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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무기보다 무섭다는 데이터 무기에 관한 다큐멘터리 <거대한 해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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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거대한 해킹>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거대한 해킹> 포스터. ⓒ넷플릭스



지난 7월 초중순, 페이스북이 개인정보 유출문제로 사상 최대 규모 벌금인 약 50억 달러를 물게 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가 페이스북에 대한 50억 달러 벌금 합의안을 표결에 부쳐 승인했다.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영국 데이터 분석업체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이하 'CA')가 페이스북 이용자 8700만여 명의 개인정보를 수집해 이용한 것에 대한 관리 소홀의 책임을 문 것이다. CA는 문을 닫았다. 


페이스북을 비롯 그동안 개인정보 유출 사건은 끝없이 터져나왔다. 이젠 무딜대로 무뎌져 별 생각이 없었는데, 들여다보면 이번 건은 완전히 다른 성격을 띄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일명 '페이스북-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 정보 유출 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주지했듯 2016년 미국 대선이 가장 큰 관련 이슈이지만 나아가 전 세계 수많은 주요 선거들까지 얽혀져 있다. 그리고 결국 우리 자신으로 귀결된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개인정보가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 의해 '정치적 무기'로 쓰였던 것이다. 물론 SNS에 나의 개인정보를 올린 이는 다름 아닌 나 자신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쓰일지 판단하는 이도 나 자신이어야만 한다. CA는 그 부분을 건너 개인정보와 연결된 다른 이들의 개인정보까지 취합한 것도 모자라 정치적 선전에 이용했다. 


페이스북-케임브리지 정보 유출 사건 다큐멘터리


페이스북의 사상 최대 규모 벌금 보도가 나오고 얼마 후 넷플릭스에 <거대한 해킹>이라는 제목의 관련 다큐멘터리가 올라왔다.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 스캔들과 관련된 실존 인물들과 실제 이야기를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 사건 자체를 두고는 우리에겐 멀다면 멀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사건 이면의 진짜 이야기는 우리와 매우 가까울 것이 분명하다. 


다큐멘터리는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의 행실을 따라간다. 스캔들 자체는 CA의 전 직원 크리스토퍼 와일리의 폭로로 시작되었는데, 다큐멘터리는 또 다른 내부고발자인 브리트니 카이저의 시점이 주요하다. 그녀는 CA의 핵심인물이기도 했던 바, 트럼프를 대통령에 당선시키기 위해 마케팅과 홍보를 넘어 '개입'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이 사건은 케임브리지 대학의 알렉산드르 코간이 'This Is Your Digital Life'라는 이름의 성격퀴즈앱을 개발해 CA에게 넘긴 데서 시작한다. CA는 이 앱을 이용해 27여 만 명의 개인정보를 수집했다. 이를 바탕으로 연결된 수많은 '친구'들의 개인정보까지 취합, 8700만 명에 이르는 페이스북 사용자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었다. 이미 불법을 저지른 것도 모자라, 정치적 개입 및 선전 및 조작에 이용했다.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


이 사건에서 2016년 미국 대선이 뒷전인 것처럼 보이는 인상은, CA의 교묘한 수법과 페이스북에 부과된 거대한 벌금 등 때문일 것이다. 선거 이후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댓글부대에 의한 사이버 여론 조작 의혹들, 이번엔 그 규모와 수법 때문에 주객이 전도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나아가 다분히 가해자 아닌 피해자의 입장에서 들여다보고자 했다고도 할 수 있다. 


즉, 이 다큐멘터리는 2016년 미국 대선 조작 의혹이나 페이스북-CA 정보 유출 사건보다 그로 인해 피해를 당한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이고, 이야기여야 하는 것이다. 다만 앞의 사건들이 너무나도 컸기에 부각시킬 수밖에 없었고, 다큐멘터리는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맨 앞과 맨 뒤 정도에만 할당했다. 그게 핵심이다. 바로 '데이터권(Data Rights)'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한편, CA의 실체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CA는 2016년 미국 대선뿐만 아니라, 대표적으로 브렉시트 캠페인에서 극우정당인 영국독립당에게 여론조사 데이터를 제공했다. 나아가 트리니나드 토바고, 말레이시아, 리투아니아, 루마니아, 케냐, 가나 등에서 방대한 데이터로 선거에 개입했다. CA의 본사 SCL은 본래 민간 군사업체였다고 한다. 그들은 다국적 군부대와 함께 일하며 심리전을 담당했다. 총성 없는 전쟁에서 최전방을 담당한 것이다. 그때 그 기술을 가져와 선거에 개입했다. 이른바 핵 무기보다 무섭다는 데이터 무기. 


핵 무기보다 무서운 데이터 무기


빅테이터라는 말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가장 부각되는 핵심 개념인데, 우리의 삶을 한없이 윤택하고 편리하게 해준다는 긍정적인 면이 많이 부각되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그것이 올바르게 쓰지 않을 때 어떤 폐해를 불러오는지에 대해서도 주도면밀하게 분석해왔는데, '무기'가 되어 우리 삶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요소들에서 파괴의 주범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거대한 해킹>에서는 정치적 선동의 수단으로 쓰여 영화 <인셉션>에서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생각이 바뀌는 경험을 다루지만, 데이터는 불평등을 확대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기까지 한다. 개인, 집단, 회사, 국가, 체제를 아우르고 넘어 전 세계를 해킹할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내 개인정보 하나일 뿐인데 하는 생각은, 모든 게 연결된 이 빅데이터 사회에선 통하지 않고 통해선 안 될 생각이다. 


CA의 전 직원이 또 다른 데이터 분석업체를 차려 2020년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출마 선거 캠페인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자체로 불법일 건 없지만, 데이터에 대한 경각심엔 끝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 요동치게 한다. 그런가 하면 우리가 점점 더 의존하고 있는 데이터가 점점 더 우리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라는 무섭고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예측이 계속되고 있다. 지금으로선 잘 알지 못하기에 이 말밖에 더 할 도리가 없다. '우리는 우리의 데이터를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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