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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다

나만의, 혹은 우리 모두의 아이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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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2학년 때인 것 같다. 심신의 '오직 하나뿐인 그대'를 부르며 한껏 고무된 나를 발견한다. 이전의 소방차나 김완선의 기억은 별로 없다. 이후의 기억이 다시 생생하다. 서태지와 아이들부터 시작해 듀스, 룰라, 쿨, DJ DOC, R.ef... 1990년대 초중반은 그야말로 전설들의 춘추전국시대가 아닌가. 좋은 시절이었다. 


중학교 2학년의 기억으로 건너간다. 친구가 물어온다. "H.O.T.야 젝키야, S.E.S.야 핑클이야." 난 젝키와 핑클을 골랐던 것 같다. 공교롭게도 H.O.T.와 S.E.S.는 SM 소속, 젝키와 핑클은 대성 소속이었다. 난 잘 만들어지고 체계적인 느낌보단 보다 현실적이고 친근한 이미지를 그나마 좋아했나 보다. 


1997~8년 당시 중딩에게 가수는 이 네 그룹, BIG 4뿐이었다. 비록 신화나 베이비복스를 비롯해 지금은 전설 아이들이라고 할 만한 그룹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비할 바 아니었다. 하지만 천지를 진동시킬 것 같은 그들의 인기도 오래가진 못했다. 사람들은 실력 있는 아이돌을 원했고, 아이돌은 독립을 원했다. 


2000년이 시작되자 마치 짠 것처럼 BIG 4는 일제히 해체 및 활동 중단을 선언한다. 이후 몇 년 동안 아이돌 그룹은 자취를 감췄다. 대형 솔로 가수와 BIG 4 출신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때가 암흑기라면 암흑기일까, 조만간 시작될 새로운 아이돌 천하의 전주곡일까. 


보이그룹 아이돌의 기억




군대에 있을 때였다. 군대하면 걸그룹일 텐데, 내가 군대에 있을 때(2005~2007) 걸그룹은 전무했다. 대신 그 자리엔 동방신기가 있었다. 난 중2 때처럼 선택을 강요 받았다. 선임이 말했다. "난 최강창민할 건데, 넌 뭐할래." "전 유노윤호하겠습니다." 나는 걸그룹에 열광하는 대신 내가 보이그룹이 되었다.


노래와 춤은 물론, 표정도 따라했다. 당시 비가 <I'm coming>으로 2년 만에 정식 컴백을 해 그 어디에서보다 군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이 역시 군인들이 누군가에게 열광하는 입장이 아닌 스스로가 누군가가 되어 자신을 내보이는 주체화 현상의 일환이 아니었나 싶다. 


제대하고 나서 원더걸스, 소녀시대, 카라 등이 쏟아져 나왔다. 그럼에도 외롭고 힘든 군대 시절에 동방신기가 큰 힘(?)이 되어준 덕분인지, 난 여전히 걸그룹보다 보이그룹을 선호한다. 그래서 동방신기 이후엔 자연스레 빅뱅-슈퍼주니어-엑소-방탄소년단으로 이어지는 로얄 보이그룹 라인을 좋아하게 되었다. 사이사이 2PM, 샤이니, 비스트, 인피니트 등도 많이 보고 들었다. 


난 노래를 주로 유튜브로 듣는데, 지금도 내 좋아요 동영상엔 보이그룹 노래가 상당하다. 하다 못해 예전의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Missing you> <Sea of Love>를 비롯 동방신기의 <MIROTIC>, 빅뱅의 <FANTASTIC BABY>, 비스트의 <픽션>, 샤이니의 <Ring Ding Dong>, 엑소의 <중독>, 워너원의 <에너지틱>, 방탄소년단의 <FAKE LOVE> 등이 담겨 있다. 이밖에도 보이그룹이라 할 순 없지만 남성그룹이라 할 만한 김경호, M.C THE MAX, 플라워, 에픽하이 등은 최애 그룹이다. 


