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포스터. ⓒ넷플릭스
코로나19로 전 세계 극장이 문을 닫다시피 하여 OTT 시장이 그 어느 때보다 활성화되었다. 그중 단연 앞서가는 건, 모두가 알다시피 '넷플릭스'다. 그렇다 보니, 요즘엔 영화 '기대작' 리스트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늘었는데 앞으로 더욱더 늘어날 것 같다. 신예라고 할 만한 안토니오 캠포스 감독의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도 그중 하나다.
2011년 최고의 소설 중 하나로 뽑히는 유명 원작과 필모 최고의 열연을 펼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쟁쟁한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제목에서도 연상되는 바 잔잔하게 퍼지는 불안과 불쾌의 감정이 탄탄하게 자리 잡은 영화라고 하겠다. 더 자세히 보면, 최근 들어 제작자로도 활발히 활동하는 제이크 질렌할이 제작에 참여했고 영화 전체의 분위기와 흐름과 중심을 잡고자 원작자 도널드 레이 폴락이 직접 내레이션을 맡았다.
출연진은 화려하다 못해 호화롭다. 홀로 영화 하나를 책임질 만한 주연들이 총출동했다. 굳이 열거해 본다. <스파이더맨>의 '스파이더맨' 톰 홀랜드, <더 배트맨>의 '배트맨' 로버트 패틴슨, <어벤져스>의 '윈터 솔져' 세바스찬 스탠, <그것>의 '페니 와이즈' 빌 스카스가드, <철의 심장을 가진 남자>의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제이슨 클락, <해리포터>의 '두들리' 해리 멜링,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앨리스' 미아 바시코프스카, <작은 아씨들>의 '베스' 일라이자 스캔런,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 '코라 콜먼' 헤일리 베넷, 앨비스 프레슬리의 외손녀 '라일리 키오'.
악마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고군분투하는 젊은이
때는 1957년, 장소는 미국 오하이오주 노컴스티프, 대부분 혈연 관계로 이어진 4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다. 2차 대전 참전용사 윌러드 러셀의 가족은 외딴 곳에 9년째 별탈 없이 살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아내 샬럿이 암으로 쓰러지고 윌러드는 자신만의 교회에서 아들과 함께 신께 기도드리며 아내가 살길 바란다. 급기야 키우던 개를 제물로 바치기까지 하지만 샬럿은 죽고, 윌러드는 자살한다. 홀로 남겨진 아들 아빈은 작은 할아버지에게 맡겨진다. 거기엔 또래의 여자애 리노라가 있었다.
리노라는 동네의 독실한 신자 부부 로이와 헬렌의 딸이었다. 어느 날부터 로이는 두문분출하며 방안에 처박혀서는 신의 시험을 통과하고 신의 음성을 듣고자 했다. 2주 뒤 신의 계시를 들은 로이는 오랜만에 헬렌과 놀러 가며 리노라를 아빈의 작은 할아버지 댁에 맡긴 것이다. 로이는 신의 계시를 따라 헬렌을 죽이고 부활시키려 하지만 실패하고 도망치다가 칼과 샌디 부부 차를 얻어 탄다. 그들은 연쇄살인범이었던 것, 로이는 칼의 총에 맞고 즉사한다.
칼과 샌디는 젊은 남자 히치하이커들만 골라 태운 뒤 한적한 곳에 세우곤 예술적 사진을 찍는다며 샌디로 하여금 몸을 팔게 하고 결국엔 히치하이커를 죽인다. 샌디에겐 하필 보안관 오빠 보데커가 있었는데 보데커 또한 여지없이 뒤가 구렸다. 동네를 주름잡는 마피아 조직과 붙어 먹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아빈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리노라를 지키고자 불철주야 노력했는데 결국 지키지 못한다. 그런데, 리노라를 헤친 건 학교 친구들이 아닌 동네 교회에 새로 부임한 목사 프레스턴이었다. 악마들이 판치는 세상, 아빈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악마의 감촉과 향기가 진득하게 퍼지는 악마의 연대기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20세기 중반 미국에 만연했던 악마들의 이야기와 다름 없다. 그런데, 흔히 생각하는 악마 같은 인간과는 다른 형상을 보인다. 아내의 죽음을 막기 위해 반려견을 제물로 바친 남편부터 어떤 사연이나 이유도 없는 연쇄살인범까지 범상치 않는 이들도 있는 한편, 깡패 조직에 붙어 먹는 경찰이나 어린 여성들을 탐하는 목사는 예나 지금이나 만연하다.
