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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역사에 길이 남을 연쇄 살인마 '요크셔 리퍼' 이야기의 기막힌 이면 <더 리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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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더 리퍼>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더 리퍼> 포스터. ⓒ넷플릭스



지난해 11월 13일 영국에서 소식이 날라왔다. 일명 '요크셔 리퍼'라고 불렸던 피터 서트클리프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뒤 치료를 거부해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이미 심근경색과 당뇨 등 기저질환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요크셔 리퍼는 영국 역사상 최악의 살인범으로 손꼽히며, 19세기 전설의 살인마 '잭 더 리퍼'에서 이름을 따올 정도의 악명을 떨쳤다. 


1970년대 영국 북부의 웨스트요크셔, 한때 부유했던 그곳은 외부 산업의 유입으로 급속한 쇠퇴를 거듭해 몰락의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런 와중, 1975년 10월 끔찍한 범죄 사건이 일어난다. 28살의 이혼여성으로 네 아이를 키우고 있던 '윌마 매캔'이 불과 집에서 140m 떨어진 곳에서 살해당한 것이었다. 살인범은 망치로 그녀의 뒤통수를 가격하곤 칼로 복부를 수 차례 찔렀다. 현장에는 범인을 유추할 만한 단서가 전혀 없었다.


경찰과 언론은 사건의 또 다른 면에 주목한다. 피해자의 시체가 발견된 곳이 채플타운 홍등가 근처라는 점과 그녀의 평소 행실을 추적한 결과, 윌마 매캔이 매춘부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매춘부 살인'은 아무에게도 큰 관심을 끌지 않고 지나가는 사건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렇게 어영부영 지나가고 있던 살인 사건은, 이듬해 1월 동일범의 소행으로 추측되는 살인 사건이 또다시 일어나면서 부상하는 듯했으나 역시 단서를 찾을 수 없었거니와 '매춘부 살인'이었기에 묻히고 말았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1977년부터 시작된다. 


'요크셔 리퍼' 이야기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더 리퍼>는 1970년대 후반 영국 북부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던 희대의 살인마 '요크셔 리퍼' 이야기를 심도 깊게 다룬다. 넷플릭스는 그동안 여러 범죄 다큐멘터리 시리즈로 가해자, 피해자, 언론, 재판, 경찰, 검찰 등에 포커스를 맞춰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확실히 했던 바 이번엔 어떤 시선으로 독보적인 관점을 전할까 기대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경찰 그리고 피해자에 포커스를 맞췄다. 너무나도 유명한 살인마 요크셔 리퍼를 들여다보는 것보다 훨씬 괜찮은, 여러 모로 유익한 콘텐츠라고 할 수 있겠다. 요크셔 리퍼가 너무나도 '교과서적'으로 완벽한 살인 행각을 저지른 것도 있지만, 경찰의 대처가 가히 세계 경찰 역사상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경찰의 오판으로 피해자들은 이중 삼중의 피해를 봤다. 


1977년 2월과 4월 동일범의 소행이 확실한 매춘부 대상 살인 사건이 연달아 발생한다. 경찰은 인력을 두 배 이상으로 늘려 범인 추적에 속도를 낸다. 하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그 사이, 6월과 10월에 또다시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데 다른 점이 있었다. 6월의 피해자 제인 맥도널드는 매춘부가 아닌 미성년자였고, 10월의 피해자 진 조던은 리즈와 브래드포드가 아닌 거리가 먼 맨체스터에서 당했던 것이었다. 6월의 충격적 미성년자 살인 사건 후, 언론에서도 본격적인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1970년대 초 웨스트요크셔 지방 소도시들에 퍼져 있던 경찰 본부가 웨스트요크셔 경찰청으로 흡수통합된다. 이후 긴밀감은 줄어들고 지역 공동체에 관한 세세한 파악과 정보들이 사라졌다고 한다. 당시 영국 경찰 수뇌부의 거시적인 오판도 이 희대의 연쇄 살인 사건에 큰 몫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게 전부라면 섭섭하다. 경찰은 요크셔 리퍼를 쫓는 과정에서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미시적인 오판들을 수없이 저지른다. 이 연쇄 살인은, 요크셔 리퍼와 웨스트요크셔 경찰청의 합작품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범인을 잡을 수 없었다


