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왕가위 감독의 <해피 투게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영화 중 하나로 뽑을 만한 <해피 투게더>. 왕가위 감독의 대표작이다. ⓒ(주)서우영화사



벌써 20년이다.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영화 중 하나로 뽑을 만한 <해피 투게더>가 나온지 말이다. 1988년 <열혈남아>로 연출 데뷔를 한 왕가위 감독의 6번째 작품이자 <아비정전>으로 시작된 '왕가위 스타일'의 정점을 보여준 작품이다.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당당히 올라갔다. 왕가위 감독의 수많은 명작 중에 하나만 고르라면 단연 <해피 투게더>를 골라야 할 것이다. 


<해피 투게더>를 말함에 있어 또 한 명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2003년 우리 곁을 떠난 장국영이다. 1978년 영화계에 데뷔한 이래, 1985년 <영웅본색>으로 스타덤에 오르고 1990년 <아비정전>, 1991년 <종횡사해>로 최고의 배우로 거듭났다. 1993년에는 <패왕별희>로 세계적인 스타로 올라섰다. 앞서 <아비정전>과 <동사서독> <해피 투게더>로 왕가위 감독과 함께 했다. 


<해피 투게더>의 또 다른 주인공을 맡은 양조위가 왕가위 감독의 자타공인 페르소나(왕가위와 양조위는 자그마치 7편을 함께 했다)라지만, 장국영이야말로 왕가위의 진정한 페르소나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1983년에 데뷔한 양조위는 홍콩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배우가 되었다. <해피 투게더>가 크게 일조한 건 당연하다. <와호장룡> <적벽대전> <일대종사> 등으로 친숙한 장첸의 앳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야말로 영화팬들에겐 잔치나 마찬가지다. 


간결한 스토리, 비로소 발휘되는 감독의 능력


누구나 예측할 만한 간결하고 단편적인 스토리다. 왕가위 감독의 능력을 한껏 발휘하기 위해서 일까? ⓒ(주)서우영화사



야휘(양조위 분)와 보영(장국영 분)은 홍콩을 떠나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살아간다. 내성적이지만 책임감 강하게 삶을 영위하려는 야휘에 반해 자유분방하고 즉흥적이기만 한 보영, 헤어졌다가 만나기 일쑤이다. 떠나간 사람은 당연히 보영일 테니, 돌아오는 사람도 보영일 테다. 그렇지만 야휘는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괘씸하지 않은가. 어느 날, 양손에 피를 흘리며 찾아온 보영을 야휘는 받아들여 극진히 보살핀다. 보영도 평소완 달리 얌전히 보살핌을 받는다. 


하지만 손이 낳은 보영은 다시 예전의 보영으로 돌아간다. 바깥으로 싸돌며 야휘를 가슴 아프게 한다. 어김없이 파국을 치닫는 모양새다. 한편, 힘들어 하는 야휘 곁에 식당에서 일하는 동료 창(장첸 분)이 살며시 다가온다. 그의 방식으로 위로를 건네며 가까워진다. 그렇지만 곧 떠나야 할 시간이 임박한다. 각자의 길로 말이다. 야휘와 보영은 함께 가고 싶어 했던 이구아수폭포를 함께 갈 수 있을까. 


만나고 헤어지고, 사랑하고 사랑받고, 힘들어하고 위로받는 절대보편의 간결한 스토리다. 무엇을 더 보여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이 지점에서 비로소 감독의 능력이 발휘된다. 왕가위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 간결한 스토리에 투영되는 당시 사회 상황,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동성애, 그리고 제목과 연결되는 영화의 주제까지. 


이 영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건 황홀하다. 만사를 제쳐두고 그저 왕가위가 구축해놓은 미장센만 감상해도 충분할 텐데, 그 수면 아래에서 편안하게 헤엄치는 것들을 들여다보는 행운을 만끽하다니. 정녕 '해피 투게더'다. 


