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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장애를 향한 관심, 제도 개선과 인식 개선이 필요한 이유 <크립 캠프: 장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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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크립 캠프: 장애는 없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크립 캠프: 장애는 없다> 포스터. ⓒ넷플릭스



지난 2월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승자는 단연 <기생충>의 봉준호였다. 한국영화를 넘어 아시아영화 역사상 유례없는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4관왕을 기록했던 것이다. 와중에 또 다른 승자로 거론되는 이가 있었으니, 전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 부부이다. 퇴임 후 미디어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그들은 2018년 '하이어 그라운드 프로덕션'이라는 콘텐츠 회사를 차렸다. 투쟁하며 승리하는 인간 정신의 주요 가치를 보여 주는 콘텐츠를 제작하겠다고 공언했다. 


같은 해 5월 넷플릭스와 파트너십을 맺고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는데, 이듬해 2019년 8월 넷플릭스로 공개된 <아메리칸 팩토리>가 첫 번째 작품이었다. 35회 선댄스 영화제 감독상을 비롯 미국 감독 조합상과 LA 비평가 협회상에서 수상하고, 대망의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다큐멘터리상을 거머쥔 것이다. 다양한 목소리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하이어 그라운드 프로덕션과 버락 오바마 부부의 콘텐츠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게 만든 쾌거였다. 


향후 몇 년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 예정인 하이어 그라운드 프로덕션 드라마, 리얼리티, 다큐멘터리 시리즈, 영화, 다큐멘터리 영화 등이 개발 중에 있다고 했는데, <크립 캠프: 장애는 없다>(이하, '크립 캠프')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공개되었다. 36회 선댄스 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하며 기대감을 높였다. 작품은 미국 장애인 인권 운동의 시초가 1971년 캠프 레네드(이하, '레네드')라는 작고 초라한 여름 캠프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십 대 장애인들의 유토피아, 캠프 제네드


<크립 캠프>는 캠프 레네드에 참가했던 지미 러브렉트의 회고로 시작된다. 그는 역시 레네드에 참가했던 니콜 뉴넘과 함께 이 작품의 공동 연출가이기도 한데, 1955년부터 시작되었던 레네드의 역사에서 그들은 1971년 여름을 장식했다. 캠프는 뉴욕주 남동부 캐츠킬산맥에 위치해 있었다. 십 대 장애인들이 그곳을 향했는데, '바깥세상'은 존재하지 않는 그들만의 유토피아였다고 한다. 


제네드는 1950년대에는 전통적인 캠프 프로그램이었지만 1960~70년대 발전하여 십 대들이 편견과 꼬리표 없이 십 대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자 했다. 캠프를 운영하는 스태프와 지도 교사들은 비장애인들과 장애인들이었는데, 참가자들을 스스럼 없이 대함으로써 장애인 참가자들로 하여금 제네드가 의미 있다고 느끼게 하였다. 


바깥세상에선 여러 압박감들이 그들을 짓눌렀지만 캠프에선 어떠한 압박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모두 다 똑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느끼는 생각과 태도가 자연스럽게 공유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평소에 가지고 있었으나 나누지 못한 목소리를 낸다. 사람들이 자신들을 과잉보호 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사생활의 권리를 보장받았으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레네드가 끝나고 바깥세상으로 다시 돌아가면 허무함과 함께 바뀌지 않은 생활을 영위할 것이었다. 


캠프 제네드에 참가했던 이들의 인식 변화와 행동


제네드에 참가했던 십 대 장애인들에게 세상을 향한 뚜렷한 인식의 변화가 일어난다. 이전까지는 크게 느끼지 못한, 애써 억누른, 느꼈어도 못 느낀 척했던 당연한 차별을 더 이상 감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아니, 감내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 시작은 제네드 지도 교사로 활동했던 주디 휴만이다. 그녀는 장애인 정치 단체 '디스에이블드 인 액션' 대표로 활동하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제네드에서의 경험, 즉 장애인들뿐만 아니라 비장애인들이 서로가 힘을 갖도록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언론 활동을 하며 다양한 위원회를 꾸려 나가기 시작한다. 파장이 크게 일었던 건, 뉴욕에 있는 윌로브룩 주립 병원 폭로 프로그램이었다. 50명의 장애인들을 단 한 명의 간병인이 담당하고 있으니, 정녕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나라에서 운영하는 병원에서 말이다. 


