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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다

우리가 '리커버'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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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리커버 표지 ⓒ열린책들



지난 9월, 온라인 서점 알라딘 베스트셀러 1위에 뜬금없이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 꽤 오랫동안 이름을 올렸다. 오래지 않아 '품절'이 뜨더니 곧 '예약판매'로 바뀐 적도 있다. 아마도 열린책들 출판사에서 이 '사태'를 생각하지 못했던 듯하다. 충분한 물량를 준비하지 못한 또는 않은 상황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것. 


그렇게 된 연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자그마치 국내 굴지의 출판사 중 하나인 열린책들이 창립되던 해인 1986년 초판이 나온 후 30년 넘게 굴지의 소설로 널리 읽혀왔던 <장미의 이름>을 리커버 특별판으로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제까지 수없이 만들어진 리커버들과 차원을 달리하는 '서양 고서(古書)' 느낌의 리커버. 


그야말로 움베르토 에코 팬과 <장미의 이름> 팬의 구미는 물론 왠만한 애서가 및 장서가의 구미를 당겨 수많은 독자들로 하여금 '소장용'으로 도무지 구매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상황에 처하게 만든 것이다. 


이 리커버 특별판의 폭발적인 판매 덕분에 지난 2016년 열린책들 30주년에 맞춰 나왔던 '대표 작가 12인 세트' 중 <장미의 이름>이 품절되어버렸다. 같은 책이지만 리커버 특별판은 25000원인 반면, 이 책은 10000원이다. 전자가 너무 비싸다가 생각해, 같은 책을 찾다가 후자를 고른 것이리라. 나도 그러한 이유로 두 책 중에서 고민하다가 후자를 사려 했는데 품절이 되어버렸고, 전자는 사지 않기로 했다. 


출판계의 오래된 수순, 재출간 내지 개정판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표지 ⓒ마음산책



리커버가 대세이자 유행으로 자리잡기 전 출판계에는 오래된 수순이 있다. 교재나 성경은 주기적으로 행하고 일반 단행본 책은 계약 기간이 종료되어 절판된 경우 행하는 재출간 내지 개정판 출간이다. 이럴 때 표지를 새롭게 입히는 리커버는 기본이고 내용까지 책의 모든 걸 손 본다. 어떤 경우 다른 책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아쉽게 빛을 보지 못했지만 언제든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책이나 동서양의 유명한 고서들을 주로 다룬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을 그린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창비)나, 80년대 북한 소설 <벗> <60년 후>(아시아)처럼 출간 당시 시대적 상황으로 '지하 베스트셀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책을 재출간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아는 인기 곡들이 리메이크인 경우가 많은 것처럼, 우리가 아닌 베스트셀러들이 재출간 또는 개정판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지난 2005년 마음산책에서 복간한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은 출판사 서평 즉 보도자료를 통해 비교적 상세히 복간 경위를 설명한다. 일전에 1996년 까치에서 출간되었는데 좋은 작품성에도 불구 아쉽게 절판되었고, 이후 꾸준한 입소문 끝에 출판사의 의지를 더해 복간할 수 있었다고. 


지난 2015년에는 재일작가 김석범의 <화산도>가 완역판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최대 문제작 중에 하나라고 할 만한 이 대하소설은 1980년대 전반부를 우리말로 옮기기도 했으나 당연히 제대로 된 게 아니었다. 이 소설의 30여 년만의 완역본 출간은 마치 우리나라에서 외국으로 빼돌렸던 문화재를 온전히 되찾은 것과 같다. 


노르웨이의 숲 사태


<노르웨이의 숲> 한정판 표지와 단행본 표지 ⓒ민음사



그렇다. 역사가 돌고 도는 것처럼 책은 돌고 돈다. 좋은 책은 언젠가 누군가에 의해 다시 살아나게 되는 법이다. 그런데 요즘의 재출간, 특히 개정판의 경우 그 느낌이 달라졌다. 지난 2016년과 2017년에 있었던 일명 '노르웨이의 숲 사태'를 예로 들어보자.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작 <노르웨이의 숲>은 1987년 국내에 처음 소개된 후 오랫동안 문학사상사 판본의 <상실의 시대>가 대표적이었는데 2013년 민음사가 판권을 사들여 '세계문학전집'의 일환으로 출간했다. 여기까지는 괜찮은데, 2016년 말에 국내 소개 30주년이라하여 리미티드 에디션을 내놓는다. 리미티드 에디션이라고 하기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을 들으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문제는 이듬해 여름에 내놓은 그 의도를 알 수 없는 <노르웨이의 숲> 단행본 출간. 세계문학전집 판본에 이어 리미티드 에디션을 내놓은 것도 모자라 일반 단행본으로 또다시 출간한 것이다. 그런데 생김새가 리미티드 에디션에서 얇은 비닐 커버만 벗기고 판형과 사양을 약간 수정한 정도. 아이러니하게도 리미티드 에디션보다 더 괜찮다는 평이 많았다. 그야말로 '상술'의 결정판, 엄청난 욕을 먹었다. 


