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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환상적인 오락 세계, '나쁜'놈과 '틀린'놈 <주먹왕 랄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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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주먹왕 랄프>


<주먹왕 랄프> 포스터.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지금은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이하 "디즈니 애니")의 만듦새와 평가, 인기와 흥행이 남부럽지 않은 수준이지만 10년 전만 해도 전혀 그렇지 못했다. 과거 2~3번의 침체기를 겪었던 디즈니 애니는 10년 전 <볼트>부터 다시금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 시기, 2006년에 월트 디즈니와 한 가족이 된 픽사의 애니메이션들은 승승장구 <월-E> <업> <토이 스토리 3>으로 이어지는 흥행과 비평 최고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2012년 디즈니 애니는 굉장히 '픽사'스러운 <주먹왕 랄프>를 내보이면 같은 해에 픽사가 내보인 굉장히 '디즈니'스러운 <메리다와 마법의 숲>와 비교당한다. 결과는 흥행에선 <메리다와 마법의 숲>의 소소한 승, 비평에선 <주먹왕 랄프>의 앞승. 


이후 디즈니 애니는 <겨울왕국> <빅 히어로> <주토피아> <모아나>로 이어지는 최전성기를 보낸다. 물론 픽사는 이전과 비교해 부침이 있었지만 <인사이드 아웃> <코코>와 같은 명작을 내놓았다. 


착한놈이 되고 싶은, 나쁜놈 주먹왕 랄프


나쁜놈 역할을 30년째 하고 있는 주먹왕 랄프는 착한놈이 되고 싶다. <주먹왕 랄프>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1980년대 초부터 30년간 자리를 지켜온 오락실 게임 '다 고쳐 펠릭스', 주먹왕 랄프는 이 게임에서 나쁜놈을 담당하며 펜트하우스 빌딩을 부수는 역할이다. 그런가 하니 그는 빌딩을 부수고 펠릭스가 고치고 나면, 그는 옥상에서 지상으로 추락하고 펠릭스는 메달을 받는다. 


오락실 불이 꺼지고 게임 캐릭터들이 퇴근할 때 랄프는 누구에게도 인사를 받지 못하고 홀로 쓸쓸히 빌딩 옆 쓰레기장으로 간다. 그의 집 말이다. 그는 더 이상 나쁜놈으로 살기 싫다. 착한놈이고 싶다. 그것이 행복이라고 믿는다. 


'다 고쳐 펠릭스' 30주년 기념파티에 다른 게임 캐릭터들도 초대를 받았지만 랄프는 초대를 받지 못한다. 함께 축하하고 축하받고 싶은 랄프는, 그러나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곤 옥씬각씬 끝에 파티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곤 어떻게든 메달을 따와서 진정한 일원으로 빌딩에서 함께 생활할 것을 천명하며 나온다. 


처음으로 당도한 게임 '히어로즈 듀티'에서 손쉽게 메달을 얻지만 실수로 사이버그를 깨워 함께 다른 게임으로 가버린다. 이후로도 랄프의 메달 얻기는 쉽지 않다. 한편, 랄프가 없으니 존망 위기에 처하게 된 '다 고쳐 펠릭스'의 펠릭스와 모든 걸 먹어치우고 복사해버리는 바이러스 사이버그를 찾아 박멸하고자 나선 '히어로즈 듀티'의 칼훈 병장가 함께 랄프를 뒤쫓는다. 


오락실을 불러온, 신선한 아이디어 상품


이 영화는, 오락실을 환상적으로 불러온 신선한 아이디어 상품이다. <주먹왕 랄프>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주먹왕 랄프>는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깊게 박혔다고 하기엔 조금 부족한 흥행과 비평 성적을 냈지만, 디즈니 애니 최초로 속편을 내놓았을 만큼 내외적으로 자타공인 인정하고 인정 받은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영화는 오락실 문이 닫히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는, <토이 스토리> <박물관은 살아 있다> 등을 잇는 신선한 아이디어 상품이다. 더불어 외양은 오락을 소재로 한 아동용인 것 같지만, 지금의 어른들만이 알 수 있는 오락들과 캐릭터들이 나오기에 어른용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앞서 '픽사스러운' 디즈니 애니라고 했던 만큼 영화는 어른에게도 생각할 거리와 확실한 의미를 던진다. 다름과 틀림에 대해서, '나쁜'놈에 대해서, 연대에 대해서, 자아에 대해서. 이후 나온 디즈니 애니들은 다름 아닌 이 영화의 후예들이라 하겠다. 


그리고 의미들이 하나 같이 주요 캐릭터와 긴밀히 이어지기에 전체적 전개와 그 짜임새에 있어서도 군더더기가 없다. 장면 장면을 보며 '그렇지, 그렇구나.'하고 생각하며 멈추는 게 아니라, 장면 장면 자연스럽게 넘어가며 스며들듯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나쁜 게 아니고, 틀린 게 아니다


랄프는 나쁜 게 아니고, 바넬로피는 틀린 게 아니다. <주먹왕 랄프>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랄프는 나쁜놈이지만 나쁜놈 역할을 할 뿐 나쁜 건 아니다. 본인만 모를 뿐, 일명 '나쁜놈 모임'에서 '스트리트 파이터'의 대표적 나쁜놈 장기예프가 이미 영화 초반 깨달음을 준 바 있다. 그건 랄프뿐만 아니라 '다 고쳐 펠릭스'를 포함 모든 오락들이 마찬가지,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면 되는 것이다. 


랄프의 나쁜놈과 더불어, 랄프가 가게 된 다른 게임 '슈가 러시'의 바넬로피도 중요한 의미를 선사한다. 그녀는 레이싱에 참여하고 싶지만 '오류'에 걸려 참여하면 안 되는 상태이다. 물론 거기에는 '슈가 러시'의 존폐가 걸려 있지만, 바넬로피로선 자신이 다른 것인지 틀린 것인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럽고 알고 싶어 몸부림칠 뿐이다. 


랄프와 바넬로피는 적대감에서 시작, 비주류의 동질감으로 발전, 연대로의 길을 간다. 그들은 따로 또 같이 진정한 자아를 찾고, 진정한 역할에 의미를 부여하고, 나와 서로와 우리와 모두의 행복을 바라는 쪽으로 성장한다. 


소소한 유머와 잔 재미와 오래된 추억으로 무장한 채, 여러 현시류적인 의미와 생각거리들로 이목을 끌고는, 너무나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와 환상적인 오락 속 세계로 환호를 불러일으키는, <주먹왕 랄프>는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애니메이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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