동성애, 시대상, 그리고 '해피 투게더'


간결한 스토리 안에 동성애, 시대상, 관계의 메시지까지 횡행한다. 하나하나 잘 짚고 지나가자. ⓒ(주)서우영화사



가장 먼저 동성애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정확히는 남자들의 사랑. 영화는 시종일관 세 남자 야휘, 보영, 창만 비춘다. 여자는 단 한 명이 단 한 컷에 등장할 뿐이다. 시작과 동시에 러브신과 섹스신에 돌입하는 야휘와 보영의 모습에 충격을 금치 못하는 것도 잠시, 곧 그 기시감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대신 흔하디 흔한 사랑 싸움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이들의 동성애는 인류보편의 연애인 것이다. 


동성애를 다룬 영화를 많이도 봐왔지만, 이런 느낌은 처음 받아 본다. 아마도 오랜 세월이 지나도 이런 느낌을 받을 영화는 없지 않을까. 심지어 '호모 포비아'도 이 영화를 보고 기시감을 크게 느끼지 않을 거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 그건 다분히 배우들의 연기에 기댄 바가 크겠다. 특히 왕가위 감독이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설득시킨 양조위는 실제 동성애자인 장국영보다 더 동성애자처럼 보였다. 


더불어 당시 시대상을 엿봐야 한다. 1980년대 후반부터 홍콩 영화의 상당수가 1997년 '홍콩 반환'을 주제에 덧입힌다. 1985년작 <영웅본색>도 그러하니, 예견된 큰 사건에 홍콩 사람들의 심정이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1997년에 제작된 <해피 투게더>는 더 말해 무엇하랴. 야휘와 보영의 끝이 헤어짐일 거라고 예상할 수 있는 바, '홍콩'이라는 단일 개체의 사라짐에 대한 불안이 투영된 것일 테다. 반면 창이라는 새로운 대상이 따듯할 것 같다고 예상되는 바, 중국으로 합병되는 불안 속 희망이 엿보인다. 


'해피 투게더'라는 단어가 주는 행복과 더불어 원제인 '춘광사설’(春光乍洩)이 뜻하는 ‘구름 사이로 비추는 봄 햇살'이 주는 희망까지, 중국과 홍콩의 새로운 관계가 시작된 시기에 멀리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보내는 왕가위 감독의 메시지이다. 이는 사람과 사람, 도시와 자연, 국가와 국가까지 어이진다. 우리는 이 작고 짧은 영화에서 대서사와 맞먹는 깊고 넓은 관계의 파노라마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많다!


정녕 <해피 투게더>는 영화팬들의 잔치다. 감독, 배우, 영상, 장면, 메시지, 파격, 해석 등 즐길 게 너무나도 많다. ⓒ(주)서우영화사



왕가위 감독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건 다름 아닌 '미장센'이다. 그는 세계적으로 돋보적인 비쥬얼리스트다. 색감과 카메라 구도만으로 장면이 보여주려는 이면까지 설명한다. 이 영화에서도 단연 압권적으로 보여준다. 그나마 쉽게 인지할 수 있는 건 색의 대비, 흑백과 컬러다. 의도적으로 야휘와 보영의 관계를 색으로 보여준다. 과거와 현재를 구분하는 데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사이가 좋을 때는 컬러로 좋지 않을 때는 흑백으로 처리하며 영화적 기법 사용에 있어 최상의 것을 보여준다. 덕분에 더욱 풍성하게 다각도로 영화를 볼 수 있다. 


독특한 카메라 구도와 슬로우 모션 또는 스톱 모션도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데 한몫 한다. 정확히는 카메라 구도와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이라고 해야 하겠다. 구도만 바꾼다고 해결되진 않기 때문이다. 색의 대비가 관계를 간접적으로 보여준 것이라면, 카메라 구도와 연기 앙상블은 입장 변화를 보여준다 하겠다. 아무런 말 없이 그저 보이는 걸로 상태를 설명하기란 정말 힘들 텐데 말이다. 