주디 휴만은 이 기회를 빌어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내고자 한다. 그 수단으로 1972년 재활법 중 섹션 504를 눈여겨 보았다. 차별 금지 조항이었는데, 닉슨 대통령이 발안을 거절했고 뉴욕 시에서 교통 마비에 준하는 시위를 열었다. 1973년에는 워싱턴 DC에서도 시위를 벌였다. 결국 닉슨은 서명을 하였고 섹션 504는 통과되었다. 이후 장애인의, 장애인에 의한, 장애인을 위한 운동이 시작되어 '독립생활센터'가 생기고 주디 휴만이 합류한다. 시간이 지나 1977년, 주디 휴만은 다시 활동을 시작한다.


법안은 통과되었지만 지난 4년 동안 집행이 이루어진 게 없다시피 했다는 이면이 존재했다. 카터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법안을 시행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조지프 칼리파노 보좌관이 보건교육복지부 장관이 되면서 재검토에 들어갔다. 사실상 무효화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주디 휴만 등은 시위로 칼리파노를 압박했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보건교육복지부 샌프란시스코 지사 건물을 점거 농성하기에 이른다. 이른바, '섹션 504 쟁취를 위한 점거 운동'의 시작이다. 


법안 제정과 실행, 그리고 인식과 관습과 태도 정립


1971년 캠프 제네드가 없었다면 1977년 섹션 504 쟁취를 위한 점거 운동도 없었을 테고 나아가 미국 장애인 인권 운동과 미국 장애법도 없었을 거라고, <크립 캠프>는 말한다. 섹션 504 쟁취를 위한 점거 운동은, 비장애인 공동체들의 활발한 도움과 장애인 공동체들의 헌신에 힘 입어 한 달여의 점거 농성 끝에 법안 실행 통과의 결과를 도출시켰다. 리더들이 워싱턴 DC로 가 칼리파노와 카터를 압박하고 언론을 이용해 미국 전역에 소식을 알린 활동이 주요하였다. 


그들은 말한다. 법안이 통과되고 실행되어 실질적으로 장애인도 차별받지 않는 세상으로 진보 발전해 나가도 사람들의 기본 '인식' '관습'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이다. 비록 수십 년간 투쟁해 쟁취했지만, 그래서 더 나은 세상이 된 건 명약관화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이다. 그럼에도 투쟁의 역사를 뒤돌아 보고 그 뿌리와 과정을 아는 건 중요한 일인 건 변치 않는 사실이다. 이 작품의 존재 자체가 빛이 나는 건 당연하다, 당연해야 한다. 


12월 3일은 UN이 지정한 '세계 장애인의 날'이다. 장애인의 재활과 복지 상태를 점검하고 장애인 문제에 대한 이해 촉진 및 장애인이 보다 사람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권리와 보조 수단 확보를 목적으로 한다. 한편, 우리나라는 기존의 '재활의 날'을 이어받아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로 별도 재정해 기념하고 있다. 기념일을 제정해 환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크립 캠프>를 통해 보았듯 합리적인 법안 통과와 실행 그리고 기본 인식과 관습과 태도 정립에 있다. 


당연히 어렵고 어렵고 어려운 일이다. 관심을 기울이고 교육을 시행하고 있지만, '인식' 개선이 어려운 게 사실인 것이다. 여전히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와 장애인 수용시설 등의 '잘못된' 제도들이 만연해 있기도 하다. 제도 개선이 먼저인지 인식 개선이 먼저인지 따질 때는 아니라고 본다. 사실, '관심'부터 기울이는 게 먼저라고 본다. 관심조차 없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관심을 가진 후, 제도 개선과 인식 개선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모두가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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