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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평범한 노인 존 뎀얀유크 vs 잔혹한 학살자 <공포의 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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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공포의 이반>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공포의 이반> 포스터. ⓒ넷플릭스



지난해 11월 말경, 독일 검찰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에 설치한 마우트하우젠 강제수용소에서 경비원으로 있었던 '한스 H'를 기소했다. 유대인 학살을 도운 혐의다. 나치 독일 패망 70년이 지났음에도 홀로코스트 조력자를 추적해 처벌하는 작업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 몇 년 전에도 아우슈비츠 경비원 출신 2명에게 유죄를 판결한 바 있다. 


보다 거슬러 올라가면, 2011년 '존 뎀얀유크' 유죄 판결이 나온다. 본래, 나치 전범에게 유죄를 판결하기 위해선 개인적으로 확실한 조력 또는 행위의 증거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 판결을 계기로 홀로코스트 조력자 처벌 가능 범위가 넓어졌다. 물론 지금에선 살아 있는 사람도 많지 않거니와 살아 있어도 90세를 전후한 노회한 몸이 되었을 테지만, 정의와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는 게 중요하다 하겠다. 


존 뎀얀유크는 누구일까. 그는 2011년 5년 징역형의 유죄 판결을 받기 훨씬 전, 일찍이 1985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공포의 이반' 재판으로 잘 알려져 있다. 미국 클리블랜드에서 조용히 살고 있던 평범한 66세 노인이 돌연 기소된 것. 그것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트리블링카 강제수용소에서 가스실 문지기로 학살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했다'는 엄청난 죄목이었다. 


'공포의 이반' 존 뎀얀유크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공포의 이반>은 1985년 존 뎀얀유크가 돌연 기소되어 재판을 치르는 일련의 과정과 후일담을 다룬다. 35년 전 당시 전 세계로 생중계되었던 재판 과정을 거의 그대로 전해주며, 당시 재판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관계자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지금에야 존 뎀얀유크가 2011년 유죄 판결을 받은 것만이 중요하게 전해지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이다. 


기소된 뎀얀유크는 1988년 미국 시민권이 박탈되어 이스라엘로 송환된다. 그곳에서 1962년 아이히만 재판 이후 홀로코스트 재판 최대의 화제를 뿌리며 전 세계로 생중계된다. 그가 그동안 미국에서 지낸 삶이 너무 평화롭고 온화했기 때문이리라. 가정에선 한없이 인자한 가장으로, 일터에선 한없이 성실한 직원으로, 지역 사회에선 그보다 문제 없을 수 없는 일원으로 있었다. 


그를 아는 모든 이들이 한 입으로 말하길, 그는 절대 '공포의 이반'일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가 어떻게 단순히 명령에 따라 시키는 대로 살인을 했을 뿐 아니라, 자의적으로 학살보다 더 잔인한 고문을 일삼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게다가 뎀얀유크는 흔들림 없고 여유 있는 모습으로 재판에 임한다. 그를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잔혹한 학살자와 너무 거리가 멀어 보이는 게 아닌가. 최악의 홀로코스트 조력자와 한없이 인자하고 성실하고 문제 없는 평범한 노인의 대결 양상이 화제를 뿌렸을 테다. 


치열한 재판 공방


원고 측에서 내놓은 증거물은, 존 뎀얀유크의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ID카드와 증명사진이다. 그리고 트리블링카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증언. 전문가들은 증명사진이 존 뎀얀유크와 일치한다고 주장하고, 생존자들은 존 뎀얀유크가 공포의 이반이라고 입을 모은다. 공포의 이반은 존 뎀얀유크여야 하고, 존 뎀얀유크는 공포의 이반이어야 한다. 


하지만 피고 측 변호인단의 반박 또한 만만치 않다. 그들 역시 전문가들로 하여금 증명사진이 존 뎀얀유크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ID카드 자체에 의심을 제기해 소련이 교묘히 만들어낸 것임을 밝히고, 생존자들의 신빙성 떨어지는 증언 과정에 이의를 제기한다. 몇몇은 치매 증세를 보이고, 몇몇은 공포의 이반을 향한 적대감과 복수심을 존 뎀얀유크에게 향하게 하고자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존 뎀얀유크는 이스라엘 하급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는다. 정의는 살아 있었던 것인가. 반면, 뎀얀유크의 인척들은 쇼크에 빠진다. 오랫동안 이어지는 재판으로 돈과 시간과 공력을 쏟아부은 것도 그렇지만, 한없이 다정다감했고 재판에선 더없이 여유롭고 당당했던 그가 공포의 이반이라니 말이다. 믿기 힘든 결과였다. 그들은 곧바로 항소한다. 


진실은 당사자만 알고 있다


항소 중,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러시아 KGB의 문서가 세상에 공개된다. 뎀얀유크 변호인단은 KGB 문서에 주목, 거기에서 최후의 반격을 준비한다. '진짜' 공포의 이반을 찾은 것. 그렇다는 건, 원고 측의 증거물과 증언들은 자의든 타의든 모두 거짓이 되는 것이다. 결국 1993년 이스라엘 대법원은 증거 불충분과 합리적 의심으로 존 뎀얀유크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간다. 


15여 년이 흐른 2009년, 존 뎀얀유크는 다시금 미국에서 추방되어 독일로 향한다. 2011년 묀헨 법정은 존 뎀얀유크가 소비보르 강제수용소 경비원으로홀로코스트 조력자로서의 혐의가 있음을 확신하고, 5년 징역형을 판결한다. 이듬해 2012년 존 뎀얀유크는 양로원에서 사망했다. 7년 후 2019년 제2차 세계대전 발발 80주년이 되던 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로 자세히 그려진 것이다. 


수없이 많은 반박이 오고 간 재판의 일련 과정을 지켜보고 또 수십 년이 지난 후의 당시 관계자들의 생생한 말을 들어보면, 존 뎀얀유크를 향한 100% 확신에 찬 단죄를 내리기가 힘들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진실은 당사자만 알고 있을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도 한 편에서만 뎀얀유크와 공포의 이반을 대하지 않는다. 공정하고 공평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두 주장 사이를 오가며 심도 있게 다룬다. 


작품에 교묘히 숨겨진 이야기들이 있다. 뎀얀유크를 위해 모든 걸 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노력한 사위가 말하길, '그때 그 시절 아버님(존 뎀얀유크)처럼 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어느 누가 아니할 수 있었겠느냐.'고 한다. 일면 틀린 말은 아닌 듯하지만, 엄연히 틀린 말이다. 그런가 하면, 존 뎀얀유크의 유죄 판결이야말로 정의라고 말한다. 당연히 맞는 말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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