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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스 푸르자의 14좌 최단 기간 완등 여정을 따라서 <14좌 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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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14좌 정복: 불가능은 없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14좌 정복: 불가능은 없다> 포스터.

 

지난 1월 16일, K2에서 세계 등반사를 새로 쓴 대기록이 전해졌다. 사상 처음으로 겨울철 K2 등정에 성공한 것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니르말 님스 푸르자'를 포함한 네팔 산악인 10명 등반대였다. K2라 하면, 에베레스트 다음으로 높은 8611미터 높이의 산으로 8000미터 14좌 중 등정 성공률이 가장 낮고 사망률은 안나푸르나 다음으로 높기에 등반하기 가장 어려운 산이자 '야만의 산'으로 불린다. 

 

K2를 봄이나 여름철 아닌 겨울에 오르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는데, 시속 200km에 육박하는 악명 높은 칼바람과 영하 60도까지 내려가는 가혹한 추위 그리고 말로 설명하기 힘든 만큼 쏟아지는 눈 때문이다. 하여, 최초 등정 시도 후 52년만에 성공했다고 한다. 당당히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의 경우 29년만이었다. 

 

그런저런 사정을 가진 K2를 겨울철에 등정하는 데 성공한 등반대의 대장격 '니르말 님스 푸르자'에게 시선이 쏠리지 않을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미 세계적인 유명 인사로 지난 2019년 세계 등반사를 새로 쓴 바 있다. 6개월 6일 만에 8000미터 14좌 등정에 성공한 것이다. 앞으로 깨지기 힘든 기록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영화 <14좌 정복: 불가능은 없다>가 그때 그 짧지만 긴 여정을 기록했다. 상상 너머에 있는 대장정을 따라가 보자.

 

정신 나간 무명 등반가의 선언

 

2019년 봄 무렵 '정신 나간' 네팔 남자 님스 푸르자 얘기로 전 세계 등반계가 떠들썩했다고 한다. 누구도 그를 모를 정도로 등반계에선 낯선 인물이었거니와, 죽지만 않으면 8000미터 14좌를 7개월 만에 완등할 수 있다고 장담했기 때문이다. 인류에게 영감을 주고 네팔 등반 공동체를 대변하는 여정으로 'PROJECT POSSIBLE'이라는 슬로건을 달았다. 

 

유럽이나 미주 등반가가 아니기에 상대적으로 적은 관심과 님스 푸르자라는 무명 등반가를 향한 어쩔 수 없는 무신뢰 속에 여정이 시작되었다. 여정은 3단계로 나눴는데, 1단계는 4~5월에 네팔의 6좌(안나푸르나, 다울라기리, 칸첸중가, 에베레스트, 로체, 마칼루), 2단계는 6~7월에 파키스탄의 5좌(낭가파르바트, 가셔브룸 1, 가셔브룸 2, K2, 브로드피크), 3단계는 9~10월에 네팔/중국의 3좌(초오유, 마나슬루, 시샤팡마)였다. 

 

너무나도 비현실적이고 무모하며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이었기에 아마도 아무도 그를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까지 14좌 완등 최고 기록이 자그마치 7년 10개월 6일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故 김창호 대장이 세운 기록이었다. 나아가 세계 등반계의 살아 있는 역사이자 전설인 라인홀트 메스너가 인류 최초로 14좌를 완등했을 때 기록은 장장 16년에 달했다. 

 

님스 푸르자의 14좌 최단 기간 완등 여정

 

작품은 작정한 듯 님스 푸르자의 14좌 완등 여정을 철저히 뒤따른다. 언론 기사로밖에 얻기 힘든 그의 여정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니, 당연하게 이것저것 일들이 많았다. 6개월 6일이라는 말도 안 되는 시간에 완등했다지만, 훨씬 더 빠르게 완등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어 보인다. 그럴 정도로 그는 철인 이상의 철인인 것이다. 

 

여정의 첫 산인 안나푸르나 등정부터 문제가 생겼다. 정상에 오르고 내려오던 중 다른 팀의 등반가 중 한 명이 내려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 것이다. 하여, 님스 푸르자는 팀을 꾸려 헬리콥터를 타고 그곳으로 향했다. 산소가 없었던 그한테 가져온 산소를 주고 밤새도록 함께 내려갔다. 이튿날 병원으로 실어갈 수 있었다. 여정의 세 번째 산인 칸첸중가 등정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생겼다. 정상에 오르고 내려오던 중 끔찍한 상태에 있던 등반가를 만난다. 산소가 없었던 그에게 산소를 나눠 주고는 모든 캠프에 무전을 쳤다. 하지만 아무도 도와주러 오지 않았고, 밤새도록 함께 내려갔지만 결국 죽고 말았다. 

 

에베레스트 등정 때는 희한한 일이 있었다. 300명에 이르는 등반가들이 정상을 밟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광경이었다. 보고도 믿기 힘든 이 광경을 님스 푸르자가 찍어 SNS에 올렸고 곧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에서 병목 현상이 일어났다니 말이다. 더 이상 에베레스트 등정이 위대하지 않다는 증거가 아닌가. 낭가파르바트 등정 때는 정상에 오르고 내려오면서 미끄러져 죽을 뻔하기도 했다. 

 

2단계와 3단계 공백기엔 님스 푸르자 어머니의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져 모든 이가 노심초사하며 지켜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기적처럼 건강을 회복해 아들을 응원하기까지 했다. 이듬해 돌아가셨으니, 아들의 도전을 응원하고자 살아남으셨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런가 하면, 9월 말에 13좌 등정을 완료했지만 마지막 하나 시샤팡마 등정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중국 정부가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정치적으로 호소하는 한편 SNS를 활용해 전 세계 여론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였다. 결국 성공하고만 그다.

 

대단한 인간의 위대한 도전

 

님스 푸르자의 도전은 위대하지만 성공은 위대하다고만 하긴 힘든 측면이 있다. '최단기간 8000미터 14좌 완등'이라는 앞으로 그 누구도 쉽게 깨기 힘든 기록은 분명 대단하지만, 거기엔 등반에 대한 순수함은 결여되어 있는 것과 다름없기에 위대하다고 하긴 힘들다. 그를 두고 '위대한 산악인'이라고 하긴 힘든 대신 '대단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편, 도전의 의도는 위대하다고 말할 만하다. 네팔의 등반 공동체는 언제나 8000미터 봉우리들의 개척자였지만 그에 걸맞는 존경을 받은 적이 업었다며, 이 도전과 성공으로 네팔의 등반 공동체를 대변하고 싶다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나아가 '불가능은 없다'라는 슬로건으로 인류에게 영감을 불어넣으려는 의도 또한 위대한 측면에 있다. 

 

작품이 언급하거나 설명하고 있지 않지만, 그의 도전과 성공으로 '14좌 완등'은 더 이상 성역의 영역이 아니게 되었다. 다분히 인간의 영역으로 내려온 것이다. 결코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누구든' 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들만의 세계였던 등반계에 위대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 주며 경계를 파괴해 버린 님스 푸르자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가 다시 쓴 역사는 단순히 등정 기록의 측면에서만 들여다볼 수 없다, 기존과 다른 의도를 가지고 해낸 성공이라는 측면에서 들여다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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