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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러나지 않지만 진정한 유대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자기 앞의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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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자기 앞의 생>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자기 앞의 생> 포스터. ⓒ넷플릭스



'자기 앞의 생'이라는 제목의 소설, 관련하여 아주 유명한 일화가 있다. 영화 같은 이야기이다. 변호사 연수를 하고, 제2차 세계대전에 공군 대위로 참전했으며, 외교관으로 오랫동안 일하면서, 많은 소설을 남겨 42살 때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해 스타로 떠오른 '로맹 가리'. 20여 년이 지나며 비평가들은 그를 두고 한 물 갔다고 했는데, 그는 다양한 필명으로 활동하며 압박을 피하려 했다. 그러던 61살이 되던 1975년에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자기 앞의 생>이 공쿠르상을 수상한 것이다. 


에밀 아자르 즉, 로맹 가리는 수상을 거부했지만 공쿠르 아카데미 측에서 밀어붙였다. 공쿠르상은 같은 작가가 두 번 이상 수상할 수 없다는 원칙이 있었는데, 당시 '에밀 아자르=로맹 가리'의 사실을 아는 사람은 문학계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여 로맹 가리는 오촌 조카에게 에밀 아자르를 연기하게 했다. 이후 에밀 아자르는 프랑스 문학계에 엄청난 찬양을 받았고,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 표절 시비까지 나며 혹평을 면치 못했다. 1980년, 그는 스스로 목숨을 거두고 만다. 그는 유서를 남겼는데, 거기에 자신이 에밀 아자르였다는 사실을 밝혔다. 


하여, 올해는 로맹 가리 40주기이자 소설 <자기 앞의 생> 45주년이 되는데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우리 앞에 다시 섰다. 배경은 프랑스가 아닌 현대의 이탈리아로 말이다. 이탈리아와 유럽은 물론 헐리우드를 포함한 전 세계 영화계 최고의 레전드인 소피아 로렌이 오랜만에 얼굴을 비췄다. 그녀의 최신작이 아들 에도아르도 폰티 감독의 작품이었는데, 이 작품 역시 그가 연출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진정 눈여겨 봐야 할 이가 있었으니 소피아 로렌의 로자 역과 더불어 주인공 모모 역을 맡은 이브라히마 게예다. 


슬픔과 아픔을 지닌 이들의 만남


고아 소년 모모, 사회 복지사의 부탁으로 코엔 박사가 후견인으로 있다. 소매치기가 특기이자 취미인 듯한 그를 코엔은 더 이상 맡기가 힘들다. 코엔은 모모가 훔쳐 온 값 비싼 촛대의 주인, 로사를 찾아가 사과하면서 모모를 맡아 달라고 간청한다. 입양할 가정을 찾을 때까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단칼에 거절한다. 나이도 많이 든 그녀는 안 그래도 매춘부 아이들을 맡고 있었던 것이다. 모모도 싫은 건 마찬가지였다. 


그때 마약을 취급하는 동네 아저씨가 모모에게 접근한다. 코엔 박사네에서 나와 로사 아줌마네로 오면 일을 줄 수 있다고 말이다. 모모로선 돈이 필요해 평소에 안면을 트고 지냈는데 잘됐다 싶었다. 자존심을 굽히고 로사네 집으로 향하는 모모, 동시에 뒤로는 마약을 팔아 돈을 마련하기 시작한다. 그로선 로사네 집에서 어떻게 지내든 상관없었다. 로사는 물론이고 로사가 맡은 아이들과도 잘 지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러던 비가 쏟아지는 어느 날 로사가 비를 맞은 채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그녀는 슬픔 이상의 공허를 지닌 채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았다. 모모는 그녀가 정신을 차리게 하고자 온몸으로 웃기려 했고 그녀는 정신을 차린다. 이후 모모는 조금씩 마음의 덧창을 열기 시작한다. 로사가 소개시켜 준 잡화점에서 주인장 하밀 씨를 도와 간간이 일도 하고 로사가 맡은 아이들과도 잘 지내 보려 한다. 그런가 하면, 언젠가 또다시 로사의 이상 현상을 목격하는데 그녀에게도 말할 수 없는 아픔이 있다는 걸 눈치 채고 그녀를 감싸 주는 모모다. 


