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
월트 디즈니의 1940년작 장편 애니메이션 <피노키오>로 잘 알려져 있는 ‘피노키오’는 일찍이 1883년 이탈리아 소설가 카를로 콜로디가 지은 소설이다.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화를 디즈니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고 역대 최고의 애니메이션으로 추앙받으며 지금에 이르렀다. 이후 오랫동안 ‘피노키오’는 미국, 유럽, 일본 등지에서 영화와 애니메이션으로 수없이 리메이크되며 최고의 찬사와 최악의 평가를 오갔다.
그러던 2022년 ‘피노키오’는 지치지도 않고 또다시 리메이크되는데, 하나는 디즈니+ 오리지널 영화로 다른 하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으로 나왔다. 앞엣것은 저물어 가는 거장 로버트 저메스키가 ‘디즈니 애니메이션 실사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톰 행크스, 조셉 고든 레빗 등과 함께 작업했는데 평가가 너무 안 좋다. 그동안 수없이 리메이크된 ‘피노키오’들 중 최악에 가깝다.
한편 뒤엣것은 여전한 상상력을 자랑하는 거장 기예르모 델 토로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형식을 가져와 이완 맥그리거, 틸다 스윈튼, 크리스토퍼 발츠, 론 펄먼, 케이트 블란쳇 등과 함께 작업했다. 기예르모 델 토로가 원안, 각본, 연출, 제작까지 도맡아 그의 팬들은 작품을 오롯이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원작을 향한 존중에 본인만의 스타일을 한껏 살리면서도 애니메이션이기에 너무 취향을 타지 않은 결과물이 나왔으니 대중적으로도 어필할 수 있을 것이다.
생명을 부여받은 목각 인형 피노키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이탈리아, 목수 제페토는 아들 카를로와 함께 살며 마을 성당의 예수상을 제작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임무를 끝내고 귀환하던 폭격기의 폭탄이 성당으로 떨어지며 카를로가 운 나쁘게 죽고 만다. 이후 제페토는 술독에 빠져 지낸다. 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제페토는 술에 취해 아들을 만들어 내겠다며 목각 인형 피노키오를 만들곤 술에 골아떨어지는데, 푸른 요정이 나타나 피노키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다.
집안을 뛰어다니며 온갖 것들을 헤집어 놓는 피노키오, 제페토는 성당 갈 시간이 되어 홀로 집을 나선다. 하지만 피노키오도 이내 성당으로 오는데, 움직이고 말하는 목각 인형을 보자 사람들이 악마의 사악한 장난이라며 손가락질한다.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제페토와 피노키오, 그날 밤 포데스타 시장이 신부 그리고 아들과 함께 제페토의 집에 방문해 피노키오를 학교에 보내라고 명령한다.
이틑날 학교로 향하는 피노키오, 하지만 중간에 유랑극단을 운영하는 볼페 백작에게 붙잡힌다. 운영이 쉽지 않은 유랑극단의 흥행을 위해 피노키오와 전속계약을 맺어 이용하려는 계획이다. 피노키오는 학교에 가지 않고 볼페 백작을 따라간다. 그 사실을 안 제페토가 와선 실랑이를 벌이던 사이 피노키오는 트럭에 차여 죽는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살아난 피노키오, 그 모습을 본 포데스타 시장은 피노키오가 훌륭한 병사가 될 거라 확신한다. 이런저런 사건들에 지친 제페토는 피노키오에게 너는 짐일 뿐이라고 야단치고 마는데… 피노키오의 앞날은?
피노키오를 노리는 이들
기예르모 델 토로는 일찍이 <악마의 등뼈> <판의 미로>로 전쟁의 참상과 판타지를 결합하는 작업을 훌륭하게 수행해 낸 바 있는데,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로 같은 결의 작업을 수행했다. 기괴하고 음울한 동화의 일인자답게 피노키오를 재탄생시켰으니,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가로지르는 배경에서 피노키오가 탄생해 이리저리 휘둘리면서 나아가는 이야기를 내놓은 것이다.
피노키오는 제페토가 아들을 잃은 슬픔에 찌들어 살다가 술김에 아들을 살리겠다고 만들어 버린 목각인형이다. 탄생부터 순탄하지 않은 것인데, 누군가의 대용품으로서의 성격을 띤다. 스스로 그 자체의 목적성이 발휘되어 당당하게 서기가 힘들다. 그러니 여기저기서 강력한 목적성을 똘똘 뭉친 이들이 그를 노리는 건 당연하다.
유랑극단의 볼페 백작이 피노키오를 노리는 건 당연하다. 혼자 움직이고 생각하고 말하고 음식도 먹는 목각인형이라니? 이보다 더 ‘이상한’ 존재가 어디 있는가. 그런가 하면, 뼛속 깊은 파시스트 포데스타 시장이 피노키오를 노리는 것도 당연하다. 직접 목격했듯 죽어도 다시 살아나니 ‘불사의 병사’로 최전선에 세우면, 아군에겐 더없이 든든한 존재로 적군에겐 더없이 두려운 존재로 우뚝 서지 않겠는가?
그런 와중에 제페토는 피노키오의 존재를 부정하는 듯한 뉘앙스의 말을 건넨다. 아니 부정하는 게 맞다. 그는 피노키오에게 아들을 투영했지만 피노키오는 아들일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피노키오는 집을 나설 수밖에 없었으리라. 이 얼마나 안타까운 불협화음인지.
존재 목적과 인정 투쟁
피노키오는 이 세상에 태어나졌다. 스스로의 의지라곤 단 1%도 반영되지 않은 채, 제페토와 푸른 요정에 의해 태어난 것이다. 피노키오는 자기존재의 목적을 찾아야 한다. 왜 이 세상에 태어났고 뭘 위해 살아 가야 하는지 말이다. 그때 여기저기서 유혹의 손길이 뻗친다. 사실은 피노키오의 존재를 이용해 먹으려는 수작이었지만, ‘네가 태어난 이유는 이거야, 너는 이걸 잘할 수 있어’라며 말이다. 흔들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래도 피노키오는 제페토가 일순위다. 제페토로부터 인정을 받으면 되는 것이다. 단 아들의 대체로서가 아니라 피노키오 자체로서 인정받아야 한다. 그게 안 되면 혼자 찾아야 한다. 존재의 목적도 찾아야 하고 제페토에게 인정받는 방법도 찾아야 한다. 아마도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모험을 헤쳐 나가야 할 테다. 자기를 찾는 것과 타인의 마음을 얻는 것을 동시에 해내는 건 그만큼 어렵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는 이 과정을, 익히 알려져 있어서 하등 궁금하지 않을 이 이야기를 기예르모 델 토로만의 방식과 분위기와 메시지로 완벽하게 재탄생시켰다. 고유의 기괴와 음울로 팬들을 납득시켰고 극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로 대중도 납득시켰다. 얼마전 공개되어 전 세계적으로 크게 인기를 끈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웬즈데이>와 비슷한 결이다. 팀 버튼 특유의 방식을 유지한 채 대중에게 다가가는 데 성공했다.
우린 누구나 ‘피노키오’라는 걸 실감한다. 자기의지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나 존재의 목적을 찾고자 또 인정을 받고자 끊임없이 떠도는 신세이니 말이다. 이 작품이 위로해 주는 것 같다, 이해해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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