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굿' 바이 : Good&Bye>한달여 전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믿기지가 않았다. 비록 1년 전부터 많이 안 좋아지셨긴 했지만, 내 기억 속 외할아버지는 건강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는데 말이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묵묵히 우리를 지켜봐주실 줄 알았는데, 너무나 급작스런 죽음이었다. 죽음이 누구에게나 찾아오고 반드시 찾아올 거라는 사실을 항상 인지하고 있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웃음꽃이 피어났던 장례식
어렸을 때 겪었던 죽음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경험이었다. 한편으론 신기한 경험이었다. 장례식장에 '울음'의 행렬이야 당연한 것이겠지만, '웃음' 꽃이 피어날 줄은 몰랐다. 또 하나의 귀중하고 신기한 경험은 납관의식이었다. 손자 세대 중에 나만 유일하게 그 의식에 동행할 수 있었다. 엄숙하고 숙연한 분위기에 눈물이 바다를 이루는 시간이었지만, 의식이 끝나고 어른들이 하신 말씀들이 뇌리에 남는다.
"아버지 잘 생기지 않았니?"
"정말 잘 가신 것 같아."
"평온해 보이시니 너무 좋다."
'시신'에 대한 말씀치고는 자못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그게 너무 자연스럽지 않겠는가? 내가 느끼기에도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았다. 외할아버지의 모습은 평온했고 아름답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이는 내 머릿속에서 '납관'이라는 불쾌한 단어가 비로소 밝은 빛을 발하게 해주었다. 더 이상 불쾌하지 않게 된 것이다.
영화 <굿' 바이 : Good&Bye> ⓒ 네이버
외할아버지도 아름다우셨지만, 납관의식 자체가 무척 아름다웠다. 지켜보기만 해도 눈물이 흐를 정도로 죽은 이에 대한 최대한의 예우 속에서 의식은 거행되었고, 납관사 분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해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마지막 가시는 길을 아름답게 포장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러고 나서 단번에 생각나는 영화가 있었다. <비밀> <음양사> 등으로 유명한 타키타 요지로 감독의 2008년도 작품. < 굿' 바이 : Good&Bye >
마지막 길을 떠나는 사람들을 배웅하는 여행가이드
영화는 전도유망한 첼리스트 다이고가 속한 악단이 해체되면서 시작된다. 백수가 된 다이고는 일자리를 찾아보던 중 파격적인 조건의 여행가이드 구인 광고를 보고 면접을 보게 된다. 면접은 단번에 합격! 그러나 그가 하게 된 일은 일반적인 여행가이드가 아니었다. 인생의 마지막 길을 떠나는 사람들을 배웅하는 여행가이드, 즉 '전문 납관사'였던 것이다.
황당하기 그지없는 다이고였지만, 먹고 살아야 했기에 일단 납관 일에 착수한다. 하지만 매일 같이 죽음을 마주한다는 건 누구나 에게도 쉽지 않은 일. 방황하는 다이고이지만, 사장이자 베테랑 납관사인 이쿠에이의 정성스럽고 진실된 납관의식을 참관하고 설명할 수 없는 깊은 감동을 받는다. 그도 비로소 삶과 죽음을 이어주는 존재의 일반적임과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이다.
영화 <굿' 바이 : Good&Bye>의 한 장면. 이쿠에이의 납관의식을 접하고 감동을 받는 다이고 ⓒ 쇼치쿠 KD미디어
하지만 그의 아내, 그의 친구, 그의 고객들은 그의 직업을 불결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다이고에게 한마디씩 한다. 이는 다이고에게 또 하나의 큰 시련으로 다가온다.
"다가오지마! 불결해..."
"아무리 먹고 살기 힘들어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일을..."
(고객이 저주를 퍼붓는 대상에게) "너는 나중에 저 사람(다이고)처럼 살게 될 거야!"
다이고를 향한 일련의 말들을 '죽음'을 향한 것이나 다름없다. 죽음은 불결한 것이고, 죽음에 관련된 일은 천하디 천할 뿐만 아니라 천하에 할 일이 없어도 해서는 안 될 일인 것이다. 그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다이고는 진리가 담긴 말을 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모두가 죽어, 당신도 나도. 그런 죽음이 일반적인 게 아니면 뭐가 일반적인 건데?"
다이고가 할 수 있는 건 하나 밖에 없다. 죽음과 관련된 일이, 죽음이 결코 불쾌하거나 불결한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것. 그들 앞에서 죽음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 말이 아닌 진심을 담은 행동으로 그들을 감동시키는 것.
영화 <굿' 바이 : Good&Bye>의 한 장면. 다이고는 엄연한 납관사가 되었다. ⓒ 쇼치쿠 KD미디어
삶과 죽음 사이에서... 굿' 바이다이고의 가슴엔 큰 멍울이 자리 잡고 있다. 어릴 적 자신을 버리고 도망간 아버지의 빈자리.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을 줄 알았던 아버지가 혼자 쓸쓸히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버지가 가는 마지막 길을 배웅해 드리는 것. 그는 아버지에게 말한다.
"훌륭한 삶을 사셨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잘 가세요."
'Good&Bye'에는 이런 뜻이 있는 것이다. 훌륭한(Good) 삶을 사셨어요. 잘 가세요(Bye). 그리고 이 사이를 연결해주는 다리이자 마지막 여행을 안내하는 가이드 납관사(&).
영화 <굿' 바이 : Good&Bye>의 한 장면. “훌륭한 삶을 사셨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잘 가세요.” ⓒ 쇼치쿠 KD미디어
영화는 죽음을 다루지만 코믹스러운 연기나 상황 설정이 가미되어 있어 결코 우울하거나 어둡지 않다. 그렇다고 죽음을 우습게 다루고 있지도 않는다. 그 변화도는 이렇다. 초반의 죽음은 엄숙했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즉 죽음도 결코 엄숙하다고만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본래 Good Bye라는 단어를 죽음이라는 뜻과 완전히 겹치게 해버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단정 지어 버린 것을, 가운데 &을 넣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진 것이다. 세상에 단 나의 진리가 있다면, 그리고 가장 일반적인 개념이 있다면 그건 바로 '죽음'일 것이다. 죽음으로의 길은 누구나가 반드시 가야할 길이기도 하다. 나도 가야하고 가족들도 가야하고 친구들도 가야하고 지인들도 가야한다. 이왕 가는 길이라면, 보내는 이에겐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고 보내지는 이에겐 아름다운 여정길이 되어야지.
"오마이뉴스" 2013.3.25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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