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실버턴 포위 작전>
1980년 1월 남아프리카공화국, 행정수도 프리토리아에서 발전소를 폭파시키는 데 성공한 무장투쟁 단체 MK(민족의 창) 멤버들 4명은 연이어 프리토리아의 시호스 원유 터미널을 폭파시키고자 한다. 그들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혁파하는 데 주목적이 있었고, 민간인을 살상하지 않는 선에서 테러를 감행했다.
원유 터미널 폭파 작전을 시작하려는데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리더 캘빈 쿠말로, 아니나 다를까 경찰들이 매복해 있었다. 곧 쫓기는 신세가 된 멤버들, 도주하는 과정에서 마세고가 사망하고 나머지 셋은 근처의 은행에 숨어든다. 마세고의 연인이기도 했던 테라가 분을 참기 힘들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은행에 들어가 직원과 고객 들을 인질로 삼은 채 돈은 훔치지 않고 경찰과 대치하는 멤버들, 빠르게 나가고자 무장하지 않은 조종사를 대동한 헬리콥터를 요청한다. 인질로 미국인(흑인 미국인 대신 백인 보어인) 한 명을 데리고 나간다. 하지만, 조종사는 경찰의 지시를 받아 무장하고 있었다. 결국 멤버들은 탈출하지 못한 채 인질과 조종사를 데리고 다시 은행으로 돌아온다. 난감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생각 끝에 내놓은 캘빈의 계획은 '넬슨 만델라' 석방 요구였다. 과연, 멤버들과 인질들과 경찰들 모두 무사할 수 있을까?
범 아파르트헤이트 영화
1990년에 넬슨 만델라가 전격 석방되고 1992년에는 유색인종에게도 투표권이 주어졌으며 1994년에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에 당선되며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선 아파르트헤이트 정책(극단적인 인종차별정책과 제도)이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그때부터 아파르트헤이트를 다룬 영화가 많이 만들어졌는데, 대표적으로 <자유의 절규> <보파!> <파워 오브 원> 등이 있다. 2000년대 이후에도 만들어졌는데, 2009년작 <디스트릭트 9>이나 최근의 <프리즌 이스케이프> 등 다양한 장르로 아파르트헤이트의 참상을 전하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실버턴 포위 작전>도 범(汎) 아파르트헤이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남아공 인종차별 정책에 저항한 MK 멤버들의 사보타주(적의 군사목표 시설에 대한 비밀파괴공작)가 이야기의 주된 골자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다루는 건 테러 실패 후 시작된 인질극이고 그 때문에 그들이 애초에 목표로 했던 민간인 비(非)살상이 어그러지고 말았다.
흑인 해방과 자유를 기치로 비살상 시설 파괴가 주목적이었지만 상황이 꼬여 경찰에게 쫓기다가 은행 인질극까지 벌일 수밖에 없었다니,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하지 않았으면 애매한 흐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오히려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에 픽션을 얹은 이 영화만의 재미가 살아났다. 숭고한 신념과 의의를 바탕으로 의외의 박진감이 시종일관 영화를 채운다. 다분히 액션 영화다.
1980년 당시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축소해 놓은 듯
영화를 보기 전까진 <실버턴 포위 작전>을 향한 기대감이 생기기 쉽지 않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액션 영화라고 하지만, 외형상 알 만한 배우도 없고 블록버스터급에 준하기라도 하는 액션을 선보일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배경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이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색안경을 낄 수밖에 없었다.
정작 뚜껑을 열어 보니 생각보다 훨씬 괜찮았다. 액션도 꽤 날것이었거니와 은행 안에서 펼쳐지는 인질극 아닌 인질극이 꽤나 쫄깃하게 진행되었다. 이 영화가 보여 주려 한 건 아파르트헤이트일 텐데, 3명 자유 투사의 활극에 은행 안 인질들의 인간군상도 한몫한다. 이 부분은 다분히 창작이라고 보는데,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또 다른 주요 이야기겠다.
인질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젊은 책임자 크리스틴은 침착하게 상황을 살피고 MK 멤버와 인질들 사이를 조율하고자 한다. 사실 그녀는 법무부 장관의 딸인데, 아버지의 무차별적인 흑인 학살로 평생 죄책감 속에서 살아왔고 이제 다른 길을 걷고자 한다. 어떤 흑인 남성은 미국에서 온 미국인인데, MK 멤버들을 돈으로 회수하고자 했다가 점차 그들과 동화된다.
흑백 혼혈로 검지 않은 피부색으로 백인 행세를 하는 여성도 있고, 백인의 앞잡이로 MK 멤버들의 탈출을 무마시킨 흑인 파일럿도 잡혀 와 있었으며, 어느 남성 은행원은 인종차별주의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MK 멤버들에게 강하게 반발하다가 제압당하기도 한다. 거기에 상당히 인도주의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랑에르만 반장과 흑인을 인간 이하 취급 하는 준장도 있다. 1980년 당시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축소해 놓은 듯한 모습으로 적절했다.
넬슨 만델라 석방 운동의 불씨
영화를 보면, 리더 캘빈이 멤버들도 살리고 인질들도 살리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내놓은 게 '넬슨 만델라 석방'이다. 자신들의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만방에 알리려는 의도였다. 그럼 경찰도 함부로 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하여, 사방에 경찰이 깔려 있고 저격수가 총을 겨누고 있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기자들을 향해 넬슨 만델라 석방 그리고 자유를 외친 것이다.
살아 나간다고 해도 감옥에 갇히든 죽든 그것도 아니면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든 지금과 다를 바 없는 삶이 계속될 걸 알았기에, 죽음을 각오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해 보자는 의미였을 수도 있겠다. 그들의 의도 또는 바람이 제대로 전해졌는지, 훗날 넬슨 만델라 석방 운동의 불씨가 되었고 결국 석방까지 이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MK의 무장 투쟁은 아파르트헤이트 철폐라는 정의에 목적이 있다. 하여 그들의 사보타주는 누구도 토를 달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은행 인질극은 얘기가 다르다. 아무도 죽이지 않는다는 그들의 목표가 실현된다 해도 인질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기지 않겠는가. 그런데 인질이 죽기까지 했다. 무장 투쟁이 가질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도 생각해 보게 하는 영화, 판단은 각자의 몫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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