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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문학적 철학적 신화적 질문들을 던지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SF <나의 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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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나의 마더>


영화 <나의 마더> 포스터. ⓒ넷플릭스



인류가 완전히 멸망한 다음 날, 인류 재건 시설에서 인간 여자아이 한 명이 태어난다. 시설에는 63,000개의 인간 배아가 있는데, 로봇 하나가 모든 걸 관리한다. 태어난 인간 아이의 양육도 그의 몫, 로봇은 '엄마'가 되고 인간 여자아이는 '딸'이 된다. 시간이 지나 인류가 완전히 멸망하고 13867일이 지났다. 그런데 딸은 10대 중반에 불과한 듯하다. 수십 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엄마와 딸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화로운 나날을 보낸다. 무엇보다 딸은 엄마의 다방면에 걸친 완벽한 교육으로 모르는 게 없고 못하는 게 없다. 나아가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윤리적인 문제까지 낱낱이 짚고 넘어간다. 이보다 완벽한 인간이 있을 수 없을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딸은 바깥 세상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다. 모든 게 옳다는 엄마의 '바깥 세상은 위험하다'는 말만 있을 뿐이다. 


호기심 발동이 의심과 맞물려 바깥 세상으로 나가려는 찰나 굳게 닫힌 바깥 문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로봇 총에 맞아 생명이 위급하니 시설 내로 들여달라는 부탁이었다. 바깥 세상은 위험하고 또 인간은 없다는 엄마를 향한 의심이 현실로 발현되는 순간이다. 돌이킬 수가 없다. 딸은 엄마 몰래 외부인을 시설 내부로 들인다. 외부인은 로봇인 엄마를 경계하며 인간인 딸과 함께 밖으로 나가고자 한다. 엄마는 위험한 밖으로의 길을 당연히 반대한다. 딸은 엄마와 외부인의 상반된 주장에 갈팡질팡한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어떤 생각과 행동을 취해야 하는가. 


종말 이후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나의 마더>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즉, 인류와 문명 멸망 이후를 그렸다. 종말 이후라고 해두자. 으레 생각하기 쉬운 모습은, 더 이상 발달할 수 없을 만큼 발달한 세상과 정반대의 황폐하기 그지없는 세상일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황폐와 거리가 먼데, 종말 이후 완벽히 보호되는 재건 시설이 주된 배경이기 때문이다. 


하여, 영화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날것' 대신 종말 이후 하고도 머나먼 미래의 새로운 첨단 '최신식'이 주를 이룬다. 종말로 세상이 후퇴한 게 아니라 전진했다는 느낌을 주는데, 주체가 인간이 아닌 로봇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영화를 SF 장르라고 생각하는 건 당연할 테다. 반면, 가령 <매드맥스> 시리즈도 종말 이후를 다루지만 SF 장르라고 하긴 힘들다. 


나아가, 영화는 문학적 철학적 신화적 질문을 던진다. 인류를 재건하고 인간 딸을 기르며 시설 안과 밖을 철저히 차단하는 로봇 엄마, 엄마에 의해 철저하게 완벽한 인간으로 교육받지만 다 클 때까지 시설 밖으로 나갈 생각도 행동도 못 하는 인간 딸,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시설 내부로 찾아온 여러모로 미심쩍은 인간 외부인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A부터 Z까지 모든 게 철저히 상징성을 띤다. 


반전에의 복선들


영화는 SF 장르와 미스터리 스릴러의 교묘한 합으로 진행된다. 한정되고 비밀이 많은 공간, 두 명의 인간과 한 개의 로봇, 진실을 두고 얽히고설킨 세 개체. 잔혹한 육체파 스릴러도 치밀하게 직조된 심리 미스터리도 아닌,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와중에 곳곳에 암초처럼 흔적을 남긴 반전에의 복선들이 재미 요소가 되겠다. 


요컨대, 인류 멸망 1일차에 인간 여자아이 한 명이 태어나는데 13867일 차에 불과 10대로 보이는 여자아이만 있을 뿐이다. 단순 계산으로도 39살 정도는 되어야 한다. 의문이 드는 와중에, 바깥 세상에는 모든 인간이 멸망했다고 하는데 충분히 39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 외부인이 나타난다. 가장 큰 반전의 복선이 사실상 영화 초반에 드러나는 것인데, 영화를 감상하는 데 하등 방해가 되진 않는다. 


여자 외부인이 나타났을 때 우린 그녀의 정체가 아닌 딸의 안위에 시선이 가 있기 때문이다. 미스터리에서 스릴러로 장르가 교묘히 변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똑똑하기 그지없는 딸은 진실이 무엇인지 알게 될까? 그녀는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깨닫게 될까? '로봇' 엄마와 '엄마' 로봇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문학적, 철학적, 신화적 질문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유명한 어구가 등장한다. "새는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누가 봐도 명백히 새는 데미안과 다름 아니고 데미안은 영화 속 딸과 다름 아니다. 그녀는 비록 로봇의 손에 키워졌지만 인간에의 본능으로 알을 깨고 나오고자 하는 것이다. 


자연스레 이어지는 스토리는 '오디세우스'이다. 10년 간의 트로이 전쟁을 종식시키고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오디세우스, 다시 10년 동안의 파란만장한 모험을 겪은 끝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영화에서는, 인간의 파렴치한 욕망을 보다못한 로봇이 인류를 멸망시켜버리고 완전한 신 인류를 재창조해 자기 입맛대로 키운다. 하지만 인간의 본능은 어찌하지 못하기에, 인간 딸은 알을 깨고 나오지만 다시 돌아온다. 이 '돌아오는 이야기'는 딸뿐만 아니라 외부인에게도 해당되는 것일 테다. 


간악한 반전 스포일러가 될 테지만 아니 이미 위에서 내보였지만, 극장용 아닌 누구나 한 달 무료인 넷플릭스용이라는 점을 감안해 말하고자 한다. 결국 승리자는 로봇 엄마가 된다. 인간의 본능 뒤 본능까지 '사려깊게' 캐치하여 빅 픽쳐를 그린 로봇, 딸로 하여금 모든 진실을 알게 해놓고선 돌아올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녀는 그곳에서 모든 간악한 진실을 알고선 더욱더 바깥을 나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채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비록 로봇의 통제를 더 이상 직접적으로 받지 않겠지만, 개인으로서가 아닌 인류 전체가 밖으로부터 로봇의 통제를 받게 될 것이다. 


평평한 스토리라인임에 분명하지만, 그래서 자못 지루함을 견디기 힘들지도 모르지만, 그렇기에 반드시 한 번 이상 보게 되는 여운과 궁금증을 남긴다. 열린 결말이라고 하긴 힘들겠으나 결말까지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기에 한 번 더 봐야 하고, 그 해석에의 길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기에 한 번 더 봐야 하며, 쉽진 않겠지만 재미가 없진 않을 게 분명하기에 한 번 더 봐야 한다. 


재미 없으면 그 자리에서 다장 떼려치워버리기도 하지만, 재미 있으면 몇 번이고 돌려볼 수 있는 넷플릭스 콘텐츠에 제격인 듯하다. 한편 <카타카> <엑스 마키나> <컨택트> 등 '생각하는 SF'와 결을 같이 하니 따로 챙겨두어 두고두고 볼 만하다. 필자의 해석보다 훨씬 더 새롭고 다채롭고 들어맞는 해석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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