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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한 남자의 근원을 찾아 <행복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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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행복도시>


영화 <행복도시> 포스터. ⓒ넷플릭스



대만 미래의 어느 날, 중년의 장둥링은 어딘가로 향한다. 사람들이 둘러싼 가운데 두 중년 남녀가 자못 야하게 춤을 추고 있다. 장은 그중 남자에게 다가가 얼굴에 주먹을 지른다. 상대 여자는 다름 아닌 아내 위팡이다. 장은 쫓겨나 환락가로 향한다. 그곳에서 몰래 권충을 구입한다. 이제 복수의 시간이다. 현재 아내와 붙어 먹은 놈, 과거 아내와 붙어 먹은 놈을 제거하고자 한다. 아내는? 


한편, 장은 딸아이도 만난다. 그녀는 버젓이 좋은 회사를 다니고, 결혼할 남자친구도 있으며, 가망없는 이 나라를 떠나려 한다. 특별할 것 없는 대화를 나누고 헤어지는 그들, 영영 헤어질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장은 환락가에서 젊은 유럽 여성도 만난다. 그녀가 그의 젊었을 적 아내 아닌 사랑했던 이와 닮았기 때문이다. 장은 그녀에게서 성을 사려는 대신 추억을 사려 하지만, 그녀는 장을 미친놈 취급할 뿐이다. 


영화는 미래에서 현재, 현재에서 과거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장둥링의 한때로, 결혼해 아이까지 있는 20대 형사 장둥링과 고아로 커서 아무것도 없이 좀도둑으로 커가고 있는 10대 소년 장둥링의 이야기이다. 미래, 중년의 장둥링이 왜 극단적인 일을 벌이게 되었는지 그 근원을 알게 된다. 슬픈 이야기와 슬픈 근원이다. 


복수를 감행한 한 남자의 근원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행복도시>는 극단적인 복수를 감행한 한 남자의 근원을 들여다보는 이야기이다. 현재에서 시작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게 아니라, 미래에서 시작해 현재를 거쳐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기법을 택했다. 이미 실험적인 색채가 살짝 엿보인다. 그것도 모자라 감독은 세 가지 이야기에 다른 색채와 분위기와 장르를 입혔다. 이쯤 되면 매우 실험적이라 할 만하다. 


덕분에 우린 <행복도시>라는 하나의 영화에서 완연히 다른 세 가지 이야기를 볼 수 있다. 이 독립적으로 봐도 이상할 것 없는 세 이야기를 이어주는 얇은 듯 굵은 끈은 장둥링으로, 따로 또 같이 생각하고 받아들여도 무방하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볼 때 가장 눈에 띄는 게 전체적인 분위기와 색감이지만 이 영화를 만들 때 가장 공을 들였다고 생각되는 건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이었을 것이다. 


우린 이 영화 내내 장둥링을 만나고, 장둥링을 만나며, 장둥링을 만난다. 한 개인에게 천착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장둥링이라는 한 개인은 환경에 휘둘리는 가엾은 존재일 뿐이다. 이렇게 휩쓸리고 저렇게 휩쓸리는 우연의 길을 지나, 결국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되는 필연 말이다. 운명 앞에서 한낱 개인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다. 


꾸역꾸역 살아오게 한 순간의 기억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는 영화 포스터 중 하나가 눈에 띈다. 지난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라라랜드>를 꺾고(?) 작품상을 타는 파란을 일으켰던 <문라이트>가 생각나게 하기 때문인데, 장둥링의 세 시절 얼굴을 삼단으로 나눠 배치했다. 제목처럼 달빛을 형상화시킨 듯 아름다운 <문라이트> 포스터와 대비되어, <행복도시> 포스터는 제목과는 달리 행복과는 거리가 먼 장둥링의 인생을 형상화시킨 듯하다. 


장둥링 인생을 규정짓다시피 한 세 시절이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을지 모르지만, 그때그때 만난 세 여자(딸, 여자친구, 엄마)와 보낸 찰나의 순간은 행복했을 것이다. 비록 그들과 장둥링의 관계가 일반적이고 정상적이고 보편적이진 않고 그 관계에 슬프고 아픈 근원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장둥링은 순간의 기억으로 꾸역꾸역 살아왔던 게 아닐까. 


우리라고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순간의 행복하고 슬프고 아픈 기억이 시간이 지나면 뿌옇게 채색되어 아련해진다.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건 과거를 살아가는 게 아닌가. 현재에서도 과거를, 미래에서도 과거를 살아가는 것이다. 행복한 '기억'일지는 모르나 '행복'한 기억일 수는 없다. 꾸역꾸역 살아왔을지는 모르지만 꾸역꾸역 살아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처연하고 신산한 여운


영화를 보면, 장둥링 삶이 불행해지는 과정과 모습 그리고 사회 자체가 불행해지는 것 같은 모습이 양면적으로 공감을 산다. 개인의 삶이 하나의 모습만 띄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장둥링의 면면에서 새삼 깨달을 수 있다. '나'라는 존재는 하나이지만, 나를 이루고 나와 함께 하는 시공간과 차원은 하나가 아니지 않은가. 


사회는 기술적으로 진보하기에 더 '좋은' 세상으로 나아갈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이 영화에서 여지없이 무너진다. 미래의 장둥링은 분명 첨단기술 세상에 살고 있지만, 과거와 현재의 장둥링과는 비교할 바 없이 불행해 보인다. 영국 드라마 <블랙미러>를 보며 우리는 기술 진보가 더 좋은 세상을 담보하기는커녕 더 나쁜 세상으로 가는 지름길일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기도 하지 않는가. 


처연하고 신산하기까지 한 영화 <행복도시>, 미래에서 시작해 현재를 거슬러 과거까지 올라가면 가슴 한 편이 저릿저릿하다. 영화의 막이 오르고 나서도 한참 동안 여운에 시달린다. 대다수 여운을 구성하는 아련과는 거리가 먼, 느껴보기 힘든 '맛'이다. 더불어 초반의 불칠전함은 꽤 거부감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감당할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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