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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뒤틀린 실직자가 아닌, 실직자를 양산한 사회가 문제 <신은 나에게 직장을 주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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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신은 나에게 직장을 주어야 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신은 나에게 직장을 주어야 했다> 포스터. ⓒ넷플릭스



모르는 사람은 모를 테지만 알 만한 사람은 너무도 잘 알 그 이름, 에릭 칸토나. 1980~90년대 프랑스리그를 주름잡다가 1992년 잉글랜드로 건너와서는 곧바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눈에 띄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게 된다. 오자마자 많은 골과 장악력으로 팀을 정상으로 이끄는 등 승승장구하지만, 1995년 관중석에게 폭력을 가한 전설의 '쿵푸킥 사건'으로 시즌을 날린다. 돌아온 그에게 주장을 맡기는 퍼거슨 감독, 칸토나는 당연한 듯 우승을 안긴다. 1997년 초 느닷없이 은퇴를 선언한다. 그는 프리미어리그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남아 있다. 


은퇴 전부터 배우 경력을 쌓기 시작한 칸토나는,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배우 경력 담금질에 들어가 지금에 이르렀다. 개중엔 아카데미 시상식 7개 부문 노미네이트에 빛나는 <엘리자베스>라든지,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 '켄 로치' 감독의 <룩킹 포 에릭>, 매즈 미켈슨과 에바 그린 주연의 <웨스턴 리벤지> 등이 있으니 만만치 않은 경력을 쌓은 것이다. 축구선수로 전설 아닌 레전드급의 유명인사이기에 상대적으로 배우로서의 이미지가 묻히는 건 어쩔 수 없다. 그가 이번엔 넷플릭스 오리지널 미니 시리즈로 우리를 찾아왔다. 


프랑스 사회파 스릴러 소설의 거장 '피에르 르메트르'의 <실업자>를 원작으로 한 <신은 나에게 직장을 주어야 했다>이다. 칸토나는 6부작을 홀로 이끌다 시피 하는 57세의 실업자 '알랭' 역을 맡아 열연했다. 그의 플레이를 당대에 본 적이 없고 그의 연기를 본 적도 없지만, 내가 아는 그 사람이 맡는지 의아할 정도의 장악력을 보여준다. 그는 경기장에서도, 연기 현장에서도 특유의 장악력이 통하는 사람인가 보다 싶다. 


57세 실업자에게 신이 주신 기회


57세 실업자 알랭, 그는 25년간 중소기업 인사부장을 지내다가 실직한 지 6년째다. 근근이 굶어죽지 않을 정도의 일을 찾아 해왔지만 어느 하나 제대로 된 직장이 아니었다. 그마저도 막돼먹은 관리자를 들이받고 쫓겨나 소송이 걸릴 판이었다. 와중에 기대 없이 막무가내로 지원한 대기업 '엑시야' 인력관리부에 면접 볼 기회를 얻는다. 그야말로 신이 주신 기회. 그런데 면접이 특이하고 생뚱맞다 못해 위험하다. 


큰 계약 실패로 위험에 처한 엑시야는 1000명이 넘는 노동자를 해고하려 하고 더불어 주요 임원을 테스트하려 한다. 알랭이 당면한 면접이라는 게 다름 아닌 엑시야 주요 임원 테스트로, '가짜 인질극'을 펼쳐 알랭의 입을 통해 가짜 테러리스트가 임원들에게 실질적·실존적 압력을 가해 그들의 반응을 토대로 점수를 매기는 것이었다.


알랭은 보안 스페셜리스트인 친구 샤를을 통해 주요 임원을 추리고 또 그들의 이면을 엿본다. 그러며 전직 경찰을 매수해 인질극의 본질을 꿰뚫어보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그 과정에서 아내와 두 딸 그리고 사위의 믿음을 잃지만, 알랭은 신이 주신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철저한 준비 끝에 면접을 기다리던 어느 날, 엑시야의 직원이 찾아와 말을 건넨다. 이미 내정되어 있으니 면접을 보지 마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 알랭은 고심 끝에 결정하고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의 한가운데로 들어가는데...


