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펩시, 내 제트기 내놔!>
1995년 11월, 펩시는 콜라의 원조 코카콜라에게 밀려 만년 2인자의 자리에서 빠져 나올 수 없어 온갖 방법을 구상하고 있었다. 구상 끝에 나온 해답은 ‘광고’, 신디 크로포드를 비롯한 당대의 아이콘들을 대거 데려와 무지막지하게 광고를 해댔다. 일명 ’펩시 세대‘를 마련하려는 몸부림이었다. 그때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광고 한 편이 안방 TV를 직격한다.
펩시를 먹으면 포인트를 주는데, 75포인트에 티셔츠를 주고 175포인트에 선글라스를 주며 1450포인트에 재킷을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대망의 전투기, 7백만 포인트를 모으면 배리어 전투기를 준다고도 명시되어 있었다. 예외조항 내지 면책조항도 없이 말이다. 펩시 측에서는 ‘누가 7백만 포인트를 가져오겠어?’ 하고 전투기 지급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일종의 허위광고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광고를 본 수 억의 사람들 중 단 한 명이 진지하게 생각한다. 당시 스무 살에 불과했던 존 레너드, 그는 등산 가이드를 하며 친해진 자유로운 영혼의 40대 사업가 토드 호프먼을 찾아가 투자를 부탁한다. 약 430만 달러만 투자해 주면, 3개월 만에 3200만 달러를 호가하는 배리어 전투기를 얻을 수 있다는 계획이었다. 레너드의 미친소리를 진지하게 듣고는 되는 방향으로 풀어 가고자 했지만, 이벤트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치명적인 위험요인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700만 포인트 가까이 모았는데 이벤트가 갑자기 끝날지도 모르는 게 아닌가. 레너드는 포기했을까?
펩시가 전투기를 줄 수 없는 이유
일명 ‘펩시 해리어 전투기 사건‘ ’레너드 대 펩시코 사건‘으로도 불리는 이 사건은 우리나라에서도 수많은 TV프로그램에서 다뤄져 익숙할 것이다. 어떻게 시작되어 어떤 결말에 이르게 되었는지까지의 전말을 말이다. 하지만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펩시, 내 제트기 내놔!>는 제목부터 풍겨 나오는 유머러스함을 한껏 장착한 채 사건을 제대로 파헤친다. 당사자인 레너드와 토드는 물론 그들과 함께한 변호사들, 그리고 당시 펩시 측의 광고 담당자와 마케팅 담당자들이 대거 출연한다.
그래서 레너드가 포기했냐고? 포기했으면 사건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우연히 이벤트 카탈로그를 들춰 보다가 깨알같은 글씨를 발견하는데, 그곳엔 ‘15포인트 이상만 있으면 모자라는 점수는 1포인트당 10센트로 환산해 현금으로 지불할 수 있다‘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즉 700만 포인트는 70만 달러였던 것, 레너드가 토드에게 제안했던 430만 달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가격이었다. 토드는 다시 진지해진다. 하지만, 70만 달러 수표를 펩시에 보내도 돌아온 건 비웃음조의 답변이었다.
열받은 레너드와 토드는 변호사를 구해 법적 대응에 나선다. 그들은 광고에 정확히 나와 있는 걸 정확히 지켰으니 펩시는 그들에게 해리어 전투기를 지급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에 펩시는 레너드가 해리어 전투기를 지급받는 게 불법이라며 오히려 고소한다. 레너드 측도 맞고소한다. 그들은 뉴욕의 펩시 본사에서 대면하는데, 펩시 측이 100만 달러의 합의금을 제안하기에 이른다. 레너드의 선택은?
이보다 더 재밌는 다큐는 없다!
