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행오버>
영화 <행오버> 포스터. ⓒ워너브라더스
결혼식 이틀 전, 더그는 친구 세 명과 함께 라스베이거스로 총각파티를 떠난다. 아내와 아이가 있는 가장에 학교 선생이지만 잘생기고 훤칠한 것도 모자라 바람둥이 끼가 다분한 듯한 필(브래들리 쿠퍼 분), 바람 핀 여자친구에 꽉 잡혀 동거 중인 겉으로는 무난한 치과의사 스투(에드 헬름스 분), 그리고 더그의 사돈이자 친구인데 어딘가 나사 하나가 빠진 듯한 느낌의 앨런(자흐 갈리피아나키스 분)이 그들이다.
사치와 향락의 도시 라스베이거스에서 술 마시고 도박하고 얘기하며 신나게 놀고자 했던 그들, 하지만 결혼식 하루 전날 아침 호텔 숙소에서 깨어보니 난리도 아니다.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데, 화장실엔 호랑이가 있고 방에선 아기가 울고 있으며 더그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스투의 이빨 하나가 빠져 있는 건 난리 축에도 못 낀다.
바로 내일이 더그의 결혼식이니 어떻게든 더그를 찾아야 한다. 그런데 기억이 나야 말이지... 그들은 그냥 두어야 하는 호랑이를 뒤로 하고 그냥 둘 수 없는 아기와 함께 실날 같은 단서들을 하나하나 되짚으며 더그를 찾기 위해 지난 밤의 행적을 추적해나간다. 그러곤 이보다 더 할 수 없는 충격적이고 엽기적인 흔적들을 맞대면 한다. 단순히 술에 취해서라면 말도 안 되는 정도의 '기억 상실'을 겪는 그들인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그들은 더그를 찾을 수 있을까? 더그를 찾아서 내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있을 결혼식에 데려갈 수 있을까?
엽기 막장 코미디의 새로운 역사
엽기 막장 코미디 최고의 수익을 올렸다. 영화 <행오버>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
영화 <행오버>는 2009년 북미 여름 시즌 직전 개봉하여 소위 '대박'을 터뜨리며 역대 R등급 코미디 최고의 수익을 기록한 작품이다. 짧고 굵은 이 작품은 2년마다 한 편씩 2편과 3편까지 주연배우 그대로 나와 적어도 수익으로는 R등급 코미디의 역사를 새로 썼다.
그러나 이 영화는 국내에 개봉되지 않았다. 영화 수입자들이 미국에서 보아도 정녕 더럽고 엽기적인 행각을 국내 정서상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리라. 하지만 정작 <행오버 2>는 개봉하고 다시 <행오버 3>는 개봉하지 않는 '엽기적인' 행각을 벌였다. 아마도 국내에 개봉되지 않은 영화 중 <행오버>만큼 유명한 영화도 없을 테다.
수익도 수익이지만, 영화에 나왔던 주조연 할 것 없이 거의 모두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활발히 활약 중인 점이 흥미롭다. 한석규, 최민식, 송강호라는, 돌아보니 꿈의 캐스팅이었던 한국 영화 <넘버 3> 느낌과는 다르지만, 브래들리 쿠퍼가 이 영화로 말미암아 잘생기고 연기도 잘하는 할리우드 스타로 자리매김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정작 이 영화는 단지 다시 없을 엽기 막장 코미디라는 이유로 과소평가 받고 있는 것 같다. 들여다보면 이만큼 출중하게 사건과 인물과 전개 3박자가 짜임새 있게 맞춰져, 라스베이거스라는 사치와 향락의 도시 그리고 결혼식 전 총각파티를 비판하기도 힘들다. 물론 본격적으로 돈맛을 보고 엽기 막장에만 초점을 맞춘 2편, 3편에는 해당하지 않는 얘기지만 말이다.
훌륭한 캐릭터들의 훌륭한 사건 전개
외형은 지극히 코미디이지만, 훌륭한 캐릭터와 각본과 사건 전개를 자랑한다. 영화 <행오버>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
영화는 사막으로 보이는 곳에서 필이 더그의 예비신부에게 더그가 없어졌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궁금증을 유발시키며 이후 일어날 일들을 내보임에 있어 자신감을 한껏 올린 시작이다. 더그를 찾을 건 분명하지만, '어떻게' 찾을지 바로 그 지점이 기대되는 것이다.
총각파티를 가기까지 영화는 사건이나 전개를 위한 캐릭터 설명에 힘쓴다. 어느 모로 봐도 가장 멀쩡한 이는 결혼식 주인공인 더그, 나머지 셋은 위에서 주지했던 것처럼 좋게 말하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저 그런 친구들이다. 뻔한 스테레오 타입이지만, 이후 사건과 전개를 위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수단적 캐릭터들이다. 즉, 부담 없이 녹아들기 쉬운 인물들이다.
사실 사건이 별 게 아닐 수 있다. 이 동네에선 지구, 우주, 가상세계가 위험에 빠졌고, 저 동네에선 사람들 목숨 따윈 아무렇지도 않게 취급하지 않는가. <행오버>에서는 그저 결혼식 하루 전에 당사자가 사라졌을 뿐이다. 다만, 왜 어떻게 사라졌는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뿐.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전개'에 있다. 사건의 전개와 캐릭터의 향연. 그리고 그 전개라는 게 전개라 할 수 없는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후개, 즉 추리에 가까워 은근슬쩍 재미가 있다. 마약을 탔을 게 예상되는 만술 때문에 숙취를 앓고 있는 세 친구가 하는 추리. 눈살을 찌푸리며 욕도 함께 나가지만 그보다 더한 박장대소가 수시로 터진다. 이미 영화는 할 일을 다한 것이다.
라스베이거스 총각파티
이 영화의 엽기와 막장은 라스베이거스 총각파티를 직접 겨냥한 것이다. 영화 <행오버>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
왜 이렇게 엽기적일까, 엽기적이어야만 하는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욕을 내뱉게 할 정도로 말이다. 단순히 생각 없이 웃게 하려고 했다면 다른 방법도 많을 텐데, 왜 하필 라스베이거스에서의 총각파티를 소재로 했을까. 반대로 생각해보면 라스베이거스에서의 총각파티여야만 하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크리스마스보다 크리스마스 이브를 더 기대하고 때론 더 챙기는 것처럼, 누군가는 결혼식보다 결혼식 전야 총각파티(또는 처녀파티-브라이덜 샤워)를 더 기대하고 더 챙길 것이다. 영미권의 필수 주요 행사 중 하나인 총각파티는 애초의 생각이 어쨌든 '난잡한' 성격을 띈 '난잡한' 파티가 될 수밖에 없다. 미국에선 반드시라고 할 만큼 라스베이거스에서 행해지는데, 그곳은 술은 물론 도박, 마약, 스트리퍼가 항시적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이보다 더 할 수 없는 엽기와 막장은, 곧 라스베이거스에서의 총각파티를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과 다름 아니다. 작중 스투의 여자친구 말을 빌리자면, 추악하고 더러운 곳이자 행위인 것이다. 그런 곳과 행위가 만나 시너지를 일으키는 걸 당연히 받아들이는 문화는, 그저 결혼 전 마지막이라는 의미와 한때의 일탈이라는 이유로 무마될 수는 없다고 본다.
감히 말하자면, '총각파티'라는 이름부터 바꾸고 '난잡함'이 기본 장착된 행각도 바꿔야 하지 않을까. 그게 아니라면, 그게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인식이라도 바꿔야 한다. 결혼 직후의 피로연처럼 결혼 직전의 전야제도 필요한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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