예를 하나만 들어보자. 택시 장면 두 컷이다. 영화 초반, 헤어지고 난 후 보영을 본 야휘, 반면 보영은 야휘를 못 본 듯하다. 택시를 타고 떠나버리는 보영, 그때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슬쩍 뒤를 돌아 야휘를 본다. 그때 보영은 야휘가 필요하지 않았던 듯하다. 반면, 보영이 두 손을 다쳐 야휘를 찾아가고 함께 살아갈 때다. 택시릍 타는 둘, 보영은 살며시 야휘에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이때 보영은 야휘가 필요했던 듯하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이 있다. 당대 최고의 감독 위치에 올라선 왕가위 감독에, 당대 최고의 스타 '장국영'과 '양조위'까지. 거기에 아르헨티나 현지 로케와 동성애 소재, 홍콩 반환 정서. 잔치도 이런 잔치가 있을까 싶다. 반면 스토리 자체는 솔직히 볼 게 없으니, 자연스레 속담이 생각날 수 있겠다. 그럼에도, <해피 투게더>로 황홀경을 맛봤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장면, 아니 한 프레임도 놓치고 싶지 않다. 오글거리기 짝이 없는 '한 땀 한 땀 장인이 만들었다'는 어구를 다름아닌 이 영화에 쓰고 싶다. 앞뒤 장면과의 연계를 무시하면서도 오직 최고의 한 장면을 추구하는 '왕가위 스타일'에 딱 들어맞지 않는가. 그렇지만 왕가위 스타일에 함몰되지 않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왕가위 스타일 그 자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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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오래된 리뷰]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자타공인 할리우드 최고의 감독으로 우뚝 서게 한 작품 <밀리언 달러 베이비>. 그에겐 이 작품이 정녕 '백만 불짜리 아기' 같지 않을까. ⓒ㈜노바미디어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많다. 연출과 주연은 물론 제작과 음악까지 맡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아카데미가 두 번째로 작품상과 감독상을 안겼다는 건 차치하고라도, 힐러리 스웽크에게 두 번째 여우주연상을, 모건 프리먼에게 첫 번째(!) 남우조연상을 안겼다는 것도 굉장한 이야기거리다.

 

이외에도 뜬금없을 수 있는 복싱 소재라는 점이 눈에 띈다. 굉장히 '전형적인' 라인의 '여자' 복싱이라는 점이 보기도 전에 분위기를 죽이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겠다. 또한 영화가 나오기도 전부터 큰 논란을 일으킨 '안락사' 논란, 가족은 더 이상 '천륜'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는 일면에 대한 논란은 이 영화가 뚫고 나가야 할 큰 난관이었다. 

 

논란거리로 별 거 아닌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방법은 하나, 제대로 된 이야기가 필요했다. 결과적으로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우리에게 '제대로 된 이야기'를 선사한다. 복싱일까? 죽음일까?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일까.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선사하는 놀랍도록 진심 어리고 제대로 된 이야기를 따라가보자. 

 

복싱 영화, 아니 사람과 사람에 대한 영화

 

영화는 다분히 복싱 영화의 정석을 따른다. 그렇지만 우린 이 영화에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 그리고 가족의 의미를 엿볼 수 있다. 굉장한 영화 기술이다. ⓒ㈜노바미디어



한때 잘 나갔던 지혈사라던 프랭키 던(클린트 이스트우드 분)은 딸과 의절한 상태에서 돈도 안 되는 복싱 체육관을 운영하고 있다. 8년째 애지중지 키우고 있는 빅 윌리, 프랭키한테서 모든 것을 배우고는 잘 나가는 매니저에게로 떠난다. 프랭키가 그를 너무 아껴 절대 챔피언전에 내보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혼자가 된 그에게 매기 피츠제랄드(힐러리 스웽크 분)라는 서른 넘은 여자가 매일 같이 찾아와 운동하면서 자기를 키워주라고 조른다. 거들떠도 보지 않는 프랭키, 하지만 그녀의 진심에 두 손 두 발 들고 만다.

 

훈련만 시켜주고 매니저는 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다른 매니저를 소개시켜 주지만, 그의 행태를 보고 직접 매니저로 나선다. 그러곤 그녀에게 '모쿠슈라'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출중한 실력을 뽐내는 매기, 유럽을 휩쓸고 미국에 돌아와 천하에 이름을 떨친다. 급기야 현 챔피언과 맞붙는 챔피언전을 진행한다. 빅 윌리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였을 것이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를 당하는 매기...

