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아이, 토냐>
영화 <아이, 토냐> 포스터. ⓒ누리픽쳐스
아주 어렸을 때부터 피겨스케이팅에 관심을 갖고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토냐 하딩(마고 로비 분), 극악한 엄마(앨리슨 제니 분)의 폭력적인 관심과 가르침으로 두각을 나타낸다. 반면, 그 때문인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출중한 성적과 함께 성격과 행동의 돌출적이고 폭력적인 끼를 숨기지 못했다.
토냐는 우연히 만난 제프 길롤리(세바스찬 스탠 분)와 격렬한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한다. 하지만 그는 폭력적이기 짝이 없는 광인이었다. 지옥 같은 엄마와의 일상에서 빠져 나와서 정착한 곳이 또 다른 지옥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들한테서 사랑을 느꼈다. 문제는, 삶을 파괴할 게 분명한 그의 폭력이 끝없이 되풀이 된다는 것이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미국 최초로 트리플 악셀을 성공시킬 정도의 출중한 실력은 대중의 사랑을 불러일으킨 반면, 클래식이 아닌 하드코어 음악을 틀고 점잖치 못한 의상을 입고서 무대에 오르는 이 선수를 심사위원들은 고깝게 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미국을 대표하는 선수였고, 1992년 알베르빌과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 출전했다.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직전 일어난 '그 사건'은, 그녀로 하여금 더 이상 피겨스케이팅을 타지 못하게 하였고, 그녀에게 '은반 위의 악녀'라는 지울 수 없는 낙인을 부여했으며, 미국 피겨스케이팅계 추락의 빌미를 제공했다.
미국이 원하는 여성상
영화 <아이, 토냐>의 한 장면. ⓒ누리픽쳐스
영화 <아이, 토냐>는 1990년대 미국을 발칵 뒤집은 사건 중 하나인 '낸시 캐리건 습격 사건'을 주요 키워드이지만 루즈한 톤으로 깐, '토냐 하딩'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거대한 사건에 가려진 토냐의 진짜 삶의 면면들 말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토냐의 모습을 통해 '그대로의 여성'과, 또한 미국과 대중과 미디어의 민낯을 들여다볼 수 있다.
1980, 90년대 미국은 절제와 통제의 시대로 진입해 있었다. 신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집합체는 여러 곳에 손을 뻗었고, 스포츠 종목 중 유독 예술적이고 여성적인 피겨스케이팅은 실력만큼 중요한 아니, 그보다 중요한 외모와 이미지가 순위를 결정하고 대표를 선발했다. 가난해서 '제대로 된' 의상을 입을 수 없었고, 치명적인 환경에서 자라와 '고상할' 수 없었던 토냐 하딩은 부적격자였다.
그녀의 실력은 미국을 대표하고도 남았지만, 그녀의 이미지는 미국(의 심사위원)이 원하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이전보다 훨씬 다양성과 개성이 추구되는 지금이라면 그녀의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원석의 느낌도 충분히 강점이 되고도 남았겠지만, 그때는 더할 나위 없는 특급의 약점이 되고 말았다. 그녀는 그녀, 그대로의 여성으로 남아 있기 힘들었다. 만들어진 여성, 미국이 원하는 여성상, 보수적인 여성상이어야만 했다.
토냐 하딩의 삶의 면면
영화 <아이, 토냐>의 한 장면. ⓒ누리픽쳐스
영화는 실화를 기반으로 하며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하면서도 블랙 코미디 요소를 섞는 기발함을 발휘했다. 그때 그 시절의 느낌과 캐릭터를 최대한 그대로 가져와 토시 하나 바꾸지 않는 대사를 차용했지만 진지하지 않은 편집과 음악과 여러 영화적 기법을 통해 더 깊은 감정이입을 차단하기도 했다. 그러하기에 시종일관 비극적일 수밖에 없었던 토냐 하딩의 삶의 면면에 환멸과 냉소를 던지기도 한다.
반강제적인 통합과 편입에는 필히 반발이 따를 수밖에 없다. 세계 패권 국가로서의 미국이라면 당연히 자기 입맛에 맞는 선수를 국가대표로 내보내려고 했을 터, 출중한 실력과 외모를 자랑하는 문제아 토냐는 골칫덩어리이자 고민덩어리였을 것이다. 그래서 문제 삼는 게 바로 그녀 삶의 면면들이다.
그녀의 삶은 비극의 연속이다. 비극은 그녀의 모든 것인 피겨스케이팅에 거대한 명과 암을 선사한다. 명암은 미국에 고민을 던지고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은 다시 그녀에게 돌아와 또 다른 비극을 낳는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 그녀,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말하는 그녀, 그에 대한 고민을 또는 반론을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조심스럽게나마 들어볼 수 있게 되었다. 적나라하게 내보이면서도 빠르고 단편적으로 쓸고 지나가는 듯한 영화의 면면들은 그런 조심스러운 들여다보기의 흔적들이다.
토냐 하딩이고 싶었던 토냐 하딩
영화 <아이, 토냐>의 한 장면. ⓒ누리픽쳐스
토냐 하딩이 더 이상 피겨스케이팅을 할 수 없게 만든, 그리고 그녀에게 '은반 위의 악녀'라는 낙인을 찍어버린, 그 사건은 엉망진창이다. 하필이면 그 사건의 주인공(피해자) 낸시 캐리건은 토냐의 강력한 라이벌이자 미국을 대표하는, 미국이 원하는 여성상에 거의 완벽히 부합하는, 그야말로 토냐와 정반대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더불어 하필이면 그 사건의 또 다른 주인공(가해자)인 괴한이 토냐의 남편과 토냐의 보디가드(라고 주장하는)와 연류되어 있던 게 아닌가. 미디어와 대중이 그런 스캔들과 가십거리를 가만히 놔둘리가 없다. 미디어로서는 그만큼 대중의 이목을 끌만한 사건이 더이상 있을 수가 없고, 대중으로선 그만큼 신나게 열광할 사건이 더이상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토냐 하딩과 낸시 캐리건은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사하던 미국 피겨스케이팅계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라이벌이 아닌가. 어떤 식으로든 최고의 유명인의 속절없는 추락은 하릴없는 대중, 별 것 없는 일상을 살아가는 대중, 그런 대중에게 입맛 당기는 기삿거리를 찾는 미디어에게 가장 핫한 일이다.
이 사건을 온전히 토냐 하딩의 불우한 비극의 삶의 연속적인 행태의 정점으로 치부해버릴 수도, 미국과 미디어와 대중이 한통속이 되어 토냐 하딩을 지옥으로 이끌어 버렸다고 할 수도, 토냐 하딩의 전 남편과 보디가드가 그녀 모르게 꾸민 범죄의 결과로만 생각할 수도 없다. 진실은,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들 어디에서도 정작 '토냐 하딩'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토냐 하딩은 그저 토냐 하딩이었을 뿐이고, 토냐 하딩이고 싶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것, 피겨스케이팅을 타고 싶었을 것이다. 그저 남들처럼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고, 평범한 가정을 이루며 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그녀의 바람을 이해하고 동조하고 도와준 이는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었다. 자신조차도 말이다. 그녀는 '은반 위의 악녀'는커녕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버림받고 이용당하고 조작당한 한 여자였다. 단순히 불쌍하다는 말로는 그녀를 설명할 수 없다. 차라리 악녀가 되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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