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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말과 눈빛'으로 직조해낸 북파공작원 흑금성 이야기 <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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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윤종빈 감독의 <공작>


영화 <공작> 포스터. ⓒCJ엔터테인먼트



블록버스터보다는 작가주의 영화를, 메이저 영화보다는 독립 영화를 좋아한다. 영화를 통해 무언가를, 어딘가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감독은 어떻게 그 세계를 바라보았는지 엿볼 수 있다. 영화가 그 자체로 어떤 기능을 행사한다기보다 영화가 세상을 바라보는 창으로 역할을 하는 것이다. 


2005년 윤종빈 감독의 장편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가 시작이었다. 이후 독립 영화를 많이 찾아봤는데, 사회 시스템에 의해 부득이하게 괴물 또는 가해자가 되는 이들의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거기에서 난 우리나라 작가주의 독립 영화의 주류를 포착할 수 있었다. 윤종빈 감독은 머지 않아 알아주는 상업 영화 감독의 반열에 올랐지만, 여전히 그의 작품들을 팬의 입장에서 감상한다. 


그는 2018년 <공작> 이전까지 네 작품을 연출했는데, 일명 '퐁당퐁당'이었다. <용서받지 못한 자>가 평단의 엄청난 호평을 들어서 그의 이름을 드높였지만, <비스티 보이즈>가 평단과 흥행에서 폭망했다. 이후 <범죄와의 전쟁>으로 평단과 흥행 양면 대박, 하지만 <군도>로 아쉬움을 남겼다. 차기작은 당연히(?) 호평과 함께 흥행 대박을 예상해왔고, <공작>은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중이다. 


북파공작원 '흑금성'


영화 <공작>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영화 <공작>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성공한 북파공작원 '흑금성'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1993년 한반도는 북한 핵무기 개발로 위기에 휩싸인다. 국가안전기획부(이상 '안기부')는 국군정보사령부 소령 출신 박석영(황정민 분)을 데려온다. 그로 하여금 대북 사업가로 위장하여 북한 권력 핵심에 접근하게 해 북핵의 실체를 밝히게끔 한다. 


박석영은 철저하고 프로페셔널한 잠행으로 베이징에 주재하는 북한 대외경제위 처장 리명운(이성민 분)과 접촉하고, 몇 년간의 간난고초 끝에 인간적인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다. 리명운은 무너지고 있는 조국의 경제를 살리고자 하는 신념, 박석영은 조국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북핵 실체 접근이라는 신념이다. 


하지만 박석영의 상사인 안기부 해외실장 최학성(조진웅 분)은 집권여당의 존재 자체를 흔들 수 있는 총선과 대선에 북한을 이용하려는 수작을 박성영을 통해 진행하려 하고,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에서 파견나온 과장 정무택(주지훈 분)은 박석영을 위협하는 한편 리명운을 젖히고 일을 진행하려 한다. 이에 박석영은 리명운과 더불어 특단의 조치, 즉 일생일대의 모험을 걸어보려 하는데...


'한반도 영화'의 새로운 시작


영화 <공작>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안기부가 파견한 '흑금성'의 대북 공작 시작부터 끝까지를 액션다운 액션 없이 말과 눈빛을 씨줄과 날줄로 직조해냈다. 거기에는 1999년 <쉬리>부터 시작된 '한반도 영화'의 새로운 시작이, 그동안 우리가 봐왔던 '첩보 영화'의 새로운 면모가, 그리고 사회의 어두운 면을 포착해 디테일하게 까발려왔던 윤종빈 감독의 새로운 시도가 있다. 


'한반도 영화'는 일제강점기-한국전쟁-분단으로 이어진 한반도의 아픔에서 시작해 이후 수십 년간 지구 유일의 분단 국가로 이어진 아픔으로 끝나는 서사를 지속해왔다. 분단 이후 최초로 열렸던 2000년 남북정상회담의 남북 순풍 시기에 만들어진 <공동경비구역 JSA>조차 슬픔의 눈물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공작>에서의 그것은 완연히 다른 면모를 보인다. 남한과 북한이라는 각자의 조국을 최우선시하는 신념이 만나 신뢰가 바탕이 되는 공존의 희망을 선보인 것이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의 만남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쉽다면 쉬울 수 있지만, 한없이 어려운 것이 남과 북 또는 북과 남의 관계가 아닌가. 거기엔 슬픔의 눈물 아닌 기쁨의 눈물이 있다.


영화 외적 상황이 절대적 역할을 했다. 영화의 주요 배경이기도 한 2000년 전후 당시의 순풍 시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해빙 시기를 맞이한 한반도에서 이 영화는 적격인 것이다. 시대를 선도하진 못해도 대중상업영화로 시류를 적절히 탔다. 더불어 2000년 전후와 2018년 전후의 한반도를, 남과 북 또는 북과 남을 이어주는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이 영화가, 윤종빈 감독의 <공작>이 고맙다. 


'첩보 영화'의 새로운 면모와 윤종빈 감독의 새로운 시도


영화 <공작>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첩보 영화' 하면 내정되어 있는 비극적인 죽음 또는 그보다 못한 삶, 조용히 피 튀기는 총격전과 그보다 더 긴장되고 마음 졸이는 압도적 심리전이 선행되어야 한다. 아니, 으레 그래야 한다고 믿어왔고 선행되어 왔다. 하지만 <공작>은 과감히 탈피했다. 캐릭터가 단연 중심이 되어 연출과 각본의 영향력이 크게 발휘된다. 즉, 확실한 영화 외적 토양을 바탕으로 하여 영화 내적으로 힘이 빡 들어간 것이다. 


이 영화 또한 '한국적'이라는 수식어를 피할 수 없을 듯하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대북 공작이 우리나라 현대사만을 관통하는 특징임에도 말이다. 우리나라에선 다른 식이 아닌 이런 식이 첩보 영화의 대중상업화인 것이다. 총격전과 심리전이 총성 없는 총격전과 반전 없는 심리전으로 대체되었을 뿐이다. 그렇지만 자장 안에서 최선을 다해 최고를 내놓은 것은 사실이다. 


개인적으론 윤종빈 감독의 새로운 시도가 무엇보다 반갑다. 그의 영화들이 모두 잘 만들어지고 많은 사랑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뾰족하고 날카롭게 사회의 한 단면을 파고 들었던 그의 작품들을 좋아했다. <공작>도 그런 식이었다 해도 반겼을 것이고, 그 나름의 소구점이 충분히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사회의 한 단면은 사회 전반으로 넒어졌고 뾰족하고 날카로운 송곳 같은 시선은 대검이 되어 묵직하고 깊게 누르며 밀고 들어간다. 이미 많이 다듬어진 연출과 각본 실력 덕분에 다음엔 어떤 영화를 들고 올지 기대되는 건 물론이고, 이 영화 <공작> 덕분에 영화를 통해 어떤 세상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갖게 될지 기대된다. 그의 다음 영화는 부디 그의 '퐁당퐁당' 징크스를 따르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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