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넷플릭스 오리지널

수많은 마약 중독자들을 살린 그, 성자인가 악마인가 <산 파트리냐노>

반응형



[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산 파트리냐노: 구원자의 죄>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산 파트리냐노: 구원자의 죄> 포스터. ⓒ넷플릭스



1970년대 말 이탈리아 전역은 값싼 마약으로 뒤덮였다. 마약을 대중화시켜 막대한 부를 쌓기 위한 마피아의 새로운 전략이었는데, 그 결과 수많은 젊은이가 마약 중독자의 길로 빠졌다. 이탈리아 정부도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한 남자가 출현했다. 빈첸초 무촐리, 그는 이탈리아 북동부 리미니에 '산 파트리냐노'라는 이름의 재활원을 짓고 마약 중독자들을 무상으로 받았다. 


빈첸초 무촐리는 리미니 중산층 농부 집안 출신으로, 가족의 영향으로 돌보는 일을 열성적으로 한 반면 학교 성적이 좋지 않아 고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다. 집에서 좌절감에 둘러싸여 있다가, 안토니에타라는 여자를 만나 결혼을 했는데 장인 어른이 결혼 선물로 작은 농장인 산 파트리냐노를 줬다는 것이다. 그는 그곳에서 사육 사업을 이어가기도 했다. 


영매가 되고 싶었던 무촐리는 심령술사 단체에 가입해 강령 의식을 열기도 했는데, 그들과 함께 협동조합의 형식으로 산 파트리냐노를 설립한 것이었다. 처음엔 약 따위로 아픈 이들을 치료하다가 시간이 지나 마약 중독자들을 치료하며, 마약 중독자들의 공동체가 되었다. 무촐리가 말하길, 마약 중독자들이야말로 도움이 가장 절실한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산 파트리냐노: 구원자의 죄>는 유럽에서 가장 큰 재활원 '산 파트리냐노'를 설립한 빈첸초 무촐리를 둘러싼 갑론을박과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를 전한다. 


빈첸초 무촐리의 마약 중독자 구원


무촐리는 산 파트리냐노 운영 방식의 제1 원칙으로 '한 번 이곳에 발을 들인 마약 중독자는 완전히 치료될 때까지 절대로 나가지 못한다'를 천명한다. 이 화끈하면서도 일면 무시무시한 발언은, 사람들로 하여금 무촐리와 산 파트리냐노를 대하는 두 대척점의 관점을 제시한다. 하나는 무촐리를 신격화하면서 그를 '구원자'이자 '성자'로 떠받드는 것이고, 또 하나는 무촐리를 '무법자'이자 천사의 가면을 쓴 '악마'로 보는 것이다. 


1970~80년대 당시 이탈리아는 값싼 마약들이 수많은 마약 중독자를 양산하며 신음했는데, 정녕 아무도 통제할 수 없었다. 심지어 정부조차도 말이다. 그런 와중에 한 남자 '빈첸초 무촐리'가 나타나 마약 중독자 재활원이자 공동체 산 파트리냐노를 설립하더니, 수많은 마약 중독자들이 자발적으로 그곳에 들어가 치료를 받고자 하는 게 아닌가. 전국의 수많은 마약 중독자들 당사자는 물론, 그들과 관련된 이들은 모두 하나같이 무촐리를 지지하고 떠받들게 된 것이다. 그가 그 어떤 무슨 짓을 하든, 마약 중독자들을 무상으로 치료해 주는 건 사실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무촐리와 산 파트리냐노의 '방법론'을 두고 정부와 법 관련자들 그리고 언론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무촐리는 마약 중독자들을 도와 준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떤 수를 써서라도 그들에게 힘을 줄 것이라고 했는데, 그 어떤 수가 '사슬'이라는 형태로 대중에게 알려지게 된 것이다. 1980년 10월 어느 날, 15일간 사슬에 묶여 있다가 산 파트리냐노에서 탈출한 마약 중독자 소녀가 경찰에 신고한 게 크게 터졌다. 무촐리는 곧 법정에 서게 되었고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다. 


무촐리의 입장에서는 정부도 손 놓은 마약 중독자들의 치료를 위해 무상으로 재활원을 설립해 사람들을 받아 좋은 '결과'를 얻었는데 왜 벌을 받아야 하냐는 것이었고, 검사 입장에서는 아무리 선의를 위한다지만 인권을 저버리는 범죄 행위를 한 개인으로서 행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한 사례에 불과하지만 인류를 관통하는 철학적 주제로까지 번질 수 있는 논쟁, 결과는 40일만의 석방이었다. 산 파트리냐노 설립 이념을 긍정적으로 본 결과였지만, 결과를 위한 과정에서의 사슬과 폭력 사용은 금지되었다. 


