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아무도 믿지 마라: 암호화폐 제왕을 추적하다>
지난 2018년 12월 9일, 누군가에겐 지나가는 흔한 뉴스일 테지만 누군가에겐 인생을 좌우할 수 있을 만큼의 파급력을 지닌 뉴스가 터진다. 한때 캐나다 최대 비트코인 거래소였던 '쿼드리가CX' 설립자 제럴드 코튼(이하, '제리')이 아내 제니퍼 로버트슨(이하, '제니')과 인도 여행 중 크론병 합병증으로 급작스럽게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거대 회사의 CEO가 사망하는 건, 그것도 급작스럽게 사망하는 건 분명 당황스럽고 일면 이상하기까지 한 일이지만 큰 문제로까지 비화될 건 없을 테다. 현대 사회의 핵심이라 할 만한 대기업은 사실상 시스템으로 돌아가기에, 수장이 없다고 해도 큰 이상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쿼드리가CX는 달랐다. 암호화폐에 접근할 수 있는 비밀번호를 오직 제리 혼자서만 알고 있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아무도 믿지 마라: 암호화폐 제왕을 추적하다>(이하, '아무도 믿지 마라')는 한때 캐나다 최대 비트코인 거래소였던 쿼드리가CX를 단번에 파산에 이르게 한 CEO 제럴드 코튼의 급작스러운 죽음과 그의 죽음으로 찾을 길 없어진 2억 5천만 캐나다 달러와 관련된 이야기를 전한다. '아무도 믿지 마라'라는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한때 캐나다 최대 비트코인 거래소, 쿼드리가CX
2022년에도 비트코인 광풍은 여전하다. 작년 상반기와 하반기에 두 번이나 사상 최고가액을 세우고 현재 급격히 내리막길에 있지만, 그동안 주기적으로 급격히 치고 올라갔으니 모든 투자자가 기대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모르긴 몰라도, 암호화폐 또는 가상자산을 비트코인과 동일하게 알고 있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가상자산 중 하나가 암호화폐이고 암호화폐 중 하나가 비트코인이다. 비트코인이 암호화폐 나아가 가상자산 중 여전히 가장 유명하기 때문일 테다.
비트코인은 2008년 공개되어 2009년 발행되었다고 한다. 2011년 중순에 크게 한 번 치고 올라갔고 2013년 말에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치고 올라갔다. 비트코인 광풍의 진정한 시작이지 않았나 싶다. 그 광풍에 완벽히 올라탄 이가 있었으니, 캐나다의 젊은 사업가 제럴드 코튼이었다. 그는 전형적인 요즘 젊은 사업가 스타일로, 패션 감각 꽝에 해맑기 짝이 없고 세상 물정 모르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마크 주커버그를 떠올리면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제리가 세운 회사는 비트코인 거래소였다.
그러던 2017년, 비트코인 벼락부자 양산 시대가 도래한다. 2013년의 그때보다 2배 더 높은 가격을 찍어 버린다. 쿼드리가CX는 2017년 한 해에만 12억 캐나다 달러를 거래시키며 단숨에 캐나다 최대 비트코인 거래소로 우뚝 선다. 이용자 수도 많았던 건 물론이다. 제리는 그렇게 번 돈으로 세계여행을 다니고 집을 사고 비행기까지 구입한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젊은 사업가의 전형을 보여 준 것이다.
벼락거지 양산하는 비트코인 폭락
지금쯤은 알 만한 사람은 알 것이다, 비트코인의 급등과 급락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걸 말이다. 벼락부자를 양산하는 만큼 벼락거지를 양산했다. 하지만 알면서도 '나는 아니겠지' 하며 큰 돈을 들이는 이들이 있는 법이다. 비트코인이 잘나갈 때 쿼드리가CX를 통해 비트코인을 막대하게 사들였다가 비트코인이 거꾸러질 때쯤 현금화시키려 했던 이들이 다큐멘터리에 인터뷰이로 출현했다.
2018년 비트코인은 언제 그랬냐는 듯 거짓말처럼 폭락한다. 하지만 예견된 일이기도 했을 테다. 만물에는 오르내림이 있으니 말이다. 여하튼 비트코인이 상승기일 때 비트코인을 사고 비트코인이 하락기일 때 비트코인을 파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2018년 비트코인 하락기일 때 쿼드리가CX로 비트코인을 현금화하려 했던 수많은 이가 실패했다. 오래토록 기다려도 현금화되지 않았고, 곧 CEO의 사망 소식과 함께 파산 소식이 들린다. 결정적으로, 암호화되어 있는 돈을 꺼낼 수 없다는 소식을 듣는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 얼마를 손해 봤다는 정도의 차원이 아니라 아예 절대로 돈을 꺼낼 수 없다는 것이다. 급작스럽게 죽은 CEO만이 오프라인 암호화폐 지갑인 콜드 월렛에 접근하기 위해 필요한 암호를 알고 있었다니 말이다. 그곳에 들어 있는 돈은 자그마치 2억 5천만 캐나다 달러였고 이용자는 전 세계 각지에서 11만 명이 넘었다.
피해자들은 모임을 만들어 하소연도 하고 방법을 강구하며 루머까지 양산한다. 이를테면, 제리가 자신의 죽음을 이용해 돈을 빼돌렸다느니 제니가 제리를 죽이고 돈을 빼돌렸다느니 제리의 동업자 마이클 패트린이 꾸민 짓이라느니 말이다. 실제로 제리의 죽음과 관련해 의문스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사망 후 한 달 이상 지난 시점에 사망을 발표했고, 사망 2주 전에 유언장을 작성했으며, 친구들과 연락했을 때 자신의 위치를 노출시키지 말아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마이클 패트린은 전과자였고 말이다.
연쇄사기범 제럴드 코튼
다 밝혀진 사실이지만 결론을 알지 못한 채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언젠가 제럴드 코튼이 짠 하고 나타나 재판을 받고 감방에 갔다가 나와서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비트코인 거래소를 차려 수많은 사람의 돈을 가지고 호화롭게 살아가고 있을 거란 결론을 그릴 수밖에 없다. 어느새 허무하게 돈을 잃은 이들한테 감정을 이입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제리는 확실하게 죽었고 마이클 패트린은 일찌감치 쿼드리가CX에서 나왔으며 제니가 제리를 죽이고 돈을 빼돌렸다는 확실한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막판에 밝혀진 바가 또 충격적인데, 제리는 쿼드리가CX를 차리기 한참 전부터 사기를 치고 다녔다고 한다. 14, 5세부터 계속 사기를 쳐 온 연쇄사기범이라는 것. 그는 쿼드리가CX를 이용해 '폰지사기'를 실행했고, 수많은 사람이 '제럴드 코튼'이라는 사람이 아닌 '캐나다 최대 비트코인 거래소' 쿼드리가CX를 봤다가 사기를 당했다.
시종일관 쉴 새 없이 몰아치며 쫀쫀하게 사건을 이리저리 추적하니 재미 하나는 보장한다. 넷플릭스 범죄 다큐멘터리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인터넷 킬러 사냥> <데이트 앱 사기> 류의 '흥미 위주' 작품과 결을 같이한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지나친 욕심은 화를 부른다'라는 시대적 교훈까지 함양하고 있는 건 비트코인 광풍이 여전히 매섭게 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록적인 롤러코스터 행보도 함께 말이다. 언제고 사기꾼과 피해자들을 양산시키지 말라는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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