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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대책 없이 즉흥적이기만 한데, 힐링이 된다 <스프링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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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스프링 송>

 

영화 <스프링 송> 포스터. ⓒ쥬네스엔터테인먼트

 

배우 유준상을 논할 때 '연기력'이나 '흥행력'을 가장 앞에 내세우진 않을 것 같다. 너무나 많은 곳에서 얼굴을 비추기 때문인 것 같은데, 달리 말하면 '꾸준함'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는 1995년 SBS 5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 후 25년 넘게 다방면에서 쉴 새 없이 일했다. 드라마, 영화, 뮤지컬의 세 축을 기본으로 예능, 교양, CF까지도 말이다. 

 

그러던 그가 2016년에 제작, 감독, 각본, 주연까지 도맡은 음악 영화를 들고 왔는데, 20대 기타리스트 이준화와 함께 만든 프로젝트 밴드 그룹 '제이앤조이 20(J n joy 20)'의 이야기를 담았다. 3년 후에도 제이앤조이 20의 이야기를 담은 음악 영화를 내놓는 저력을 보였다. 두 작품 다 흥행과는 별개로 영화제에도 초청받는 등 유준상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선보인 결과물이었다. 

 

2년 후 또다시 제이앤조이 20의 이야기를 담은 음악 영화를 내놓는 유준상 감독, 영화 <스프링 송>은 유준상 감독의 세 번째 장편이자 첫 번째 상업 영화인데 그가 건네는 삶의 철학 또는 통찰이 빛난다. 비록 흥행이 그 화제성을 따라 주진 못할 것 같지만, 누구나 일단 한 번 보면 쉽게 잊히지 않을 것들이 영화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여러 모로 '좋은' 영화다. 

 

미완성곡의 뮤직비디오를 찍어 보자

 

준상은 자신이 속한 밴드 제이앤조이 20(J n joy 20)의 '스프링 송'이라는 제목의 노래 뮤직비디오를 찍고자 멤버 준화와 함께 일본 시즈오카로 향한다. 노래는 미완성, 완벽하게 조율되지 않은 곡만 있고 가사는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뮤직비디오 찍는 계획도 물론 전혀 없었다. 즉흥적으로 그냥 찍어 보자는 게 준상의 계획 같지 않은 계획이었다. 

 

일본 시즈오카에 도착, 준상은 다짜고짜 아는 일본 배우가 있다며 아끼를 불러 뮤직비디오의 남자 주인공 역을 맡긴다. 그런데, 준상과 준화는 일본어를 할 줄 모르고 아끼는 한국어를 할 줄 모른다. 준화가 조금 되는 영어로 통역(?)을 하는데, 아끼는 영어도 할 줄 모른다. 몸의 언어로 어떻게든 찍어 내고 있다.

 

그런데 여자 주인공이 필요하다. 준상은 한국에 전화를 돌려 아무나 일본으로 부르려 한다. 소진이 괜찮다며 일본 시즈오카로 날아온다. 소진은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현장을 보고 황당해 하지만 준상의 말대로 한 번 해 보기로 한다. 아끼가 가 봐야 한단다. 준상은 다른 남자 주인공을 급하게 부른다. 순원이 한국에서 날아온다. 아끼는 과거의 연인으로 순원은 현재의 연인으로 바꿔 버린다. 과연, 미완성곡 '스프링 송' 뮤직비디오는 잘 완성될 수 있을까? 완성되어도 이상하고, 완성되지 않으면 왠지 슬플 것 같다. 

 

대책 없는 작업 과정에서 힐링을 받다

 

내 머릿속 구상을 현실화시켜 대중에게 내보이는 건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다. 우선 나를 만족시켜야 하고 관계자와 지인을 만족시켜야 한다. 그러면서도 항상 대중을 향하고 있어야 한다. 그 결과물이 많은 이에게 가닿는 '결과'는 먼 나중의 일이고 '과정'이 매우 지난한 것이다. 그래서 제아무리 자존감이 강하더라도 '내가 뭐라고'라며 자조섞인 목소리를 내놓곤 한다. 욕을 먹든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든, 결과가 줄 반응의 불확실성 앞에 무릎을 꿇는 게 허다하다. 

 

그런데 <스프링 송>을 보고 있노라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멍청해 보이기까지 한다. 겁쟁이 같아 보이기도 하고 말이다. 영화 속 준상은 노래 '스프링 송'의 음만 대충 완성시키고는 뮤직비디오부터 찍자며 일본으로 날아가 버린다. 그러곤 현장에서 생각나는 대로 씬을 구상하고 배우를 섭외한다. 극강의 현장주의자 또는 대책 없는 대충주의자, 뭘 하든 돈이 들어가는 이 시대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과정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힐링이 되는 것인지?

 

영화 속 준상은 '이 세상에 정답은 없다, 해답만 있을 뿐'이라고 천명하는 것 같다. 모든 작업이 획일화되어 있는 가운데, '이건 이렇게 해야 하고 저건 저렇게 해야 한다'는 메뉴얼과 시스템이 우리를 지배하지 않는가. 그 누구보다 그걸 잘 알고 또 잘 따르고 있을 유준상 감독이 '준상'이라는 캐릭터를 빌려 직접 보여 주려 했던 게 아닐까 싶다. 이런 식으로도 충분히 좋은 결과물을 도출해 낼 수 있다고 말이다. 영화 마지막에 보여 줄 것 같은 '스프링 송' 뮤직비디오가 기다려지고도 남음이다. 

 

말하는 대로, 생각한 대로 되는 마법

 

그런 말이 있지 않나, 준비한 대로만 하면 안 될 게 없다고 말이다. 그런데, 준비한 대로 되면 그게 인생이냐고 말이다. 즉, 준비한 대로 모든 게 척척 굴러가진 않는다는 것이다. '절대로'. 이 영화는 자조 섞인 그 말에서 착안한 듯, 거짓말처럼 준비랄 게 전혀 없이 현장에 돌입한다. 유준상 감독이 배우로 일하며 애드리브를 그렇게 시전한다는데 그게 삶의 신조이자 철학에까지 손을 뻗은 걸까?

 

영화 밖의 관객까지 그 떨림이 전해져야 마땅할 정도로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데, 희한하게 설레기까지 한다. 불확실성이 주는 건 비단 불안뿐만이 아닌가 보다. 물론, 영화 속에서도 준상만 설레고 함께하는 이들은 모두 불안하다. 그렇지만 설레는 기운이 불안의 기운을 점점 밀어내고 일대를 잠식하는 게 느껴진다. 준상의 신념과 철학에 어느덧 모두가 물들고 있는 것이리라. 그건 분명 '좋은' 기운이고 또 '좋은' 징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비단 예술만이 즉흥적이지 않다. 삶도 즉흥적이다, 아니 즉흥적이어야 한다. 항상 그렇진 못할지라도, 그 설렘을 즐기면 좋겠다. 이 영화 <스프링 송>이 충분히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기대한 대로, 계획한 대로 되지 않을 지라도 말하는 대로, 생각한 대로 되는 마법을 경험해 보시라. 절대 후회하지 않을 테다. 인생의 새로운 장이 열릴지 누가 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