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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프랑스 대통령 후보이자 IMF 총재였던 이의 추락 여정 <2806호 스캔들: 진실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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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2806호 스캔들: 진실공방>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2806호 스캔들: 진실공방> 포스터. ⓒ넷플릭스



2011년 5월 14일, 미국 뉴욕의 소피텔 호텔에서 성폭행 의혹이 불거져 나온다. 보안 직원이 911에 신고했던 바, 차마 이름을 밝히기가 힘들 정도의 전 세계적인 거물이 2806호에서 객실청소원을 성폭행했다는 것이었다. 피해자는 뉴욕의 변방 브롱크스에서 싱글맘으로 살아가는 아프리카계 여성, 반면 가해자는 프랑스 차기 대통령으로 가장 유력했던 IMF 총재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일명, DSK였다. 


신고를 받은 뉴욕 경찰은 사태의 엄중함을 알아채고 프랑스로 돌아가는 길에 있을 스트로스칸의 행방을 쫓는다. 프랑스로 돌아가면 미국으로 인도받아 처벌하는 게 불가능할지 몰랐다. 마침 그때 호텔로 스트로스칸이 연락해 온 바, 객실에 휴대폰을 두고 갔다는 것이었다. 가장 중요한 물건일 휴대폰을 두고 갈 정도로 정황이 없었던 걸까? 결국, 경찰은 JFK공항에서 비행기에 탑승한 스트로스칸을 긴급 체포하는 데 성공한다. 


의혹이었음에도, 스트로스칸의 긴급 체포 소식은 곧바로 전 세계에 타진되어 모든 언론의 1면을 장식하기에 이른다. 그의 영향력은 2011년 당시 전 세계 열 손가락 안에 들기에 충분했으므로, 고국인 프랑스와 체포된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뿐만 아니라, 당시는 2008년 시작된 금융위기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던 때이기에 IMF 수장의 충격적 소식이 주는 여파는 차원을 달리 하는 것이었다. 


프랑스 진보 아이콘의 추락


어느덧 10년이 된, 도미니크 스트로스칸을 둘러싼 이 사건을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2806호 스캔들: 진실공방>으로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제목에서 어느 정도 유추가 가능한 바, 이 시리즈는 진실공방에 보다 초점을 맞춘다. 간접 증거뿐만 아니라 직접 증거로도 2806호에서 스트로스칸과 객실청소원 디알로 간에 성적 관계가 있었다는 건 확실한데, 서로의 주장이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디알로는 스트로스칸에 의해 강제로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반면, 스트로스칸은 그 어떤 강제도 없는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다고 주장했다. 결국, 5일 후 스트로스칸은 자신의 무죄를 다시 한 번 강조하며 IMF 총재 직에서 전격적으로 사퇴했다. 그러며 뉴욕 최고의 변호사들을 꾸려 대응했기로서니, 보석 상태로 수사와 재판을 받은 그는 검찰이 공소를 취하하며 프랑스로 귀환할 수 있었다. 


땅바닥에 떨어진 그의 명성과 별개로,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때도 있었고 다큐멘터리에서 인터뷰한 여러 사람들을 보아 하니 지금도 있는 것 같다. 그는 사회당의 유력 대권주자로, 이른바 프랑스를 대표하고 새롭게 이끌 진보의 아이콘이었다. '정치적'으로 그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은, 그의 '사생활'엔 아예 관심을 두지 않고 그의 정치적 정적이라 할 만한 공화당 출신의 당시 대통령 사르코지의 공작이라고 주장했다. 스트로스칸이 그동안 쌓아와 내보인 출중한 실력만을 보고 판단하려 한 것이다. 


충격적인 건, 그의 사생활을 아주 잘 아는 지인들의 발언이다. 오랜 친구와 동료, 그리고 부인은 그의 상상을 초월하는 여성 편력을 잘 알고 있음에도 그를 두둔한다. 그는 그저 여자를 너무 좋아하는 것뿐이라고, 그게 도덕적으론 질타를 받을 만하지만 법적으론 문제될 게 없지 않냐고, '프랑스'에선 충분히 용인되는 고위 공직자의 사생활이라고, 스트로스칸뿐만 아니라 다들 그런다고 말이다. 