아마도 2016년 내놓은 한정판이 다 팔리고 절판시킬 수밖에 없어 아까웠나 보다. 하지만 그런 '짓'은 독자들을 우롱하는 처사가 아닌가. 출판사 입장에서는 욕을 먹더라도 살 사람은 사고 손해는 절대 보지 않는다는 판단이 확실히 섰을 테다. 그런데 그때를 전후해 출판계 전체가 그런 류의 초단순한 '리커버'에 열을 올리게 되었다. 확실히 '장사'가 된다는 판단이 섰다!


출판계 대세, 리커버


<고양이> 표지들(순서대로 교보문고, 인터파크, Yes24, 알라딘) ⓒ열린책들



'리커버 특별판', 지금은 모든 온라인 서점에서 '단독유일판'과 '한정판'이라는 이름으로 가장 앞세워 홍보하는 수단 중 하나이지만 역사가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 불과 2년여가 조금 넘은 정도. 2016년 전반기에 교보문고에서 처음 시작되었다고 한다. 물론 그 이전에도 다양하게 스페셜 에디션이 출간되어 왔지만 이렇게 '리커버'라는 이름을 달고 표지만 바꿔 내는 경우는 단언컨대 없었을 것이다. 


리커버의 타겟은 단연 젊은독자층이다. 인스타그램 인기의 파격적인 수직 상승과 맞물렸을 것이다. 최소화된 텍스트를 앞세웠던 트위터를 지나, 텍스트와 포토의 적절한 조합을 앞세웠던 페이스북까지 지나, 텍스트를 최소화하고 포토를 전면적으로 앞세운 인스타그램의 시대가 도래했다. 아울러 보이는 것이 앞도적으로 중요한 유튜브도. 


출판계는 이에 발맞췄다. 대형 서점과 대형 출판사가 함께 오래된 베스트셀러를 표지만 바꿔 다시 내놓기 시작했다. 몇 년 전 영화계에서 크게 유행해 여전히 성행 중인 '재개봉'과 궤를 같이 하는 듯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결이 완연히 다른 것이다. 재개봉은 솔직히 영화계 전체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진 못했다. 절대적인 흥행 수치를 보아도 미미한 수순, 그저 여러 트렌드 중에 하나일 뿐이다. 


반면, 출판계의 리커버는 흥행 수치에서부터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시행된 첫 해인 2016년부터 이미 당해년도 출판 트렌드를 선도했다. 이후에는 리커버하는 방법이 훨씬 다양해졌다. 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중급 베스트셀러도 리커버 대열에 합류했고, 호프 자런의 <랩 걸>이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고양이>처럼 서점 한 곳이 아닌 주요 서점 모두에 각기 다른 리커버로 선보이는 경우도 있다. 


리커버, 굿즈의 일환?


'메트로북' 표지들 ⓒ민음사



그야말로 파상공세, 신간보다 리커버가 더 많이 눈에 띌 때도 있다. 책을 '읽기' 위해 책을 사는 게 아니라, 책을 '구경하기' 위해 책을 사게 되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굿즈'를 갖기 위해 책을 샀던 것에 비해선 나아진 건가? 하지만 내가 보기에 리커버는 굿즈의 연장선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출판계에서는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따라오는 게 수순이라는 식으로 말하지만, 이 정도면 과잉공급이 아닌가 싶다. 이제는 우리가 리커버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놓은 것이다. 최초의 호기심이 기대와 만족을 지나 사랑으로까지 왔다. 모르긴 몰라도 출판계는 걱정이 태산일 거다. 굿즈의 일환으로 리커버 이후 어떤 걸 내놓을 것인가. 


교보문고가 역시 앞서나가는 걸까. 그리고 역시 민음사일까. 이들은 함께 고전 명작에 교통카드 기능을 탑재한 '메트로북'을 출간했다. 앞표지에는 작가의 얼굴에 서울 지하철 노선도를 얹혔고, 뒷표지에는 교통카드가 내장되어 있다. 리커버를 능가하는 '굿즈 책'의 실현이다. 이뿐이랴? 민음사는 지난 7월 '워터프루프북'을 내놓은 바 있다. 여름철을 겨냥해, 물에 젖지 않고 건조 후에도 변형 없는 종이로 만든 방수 책이었다. 


리커버는 비단 리커버로만 바라볼 수 없다. 그렇게 바라보아서도 안 된다. 굿즈의 일환이자 연장선상의 개념으로 대해야 한다. 그럼에도 출판계 전체가 이를 이용하는 것도 모자라 휘둘리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한편으로 씁쓸하다. 우리가 리커버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된 이 상황이 말이다. '책 읽기'의 가장 좋은 방법으로서의 '책 사기'에 회의감이 든다. 출판계는 옳은 길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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