1977년이 가고 1978년이 밝았다. 요크셔 리퍼의 살인 행각은 끊기지 않고 1980년까지 다양한 곳에서 이어진다. 1978년 1월 두 명 그리고 5월, 1979년 5월과 9월, 1980년 8월과 11월... 요크셔 리퍼 피터 서트클리프의 손에 살해당한 이가 13명, 살인 미수로 그친 이가 7명이었다. 1975년부터 1980년까지 햇수로 6년이 지나는 동안 경찰은 요크셔 리퍼가 누구인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그런데, 경찰에겐 이미 충분한 단서들이 있었고 넘치고 흐를 듯한 인력 또한 갖추고 있었다. 몇몇 현장들에 동일한 트럭의 타이어 자국이 남아 있었고 신발 자국도 남아 있었으며 5파운드 신권 지폐도 발견되었다. 결정적으로, 기적적으로 생존한 이들 중 한 명이 거의 정확한 인상착의를 기억하고 있어 몽타주도 확보했다. 이후 사실상 웨스트요크셔 경찰 전 인원이 달려들어 조사하고 추적하고 신문하고 제보를 받았다. 경찰은 또 다른 수단으로, 범인에게 공식적 자수 요청을 하기도 했고 어마어마한 현상금을 걸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인을 잡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결정적 증거를 얻는다. 요크셔 리퍼가 경찰청장 앞으로 직접 보낸 편지 그리고 녹음 테이프였다. 경찰 당국은 이것들을 100% 신뢰하며 곧 살인마를 잡을 걸 기대해 마지 않았다. 특히, 녹음 테이프 속 억양에 주목해 지역 범위를 굉장히 한정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잡을 수 없었다. 경찰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피해 당사자가 될지 모를 여성들에게 "밤에 혼자 돌아다니지 말아 달라"고 말할 뿐이었다. 범인을 잡지 못하는 자신들의 잘못을 여성들에게 교묘히 전가하는 짓이었다. 


연쇄 살인마 요크셔 리퍼를 잡지 못해 영국 전역이 공포에 떨던 1977년 어느 날, 여성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경찰들이 계속해서 주지시킨 '여성의 밤길 통행 금지'에 대항해 '밤을 되찾자(Reclaim the Night)'를 구호로 내세운 것이다. 살인범 한 명에게 놀아난 '세계 최고급 전력'을 자랑하는 웨스트요크셔 경찰 당국이 짊어지기 마땅한 짐이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한 번 피해를 본 대상이 이중 삼중으로 계속해서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그게 쉽고 편해서 그렇다. 


경찰의 행각, 피해자의 피해


1981년 1월, 웨스트요크셔 경찰로선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사건이 영원히 미제로 남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심정으로 있었을 때 범인 요크셔 리퍼가 잡힌다. 사우스요크셔 셰필드에서 자동차에 어느 여자와 동승해 있다가 자동차 번호판을 수상하게 여긴 경찰에 의해 붙잡힌 것이다. 지난 6년간의 피나는 노력이 그야말로 한순간의 우연으로 종지부를 맺어 버렸다. 그것도 웨스트요크셔가 아닌 사우스요크셔에서. 


그럼에도, 영국 전역을 공포로 몰아 넣었던 살인마가 붙잡힌 건 모두가 환호할 만한 일이었다. 특히 경찰 수뇌부가 함박웃음을 지었는데, 그 웃음이 생존자들과 유가족들에게 좋게 보일리 만무했다. 일반 대중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정신적 피해보상을 청구하고도 남음이었다. 지난 6년을 복기해 보니, 경찰의 황당한 행각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생존자 한 명이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에선 농담하지 말라고 비웃은 적이 있다. 하급 경찰 한 명이 피터 서트클리프를 조사했고 몽타주와 너무 똑같은 얼굴 등으로 석연치 않아 보고서를 제출했지만, 상부에선 용의자의 억양이 (훗날 가짜라고 판명난) 녹음 테이프 속 목소리가 다르다고 하여 지나쳐 버린 적이 있다. 이를 포함해 피터 서트클리프를 9번이나 자세하게 신문했지만 모두 풀어줬다. 그리고, 요크셔 리퍼가 붙잡혀 종신형 30년 형을 확정지은 3년 후 피터 서트클리프는 붙잡힐 당시엔 그러지 않았지만 지금은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주장으로 당국을 설득시키는 데 성공했다. 하여, 안전한 정신병원인 브로드무어로 이감되어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요크셔 리퍼'라는 역사에 길이 남을 연쇄 살인마의 행각에 쏠려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의 극악무도한 행각(망치, 스크루드라이버, 칼 등을 써서 살인 및 시신 훼손)과 주도면밀한 뒤처리(경찰이 절대 잡을 수 없이 그 어디에도 결정적 단서를 남기지 않음) 등이 누군가에겐 정녕 '찬사'를 불러일으킬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경찰의 믿기 힘든 행각들과 피해자(여성)의 이중 삼중 피해가 묻혀 있었다. 이 다큐멘터리 시리즈 <더 리퍼>는 경찰의 행각을 수면 위로 올려 전면에 세우고 피해자의 계속되는 피해 역시 수면 위로 올렸다. 하여, 이 사건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이들은 이 작품으로 제대로 된 시각을 정립하게 되었을 테다. 누구나 꼭 한 번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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