 

복싱 영화는 누구나 생각할 만한 전형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복싱 실력만큼 피와 땀으로 이뤄낸 게 없다는 걸 차용해, 수많은 좌절과 절망을 이겨내고 사각 링에 오른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사각 링에는 오직 적과 나 뿐이라는 점을 차용해, 사각 링을 인생의 축소판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유일하게 기댈 사람인 매니저와의 깊은 우정을 보여주며, 복싱 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고 말이다.

 

이 영화는 굳이 말하자면 '매니저와의 깊은 우정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매니저와 선수의 만남이 참으로 극적이고, 선수의 훈련보다 매니저와 선수의 일상이 더 매력적이며, 선수의 파격적인 승전보보다 점점 더 가까워지는 매니저와 선수의 모습이 더 감동적이다. 이쯤 되면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더 이상 복싱 영화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에 대한 영화겠다.

 

복싱으로 맺어진 가족, 영화는 똑똑하게 보여준다

 

영화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건 '가족'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 가족의 부재->복싱으로 맺어진 인연->가족이 된 그들. ⓒ㈜노바미디어


우정일까, 사랑일까, 복잡한 감정일까. 그전에 들여다봐야 할 게 프랭키와 매기의 가족 관계다. 딸과 의절하고 혼자 살아가는 듯한 프랭키. 그에게 남은 건 오직 체육관과 선수들이다. 매기는 어떨까. 그녀는 가장이다. 아버지를 여의고는 그녀가 아픈 엄마, 여동생과 남동생을 먹여 살린다.

 

그런데 그 가족들이 문제인 것 같다. 필사적인 매기의 노력을 전혀 알아주지 않는다. 오히려 매기를 더 못 부려먹어서 안달이다. 딸과 의절하고 혼자 살아가는 프랭키와 다를 바 없는, 아니 오히려 그보다 못한 가족 관계를 영위하고 있는 그녀다. 그렇게 프랭키와 매기는 가족에 대한 뼛속 깊은 그리움을 안고 살아 간다.

 

그러면서 프랭키는 선수를 키우고 싶어 하고 매기는 선수가 되고 싶어 하니, 이보다 완벽한 궁합이 어디 있겠는가. 그야말로 잘 차려진 밥상이다. 선수와 매니저가 되기로 한 순간, 그들의 머릿속에서 서로는 이미 '가족'이 되어 있다. 영화는 그 과정을 대놓고 보여주지 않는다. 어떤 결정적 사건을 내보이지도 않는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복싱'의 과정으로 보여줄 뿐이다.

 

참으로 똑똑한 영화 문법이다. 그러면 왜 하필 복싱이냐고 할 수 있다. 그건, 복싱이 가지는 특수성이 작용한다. 선수와 매니저의 그 어떤 스포츠보다 끈끈한 관계도 관계지만, 선수가 느끼는 최고의 희열도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직 한 명의 승리자에게 열광한다. '죽음'까지도 불사하고 올라선 '외로운' 사각 링에서 이긴 승리자에게 자신을 투영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는 물론 또 다른 문법이 있지만.

 

영화가 내보내는 이야기와 메시지, 당신은 어떤 의견인가?

 

영화는 가족의 의미를 천륜이 아닌 인연이라 말한다. 또한 안락사를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까지 묻는다. 당신은 어떠한가? ⓒ㈜노바미디어



눈물 콧물을 모조리 쏟아내는 감동을 유발하는 드라마를 신파라고 한다. 신파 자체를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신파가 너무나 활개를 치기에 부담감을 넘어 심적으로 멀리하게 된 게 사실이다. 신파는 사람을 무장해제시켜 제대로 된 관람을 방해할 때도 있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도 분명 신파적인 요소가 존재한다. 그 요소를 극대화 시키면 그 어떤 영화보다 많은 신파적 눈물과 콧물을 끄집어낼 수 있을 것이다.

 

질질 끌지 않았다. 그래서 우린 밖으로 폭발하는 감동 대신 안으로 삭히는 절제의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부담스럽지 않아 또 느껴보고 싶은 그런 감동이다. 삭막하지 않은, 슬프지만 행복한 감동이다. 사막, 가뭄을 연상시키는 마초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활짝 웃을 때나 한 줄기 눈물을 흘릴 때 느낄 수 있는 충격과 의외의 감동이기도 하다. 

