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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두 남학생의 절절한 '찐'사랑의 끝에...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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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 포스터. ⓒ넷플릭스


지난해 5월 대만이 아시아 최초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 대만 헌법재판소가 기존 혼인제도에 위헌 결정을 내린 후 2년 동안 격렬한 논의가 이어졌고 결국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다. 여러 모로 우리나라와 비슷한 색채와 결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녕 위대한 결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돌아보면 대만의 퀴어 영화들을 대면했던 적이 많다. 전 세계적으로 큰 영화 시장이 아닐진대, 그에 비해 퀴어 영화가 많은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개봉해 알려진 작품들을 일별해 보면 1990년대 <결혼 피로연>(1993), 2000년대 <영원한 여름>(2006), 2010년대 <여친남친>(2012) 등이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소개된 2018년작 <나의 Ex>도 빼놓을 수 없다. 하나 같이 '퀴어 영화'로만 몫 박을 수 없는 다양성을 지녀, 즐기는 데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2020년대에도 어김 없이 찾아온 대만 퀴어 영화, 이번에도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소개되었다.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은 대만에서 지난 9월 30일에 개봉해 1억 타이완 달러 가까운 수익을 올리며 대만 LGBTQ 영화 역사상 가장 높은 수익을 기록했다고 한다. 더불어, 중화권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영화제 중 하나인 '금마장'에서 5개 부문 후보에 올라 촬영상과 주제가상을 수상했다.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고른 반응을 보인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 어떤 영화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두 남학생의 절절한 사랑


1987년 대만, 장장 40여 년간 이어진 계엄령이 해제된다. 남자 기숙학교에 다니는 자한은 같은 반의 버디에게 끌린다. 버디도 피하지 않는 것 같다. 룸메이트끼리 야밤에 몰래 나가 여자들을 만날 때도 자한은 이성에게 몸과 마음이 끌리지 않았다. 곧 둘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어울리기 시작한다. 시간은 흘러 1988년 새해가 되었고 10년 동안 총통이었던 장징궈가 사망한다. 


학교는 학생들이 타이베이로 참배하러 갈 수 있게 배려한다. 아니, 종용한다. 자한과 버디는 이때다 싶어 장 총통 참배를 빌미로 타이베이로 놀러간다. 그곳에서 자한은 버디를 향한 감정을 재확인한다. 이후에도 버디를 향한 자한의 일방적인 듯한 감정은 더욱 확실해진다. 그러다가 갑자기 학교가 남녀공학으로 바뀐다. 남학생만 있던 학교에 여학생들이 온 것이다. 하지만 학교는 '남녀칠세부동석' 개념을 철저히 지키려 한다. 


반항기 가득한 자유로운 영혼인 버디는 학교의 처사에 반하는 과정에서 여학생 반반과 친해진다. 처음엔 셋이 함께 다니지만, 자한은 버디와 반반이 친하게 지내며 사귀는 걸 보고 있기 힘들다. 자한은 버디에게 계속해서 어필하지만 버디는 밀어 낼 뿐이다. 아니, 밀어 낼 수밖에 없었을까. 일련의 사건들이 있은 후 자한과 버디는 헤어질 시간이라는 걸 직감하는데...


'사랑'에 포커스를 맞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대만 영화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은 청춘들의 가슴 절절한 사랑을 전한다. 남녀의 연애조차 절대 불가한 학창 시절, 동성의 연애는 더럽고 추악하며 교정되어야 할 개념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고등학교를 단지 좋은 대학교에 진학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기성세대들, 즉 선생님과 부모님의 기대를 쉽게 저버릴 순 없었다. 이런 시대와 환경에서 자한은 버디의 마음까지 얻어야 하는 삼중고를 겪었다.


암울한 시대에 접한 퀴어의 사랑 이야기를 쉽게 풀어 내는 방법을 이 영화는 차용하지 않았다. 시대와 맞서던가, 주위의 기대와 맞서던가, 스스로와 맞서던가, 할 수 있는 건 많았다. 이 영화의 주요 배경에서 아주 쉽게 가져올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영화는 버디에게 직진하는 자한에게 포커스를 맞췄다. 즉, '사랑'에 포커스를 맞춘 것이다. 


여러 퀴어 영화들 중 <브로큰백 마운틴>이 연상되는데, 그 영화와 또 다른 게 있다면 버디의 감정이다. 영화의 후반부까지 버디의 감정을 제대로 알아 채기가 힘들다. 자한이 버디한테 사랑의 감정을 가진 건 버디의 감정도 다르지 않았기에 가능했을 텐데, 버디는 자한한테 본인의 확실한 감정을 제대로 전하지 않는 것이다. 버디도 자한을 사랑했다고 본다, 하지만 결국 이어지지 못할 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 자한을 밀어 내야만 했던 게 아닐까. 자한의 보이는 절절함 보다 버디의 보이지 않는 절절함이 더 와닿는 이유다. 


영화의 서사, 이야기, 메시지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은 류광후이 감독의 학창 시절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를 두 주연 배우 자한 역의 천하오썬과 버디 역의 청징화가 매우 훌륭히 표현해 냈다. 청징화는 몇 개월 전 개봉해 괜찮은 반응을 얻었던 영화 <반교: 디텐션>의 주연으로 얼굴을 알렸는데, 이번 영화를 계기로 대만 차세대 연기파 스타 배우로 우뚝 설 게 확실해졌다. 금성무가 생각나는 천하오썬의 굵은 이목구비와 직선적인 연기에 비해, 청징화의 연기는 종잡을 수 없는 와중에 많은 걸 생각하고 또 담고 있구나 하는 걸 느끼게 한다. 


하여, 영화의 서사가 흔들리지 않고 단단하게 길을 갈 수 있게 자한이 중심을 잡아 이끌었다면 영화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지는 버디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천하오썬이 자한을 연기하며 '진짜 사랑'을 설파하며 영화에 안정감을 부여했다면, 청징화는 '가짜 사랑'을 통해 '진짜 사랑'의 역설로 버디 그 자체가 되어 영화에 특별함을 부여했다고 할까. 


자한과 버디는 겁쟁이가 아니었다. 그들은 최선을 다해 서로를 사랑했다.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고민한 게 아니었다. 둘은 사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직 잘 모를 학생이었다. 동성애에 따른 세상과 사람들의 반응이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동성애'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 체화되어 있는 자기혐오 때문이었다. 그들이 지킬 건 사랑 하나였지만, 사랑하며 사랑을 지키기까지 헤쳐 나가야 할 건 셀 수 없이 많았다. 시공간을 초월해 그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진심으로 위로해 주고 싶다. 너희는 최선을 다해 후회 없는 사랑을 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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