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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명작 우주 영화의 맥을 잇다 <스테이션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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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스테이션 7>


잘 알지 못하는 러시아 영화에, 우주 영화?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영화사 진진



러시아 영화, 잘 알지 못한다. 아니, 아예 모른다고 해도 무방하다. 고작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에이젠슈테인의 <전함 포템킨>이 '몽타주이론'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전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영화 중 하나로 손꼽힌다는 정도를 나 또한 알 뿐이다. 최근 <리바이어던>이라는 걸출한 작품이 러시아 영화라는 정도가 눈에 띄었다. 우리가 아는 영화의 결, 할리우드의 결과 사뭇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좋은 영화 또는 볼 만한 영화의 기준은, 아무래도 할리우드에 있을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러시아 영화들은 어느 모로 보나 그 기준에는 많이 모자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 와중에도 할리우드급의 퀄리티, 그러나 결은 완연히 다른 영화들이 나와 눈길을 끈다. 10년 전에 나왔던 <제9중대>가 그랬고, 올해 나온 <스테이션 7>이 그렇다.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20년이 넘은 <아폴로 13> 정도만 기억에 남는 본래 흥미 위주였던 우주 영화가 요즘 일취월장했다. <그래비티> <인터스텔라> <마션>이 매년 우리를 찾아와 눈을 호강시켰던 것이다. <라이프> 같은 영화는 허술한 스토리로 우리를 그냥 지나가기도 했다. <스테이션 7>은 눈호강 우주 영화의 맥을 이을 만하다. 


살류트 7호를 살려내라!


제어불능에 빠진 우주정거장 살류트 7호를 살려내야 하는 임무 수행이 주된 내용이다. ⓒ영화사 진진



1985년 냉전 시대의 한복판, 소련의 우주정거장 살류트 7호가 제어불능 상태에 빠진다. 이에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특종으로 보도하며 우려를 표한다. 어디로 추락할지 알 수 없으며 큰 인명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 이에 소련은 빠른 시일 안에 살류트 7호를 정상화시키던지 그게 안 되면 차라리 격추시켜버릴 것을 명한다. 미국이 살류트 7호와 똑같은 크기와 적재량을 가진 챌린저호를 쏘아올릴 예정이었던 것이다. 소련 입장에선 미국이 살류트 7호를 가져가버리는 게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발레리 국장으로선 지난 10년간의 노력물인 살류트 7호를 격추시킬 수는 없는 노릇, 빠른 시일 안에 해결해야 했다. 그는 최고의 우주비행사이지만 비행금지 상태에 있는 블라디미르와 우주비행 경험이 있는 촉망받는 엔지니어 빅토르를 투입한다.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는 살류트 7호에 성공적으로 도킹하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상태, 말 그대로 시작이 반이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도킹에 성공해야 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이미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 그들은 도킹에 극적으로 성공한다. 하지만 그들 앞에는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믿기 힘들지만 살류트 7호의 선체 전체가 얼어있었던 것,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더더욱 줄어든다. 태양열을 이용해 얼음을 녹이고자 하지만, 그 과정에서 화재가 일어나고 만다. 결국 그들 중 한 명은 지구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결론이 나고 마는데... 이 '영웅'들의 성공 여부는?


실화로 직진하는 영화


영화는 다른 길로 빠지지 않고 실화로 직진한다. 좋은 선택이다. ⓒ영화사 진진



미국과 소련의 '우주전쟁'은 이미 195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서로에게 실질적인 위협을 주는 동시에 기술적으로 전 세계 최고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가장 적합한 '우주'였다. 소련이 가장 먼저 우주로 진출하고, 다음으로 미국은 달에 착륙한다. 다시 소련이 최초로 우주정거장을 쏘아올린다. 살류트 7호는 1971년 최초로 발사된 우주정거장 살류트 1호의 후신인 것이다. 


<스테이션 7>은 바로 그 살류트 7호가 연류된 결정적 사건을 다룬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번질 수 있었을 위험을 두 영웅이 해결해버렸다. 그건 인간의 손으로 행한, 이전에 없고 이후에도 없을 최고의 구조작전이었다. 모든 걸 영화로 치환해내는 할리우드가 아직까지도 만들어내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영화는 굉장히 직설적이다. 이리저리 꼬아 갈등 어린 스토리텔링을 생성하고는 희생을 딛고 대의를 향해 모든 걸 던저 나아가는 이야기에 실화를 얹어 극대화시키는 게 아니라, 최대한 실화를 그대로 내보이되 이야기가 아닌 장면들을 얹어 도움을 주는 정도로 단백하게 진행했다. 


다만, 몇몇 장면에서 함께한 음악들이 '과유불급'의 모습으로 내비칠 수 있었다는 게 유일한 흠이라면 흠이다. 과한 걸 최대한 배제하려한 스토리와 최대한 과하게 표현하려한 음악이 서로 맞지 않았던 것이다. 음악을 제외한 모든 면에서 이 영화는 '할리우드 따라쟁이' '짝퉁 할리우드'의 범위를 벗어났다. 


괜찮은 우주 영화


근래 빼어난 우주 영화들의 맥을 잇는 괜찮은 영화. ⓒ영화사 진진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인 만큼, 훌륭한 우주 영화들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단적으로 가장 비교가 되는 영화는 아무래도 <그래비티>가 아닐까 싶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최고의 명작으로 추앙받는 바로 그 영화. 완벽하게 구현한 우주와 그 우주에 홀로 남게 된 한 여인, 그 자체로 사상 최악의 재난이라 불릴 만한 상황. <스테이션 7>과는 너무나도 다른 결이지만, 우주를 구현해내고 표현해내는 기술력은 비슷하다. 


SF, 사이언스 팩션은 분명 미래지향적이다. 미래에 있음직한, 지금으로선 상상 속에서만 또는 비상용단계에서만 가능한 것들을 내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 너무나도 사실적인 SF 영화는, 30년도 더 된 옛날의 이야기를 내보인다. 우리에게 1985년은 우주정거장은커녕 칼라TV도 겨우 마련한 시기가 아닌가. 


이 영화가 과거를 다시 살려내어 우리 앞에 내보인다고 해서 과거지향적인 건 아니다. 물론 영화 외적으로 보면, 과거 소련 최고 영광의 시절을 되살렸다는 찬사를 들을 만하다. 그것도 완벽에 가까운 기술력을 바탕으로 하지 않았는가. 과거의 영광+현재의 기술력이라는 건 미래를 향한 힘찬 한 걸음일 수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감동 체계는 부족했지만 영화는 볼 만 했고, 인류 보편적인 메시지 대신 과거의 영광 재연에 초점을 뒀지만 눈살 찌푸리게 할 만한 부분은 없었으며, 아무리 인류 역사에 남을 믿기 힘든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어도 스펙터클한 느낌은 여타우주 영화보다 훨씬 덜했지만 충분히 긴장감 있고 지루하지 않게 감상할 수 있었다. 이 정도라면 '볼 만한 영화'가 아닌 '봤으면 하는 영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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