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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지난한 삶이냐, 자유로운 듯 화려한 삶이냐 <이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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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이지 걸>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이지 걸> 포스터. ⓒ넷플릭스



프랑스 칸, 16살 생일을 맞이한 소녀 나이마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무료하게 지내는 중이다. 얼마 전 남자친구와 헤어지고선, 방학을 맞이해 게이 친구 도도와 자주 어울리며 함께 연기 오디션을 준비하기도 하고, 엄마가 일하는 호텔 조리실에서 인턴으로 일해 볼까 싶기도 하다. 그러던 와중, 파리에 사는 사촌 언니 소피아가 나이마의 생일도 축하할 겸 놀러왔다. 어린 시절 함께 놀던 언니라 너무 반가웠다. 


그런데 소피아는 조금 달라 보였다.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고 딱히 일을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온몸을 명품으로 휘감고는 나이마에게도 명품 가방을 생일선물로 주는 것이었다. 성형 티가 많이 나는 얼굴과 노출 심한 옷차림으로, 나이마와 함께 거리를 활보했다. 해변에서는 반나체로 있으면서 뭇남자들을 유혹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대형 요트를 소유한 부자를 유혹하는 데 성공했고, 나이마와 함께 요트에 올라타 시간을 보냈다. 다음 날엔 앙드레라는 이름의 부자 명의로 고가의 시계를 사 버리는 그들이었다. 


나이마는 요트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우연히 밤중에 소피아와 앙드레가 섹스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이후 나이마는 자신의 삶과 스타일이 고리타분하게 느껴졌고, 유일한 친구라고 할 만한 도도를 멀리하며 소피아와 가깝게 지낸다. 화려하고 자유분방게 지내면서도 부족함 없이 사는 게 부러웠을 터다. 하지만 모든 걸 꿰뚫어 보는 듯한 엄마가 말하길, 소피아는 '자유'롭지만은 않고 힘들게 '일'하고 있으며 '지쳐' 있다는 것이었다. 혼란스러운 나이마, 그래도 소피아의 삶의 방식을 우선 따라 보고 싶다. 그녀의 방학은 어떻게 끝날까?


프랑스 예술영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이지 걸>은 프랑스 칸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방학을 맞이한 소녀의 성장을 다룬다. 여자로서의 심리를 세세하고 심층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는데, 역시 여성 감독의 작품이다. 레베카 즐로토브스키라는 생소한 이름의 감독, 다섯 편의 연출작이 있는데 우리나라에 두 편이나 극장 개봉을 한 이력이 있다. 프랑스 예술영화계에서 꽤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감독으로 보인다. 


한국에 개봉한 두 편을 들여다보면 눈에 띄는 게 있다. 다름 아닌 주연 여성 배우인데, <그랜드 센트럴>에서는 레아 세이두이고 <플래니테리엄>에서는 나탈리 포트만이었다. 둘 다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배우들로, 레베카 즐로토브스키 감독의 여성을 내세운 연출 감각이 얼마나 출중한 지 반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반면 <이지 걸>의 경우 눈에 띄는 배우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소피아 역의 자히아 드하르가 특이한 이력으로 눈길을 끌긴 한다. 그녀는 배우라기보다는 란제리 모델이자 디자이너인데, 미성년이었을 때 성노동자로 일했다고 한다. 고위층만 상대했다는데, 결국 2010년 경찰 단속에 걸려 프랑스의 국보급 축구선수들인 카림 벤제마와 프랑크 리베리와 시드니 고부 등이 체포되었다. 프랑스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킨 장본인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딴 란제리 브랜드를 만들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영화 속 소피아 캐릭터가 전혀 이질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겠다. 


여성의 성장


영화가 시작되며 프롤로그처럼 나오는 장면이 있다. 칸 해변의 아름다운 풍광과 해변을 반나체로 걸어가는 소피아, 그리고 프랑스의 전설적인 철학자 파스칼의 한마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직업의 선택이다. 하지만 그건 우연이 좌우한다."까지. 영화 속 나이마의 성장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영화 밖 자히아 드하르의 인생과 맞닿아 있는 듯하다. 


나이마는 호텔 조리장 인턴과 연기 오디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듯 어쩔 줄 모르는 듯 고민하는 듯하다. 인턴을 한다고 해서 오디션에 붙는다고 해서 인생이 크게 달라지진 않지만, 나름의 갈림길을 눈앞에 둔 이의 입장에서 보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선택일 수 있다. 그때 우연히도 소피아가 끼어든 것이다. 돌이켜 보면 한 여름밤의 꿈에 가까운 한 방학의 일탈이었을 뿐인 좋은 경험이지만, 당시에는 빨려들어가듯 중심을 잡지 못했을 테다. 엄마의 지난한 삶과 비교되어, 소피아의 자유로운 듯 화려한 삶에 끌릴 수밖에 없었다. 


하여, 영화 속 소피아는 자체로 빛을 발하는 캐릭터라기보다 나이마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이다. 오히려 소피아는 소피아 역의 자히아 드하르의 삶과 연결되는 것 같다. 연기자의 실제 삶과 캐릭터의 영화 속 삶이 복제 수준으로 비슷하다. 마치 영화 속 삶으로 영화 밖 삶을 변호하는 듯, 겉으론 자유롭고 화려해 보이지만 실상은 힘들고 공허하고 지쳐 있었다는 것. 나이마의 드러나는 성장만큼 소피아의 드러나지 않는 성장 또한 찾아볼 만한 여지가 있다. 


나름의 철학


나이마가 직업적 선택에의 성장 과정을 헤쳐나가면서 자기도 모르게 깨닫게 되는 바가 또 하나 있다. 부류라고 해야 할까, 계급이라고 해야 할까. 딱히 직업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지만 유유자적 대형 요트에서 살아가는 듯싶은 앙드레, 그와 함께 요트 생활을 하며 친구라고 불리지만 사실상 충실한 손발이 되어 주는 필리프, 음식과 서비스를 담당하는 이들, 그리고 사람들의 멸시와 눈초리를 받지만 부자의 눈에 들어 눈요기와 쾌락의 상대가 되어 주고는 그들의 풍요를 조금 나눠쓰는 소피아 같은 이들이 있다. 


바로 이 지점이, 이 영화가 자못 선정적일 수 있는 소재로 빠지지 않고 세상을 대하는 나름의 철학을 내보이는 핵심이다. 어른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애라고 할 수도 없는 나이의 나이마가 혼란스러워 하는 게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세상의 한 진면목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으니 말이다. 그녀를 다 잡아 준 건, 의외로 소피아가 아닌 앙드레의 친구 필리프였다. 소피아는 그녀를 끌어들였지만 가르쳐 주지 않았고, 필리프는 그녀를 끌어들이지 않으면서 가르쳐 주었다. 진짜 어른이 아닌가 싶다. 


영화는 프랑스 콘텐츠답게 이해하기 힘든 철학을 담고 있는 말을 쉽고 짧은 대사로 치고 빠지곤 한다. 스토리 맥락과 닿아 있는 듯하지만 서사적 맥락을 방해하는 듯한 대사들이 애매모호한 타이밍에 나와 애매모호함을 남기니 난감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허투루하는 말이 아닌 걸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으니 만큼, 곱씹어 보면 좋을 것 같다. 


"아름다움은 만족의 근원이야. 욕심과는 거리가 멀지."

"노화에 저항하는 게 한심하다고요? 아니죠. 오히려 감동적이죠." 

"이건 원칙의 문제가 아니야. 가치에 대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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