단순히 군대에 있을 때 동방신기가 큰 힘이 되어준 것만으로 이런 나의 보이그룹과 남성그룹 사랑을 설명할 순 없겠다. 주체화 현상이라는 거시적 분석도. 거기엔 나의 지극히 사적인 '노래(방)' 사랑이 작용한다. 난 내가 직접 불렀을 때 잘 부를 수 있는 노래 또는 잘 부르고 싶은 노래만 듣는다. 남자 가수건 여자 가수건 구분이 없기 때문에 여자보다 남자 가수의 노래를 압도적으로 즐겨들을 수밖에 없을 테다. 


와중에, 가수가 되기 위해 노래를 진지하게 부르는 것도 아니고 그저 노래 부르는 게 좋고 또 이왕이면 음주가무 시간이 되면 일종의 '보여주기' 식으로 부를 만한 노래가 필요하기에 그럴 때 필요한 것들이 아이돌의 노래가 된다. 더욱이 요즘 아이돌 노래들이란 예전같지 않아서 후크가 계속되는 난점이 있는 중에도 높은 퀄리티를 자랑한다. 쉽게 부를 수 없는 고난위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동시에, 누군가에게 불러주어도 불러준 사람의 가치(?)가 하등 하락하지 않는 것이다. 


외롭고 힘든 군대 시절에 동방신기가 큰 힘(?)이 되어준 덕분인지, 난 여전히 걸그룹보다 보이그룹을 선호한다. 그래서 동방신기 이후엔 자연스레 빅뱅-슈퍼주니어-엑소-방탄소년단으로 이어지는 로얄 보이그룹 라인을 좋아하게 되었다. 심지어 사이사이 2PM, 샤이니, 비스트, 인피니티 등도 많이 보고 들었다. 


<SM 리퍼블릭>과 <EXO 플라네타>의 기억




그런데 삼십대 즈음부터 아이돌을 향한 관심, 아이돌에 대한 정보 취합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엑소부터는 찾아서 듣는 게 아니라 들려서 듣는 쪽으로 자연스레 선회하게 된 것이다. 대신 거짓말처럼 예전에는 거들떠도 보지 않던 류의 음악을 찾아서 듣게 되었다. 그렇게 아이돌은 나에게서 멀어지는 것인가...


하는 찰나에 찾아온 게 책이다. 무슨 책인고 하면, '문화 레전드 시리즈'의 일환으로 기획된 <SM 리퍼블릭>과 <EXO 플라네타>. 난 이 책들을, 아니 이 시리즈를 맡아 편집하게 되었다. 2014년부터 시작된 이 시리즈는 2015년 1권과 2권을 내고는 YG와 JYP의 수장 및 대표 아티스트를 다루려던 3, 4, 5, 6권은 중단되었다. 


여하튼 나는 아이돌을 향한 관심을 다시금 담금질하고 아이돌의 역사까지 다시 한 번 훑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시리즈 기획과 출간을 편집자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힘든 작업이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얼마전 출간된 지 3년이 지났음에도 베트남에 판권이 팔리는 기적을 연출해 결국은 기분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아이돌 책은커녕 이런 류의 기획적 요소가 다분한 책을 만든 적이 없었다. 당연히 힘들 수밖에. 이수만 회장과 EXO 본인이 쓰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하다 못해 당사자들이 책을 쓰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도 괜찮았을 테지만, 우린 그들 모르게 작업을 진행했다. 이메일, 전화, 공문 등을 통해 접촉했지만 허사였다. 


태생적인 핸디캡을 안고 SM 쪽은 영화 관련자, YG 쪽은 문화 기획자, JYP 쪽은 문예창작학과 출신자가 맡아 집필했다. 동시에 시리즈 전체 디자인을 총괄하는 아트디렉터와 각각 컨셉에 맞는 일러스트 아티스트를 물색했다. 아울러 사전 홍보를 위한 SNS 채널도 개설하고 굿즈 개발을 위해 기획사에서 운영하는 아트샵에도 방문했다. 