 

언젠가 어머니가 말씀하신 적이 있다. '가족은 하늘이 내려준 인연이기에 그 어떠한 경우라도 지켜져야 한다'고 말이다. 지극히 이치에 맞는 말씀이다. 하지만, 현실에 완벽히 들어맞는다고 할 순 없다. 가족은 하늘이 내려준 인연이 아닌 인간이 선택해 만든 인연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는 그렇다고 말한다.

 

누군가를 진짜 사랑한다면, 그(녀)가 원하는 걸 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문제는, 그게 사랑의 차원을 넘어선 '도덕과 윤리'의 차원일 때일 것이다. 한 인간으로서 어떤 선택을 해도 어딘가 완전히 무너질 수밖에 없는. 도덕과 윤리의 잣대만을 들이대 그대로만 따를 수 있다면 편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 세상은 절대 그렇게만 돌아가지 않는다.

 

정답은 없다. 이 영화가 은근히 또는 파격적으로 드러내며 내보내는 이야기와 메시지들은 여전히, 아니 앞으로도 계속 논의를 이어갈 것이다. 이에 나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당신은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가. 생전 처음 보는 이를 '백만 불짜리 아기'라고 말하며 그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삶의 한 축을 내놓을 수 있다고 말하는 이 영화를, 어떤 시각으로 볼 것인가. 나는 상당한 동의의 표시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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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킹스 스피치>


역사상 유명하다고 하지만,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진 몰랐다. '말더듬이' 왕의 진심을 다한 국민으로의 연설을. ⓒ(주)화앤담이엔티



허를 찔렸다. '말더듬이'라는 크게 특별할 것 없는 상태가 이리도 긴장감을 유발할 줄이야. 자신이 말더듬이라는 걸 알면서도,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지극히 중요한 연설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야 하다니.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의 심정은 어떠한가. '이게 뭐라고 이리도 떨리나'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영화 <킹스 스피치>의 짧지만 강렬한 시작 장면에서 느낀 감정들이다. 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부친이자 전임 국왕 조지 6세의 실화를 스크린으로 옮겨 감동을 자아내고자 했는데, 제대로 성공시키며 감격을 주었다. 우린 그 감격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말더듬이 왕 조지 6세의 진심을 다한 연설 하나만으로. 


조지 5세에 이어 왕위에 오른 에드워드 8세는 역사상 유명한 스캔들을 일으키며 하야하고 동생 조지 6세(콜린 퍼스 분)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생각지도 못한 왕 노릇을 해야 하는 처지가 너무 부담스러운 조지 6세, 특히 라디오야말로 왕 노릇의 절대적 기반이 된 시대에 '말더듬이'로서 헤쳐나가야 할 난관이 너무 높다.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언어 치료사 라이오넬 로그(제프리 러쉬 분)로부터 치료를 받아오긴 했지만, 큰 진전이 없는 것 같기도 했거니와 기상천외한 치료 방법에 기가 질려 오다가다 하는 상황이었다. 아버지 조지 5세가 돌아가셨을 때나 형 에드워드 8세가 자신에게 왕위를 물려줬을 때 심리적 위기가 찾아와 관계가 틀어지지만, 로그에 대한 믿음으로 계속해서 찾아가는 조지 6세다. 


정말 잘 만든 웰메이드 일회용 영화


정말 잘 만든 영화다. 더할 나위가 없다. 그렇지만 일회용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주)화앤담이엔티



흔히 무난하고 무탈하게 잘 만들어진 영화를 '웰메이드 영화'라고 하는데, 이 영화가 그렇다. 참 잘 만든 영화란 생각이 든다. 드라마 요소가 적절히 배합된 실화를 바탕으로 꼼꼼히 손 본 듯한 스토리를 중심으로, 프로페셔널하고 충실하게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며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들, 영화에서 그 존재를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자신의 목소리와 색채를 최대한 배제한 듯한 감독, 독특하다기보다 정형화된 안정감이 인상적인 장면 미장센까지, 모두가 영화만을 보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한 느낌이다. 