특별하지 않지만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


영화 <자기 앞의 생>은 소설 원작과 상당히 다른 결을 가진다. 누군가는 다른 결이라고 할 테고, 누군가는 영화를 잘 만들지 못했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소설은 모모라는 캐릭터의 복잡다단하고 입체적인 면모를 한껏 살려 보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주로 로사와의 관계에서인데, 둘의 관계가 보여 주는 롤러코스터 감정이 특히 그랬다. 반면 영화는 모모의 캐릭터 자체도 그렇고 로사와의 관계에서도 특별한 뭔가를 얻기가 쉽지 않았다. 감독의 '잘못'이 크지 않았나 싶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전적으로 로사 역의 소피아 로렌과 모모 역의 이브라히마 게예다. 영화가 그리 잘 나오진 못했기에 오히려 두 주인공의 연기가 돋보이는 게 아닌가 싶지만, 연기만 따로 떼어 놓고 봐도 손색이 없다. 칸, 베니스, 베를린, 미국·영국 아카데미, 골든 글러브 등 배우로서 받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상을 받은 전설적 배우 소피아 로렌은 그렇다고 쳐도 듣도 보도 못한 이브라히마 게예야말로 이 영화의 진정한 수훈이다. 


소피아 로렌이라는 대배우와 밀착해 연기를 펼치는 데 위축되거나 어색한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80대 중반으로 50년대부터 배우 생활을 시작해 60년대 전성기를 보낸 '옛날 사람'이기에 오히려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어설프게 유명하거나 활발하게 활동하는 대배우였다면 완전히 다른 케미와 퍼포먼스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말 못할 아픔을 아주 깊숙이 간직한 채 천천히 아파 가는 로사, 모모 역시 어리디 어린 나이지만 아무에게도 말 못할 아픔을 지니고 있다. 결이 같은 아픔이었을까 아니면 아픔은 아픔을 알아보는 걸까, 모모는 로사를 감싸 주고 받아들인다. 로사는 겉으론 힘들다 못한다 싫다고 하지만, 진작 모모를 감싸 주고 받아들였다. 


이 영화의 아이러니


뭘 하든, 남기고 싶은 게 있다면 단 하나면 족하다. 이 영화 <자기 앞의 생>을 보고 나서 남은 게 뭔지 생각해 본다. 소피아 로렌과 이브라히마 게예의 훌륭한 연기가 주는 풍만함만으론 어딘가 조금 아쉬운 마음이다. 그들의 연기를 통해 일으킨 뭔가가 있을 것이었다. 드러나지 않는 '유대감'이 아니었나 싶다. 보는 우리는 물론, 로사와 모모 서로도 서로의 진짜 아픔을 추측만 할 뿐이다. 


바로 그 지점이다. 드러내지 않는 아픔을 로사와 모모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아주 잘 아는 듯하다. 그 유대감은 인간이 가지는 최고의 감정이자 인간과 인간이 교류하고 교감하는 최고의 감정교환일 것이다. 그 지점을 알아 차릴 수 있다면 이 영화는 충분하다. 하지만, 영화 밖에서 보는 우리로선 알아 차리기가 쉽지 않다. 아주 미묘하기 때문이다. 영화 내에서만 공유하고 영화 밖으로 나오지 않는 느낌이다. 


감독이 이 영화를 잘 만들지 못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바로 여기다. 아주 불친절했다는 것. 그런데 바로 그 부분이 이 영화가 충분하다고 느끼게 하는 지점이라는 게 아이러니하다. 영화가 조금만 더 친절했으면 싶지만, 만약 친절했으면 이 영화에서 남는 건 훌륭한 연기밖에 없었을지 모른다. 부디 이 영화를 보며, 영화 안으로 침참해 들어가, 로사와 모모의 드러나지 않는 아픔과 그들만의 감정선을 파악하여, 진정한 유대감을 조금이라도 엿보길 바란다. 그러 할 수 있다면, 이 영화는 마음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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