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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판타지로 말하는 현실 커플의 진짜 모습, 영화 <루비 스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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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루비 스팍스>


영화 <루비 스팍스> 포스터. ⓒ(주)팝엔터테인먼트



10년 전에 전설의 베스트셀러를 내놓고 다음 책을 내놓지 못한 채 슬럼프에 빠진 천재 작가 캘빈 웨어필드(폴 다노), 여자는커녕 사람 자체를 만나지 않고 지낸다. 그저 친형과 자주 만나고 정신과 의사를 자주 찾아가며 아빠와 사별한 후 재혼한 엄마를 아주 가끔 볼 뿐이다. 10년 전에 내놓은 베스트셀러로 가끔 독자와 출판 관계자를 만난다. 


그가 요즘 어느 여자에 대한 꿈을 자주 꾼다. 너무도 사랑스러운, 그야말로 꿈에나 그릴 그런 이상형의 여자 말이다. 그녀의 이름은 루비 스팍스(조 카잔 분). 캘빈은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녀에 대해 하나하나 창조하며, 그녀와 자신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밤낮 없이 쓰기 시작한다. 


와중에 집안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최근에 여자를 들인 기억이 없는 혼자 사는 집에 하이힐이 있질 않나 브래지어, 팬티가 있질 않나. 그러곤 어느 날 아침엔 급기야 루비가 집에 나타난 것이다. 이제 막 일어난 차림으로 시리얼을 먹으면서  '어젯밤엔 혼자 잤잖아'라고 말하며. 캘빈은 이제 자신이 미쳐버렸다고 단정한다. 그녀는 진짜일까? 가짜가 분명해 보이는데? 도무지, 절대, 믿을 수 없다. 


6년 만에 국내 지각 개봉


영화 <루비 스팍스>의 한 장면. ⓒ(주)팝엔터테인먼트



영화 <루비 스팍스>는, 괴짜 가족의 좌추우돌 로드 무비 <미스 리틀 선샤인>으로 전 세계 영화비평계를 강타하고, 영화 내외적으로 한층 성숙한 면모를 선보인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로 돌아왔던 조나단 데이턴, 발레리 페리스 부부 감독의 '오래된 신작'이다. 이 영화는 북미에서 2012년에 개봉했지만 우리나라엔 6년 만에 개봉했다. 


한때(지금도) 재개봉이 대대적으로 유행해 수많은 명작들이 다시 우리를 찾아 왔다. 지각 개봉은 재개봉과 결을 같이 하는 듯한데, 작년에 7년 만에 한국을 찾아와 35만 명이 넘는 기대 이상의 흥행 성적을 기록한 <플립>이 대표적이다. 이번 5월 30일에 개봉할 <라이크 크레이지>도 7년 만에 지각 개봉하는 작품이다. 


이들 지각 개봉 작품들의 공통점은, 다름 아닌 '로맨스'. 그리고 국내에 개봉하지 않았을 뿐 여러 경로로 국내 관객들의 관심과 사랑을 이미 받았었고 받아 왔다는 점. 하지만 <플립>의 경우 관객들의 절대적 지지에 '못 이겨' 강제로 지각 개봉한 측면이 없지 않기에, 이후 지각 개봉한 작품들은 그 인기에 기댄 후발 주자 측면이 없지 않다. 


판타지에서 현실로


영화 <루비 스팍스>의 한 장면. ⓒ(주)팝엔터테인먼트



영화는 특이하게 시작된 특별한 사랑의 모습이 평범하기 짝이 없는 사랑의 모습과 비교 비유되는 양상을 보인다. 꿈 속 여인이 소설로 옮겨지고 급기야 현실화되는 말도 안 되는 판타지. 하지만 판타지는 곧 급격히 현실이 된다. 즉, 현실적인 커플의 모습을 띄는 것이다. 


흔하디 흔한 커플의 모습은 어떤가. 급격히 가까워져 열정적으로 사랑하지만, 맥 없이 식어버린 열정은 한순간에 서로를 멀어지게 한다. 영화는 이 부분에서 제목처럼 여자 루비가 아닌 찌질한 남자 캘빈의 시선을 내보인다. 그는 루비가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되, 집에만 있지 말고 밖에 나가 놀았으면 한다. 또 너무 활기차지도, 너무 우울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자기의 입맛대로, 극단적이지 않은, 이미지화 시켜놓은 대상이 거기에서 벗어나면 무시하고 떠나버리는, 그야말로 판타지적인 완벽함을 바라는 것이다. 영화는 캘빈의 모습을 남자 특유의 찌질함으로, 그 남자의 찌질함을 말도 안 되는 판타지로 병렬시킨다. 결국 그 판타지는 캘빈이 쓰는 소설의 내용대로 현실의 루비가 바뀌는 판타지로 대치되는 것이다. 


자칫 위험하고 부담스러울 수 있는


영화 <루비 스팍스>의 한 장면. ⓒ(주)팝엔터테인먼트



<루비 스팍스>는 흥미로운 소재와 누구나 공감할 만한 남녀 관계의 비공개적인 정석의 발판 위에 있음에도, 위험하고 재미없고 부담스러울 수 있다. '찌질한' 남자라는 도식화, '완벽한 이상형' 여자라는 대상화, 그리고 그런 남녀 간의 만남과 헤어짐과 또 다른 사랑의 시작이라는 재단화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흘러가는 것이다. 


우린 알고 있다.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을 찾아 헤매고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이의 흑역사 중 하나라는 것을 말이다. 위험하고 부담스러울 수 있는 상(象)의 정립이 아니고. 그럼에도 6년 만에 지각 개봉을 하면서까지 우리 앞에 소환시킨 이유는 뭘까. 적어도 영화 내적인 이유는 없는 것 같다. 지극히 공식적이고 전형적인 신파 로맨스로 하찮은 눈물을 몇 방울 훔치는 영화보다 못한 것 같기 때문이다. 


영화 외적인 이유는 몇몇 눈에 띈다. 이 영화로 실제 연인이 되었다는 주인공 폴 다노와 조 카잔, 그리고 이 둘의 6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인지도 상승, 또 작년 개봉해 좋은 평을 들었던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 감독의 숨겨진 로맨스 작품이었다는 점 등 말이다. 그럼에도 '한 번쯤 볼 만한' 영화라고조차 해주지 못하겠다. 다만, 이들과 같은 이유로 남녀관계에 힘들어 하고 있는 이들에겐 적확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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