결과는 흥행과 비평 양면의 완벽한 대박. 단도직입적으로, 제8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을 휩쓸었다. 사실상 여주가 없는 영화로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영예다. 더불어 전 세계적으로 4억 천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며 제작비 대비 26배가 넘는 흥행을 기록했다. 엘리자베스 2세도 극찬을 보냈다고 하니, 누가 보아도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 번이면 족할 그런 영화라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겠다. 두 번, 세 번, 계속해서 보면서 이야기와 숨겨진 이면을 확대재생산하며 새로운 해석과 의미를 부여하는 활동을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영화를 보는 행위 중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활동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처럼 좋은 영화임에도 할 수 없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굳이 찾아보라면, 실제와 영화 속 이야기를 비교해 보는 정도? 하지만 그건 결코 영화가 중심이 될 순 없겠다. 영화의 주요 모토인 조지 6세의 말더듬이 원인과 치료 과정을 다시 들여다보는 건? 그것 또한 의미는 있겠지만 영화가 중심이 될 순 없겠다. 여러모로 <킹스 스피치>는 정말 잘 만든 일회용 영화다. 그렇다고 킬링타임용은 아니다. 


 돌리지 않고 정면만 바라본 선택


이 영화가 가장 잘 한 점이 바로 조지 6세와 라이오넬 로그다. 이 두 사람에 방점을 찍고 다른 곳을 보지 않았다. ⓒ(주)화앤담이엔티



이야기가 산으로 갈 만한 요소들이 도처에 깔렸다. '왕의 연설'이라는 하나의 극점을 향해 치달렸으니 망정이지, 조금이라도 눈을 돌렸다면 영화의 만듦새는 여지 없이 흐트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 유혹이 꽤 강했을 텐데, 그 요소들이 꽤 재밌기 때문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시대극이니만큼 조금만 건드려도 봇물처럼 뿜어져 나올 게 아닌가. 그것도 현존하는 영국 여왕의 직계 선대에 관한 이야기이니.


완전히 바뀐 세상에 대처하는 왕실의 모습, 에드워드 8세의 세기의 스캔들, 스탠리 볼드윈이나 네빌 체임벌린이나 윈스턴 처칠과 같은 역사적 인물,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전황 등 수많은 이야깃거리가 산재되어 있다. 그럼에도 영화는 꿋꿋이 한 길을 걸어간다. 조지 6세의 말더듬이 치료, 그리고 라이오넬 로그. 


시대상을 직접적으로 그려내지 않은 선택, 필자를 포함해 약간의 불만이라도 갖는 이들이 있을 수 있겠다. 너무 한 개인에 천착해 지극한 목적 지향이 된 게 아닌가. 그리하여 대작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음에도 소품의 면모를 띠게 된 게 아닌가. 


영화는 온몸으로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치밀하고 꼼꼼한 각본은 결코 그 부분들을 간과하지 않는다. 한 장면, 한 표정, 한 마디가 눈으로 머리로 가슴으로 와 닿아 꽂히는 것이다. 조주연을 가리지 않고 모든 이들을 잘 살펴야 한다. 어느 영화인들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겠냐만, 이 영화는 그 강도가 조금 더 쎄다고 하겠다. 


영화 자체가 가진 압도적 힘


비록 일회용 영화라곤 하지만, 영화 자체가 가진 힘이 엄청나서 계속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소재와 주제가 가진 힘. ⓒ(주)화앤담이엔티



<킹스 스피치>는 계속해서 다시 보며 의미 부여를 할 수 없는 대신, 영화 자체가 가진 힘 때문에 종종 다시 찾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가와 비슷하다고 할까. 이 영화로 지도자의 덕목을 엿볼 수도 있고, 믿음이란 무엇인지 짚어볼 수 있으며, 치료의 진면목을 들여다볼 수도 있는 것이다. 즉, 이 영화가 채택한 소재와 주제가 갖는 힘이 엄청나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상황에 이 영화가 문득 떠오르는 이유다. 다름 아닌 '지도자의 덕목'이다. '조지 6세가 로그와 더불어 믿음과 끈기로 말더듬이 장애를 극복하는 휴먼 스토리'라는 큰 이야기 이면에 있는 여러 이야기들이 우리가 들여다봐야 할 것들이다. 그것들이 이 영화를 찾게 만든 이유일 테다. 