찬란한 계획 아래 실행은 지지부진 했다. 원고만 해도 수없이 보고 또 봐도 사실 관계까 틀어진 곳을 수없이 발견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주인공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매일 체크해 최대한 반영시켜야 했다. 일러스트 아티스트와의 협업과 이후 전시라는 컨셉을 위해 그 어느 책보다 화려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찜찜한 구석은 남았다. 


결국 잘 팔리면 이 모든 게 보상된다는 생각 하에 기획사에 무작정 찾아가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랬다가 오히려 책을 만들지 말라고 할까봐 일면 두려워 그러지 못했다. 언제 한 번은 JYP 측에 연락이 닿아 원고를 보내드리기도 했지만, 답변을 받진 못했다. 팬클럽에 들어가 활동하면서 홍보를 해볼까 생각해 가입도 했지만, 책 홍보하는 걸로 받아들여 오히려 역효과가 있을까봐 그러지 못했다. 


생각했던 것들이 단 한 가지도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다. 시리즈가 1년 이상 끌리다 보니 위에서의 압박, 저자들과 아티스트들의 문의가 빗발쳤다. 당시 책들이 출간될 때까지 족히 몇 개월 동안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신경 쓰이고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그래도 덕분에 아이돌에 대해 조금은 더 전문적으로 알게 되긴 했을 듯?


한국 아이돌과 KPOP의 선순환을 위해




우리나라 아이돌은 미국과 일본의 이미지와 기획과 시스템을 거의 그대로 들여오다시피 했다고 알고 있다. 공급과 수요가 정확히 일치하려는 바로 그 시점에 날카로운 직잠과 시장조사에서의 확신을 갖고 프로듀서들이 나섰던 것도 있을 테고, 보다 여유로운 시대로의 이행 시기에 필연적으로 따라올 변화의 바람이기도 했을 테다. 


현재 우리나라 아이돌은 KPOP이라는 이름 하에 아시아와 유럽을 넘어 미국까지 휩쓸고 있다. 그 한가운데에는 3년 전 <SM 리퍼블릭>과 <EXO 플라네타>를 만들 당시만 해도 '혜성 같이 떠오르는 무서운 아이돌 신예' 정도로 포지셔닝되어 있었던 '방탄소년단'이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국 아이돌의 축적된 경험과 시스템이 최대치로 폭발한 현장이 아닌가 싶다. 


물론 그 동안에도 국내 최고의 아이돌들이 세계 각지에서 해당 국가를 들썩이게 할 정도로 많은 인기를 끌었었다. 거기엔 항상 '최초'와 '최고'와 '최선'이 붙었다. 지금은 그야말로 전 세계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그럼 앞으로 수렴되어야 하는, 수렴될 것이라 예상되는 방향은 어디일까. 


특정 아이돌의 독점적 질주는 당연하다. 그리고 KPOP의 경우, 특정 아이돌의 선전이 KPOP 전체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선순환을 이어가고 있는 걸로 보인다. 덕분에 수많은 친구들이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들여서라도 여전히 엄청난 경쟁을 뚫고 아이돌이 되고자 한다. 아이돌 산업의 실태는 잘 모르지만, 확고한 자본과 시스템이 산업 전체로 잘 순환되고 있는 것 같다. 다른 산업과 비교해보면 더 뚜렷하게 보인다. 


앞날이 창창한 한국 아이돌 KPOP, 다만 한 가지 보다 미래지향적인 바람이 있다면 한국 아이돌=KPOP이라는 등식이 더 이상 고착되지 않았으면 한다는 점이다. 한국 아이돌계는 기하급수적으로 비대해지고 있는 반면, 한국 가요계는 다양성은 이전보다 잘 시행되고 있지만 전체 파이가 커지고 있는 것 같진 않다. 아이돌이 외모, 서비스, 관리의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실력까지 다 갖춰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더 엄청난 아이돌이 나타나 보다 글로벌한 인기를 얻을 게 분명하다. 반대로 언제 그랬냐는듯 암흑기가 찾아올지 모른다. 지금 우리 KPOP은 정점을 찍었거나 정점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일 텐데, 오로지 위'만'을 바라보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겠다. 아래'도' 살피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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