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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스티븐 소더버그의 영리한 실험, 블랙코미디 페이크 다큐 <시크릿 세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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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시크릿 세탁소>


영화 <시크릿 세탁소> 포스터. ⓒ넷플릭스



스티븐 소더버그의 영화를 말할 때 스티븐 소더버그를 지나치는 건 매우 힘든 일이다. 온나라가 들썩일 정도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20대 중반의 데뷔작으로 받은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이제 내리막길만 남았다"는 소감을 남겼는데, 이후 10여 년간 내리막길이었다는 걸 부인할 순 없겠다. 이후 2000년대 초와 2010년대 초 다시금 이름을 드높였다. 


그는 할리우드 상업영화판에 대한 깊은 불신과 불만, 그리고 영화를 만들고 대함에 있어 전통적이지만은 않은 여러 방식을 선호하는 편으로 알려져 있다. 연출은 물론 촬영과 편집을 도맡아 하고, 아이폰으로도 찍고, 넷플릭스와 손잡기도 하는 것이다. 2019년부터 넷플릭스와 손잡았는데, 다작 감독 답게 올해 초에 <높이 나는 새>를 내놓았고 후반기에는 <시크릿 세탁소>를 내놓았다. 


<시크릿 세탁소>는 퓰리처상 수상자인 제이크 번스타인의 2017년작 <시크리시 월드: 자본가들의 비밀 세탁소>를 원작으로 'The Laundromat'가 원제이다. '자동 세탁기' 또는 '빨래방'이라는 뜻의 원제나, '비밀 세탁소'라는 번역 제목이나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다. '돈' 관련 소재와 '고발' 관련 주제로 블랙 코미디 요소를 주로 쓰는 스티븐 소더버그인 만큼 이 영화 또한 그 맥락이지 않을까 싶다. 


황당한 돈의 흐름이 낳은 비극


뉴욕, 앨런과 조는 조지호를 건너는 유람선을 탄다. 그런데 갑자기 들이닥친 소소한 파도에 배는 뒤집힌다. 예기치 않게 황당한 사고로 21명이 사망한다. 그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겠지만, 여하튼 선박 회사는 보험을 들어놨다고 한다. 그리고 그 보험 회사는 또 다른 회사에 재보험을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터진다. 재보험 회사 측에서 말하길 사고 전에 보험이 만료가 되었다는 것. 


앨런은 라스베이거스에 집을 장만하려 한다. 조를 처음 만났던 곳이 보이는 전망 좋은 집으로 말이다. 그런데 러시아인이 현금을 들고 와선 앨런이 사고자 한 방을 가로채버렸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왔는데, 선박 회사에서 들어온 돈이 턱 없이 부족했다. 앨런은 도무지 설명할 길 없는 이 사건을 직접 파헤치기 위해, 선박 회사가 보험을 든 회사가 재보험을 들었다는 '유나이티드 재보험 그룹'이라는 곳을 향한다. 


한편, 파나마에 위치한 모사크 폰세카 로펌 사무소의 두 대표 변호사 모사크와 폰세카는 돈이란 무엇인지, 돈이 어떻게 흘러 가는지 관객들에게 직접 말하는 모양새를 취한다. 그러면서 극중에서 상대하는 다양한 부류의 고객들의 면면들도 담아낸다. 유나이티드 재보험 그룹을 포함, 그들 모두가 모사크 폰세카 사무소를 통해 페이퍼 컴퍼니를 운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탈세라는 불법이 아닌 절세라는 합법의 방편으로.


파나마 페이퍼즈 사건


영화 <시크릿 세탁소>는 2016년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파나마 페이퍼즈' 사건 실화를 모티브로 했다. 실제로는 독일의 신문사에 '존 도'라는 익명의 제보자가 자료를 제공하면서 역대 최고의 유출 사건으로 커졌는데, 극중에서는 남편을 잃고 터무니 없는 보험금을 타게 된 앨런이 그 역할을 한다. 한편, 실제로도 수많은 역외회사를 세우는 데 절대적 역할을 했던 로펌 모사크 폰세카는 그 역할 그대로를 수행하며 관객들에게 직접적으로 친절하게 방법을 설명해준다. 


파나마 페이퍼즈 사건을 매우 직접적으로 다루되, 방식은 다큐와 극이 혼합된 페이크 다큐이며, 미국식 유머 다분한 블랙코미디 요소를 띈다. 종잡을 수 없는 연출과 편집과 형식의 영화는, 스티븐 소더버그라는 작가주의 실험영화를 선호하는 감독의 취향이 듬뿍 담겨 있는 한편 혼자서도 영화 한 편쯤 거뜬히 끌고 갈 수 있는 명배우 세 명이 함께 해 중심을 잡아준다. 메릴 스트립, 게리 올드만,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그들이다. 


정극톤의 극영화 또는 정극톤의 다큐멘터리를 혼합했으니 뭐가 뭔지 모르는 게 당연한 와중에, 연출 방향이 영화의 주된 소재인 '파나마 페이퍼즈' 사건이 아닌 주된 주제인 '돈'에 대해 보다 천착하고자 하여 혼란을 더한다. 궁극적으로 하려는 말은 명확하고 정확한 반면, 방식과 과정이 매우 복잡하니 말이다. 나름 재미있고 흥미롭게 만들고자 하여 나름 성공한 것 같은데, 재미도 잡지 못했고 지식 전달도 제대로 되지 못했다. 


영화로 쏘는 화살이 향하는 또 다른 곳은 '미국'이다. 영화는 말한다. 세계 최대의 조세피난처는 파나마도 아니고 버진 아일랜드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계 각지에 퍼진 이름도 알 수 없는 섬도 아니라고 말이다. 다름 아닌 미국이 그곳이란다. 이 영화 자체가 내부고발자의 역할을 하는 한편, 고무시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실험적 영리함


전반적으로 아쉬움을 남긴 <시크릿 세탁소>, 하지만 실험적 영리함을 칭찬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어느 누구도, 아니 스티븐 소더버그 정도의 이력과 영향력을 가진 이라면 더더욱 이런 영화를 만들고자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고 같이 하고 싶은 배우와 같이 하고 하고 싶은 얘기를 한다. 


반대로, 그와 같은 이력을 가졌으니 이와 같은 작업을 할 수 있을 듯도 하다. 일찍이 젊었을 적 비평과 흥행 양면에서 거의 모든 걸 이룬 그이니 만큼, 이젠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아무도 가지 못했고 가지 않았던 길을 개척하면서. <시크릿 세탁소>는 금방 잊힐지 모르나, 스티븐 소더버그를 언급할 때 <시크릿 세탁소>는 어떤 식으로든 살아남을 것이다. 


한편, 영화의 아쉬움에 큰 몫을 차지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 전달 방식이 프로파간다 요소로는 탁월하게 발휘되는 현장을 목격할 수 있다. 물론 영화가 그러한 목적을 지니고 있다는 전제 하에 말이다. 필자는 이 영화가 완벽히 프로파간다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하여, 적어도 영화적으로는 더 이상 믿을 만한 배우를 찾기 힘들 만큼 대단한 세 명의 대배우가 직접적으로 전해주는 이야기를 신뢰할 수밖에 없게 된다.  


중요한 건 극중 비극적인 사건에 휘말린 앨런의 이야기도 아니고 실화를 기반으로 절세의 온상을 적나라하게 그린 파나마 페이퍼즈 사건도 아닌 것이다. 모사크 폰세카 로펌 사무소의 두 변호사인 모사크와 폰세카가 직접 설명해주는 이야기들이야말로, 여러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중요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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