의도는 선하고 결과는 성공적이지만 과정은 치명적


'선의' 즉, 선한 의도는 선한 과정과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선의로 시작한 것들이 불쾌하고 불합리하고 불편하게 끝맺음한 예가 수없이 많다. 무촐리의 산 파트리냐노는 어떠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마약 중독자 치료를 위한 무상 과정의 선한 의도는 큰 성공으로 이어졌다. 불과 수 명에서 시작한 재활원은 수천 명으로 불어나 수없이 많은 마약 중독자를 개관천선시킨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무촐리의 산 파트리냐노 논쟁의 중심이고 이 다큐멘터리가 최대한 중립을 지키면서 전하고자 하는 논쟁의 중심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재단하기 너무나도 어려운 무촐리의 의도와 과정과 결과, 의도는 선하고 결과는 성공적이지만 과정은 치명적이었다. 상대적으로 생각해 볼 수밖에 없다. 내가 무촐리라면? 사슬로 묶어 감금하는 한이 있더라도 마약 중독자들을 치료하는 데 최우선의 목적을 둘 것 같다. 내가 마약 중독자 가족이라면? 무촐리가 무슨 짓을 하든 내가 포기해 버린 이를 개과천선하게 지지할 것 같다. 내가 정부 또는 판사라면? 정부가 할 일을 대신해 칭찬해 주기는커녕 못하게 막을 것 같다. 판사로서 최우선하는 가치를 생각할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건, 마약 중독자 당사자의 입장이다. 마약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반드시 인생을 망칠 것이고 '죽음'에 이를 것이기에, 살고자 스스로의 의지로 무촐리의 산 파트리냐노를 찾았다. '무급'으로 노동하며 마약 중독을 치료했다. 하지만, 참지 못하고 탈출하거나 마약에 다시 손을 댔을 땐 그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아야 했다. 내가 마약 중독자라면? 살고자 하는 의도로 산 파트리냐노를 찾을 것이고 묵묵히 최선을 다해 따를 것 같다. '마약 중독'을 다룰 다른 방법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무촐리의 산 파트리냐노의 방법에 있는 게 아니라, 값싼 마약이 유포되게 막지 못했거니와 마약 중독자들을 손 놓고 방치한 정부에 있는 것이다.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더 강한 국가(그가 생각한 선한 국가)를 위해서라면 사소한 악은 허용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사랑받는 것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게 낫다고도 했다. 다분히 빈첸초 무촐리의 산 파트리냐노에 해당되는 말인 것 같다. 마약 중독 치료의 목적을 위해서는 '악'이라 불리는 치명적인 짓들은 묵과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무촐리로서는 산 파트리냐노 안팎으로 온갖 멸시와 의혹에 찬 눈빛과 질타를 받으면서도 마약 중독 치료라는 일념 하에 사랑받는 존재로만 남길 원하지 않았다. 


빈첸초 무촐리와 산 파트리냐노, 명과 암


하지만, 그런 무촐리도 변해 갔다. 마약 중독 치료라는 긍극적 목적과 거시적 일념은 그대로였지만, 방법과 과정에 있어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에게 첫 타격을 안겼던 폭력 사건은 급기야 의문스러운 자살 사건으로까지 번졌고, 산 파트리냐노는 나날이 번창해 2000명이 넘는 재활자들과 공동체 생활을 함께했지만 더 이상 그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살인 사건까지 일어났다. 무촐리는 권력에 단맛에 젖은 듯 스스로를 신격화시켰는데, 공동체를 시스템화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인재를 등용했다. 


고대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출중한 능력으로 인류 역사를 바꿔놓았지만, 그 자신이 권력에의 열망이 너무 강렬했던 탓에 어쩔 수 없이 잘못된 인재들을 등용해 결국 참혹하게 죽임을 당했다. 하지만 제정 로마의 기틀을 세웠으니, 이후로도 로마는 오랫동안 전성기를 이끌어갈 수 있었다. 무촐리 또한 비록 논란이 있었을지언정 출중한 능력과 추진력과 카리스마로 많은 이의 인생을 바꿔놓았지만, 그를 지지하는 이들도 인정하듯 권력에의 잘못된 열망과 잘못된 인재들의 등용으로 논란 아닌 비난의 대상이 된 것이다. 


빈첸초 무촐리와 산 파트리냐노, 1970~90년대까지 이탈리아를 떠들썩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한때, 패션의 나라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패션 디자이너들보다도 더 위대한 이로 칭송받은 적이 있다. 또한,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덕분에 새로운 인생을 살며 그를 잊지 못하는 수많은 이들이 있다. 하지만, 모든 위인이 그렇듯 그에게도 공과 과 그리고 명과 암이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중립적으로 그것들을 짚으며 탄생부터 추락까지를 다뤘다. 작품이 지향하는 바는 잘 알겠고 또 잘 다뤄 주어 좋았지만, 공과 과 그리고 명과 암이 굳이 중립적이라는 표현까지 넣을 만큼 50 대 50을 이뤘을까 의문이 간다. 과보다 공이 많고, 암보다 명이 짙었지 않나 싶은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논할 때 공과 과 그리고 명과 암을 말한다. 경제화를 이룩했지만 인권과 민주주의를 쇠퇴시켰으며, 그가 아니더라도 경제화는 시대의 숙명이자 전 세계의 추세였기에 천천히 단단하게 진행되었을 것이었다. 반면, 빈첸초 무촐리는 그대로 두면 반드시 죽었을 마약 중독자들을 치료했거니와 정부도 손 놓은 걸 오직 그밖에 하지 못했다. 비록, 마약 중독자들 인권을 무참히 짓밟았다고 하지만 그들 스스로도 받아들였거니와 논란의 여지 없는 선한 의도와 목적에 따른 것이다. 물론,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곳에서 사람이 살해된 사건은 논란의 여지 없는 과와 암에 속할 것이다. 이후 급속도로 추락한 무촐리의 삶의 일환이겠다. 


빈첸초 무촐리와 산 파트리냐노 그리고 당시 산 파트리냐노 거주자들에 너무나도 많이 할애한 점이 조금 아쉽게 다가온다. 중간중간 간략히 나오는 시대상을 보다 더 논했다면, 보다 더 풍부한 다큐멘터리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혼란스러운 시대에는 시대와 사회가 개인을 만든다고 하지 않는가. 이 작품은 혼란스러운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개인에 너무 천착한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그러했기에 다큐멘터리 치고 상당히 재밌게 볼 수 있지 않았나도 싶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