길레인 측은 당연한 듯 항소의 뜻을 밝혔고 말이다.
이 사건을 제프리 엡스타인과 길레인 맥스웰의 공모에서 좀 더 넓게 보면 서방의 사교계 치부가 낱낱이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주지했듯 사교계가 문란한 게 아니라 문란한 환경에 쉽게 노출되어 있다는 것인데, 그들이 한때나마 선망해 마지않은 '사교계의 여왕' 길레인 맥스웰의 말년이 확정되었으니 말이다. 나아가 권력의 정점들과 깊은 연이 닿아 있기에 권력의 특권을 누려왔고 누릴 수 있던 길레인 맥스웰이 정의의 심판을 받았으니, 사회에 확실한 메시지를 전했다고도 할 수 있겠다.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이 작품 <길레인 맥스웰>은 다큐멘터리로 잘 만들었다고 보긴 힘들다. 이 사회에서 길레인 맥스웰의 범죄가 뜻하는 바와 통찰이 비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길레인 맥스웰의 성범죄 발자취를 따르며 어떻게 20년형까지 받게 되었는지를 충실히 따를 뿐이다. 그럼에도 나름의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건, 그녀가 한 짓을 그저 충실히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메시지가 전달되기 때문이다. 이론의 여지가 없는 사악한 범죄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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