그래서인지, 영화에 나오는 악마들에게 분노를 느끼거나 그들의 이야기에서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긴장감을 느끼거나 하지 않는다. 대신, 가슴 깊숙한 곳까지 진득하게 퍼지는 악마의 '감촉'과 '향기'가 느껴진다. 마치 어찌할 도리 없이 악마에게 잠식 당한 이들이 도처에 널린 듯한 것 같달까. 가멸차게 휘말린 아빈 입장에선 '기도' 따위가 아닌 '행동'이 필요했다. 하여, 그의 행동이 악마적 소행과 다름 없는 결과를 낳는다 하더라도 결코 악마적 행위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악마들이 종횡무진하는 '악마의 연대기'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이 작품, 제2차 세계대전에서 베트남 전쟁 사이 오하이오주와 웨스트버지니아주의 낙후된 소도시들을 배경으로 한 이유가 있을까. 미국의 특징, 국가적인 게 곧 개인적인 것이고 개인적인 게 곧 국가적인 것이라는 걸 대입해 보면 원작자 도널드 레이 폴락의 삶에서 어느 정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1954년생인 그는 50대 중반인 2011년 '첫 장편소설'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그는 영화의 주배경이 되는 오하이오주 노컴스티프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중퇴 후 제지공장 노동자와 트럭 운전수로 자그마치 32년 동안 일했다. 일하던 도중 오하이오 주립대학에 입학했고, 일을 관두고는 예술학석사 과정을 밟는 도중 소설가로 데뷔했다. 평생 오하이오를 떠나고 싶었다는 그는,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알코올 중독과 마약 중독으로 엉망인 삶을 살았다고 한다. 소설과 영화엔 다분히 그의 엉망인 시절의 삶이 녹아들어 있다 하겠다. 그의 마음속에 악마가 깃들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의 주변에 악마가 깃들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장르적 쾌감 대신 문학적 은유로 그려낸 당대의 미국
영화는, 그러나 애매모호한 면이 상당하다. 외형상 범죄스릴러 장르를 띄고 있는데, 실상은 2007년 전 세계 영화제를 양분하다시피 했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데어 윌 비 블러드>처럼 다분히 문학적 은유로 미국을 그리려고 했다. 하여, 장르적 쾌감을 전혀 선사하지 않는 대신 이면에 도사린 은유를 읽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그런 면에서 원작자가 직접 내레이션에 참여한 건 상당히 적절하다 하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가 문학적 은유로 당대의 미국을 적절히 그려냈다고 할 순 없다. 굳이 들여다보자면 이 정도가 아닐까 싶다. 1940~60년대 미국은 전 세계에서 독보적으로 전후 혜택을 받은 시대를 살고 있었다. 와중에, 낙후된 도시의 외따로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을 안팎으로 잠식하는 악마들. 실제로는 실체가 있었든 없었든, 이 영화는 실체로 보여 주는 것이다. 악마는, 극도의 욕망으로 점철된 이들에게 깃들기 쉬운 만큼 또한 소외되고 힘 없고 힘겨운 이들에게 깃들기 쉽다는 걸 표현한 게 아닌가 싶다. 맞는 말이다.
하나 같이 눈을 뗄 수 없는 신스틸러로서의 연기를 톡톡히 해낸 배우들의 연기가 아니었으면, 이 영화는 적어도 영화적으론 큰 가치를 얻지 못했을 수도 있다. 다행히 수많은 주연급 배우들이 출연해 필모에 길이 남을 만한 열연을 펼쳤고, 스토리 못지 않게 연출과 연기가 중요한 '영화'로서 기대받고 박수받아 마땅하다. 영화 자체로 길이 남을 만한 힘은 없었지만, 애매모호한 아쉬움들을 들춰 보지 않게 하는 힘이 있었다. 대신, 출연 배우들에겐 뜻 깊게 남을 만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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