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작 열전/신작 영화

평범한 사람들의, 살아가는 아름다움 <에델과 어니스트>

반응형



[리뷰] <에델과 어니스트>


<에델과 어니스트> 포스터. ⓒ㈜영화사 진진



영화 한 편으로 한 방면이나마 역사를 훑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다. 굉장히 거시적으로 접근하면서도 주요 사건들을 미시적으로 들여다보아야 공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포레스트 검프> <벤자민 버튼은 거꾸로 가지 않는다> <국제시장>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등이 생각난다. 


한 시대를 고스란히 살아온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굉장히 평범하거나 굉장히 특출나다. 하지만 접근 방법은 같다. 이들 모두는 우리와 다름 없는 삶을 살았거나 우리와 함께 살았던 것이다. 우린 이 영화들을 사랑했고 이 영화의 주인공들에게 대체로 동질감을 느꼈다. 


자전적 애니메이션 <에델과 어니스트>는 이 범주에 속하는 영화라 하겠다. 1920~60년대 영국의 지극히 평범한 한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영국의 20세기 초중반 40년을 훑는 작업 말이다. 우린 이 영화로 평범한 사람으로서의 동질감을 느끼며 동시에 영국의 20세기 초중반을 지탱한 가치관을 들여다볼 수 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


<에델과 어니스트>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영화는 영국의 세계적인 동화작가 레이먼드 브릭스의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한다. 그는 오래 전에 돌아가신 자신의 지극히 평범한 부모님 이야기를 옮겨놓았다. 때는 1928년 런던, 가정부 에델과 우유배달부 어니스트는 사랑에 빠져 짧은 연애 끝에 결혼한다. 에델은 가정부를 그만두고, 그들은 25년 대출상환으로 집을 장만한다.


결혼하고서 집안살림을 하나둘 장만하는 평범한 나날들, 하지만 결혼 2년이 지나서도 아이를 갖지 못하자 37살 많은 나이의 아내는 걱정이 태산이다. 그 사이 히틀러가 독일에서 정권을 잡았다는 소식이 들리고, 에델과 어니스트는 상반된 반응을 보인다. 한편, 곧 임신을 하고는 남자 아이를 낳은 에델, 하지만 나이가 많아 더 이상의 아이를 가질 순 없다. 


아이는 자라고, TV가 시작되고, 히틀러가 전쟁태세에 돌입하고, 에델과 어니스트와 레이먼드 가족은 전쟁을 대비한다. 급기야 영국도 독일과의 전쟁에 돌입할 수밖에 없게 된다. 아이는 대피령에 따라 안전한 시골로 가고 집에는 에델과 어니스트만 남아 그들만의 전쟁을 치른다. 섬나라 영국까지 침공한 나치독일의 공습에 이들은 무사할까? 레이먼드도 그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게 될까?


직간접적으로 겪은 사건들


<에델과 어니스트>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영화의 큰 줄기는 주로 어니스트가 읽고 들어 에델에게 얘기해주는 신문과 라디오에 있다. 히틀러가 언제 집권해 언제 유대인의 시민권을 박탈했으며 언제 전쟁태세에 돌입했고 언제 체코슬로바키아의 반을 취득했는지 언제 프라하에 했고 언제 폴란드를 침공해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는지 말이다. 


한편, 언제 TV가 시작되었고 1930년을 전후한 당시 영국의 빈곤선 상위층이려면 주당 얼마를 벌어야 하는지 언제 인류가 달에 갔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전쟁으로 물을 5인치밖에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전쟁 직후 노동당이 집권했으며 고속도로가 뚫렸고 어떤 당이 집권하든 식량 배급량은 계속 줄어들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처럼 에델과 어니스트가 직접적으로 겪은 사건이 있는 반면 대다수가 이처럼 간접적으로 겪은 것들인데, 우리네 삶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역사의 한복판에서 크고 작은 사건과 변화의 당사자로 살아가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건과 변화가 알게 모르게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에 남을 촛불 혁명을 직접 참여했던, 잊을 수 없는 일이 있었던 반면 계속 오르기만 하는 물가와 집값, 스마트폰의 보급 등은 물론 요동치는 세계 경제와 정치와 정세 등은 우리를 직간접적으로 스쳐지나갈 뿐이다. 그것들이 지금 당장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거나 규정하진 못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변화시키거나 규정하기에 결국 우리의 삶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함에도 말이다. 


사람 사는 아름다움


<에델과 어니스트>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영화는 일면 그런 생각을 체화시킨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도 같다. 신문이나 라디오, 그리고 TV를 보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전하는 어니스트와 집안일에 몰두하며 관심을 두지 않으려 하는 또는 둘 수 없는 에델의 모습이 구도화되어 영화 내내 비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가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대상은 에델인가? 당장의 집안일과 당장의 남편 혹은 아들의 일을 챙기며 보수적일 수밖에 없게 된 에델을? 그건 아닌 듯하다. 어니스트를 통해서 세상일에 관심 없는 사람을 비판하는 반면, 에델을 통해서 당시 평배해 있는 남녀 차별 또는 남녀 구분의 당연함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영화 흥행 3위를 기록하고 있는 <국제시장>도 평범한 한 부부의 일생을 돌아보며 한국현대사를 들여다보는 영화인데, 이런 비슷한 시선조차 담지 않고 하나같이 나라 발전에 일조한 이야기와 엄청난 일을 겪으면서도 꿋꿋하게 살아온 신파 어린 이야기를 늘어놓았을 뿐이다. 오히려 이 같은 이야기가 훨씬 많은 사람의 공감을 샀겠지만 그 이상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거기엔 사람은 없고 사건만 있다. 


반면 <에델과 어니스트>는 단조롭기 짝이 없고 눈물 쏙 빼는 이야기를 선사하지도 않는다. 이보다 더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름답다'고 서슴없이 말할 게 분명하다. 


거기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는 '사람 사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하네'라는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저 그렇게 살다간, 인류 역사를 이루는 99% 이상 사람들의 이야기 말이다. 에델과 어니스트는 그대로 김씨와 이씨도 될 수 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