조지 6세, 그는 어렸을 때 강압적인 아버지로부터 '교정'을 당했다고 한다. 안짱다리를 교정하기 위해 부목을 착용했고 왼손잡이였던 그는 오른손잡이로 교정해야 했다. 또 유모의 방치로 위염을 앓기도 했다고. 그 때문에 말을 더듬었는지 선천적으로 말을 더듬었는지는 알기 힘들지만, 왕이 되기에는 힘든 겉모양(?)을 띠고 있었다. 그럼에도 치열한 고민과 노력으로 장애를 극복하고 조금 더 국민에게 다가 갔던 것이다. 오히려 콤플렉스가 '왕'이라는 존재가 가지는 위압감과 오만함을 털어내주었다. 


언어 치료사 로그의 존재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학위도 없고 당연히 정식 언어 치료사라는 타이틀도 없는 로그를 실력 하나로 뽑아 가까이 하는 대범함을 지닌 조지 6세. 그는 지극히 자신의 진심을 자신의 목소리로 전달하기 위해 치료를 받았다. 로그는 그의 말더듬이를 치료하려고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그의 심리를 들여다보며 '안'부터 치료하고자 했다. 말더듬 장애의 근원을 찾는 게 맞다고 본 것이다. 고로 여기서 부각되는 건 '목소리'겠지만, 중요한 건 '진심'이겠다. 목소리는 진심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조지 6세의 진심은 무엇일까. 


"왕은 국민을 대변하기 때문에 왕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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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오래된 리뷰]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예쁜 영화'의 정점에 서 있는 '웨스 앤더슨'의 정점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다. ⓒ이십세기폭스사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는 예쁘다. 파스텔 톤과 원색의 환상적인 색감 조합과 완벽한 좌우대칭형 수평 구도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예쁨을 선사한다. 그 앞에 '예술적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데, 그 정점에 있는 영화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아닌가 싶다. 


세계대전 분위기가 타오르고 있던 1927년, 알프스에 위치한 가상 국가 주브로브카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는 그 화려하기 그지 없는 외관답게 전쟁과는 무관한 듯한 느낌이다. 호텔의 모든 것에 관여하는 총지배인 구스타브, 그가 총애하는 신입 로비 보이 제로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주요 고객이자 구스타브의 연인인 세계 최대 부호 마담 D.가 피살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구스타브와 제로는 그녀를 기리기 위해 떠난다. 마담 D.가 아낀 엄청난 그림을 가족이 아닌 구스타브에게 남긴다는 유언과 함께, 마담 D.의 엄청난 유산을 노리던 아들 드리트리에 의해 용의자로 몰린다. 구스타브와 제로는 살인 누명을 벗고 다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돌아가기 위해 모험 아닌 모험을 겪는다. 


앤더슨 터치, 앤더슨 스타일, 앤더슨 월드


단 8편으로 거장의 반열에 올라선 웨스 앤더슨. 그 옆에 붙는 수식어들이 다양하다. ⓒ이십세기폭스사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명실공히 2014년 최고의 작품으로, 당시 미국 아카데미와 전미비평가, 영국 골든글러브와 런던비평가, 베를린국제영화제 등 전 세계 주요 상을 휩쓸었다. 이 영화와 함께 당시 주목을 받았던 영화들에는 <라라랜드> 데미언 차젤레 감독의 <위플래쉬>, <레버넌트>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버드맨>, 그리고 <보이후드> 등이 있었다.


웨스 앤더슨은 결코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이는 아니다. 특별할 게 없는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들어내는 데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이는 '앤더슨 터치'라고 명명되어 있다. 그 손길의 특별함에는 '앤더슨 스타일'이라고 불리워지는 게 마땅한 그만의 미학(미장센)이 자리하고 있는데, 우린 이 영화를 통해 그 절정을 맛볼 수 있다. 


