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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아서왕 전설 재해석의 올바른 예를 보여 주다 <저주받은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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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저주받은 소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저주받은 소녀> 포스터. ⓒ넷플릭스



'아서왕 전설' 이야기는 알게 모르게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그 어릴 때 KBS에서 봤던 애니메이션 <원탁의 삼총사>가 기억에 남아 있고, 영화, 소설, 드라마, 게임, 만화, 애니메이션 등으로 수없이 소개되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동양의 '삼국지'에 버금간다고 하면 맞을까 싶다. 역사 속 실존인물이다 신화·전설 속 인물이다 말이 많지만, 5세기 말경 앵글로 색슨족의 침입에 맞서 브리튼을 지킨 성인으로 추앙받는다. 


아서왕과 몇몇 인물들 그리고 엑스칼리버라는 성검의 이름은 들어 봤겠지만, 자세한 이야기는커녕 대략의 얼개조차 들어 보지 않았음직 하다. 그만큼 유명하다는 반증이겠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아서왕 전설이 리메이크되었는데, 그야말로 '요즘'에 맞게 다시 만든 콘텐츠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영화 <씬 시티>와 <300> 원작자로 유명한, 현존하는 최고의 그래픽노블 작가 중 한 명인 프랭크가 주축이 되어 2019년 출간한 그래픽노블 <저주받은 소녀>을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저주받은 소녀>가 그것이다. 


수많은 아서왕 전설 리메이크작에서 조연 이하의 비중을 차지하곤 했던 호수의 여인 '니무에'가 주인공으로 우뚝 선 것이다. 니무에는 아서에게 엑스칼리버를 건네는 도구로서의 역할 정도에 그쳤는데, 이 작품에선 엑스칼리버가 니무에를 선택했고 니무에는 아서가 아닌 대마법사 멀린에게 엑스칼리버를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저주받은 소녀>는 그 과정에서 리더로 성장하는 니무에의 여정을 그렸다. 


페이족 소녀 니무에의 여정


평화로운 페이족 마을, 특별한 니무에는 숲의 정령과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 때문에 부족 내에서 따돌림을 당하기도 하는데, 그녀의 목숨을 살리기도 한다. 어느 날 페이족 마을이 교황의 명령으로 쳐들어 온 광신도 집단 레드 팔라딘에 의해 쑥대밭이 된다. 죽어가는 어머니에게서 엑스칼리버를 받아 그녀의 간곡한 유언에 따라 마법사 멀린에게 향하는 니무에, 그녀 삶의 2막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레드 팔라딘의 추격을 뿌리치는 것도 벅찬데, 왕실에서도 그녀와 검을 쫓고 그림자 세계에서도 그녀와 검을 쫓는다. 그야말로 엑스칼리버를 향해 벌 떼 같이 몰려드는 것이다. 와중에, 니무에가 만나고 함께하는 이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아서, 우서 펜드래곤, 가웨인, 퍼시발, 이그레인 등 아서왕 전설을 떠받히는 인물들이다. 한편, 멀린은 레드 팔라딘과 왕실과 그림자 세계를 오가며 나름대로 공작을 벌인다. 


니무에는 왜 멀린에게 엑스칼리버를 건네야 하는가, 건네는 데 성공할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레드 팔라딘의 목적은 무엇일까, 그들의 광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몰락한 기사의 아들이자 빚 때문에 좀도둑질까지 하는 비열한 아서는 어떻게 왕이 될 것인지, 왕이 될 수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아서왕 전설이 어떤 식으로 변주될지 기대된다. 


직접 세상을 바꾸는 여성의 이야기


특별하다지만 세상을 바꿀 만한 능력일 순 없는 능력을 가진 어린 소녀 니무에가 최초 왕들의 검 엑스칼리버를 잘 지켜 내며 멀린에게 전달하는 과정 자체가 대단하다고밖에 볼 수 없다. 이유인즉슨, 세상 모든 권력자들이 그녀를 아니 그녀가 지닌 엑스칼리버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로선 살기 위해 엑스칼리버를 놓아 버리면 그만일 테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지켜 내려 하는 것이다. 


일신의 영달을 추구하는 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닐 테다. 신념의 문제에 해당된다. <저주받은 소녀>의 니무에는 자신도 모르는 새 신념이 생겼을 수도 있고 본래 신념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야말로 대서사시에 적합한 인물이다. 여기에 이 드라마가 추구한 재해석의 묘미가 있다. 아서왕 전설의 조연급도 못 되는 여인을 원톱 주연으로 내세워 이야기를 다시 썼다. 그러며 지금 이곳의 세상이 추구하고 나아가려는 방향에 맞게 확실한 메시지를 전한다. 전달자이자 조력자로서 세상을 바꾸는 데 일조하는 게 아니라 직접 세상을 바꾸는 여성. 


하지만, 한편으론 아서왕 전설의 프리퀄 즉 '앞선 이야기'의 또 다른 형태를 띄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니무에는 이리저리 흔들리고 또 페이족을 구하기 위해 희생하려는 한편 아서가 급부상하여 사람들을 이끄는 것이다. 왠지 니무에가 아닌 아서가 왕의 자리에 올라 세상을 옳게 바꾸게 될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드라마를 끝까지 보면 어렴풋이나마 느낄 텐데, 그리 되면 그저 모양새만 좋게 구축하는 것으로 끝나 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고전 재해석의 올바른 예


이 작품이 주체적으로 우뚝 서 세상에 맞서는 여성의 이야기로만 정치적 올바름을 전하려 한 건 아닌 듯하다. 전체적으로 인간과 비슷해 구분하기 힘들지만 어딘가 다른 구석이 분명히 있는 페이족을 대하는 시선, 절대 선(善) 신의 대리자로서 종교의 이름을 빌어 페이족을 학살하는 광신도 집단 레드 팔라딘, 그런 페이족조차 내부에서는 특별하지만 무서운 능력을 지닌 니무에를 따돌리고 해코지하려 한다. 아서를 흔히 생각하고 그려지는 백인이 아닌 흑인으로 배치시킨 것도 눈여겨 볼 만하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엑스칼리버가 맥거핀으로 작동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많은 영화에서 최중심의 소재로 모든 이가 찾길 원하지만 정작 진짜 중요한 게 아닌 '성배'처럼 말이다. 성배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 낸 산물에 불과한 게 아닌가. 하지만, 엑스칼리버는 니무에가 직접 휘두르며 그녀로 하여금 나아가고 성장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다. 뿐만 아니라, 작품의 주요 캐릭터가 생각하고 움직이고 살아가는 데 직접적인 동력이 된다. <반지의 제왕>의 '절대 반지' 같다고 할까. <왕좌의 게임> 같은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면 성배처럼 쓰였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엑스칼리버 덕분에 이 작품의 스토리 라인이 이도 저도 아니지 않게 되었다. 니무에라는 캐릭터에 너무 치중되어 있었다면 재미가 터무니 없이 반감되어 이 작품을 찾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니무에와 엑스칼리버가 메시지와 스토리를 대표하고 상징하며 조화를 잘 이룬 것이다. 앞으로 훨씬 방대해질 세계관의 초반 얼개는 확실히 짜 두었지만 그래서 시즌 2가 나와야 한다고 확실히 방점을 찍었지만, 그 바람이 이루어질지는 미지수이다. 수많은 드라마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퍼포먼스를 보여 주었다고 보기엔 약간 갸우뚱하니 말이다. 그럼에도, 응원한다. 고전을 재해석하는 건, 이런 식으로 재해석하는 건 언제든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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