‘유쾌, 상쾌, 통쾌’가 정확히 들어맞는 이 작품 <펩시, 내 제트기 내놔!>, 일찍이 보기 힘든 류의 다큐멘터리 시리즈다. 당시의 일은 거의 재연으로 보여 주는데, 이길감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즉 당시를 즉시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게 문제의 펩시 광고와 이벤트 카탈로그 정도뿐이기에, 콘텐츠의 부실함을 분위기로 완벽히 메우고 있는 것이다. 근래 이보다 더 재밌게 본 다큐멘터리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다.
레너드와 토드 일행(또는 일당?)은 펩시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물불 안 가리는 공격적인 사람을 데려온다. 마이클 아베나티, 그는 전략을 다시 세워 언론을 집중 공략한다. 그 결과, 수많은 라디오에 출연한 후 수많은 TV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누구라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결과에 앞서 과정 또한 너무나도 궁금했던 것이다. 에너드는 뉴스는 물론 유명 토크쇼에도 나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펩시는 레너드 측이 펩시를 갈취하려 한다는 프레임을 들고 온다. 그가 돈에 환장한 기회주의자라는 것이었다. 스무 살 어린 나이에 심리적으로 큰 타격을 받을 만했지만, 레너드는 펩시의 100만 달러 제안을 거절할 정도로 배포가 컸다. 그들은 다시 한 번 끝까지 가기로 다짐한다. 그때 갑자기 펜타곤이 개입한다. 대변인이 해리어 전투기는 무장 해제가 안 되어 판매할 수 없다는 기자회견을 연 것이다. 일련의 사건은 다시 교착 상태에 빠진다.
펩시 해리어 전투기 사건의 전말
아베나티는 교착 상태에서 빠져 나와 다시 한 번 반격을 가하기 위해 펩시의 뒤를 캐기 시작한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 알아 낸 중요한 2가지, 하나는 펩시가 캐나다에도 동일한 광고를 내보냈는데 면책조항을 넣었다는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1992년 필리핀에서 일어난 대형 사건이었다. 특히 후자 쪽이 심각했는데 아베나티는 그쪽을 파고든다.
코카콜라가 필리핀 음료 시장을 절대적으로 점령하고 있던 1992년 펩시가 대대적인 이벤트로 반격에 나서는데, 펩시 병뚜껑에 새겨진 숫자에 따라 당첨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이었다. 1등 당첨금은 100만 페소, 보통의 노동자 수십 년치 연봉에 해당했다고 한다. 그런데 치명적인 컴퓨터 오류로 2개여야 할 1등 번호 '349'가 수십 만 개 인쇄되었고, 당연히 1등 당첨자도 수천수만 명이 나왔다. 당연히 펩시를 찾아갔지만 돌아온 건 터무니 없이 적은 돈, 오래지 않아 폭동이 일어난다. 사람도 죽었을 정도의 큰일이었다.
하지만 결정적일 때 토드가 발을 뺀다. 아베나티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아마도 그의 방식대로 일을 밀어붙였으면 펩시한테 이겨 제트기를 받아냈을지는 몰라도 몸과 마음이 완전히 만신창이가 되어 어떤 후폭풍에 맞닥뜨렸을지 모르는 일이다. 아베나티는 이후 다른 사건으로 교도소에 다녀왔고 지금은 가택구금 중이다. 그런가 하면, 법원까지 간 사건은 결국 펩시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것이 이 사건은 판례집에 실려 지금까지도 활발히 토론되고 있다. 대부분 레너드의 손을 들어 준다고 한다.
이 사건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들여다볼 수 있다. 일명 ‘콜라 전쟁’의 양상, 오해의 소지가 있는 광고, 대기업의 배째라식 압박 대응, 상식에서 벗어난 듯한 친기업 판례, 그리고 돈보다 꿈(제트기)이 중요하다는 걸 몸소 보여준 스무 살 청춘의 패기까지.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선물세트 같은 다큐멘터리 작품이었다. 다시 봐도 질리기는커녕 흥미진진할 것 같다. 존 레너드 그리고 토드 호프먼처럼 살아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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