실직자를 양산한 사회 구조가 문제


<신은 나에게 직장을 주어야 했다>는 탄탄한 원작과 과도하지 않은 적절한 연출, 연기, 배경 등에 힘입어 괜찮은 작품으로 거듭났다. 스릴러로서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압도적 서스펜스를 선사하진 않지만, 적절히 치고 빠지는 완급 조절이 수준급이다. 더불어 끝까지 마음을 완전히 놓을 수 없게 하는 반전의 반전이 계속 되어, 재미와 여운을 선사한다. 


60대 정년은 옛말, 50대면 언제 실업자가 될지 모르는 시대로, 3~40대부터 미래에 대한 불투명한 걱정이 시작된다. 50대에 들어서 실직해 계속 같은 상태인 알랭이야말로 이 시대를 상징하는 실직자의 표본으로서, 그의 절박함이 뚝뚝 묻어나는 작품의 결이 예사롭지 않다. 비록 가짜이지만 인질극이라는 말도 안 되는 면접을, 그것도 모두의 신임을 잃어가면서 철저히 준비하는 알랭의 모습이 남 같지 않은 것이다. 직장에 들어가려고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과 물음에, 그는 생각해 볼 것도 없이 '그 어떤 짓이든 불사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작품은 알랭에게서 보이는 일련의 뒤틀린 모습을 통해 실직자가 아닌 실직자를 양산한 사회 구조를 꼬집는다. 사회 구조에 맞닿아 있는 건 다름 아닌 '엑시야'로서, 1000명이 넘는 노동자를 한순간에 해고하려 하는 것도 모자라 주요 임원들이 회사에 얼마나 충실한가를 정확히 테스트하기 위해 가짜 인질극까지 벌이려 한다. 이 면접 아닌 '사건'이 나중에 알랭이 일으키게 되는 돌이킬 수 없는 '사건'과 맞딱뜨리게 되는데, 무엇이 옳고 그른지 또 어떤 사건이 다른 사건의 원인이 되는지 생각해 볼 시간이 있을 것이다. 


사회파 아닌 스릴러로서의 미덕


작품은 사회파 스릴러로서 균형 감각을 조금은 상실한 느낌을 준다. '사회파'로서 거시적 메시지를 던지며 범사회적으로 생각하고 토론할 거리를 던져야 마땅한대, 용두사미 느낌이 나는 것이다. '엑시야'로 대변되는 모순으로 점철된 사회 구조의 단면을 치명적으로 들여다보고 까발리는 데는 실패한 것 같다. 너무 약했다고 할까, 허술했다고 할까. 우리가 수박 겉 핥기로 알고 있는 이 사회의 추악함조차 그리 지지부진하지 않다. 하물며 픽션으로 보여지는 사회의 추악함이라면? 많이 아쉬웠다.


반면 '스릴러'로서 미시적으로 사건을 파고들어 헤어나오기 힘든 수렁에서 허우적 거리는 캐릭터로 서스펜스와 카타르시스를 주어야 하는데, 굉장히 성공적인 느낌이 나는 것이다. '알랭'으로 대변되는 이 시대 실직자 표준의 절절하고 절박하고 절실한 마음이 전해오는 것 같다. 목적지까지 달려가는 도중 그가 헤쳐나가야 할 수많은 잡동사니들이 매우 현실적이다. 그런 것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게 인생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모솔 송연한 스릴러 아닌, 현실적으로 치열한 스릴러가 와닿는다. 


빠르게 다가오는 미래가 심히 걱정되게 만드는 작품이다. 평생 난다긴다 아무리 노력하고 또 잘해도 결국 자리를 보전할 수 없을 것인가. 이후엔 열심히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게 '일'이란 말인가. 사회는 보장해 줄 수도 없고 보장해 주고 싶지도 않은 것인가. 노후 준비는 미래의 어느 날이 아닌 지금 이 순간부터여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오래오래, 편안하게 사는 게 아니라 일하면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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