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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다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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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pixbay



저는 책을 읽습니다. 매일매일 읽으려고 하고 일주일에 한 권 이상은 읽으려고 합니다. 주로 이동 시간에, 그러니까 출퇴근 시간에 읽습니다. 수원과 서울을 오가서 시간이 많죠. 집에서, 카페에서, 도서관에서, 독서실에서 각 잡고 읽으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아니, 언젠가부터 그렇게 하기 힘들어졌습니다. 그렇게 짬이 나는 대로, 되는 대로 책을 읽고 있습니다. 


저는 책을 만듭니다. 작은 출판사의 편집장으로 있으면서 단행본 파트를 도맡아 매일매일 만드는 작업을 하고 매달 평균 2권 이상을 만듭니다. 기획과 편집은 물론 디자인과 홍보까지 관여하고 있어 정신이 없는 편이니 만큼, 내가 책을 제대로 만들고 있는지 항상 불안합니다. 그러다 보니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편집자의 일, 교정교열에 상대적으로 많은 공력을 들이기 힘들어 스스로 글을 만진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글을 씁니다. 책을 읽는 것 이상으로 영화를 보는데, 읽은 책과 본 영화 그리고 만든 책에 대한 리뷰를 써서 블로그에 올리고 '오마이뉴스'에 투고합니다. 오마이뉴스에 투고한 지는 6년이 지났으니, 나름 제대로 책을 읽고 영화를 본 게 6년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책을 지금처럼 읽기 시작한 건 중학교 3학년 때이고 영화를 지금처럼 보기 시작한 건 대학교 1학년 때인 것 같습니다. 출판사에서 일한 지는 7년이 되었고요. 


글 쓰는 사람이라고 말하기 힘든 이유


나름 글이라는 걸 많이 써왔습니다. 정확히 말하는 리뷰를 말이지요. 800편 넘게 썼는데, 1편 당 평균 A4 1.5장 정도이니 총 A4 1200장 이상 될 것입니다. 원고지로는 A4 1장 당 10매 정도이니 총 원고지 12000매 이상이 되는 것이죠. 단편소설이 A4 10매 내외, 장편소설이 A4 80매 내외일 터이니 단순하게 양으로만 따지면 단편소설 120편 분량, 장편소설 15편 분량입니다. 양으로 따지면 이런 소설가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럼에도 저는 스스로를 글 쓰는 사람이라고 말하기 힘들어 합니다. 꺼려하기도 합니다. 절대적 양에 비해 여전히 자신이 없습니다. 글에 등급을 매긴다고 했을 때 저는 리뷰를 가장 아래라고 매기기 때문입니다. 거기엔 '창작'이 없고, 대신 소소한 생각과 정보만이 두서 없이 흐르고 후과 없는 비난이 막무가내로 나갈 수 있습니다. 


창작은 나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고 합니다. 반면 리뷰는 창작된 누군가의 이야기에서 시작합니다. 그렇게 오래 고착되어진 글쓰기는 나에게로 오기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아니, 영원히 나에게 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나의 이야기를 하는 건 어쩐지 부끄럽고 반드시라고 해도 될 만큼 두렵습니다. 


글을 쓴다고 하는 사람이라면,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창작에의 욕심과 욕망이 있을 것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은 건 두 말 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요. 그래서 요즘엔 리뷰도 아닌 것이 창작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나의 이야기도 아닌 것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해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다행이도 재밌습니다.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앞으로 무엇을 하며 먹고 살게 될지 모르지만, 본연은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누군가는 말도 안 된다고, 웃기지 말라고, 그건 쓰는 사람일 수 없다고도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저는 쓰는 게 어렵지 않습니다. 평소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그저 옮기면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걸 말로 옮기지만 저는 말로 옮기는 게 어렵습니다. 대신 글로 옮길 뿐입니다. 생각해보면 글보다 말이 더 어렵고 또 두렵지 않을까요.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지만, 글은 고치고 지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말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고 어려움도 없고 두려움도 없어 보입니다. 


반면 쓰는 것에는 정반대의 입장에 처합니다. 고치고 지우고를 수십 수백 번 해도 시원찮은가 봅니다. 그 기저에는 말보다 글을 훨씬 더 우위로 생각하는 풍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말도 글처럼 남길 수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반면 글은 남기는 걸 기본 전제로 하며 영원히 눈에 보인 채로 존재할 수 있죠. 


그런 면에서 저는 쓰는 것에 두려움이 없는 편입니다. 말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의 상대적 반목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쓰는 것에 대한 재미 때문입니다. 점점 쓰는 게 재밌습니다. 나의 생각을 전달하는 창구로 이보다 좋은 게 없는 것 같습니다. 글을 숭배할 생각은 없습니다. 앞으로도 글은 그저 창구로서 존재할 것입니다. 


그저 쓰고자 합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낡은 문구가 있습니다. 비록 오래되고 낡은 문구이지만, 이 문구가 진실하다면 창작을 하기 위해선 남의 글을 많이 봐야 한다는 것이겠죠. 책을 읽고 만들고 또한 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콘텐츠가 된 영화를 보면 이젠 나만의 글을 써야 하지 않을까요.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평론가로 이름 높은 김형수 작가는 '작가수업' 시리즈로 글쓰는 순서(?)를 소개합니다. 우선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를 통해 글을 쓰게 되는 순간을 보여줍니다. 저는 선생의 말씀을 계속 쓰다 보면, 계속 쓰려고 하다 보면 언젠가 창작의 순간이 온다는 걸로 알아들었습니다. 


이어 선생은 <삶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를 통해 보다 구체적인 글쓰기를 내보입니다. 온몸으로 밀고 들어가 글쓰기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으면 이제는 본격적인 글쓰기라는 것입니다. 이후에는 글쓰기를 하는 작가에 천착할 듯합니다. 저는 아직 삶이 예술이 되는 순간을 만끽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을 열망하고 있고 꾸준히 무언가를 쓰다 보면 그 순간이 올 거라고 믿습니다. 


뭐니뭐니 해도 저는 그저 쓰고자 합니다. 위에서 글에 급이 있다고 했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지요. 쓰는 사람은 그저 계속 쓸 뿐이지요. 인류사에 길이 남을 대작을 남긴 작가도 써야 하고, 누구 하나 읽지 않는 소품도 남기지 못한 작가도 써야 합니다. 저는 우선 그 깨달음부터 확고히 하고자 합니다. 혹시 이 깨달음이야말로 모든 쓰는 사람의 본류이자 궁극적으로 다다르고자 하는 진리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