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오징어 게임>
주연 이정재·박해수 등, 연출 황동혁 감독, 음악 정재일 등 관계자들의 면면만으로도 가히 2021년 하반기 최고의 기대작으로 손색이 없는 작품이 공개되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 <오징어 게임>으로, 황동혁 감독이 자그마치 2008년부터 10년 넘게 구상한 작품이라고 한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설명하겠지만, 데스 게임 장르이기 때문에 2008년에는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지기 쉽지 않았을 것이고 오랜 시간이 흘러 외국 자본인 넷플리스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제목이기도 한 '오징어 게임'이 뭔지부터 알아 볼 필요가 있겠다. 80년대 아이들이 흙으로 된 운동장에서 자주 하던 놀이였고 90년대에도 종종 하던 놀이였으니, 90년대생이자 현재 20대들에겐 익숙하지 않은 놀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흙 운동장에 오징어 모양의 경기장(?)을 그려놓고 한 팀에 5명 이상이 편을 먹는다. 각각 공격과 수비를 하는데, 공격팀은 승리가 목표이고 수비팀은 공수전환이 목표이다. 넘어트리거나 끌어들이는 행위가 주를 이루기에 상당히 폭력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놀이라고 부르든 게임이라고 부르든 스포츠라고 부르든, 어렸을 적 누구나 한 번쯤 접해 봤음직하다. 즉, <오징어 게임>이라는 콘텐츠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라고 할까 친근감이라고 할까는 성공적으로 부여된 것이리라. 그리고 작품을 접하면서도 이질적인 면은 찾기가 힘들었다. 우리나라에선 생소할지 모르지만 데스 게임 장르는 전 세계적으로 워낙 잘 알려지고 또 많이 나오기도 했거니와, 온갖 머리싸움과 액션과 심리전까지 총동원한 게임들이 아닌 어렸을 적 누구나 한 번쯤 해 봤음직한 놀이들이기 때문이다.
456명이 모여 펼치는, 456억이 걸린 데스 게임
빛더미에 앉아 있으면서도 노모의 쌈지돈을 훔쳐 경마장에 가선 한탕만 꿈꾸는 백수 건달 기훈, 그날은 운 좋게 꽤 많은 돈을 땄지만 빚쟁이들한테 쫓겨 다 털릴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소매치기에 당해 신체포기각서까지 쓰며 한 달의 기한을 받는다. 이제 더 이상 도망칠 곳도 없고 도망칠 돈도 없다. 그때 그의 앞에 나타난 의문의 남자, 그와 딱지치기를 하고는 수십 만 원의 돈을 딴다. 그가 건넨 명함, 긴가민가 시간을 보내다가 명함의 안내에 따라 의문의 곳으로 향한다.
눈을 떠 보니 알 수 없는 곳에 알 수 없는 사람들 456명이 모여 있다. 그들 앞에, 동그라미와 세모와 네모가 그려진 가면을 쓰고 총을 든 요원들이 나타나 통제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전해지는 충격적인 말, 게임에 참가해 남는 한 명에게 456억이 주어진다는 것. 뭣도 모르고 참가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에서 참가자들 절반 이상이 죽고 만다. 죽음에의 두려움을 견디지 못한 참가자들은 결국 게임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어느 날 다시 그들 앞에 명함이 나타난다. 그들 대다수는 다시 그곳으로 향하고 데스 게임을 시작한다. 밖에 나가 보니, 갈 데도 없고 할 것도 없으며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었던 것이다. 그럴 바엔 목숨 걸고 일말의 희망, 큰 부자가 될 수 있는 희망에 모든 걸 걸어 보기로 한다. 과연 누가 최후의 1인이 되어 456억을 거머쥘 수 있을까? 그런데, 그들은 과연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데스 게임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한국 최초'의 수식어를 붙인 웰메이드
2000년대를 전후해 데스 게임 장르의 영화, 드라마, 소설, 만화, 게임 등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세기말의 영향이라 할 수 있겠는데, 일본권에선 소설과 영화로 큰 성공을 거둔 <배틀로얄>이나 만화 <도박묵시록 카이지> 그리고 <라이어 게임> <신이 말하는 대로> 등이 있을 테고 서구권에선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시리즈 <쏘우>나 <큐브> 그리고 <더 게임> <헝거 게임> 등이 있을 테다.
반면 한국에서는 영화 <10억>이나 드라마 <라이어 게임> 등이 있었는데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배진수 작가의 게임 시리즈 웹툰 <머니게임>과 <파이게임>이 데스 게임 장르의 대표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바로 이 <오징어 게임>이 새로운 대표로 우뚝 올라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징어 게임>이 공개된 후부터, 한국 데스 게임 장르의 대표는 <오징어 게임>인 것이다.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과 조성희 감독의 <승리호>가 생각난다. 뜬금 없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두 작품 다 <오징어 게임>처럼 '(망작 아니며 성공한) 한국 최초'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최초'의 수식어와 더불어 여러 면에서 '웰메이드'의 수식어 또한 붙여 줄 수 있는 작품들인 것이다.
<오징어 게임>에 한해 다시 들여다보면, 주요 소재인 '게임' 자체에 몰두할 수 있게 어렸을 적 놀이를 그대로 가져온 게 신의 한수였고 '사회 비판'도 튀지 않게 적절히 채워 넣었다. 작품을 재밌게 접하다 보면, 자연스레 자본주의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인간군상이 드러나는 것이다. 다름 아닌,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라고 할까.
친근함과 단순함을 앞세운 재미를 환영한다
데스 게임 장르가 동시다발적으로 출현한 이후 큰 인기를 끌면서 마니아층 또한 생겨 났을 테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법한 게임, 게임 안에서 펼쳐지는 치열한 수싸움과 심리전과 육탄전, 시대상에 맞는 인간군상 퍼레이드까지 콘텐츠 별로 명작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그런 작품들을 수없이 접한 이들에게 <오징어 게임>은 자못 애들 장난으로 비춰질지 모른다. 게임 자체가 애들 놀이인가 하면, 게임 안에서 역대급의 수싸움과 심리전과 육탄전을 즐길 순 없지 않은가 말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제아무리 역대급의 수싸움과 심리전과 육탄전을 마련했다고 해서 '식상함'과 '기시감'을 없앨 순 없었을 것이다. 비슷한 류로 보다 더 자극적인 콘텐츠가 되었을 뿐이었을 테다. 반면, 이 작품은 '친근함'과 '단순함'을 앞세워 생각하면 할수록 무서워지고 보면 볼수록 쫄깃해지는 면을 부각시켰다. 하여, 데스 게임 장르 마니아는 다른 시선으로 이 작품을 봤으면 좋겠고 데스 게임 초보자는 이 작품을 있는 그대로 즐기면 좋겠다.
얼마전 <D.P.> 덕분에 밀리터리 콘텐츠가 다시 부각되었던 것처럼 이 작품 <오징어 게임>을 시작으로 데스 게임 콘텐츠가 다시 부각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정녕 출중한 재미를 창출하는 작품들이 아주 많은데,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했으니 왠만큼 많이 접해도 최소한의 재미를 보장할 것이다.
우리나라도 '장르'에 기반한 콘텐츠들이 장르적 재미에 천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품성에까지 가 닿고 있는 듯하다.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자본의 힘인가, 비쥬얼과 스토리의 결합이 만들어 내고 대기독자와 확장독자까지 품은 콘텐츠의 힘인가. 적어도 지금으로선 어떤 수단이든 일단 환영해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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