스트로스칸의 지독한 여성 편력


매우 무서우면서도 논리적인 듯한 주장이다. 스트로스칸을 정치적으로만 대하는 이들의 주장은 논점을 흐리는 물타기로, 충분히 논리적 반박이 가능하다. 오히려 상대하기 쉬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스트로스칸의 공과 사의 모습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이들의 주장은 반박하기가 매우 힘들다.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우린(프랑스) 원래 이런 문화야, 스트로스칸만 그런 거 아냐, 다들 그래, 그게 욕은 먹을 만한 일일진 모르지만 잘못한 건 아니잖아?' 하면서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런 주장을 한 이들은 모두 한 번쯤 '문화'의 수혜(?)를 받아봤을 것이다. 모두가 모여 한마음 한뜻으로 스트로스칸의 지독한 여성 편력을 응원(?)하고 자신들의 문화를 지지하고 있으니. 문제는, 스트로스칸이라는 거물에 가려 피해자는 엉뚱한 피해를 계속 받고 있는 것이다. 스트로스칸의 지지자들에게서 받는 협박 또는 철저한 무관심, 전 세계 언론들의 빙퉁그러진 관심 등 모두 가해자 스트로스칸을 향한 것들이 피해자 디알로까지 불뚱 튀겼던 것. 


결국, 스트로스칸은 체포 3개월 뒤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다행히 민사 합의로 스트로스칸은 디알로에게 150만 달러를 물었다. 그는 프랑스로 돌아가 철저히 언론플레이를 하며 훗날의 재기를 노렸다. 전 세계를 뒤흔든 사건은 그렇게 막을 내리는 듯했다. 그럼에도 그를 둘러싼 성추문은 끊이질 않았다. 사회당 내에서도 있었고, 언론인이자 작가인 트리스탄 바농의 고소도 있었다. 


그리고 6개월 뒤, 스트로스칸은 프랑스에서 긴급 체포되었다. 이번엔 불법 성매매 조직 연루와 회사 공금 유용 혐의였다. 프랑스에서 개인적인 성매매가 불법은 아니지만, 공금으로 성매매를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매춘을 알선하는 행위는 심각한 범죄이다. 그는 이 둘 모두에 연관되어 의혹이 있었던 것이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이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까...


미투 운동의 진정한 시작


공식적으로, 도미니크 스트로스칸의 이력에 '빨간줄'이 간 적은 없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수많은 의혹이 그를 둘러싸고 일었지만, 조용히 묻히고 보석으로 풀려나고 민사 합의를 보고 무죄가 선고되고... 그가 막강한 권력이 있어서였을까? 단순히 그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한 사람이 휘두를 수 있는 무기는 한정되어 있지 않은가. 그를 둘러싼 거대하고도 거대한 '층'이 있는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2011~12년 당시는 '미투 운동'이 전 세계를 휩쓸기 전이다. 미투 운동 때에 이르러 권력에 의한 성 사건을 비호한 거대하고도 거대한 층이 무너져 내린 것인데, 그전까진 견고했을 테다. 그럼에도, 이 시리즈는 스트로스칸의 잇따른 성추문 사건을 두고 미투 운동의 진정한 시작이라고 본다. 불과 몇 년 차이지만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도덕적·윤리적으로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과 실질적인 법의 집행이 달라졌기로서니, 스트로스칸 사건은 명백히 권력으로 찍어 누른 게 보이지 않는가. '문화'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권력'의 파렴치한 술수. 


스트로스칸 사건은 권력을 성적으로 휘두른 절정기에 터질 수밖에 없었던 사건인 바, 당대를 더럽고 추악하게 상징하고 문화라는 것의 최전선에 있다고 믿는 프랑스를 또한 더럽고 추악하게 상징한다. 와중에 생각하고 지켜야 할 건, 피해자를 향한 진정 어리고 올바른 시선 그리고 도움이다. 어떤 식으로든 이전의 평범했던 삶으로 돌아가긴 힘들 텐데, 빙퉁그러진 관심 따윈 필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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