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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흑백의 성혜를 통해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직시하는 청춘 <성혜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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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성혜의 나라>


영화 <성혜의 나라> 포스터. ⓒ아이 엠



스물아홉 성혜는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와 새벽 신문배달 일을 하는 공무원 준비생이다. 그녀는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서 인턴으로 일했던 바 앞날이 창창했다. 하지만 회식 자리에서 성추행을 당하곤 신고 절차를 밟았는데, 반강제로 퇴사당하고 말았다. 이후 그녀는 회사 면접에서 족족 떨어졌는데, 성추행 사건이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걸로 생각된다. 


한편, 그녀에겐 7년 동안 사귀고 있는 찌질한 남자친구 승환이 있다. 그도 그녀처럼 공무원 준비생인데, 바쁜 성혜를 훼방놓질 않나 구차하게 모텔비 얘기를 꺼내질 않나, 하등 도움이 되질 않는다. 그녀는 고향에 있는 부모님께 매달 돈을 부치는데, 용돈이 아니라 아버지의 병원비이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먹는 거라곤 유통기한 지난 삼각김밥뿐인 성혜가 힘든 이유들이랄까. 


친구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장례식에 다녀온 성혜, 알 수 없는 복통에 시달리다가 병원을 찾으니 공황장애일 수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 갑자기 숨이 가쁘고 머리가 어질하고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도무지 답이 없는 세상살이에 지쳐가고 있을 때 집에서도 쫓겨나게 된다. 그때,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시며 사망보험금으로 5억이 생기는데... 그녀의 선택은 가히 충격적일 수 있다.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대상에 빛나는...


영화 <성혜의 나라>는 2018년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대상을 차지한 작품이다. 영화판에서는 1990년대부터 주로 단역으로 출연해 왔지만, 연극판에서는 2010년대부터 연출과 각본으로 잔뼈가 굵은 정형석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이다. 주연으로도 분한 데뷔작 <여수 밤바다>로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 진출한 바 있다. 차기작 <앙상블>도 전주국제영화제에 소개되어 인연이 깊다. 


전주 한국경쟁 대상 작품임에도, 자그마치 2년만에 정식 개봉에 성공한 <성혜의 나라>는 독립영화의 어려운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작년 이른바 대형 독립영화들이 많은 관객들을 불러 모으며 이슈를 일으켰는데, 그 틈바구니에서 예년보다 못한 성적표를 받아본 독립영화들이 더 많아졌다는 아이러니가 함께했다. 소수의 성공작들이 전체 파이를 키우진 못했기로서니 역효과를 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성혜로 분한 배우 송지인은 낯이 익을 만하다. 2008년부터 영화와 드라마, 단역과 조연을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활약해 오다가 <성혜의 나라>에서 첫 주연으로 활약했다. 표정이 지워진 현시대의 청춘을 상징하는 '성혜'로 제 역할을 다했다. 사실, 그녀보다 눈에 띄는 이는 승환으로 분한 배우 강두이다. 어느새 배우로 변신해 재작년 <대관람차>에서 주연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준 강두, 이 영화에서도 캐릭터를 정확히 캐치한 물 오른 연기로 입체적 활기를 불어넣었다. 어서 빨리 그의 다음 영화를 보고 싶다.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직시하는 청춘의 현실


영화는 컬러 아닌 흑백을 택했다. 명백히 대놓고 의도한 바가 있는 듯, 성혜의 지난하고 짠내나고 한숨나는 삶의 면면에 너무 감정이입하여 깊숙이 들어갈 수 없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일면 객관적으로, 최소 한 발자국 이상은 떨어진 곳에서 바라볼 수 있게 말이다. 감독은 그런 방식으로 바라보는 게, 현시대 청춘을 보다 정확하게 직시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을 테다. 


하여, 영화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죄책감 또는 공감의 마음이 덜 느껴진다. 시선이 나로 향하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시선이 영화로 향하는 영화가 있는데, <성혜의 나라>는 비록 겉모양은 마음을 움직이는 청춘 이야기로서니 감정을 뒤흔들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명제가 철저히 통용되어지는 느낌이다.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청춘 영화이다. 


시선이 감독에게로 향한다. 감독은 왜 이 영화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청춘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직시하려는 의도가 전부였을까? 아니면 그 자신이 기성세대 남성으로, 당연히 현시대 여성의 청춘을 전혀 겪어보지 못한 채 그저 보고 듣고 느낀 것만 영화로 옮긴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영화는 너무 좋았지만, 더 깊고 세밀하고 마음을 두드리는 무엇을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그랬기에 이 영화가 좋았다는 걸 부인할 수 없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성혜의 선택을 아무도 탓할 수 없다


매년, 매 십년, 매 세대마다 청춘은 당연히 존재했다. 그리고, 청춘은 언제나 힘들었다. 비록, 지나가면 한없이 소중하고 반짝반짝 빛나던 시절로 남아 '그땐 그랬지' 정도로 치부되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청춘과 앞으로의 청춘은 다를 것 같다. 적어도 <성혜의 나라> 속 성혜를 보면 차원이 다르다. 더 이상 '청춘'이라는 단어에 모든 걸 때려넣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회사에서 성추행을 당해 정당한 절차를 밟았더니, 돌아오는 게 보복 차원의 퇴사와 계속되는 면접 탈락이란 말인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못 먹으며 밤낮 없이 일해서 번 돈으로 자기 몸 하나 뉠 집 하나 찾기 힘들단 말인가. 돈 없고 백 없어도 몸 하나로 버티고 이겨낼 수 있다는 청춘은 옛말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이 견고하게 망가진 시스템에서 청춘이 할 수 있는 건 없다. 


이 영화의 결말이 충격적이고 황당하고 안타깝기까지 하지만 한편으론 너무나도 이해 가능하게 다가오는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겠다. 그 누구도 성혜의 선택에 왈가왈부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많은 청춘들이 그녀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모두가 그런 선택을 하면, 이 시대가 이 사회가 이 나라가 발전은커녕 제자리걸음도 힘들게 될 테지만 절대 청춘들을 탓할 수 없다.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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