그는 단 8편의 장편영화를 연출했는데, 이제는 스타일뿐만 아니라 '세계'를 정립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정말 예쁘다'를 연발하지 않을 사람을 찾기 힘들 것이다. 화면이 전혀 역동적이지 않지만 우리의 눈은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한 화면 안에 배치되어 있는 완벽한 구도의 물상들을 쫓아가기 바쁘다. 그러고선, 정물화처럼 보이는 화면 전체까지 훑어야 한다. 모든 화면들이 이러니 달리 도리가 있겠는가. 바쁘게 움직여야지. 


고급진 미장센을 추구하는 감독들은 많다. 화면에 들어가는 모든 물상들을 허투루 하지 않고 완벽하고 꼼꼼하게 배치하는데, <싱글맨>의 톰 포드 감독이나 <장화, 홍련>의 김지운 감독이 바로 생각난다. 하지만 웨스 앤더슨의 경우, 배우조차 화면을 구성하는 여러 물상 중 하나로 보일 정도의 미장센을 보인다. 


그 화면 구성이 사실 현대적이거나 앞서 예를 든 대표적 미장센 감독들과는 다르게 세련되지도 않다. 예쁘다는 걸 빼면, 그 자체로 근현대 또는 근대적이라고까지 할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배경 또한 20세기 초중반이니만큼 더욱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화면 구성뿐만 아니라 화면 구도나 영화를 구성하는 여러 기법과 소품, 하다 못해 캐릭터 특성까지도 그러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는 고전주의자가 아닐까. 


완벽한 미학과 흥미진진한 이야기의 '균형'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경우, 마냥 예쁘기만 하지 않다. 그밖에 이야기나 연기에도 공을 들여 균형을 맞추었다. ⓒ이십세기폭스사



아무리 완벽한 미학을 선보인다 하더라도, 오로지 그것뿐이라면 이와 같은 명성을 획득하진 못했을 것이다. 그는 그가 연출한 모든 영화의 각본을 직접 쓴 걸로도 유명한대, 영화의 모든 것을 완벽히 정형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완벽한 지배인 구스타브의 모습과 흡사하다. 


스토리가 상대적으로 떨어져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그건 배우들의 연기도 마찬가지다. 그와 함께 하는 배우들은 하나 같이 유명한 연기파들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워낙 예쁘고 흐트러짐 없는 화면을 선보이기 때문일 텐데, 전작 <문라이즈 킹덤>에서도 그런 기분을 맛보았다. 아이들의 순수한 사랑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말도 안 되게 예쁜 화면들과 그에 맞는 특이한 캐릭터들이 압도해버려서 거의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경우는 어떨까. 


이중도 아닌 삼중 이야기 구조를 굳이 택해 이야기 자체에 흥미를 북돋고는, 지체 없이 본론으로 들어가 버린다. 물론 그 사이에 계속해서 보여주는 호텔의 황홀한 외관은 한 번 보면 숨이 멋는 듯한 기분을 맛보게 해준다. 그리고 여지 없이 '황금율'까지 생각나게 하는 대칭 구도의 화면들을 쉴 새 없이 쏟아붓는다. 정신을 차리기 힘들다. 그럼에도 빠르고 흥미진진한 이야기 진행 덕분에 이야기와 배우들의 연기도 죽지 않는다. 그 '균형'에 많은 공력을 쏟은 느낌을 주는 영화다. 


전혀 정반대의 스타일을 추구할 것 같지만, 웨스 앤더슨의 영화는 홍상수의 영화를 생각나게 한다. 정해진 틀에서 한 치의 오차도 있어선 안 될 것 같은 앤더스과 모든 것들이 자유로울 것 같은 홍상수가 비슷하다니,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영화에서 감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라는 점과, 반드시라고 할 만큼 각본과 연출을 병행한다는 점과, 정반대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영화적 미학이 하나 같이 좋은 영화를 탄생시킨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완벽히 정해져 있는 미학과 아무것도 정해져 있는 않은 미학은 정반대이자 하나이다. 


이보다 '예쁜' 영화는 없다


'예쁘다'를 연발한다. 황홀할 지경이다. 그냥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더 말해 무엇하랴? ⓒ이십세기폭스사



웨스 앤더슨의 작품을 논할 땐 웨스 앤더슨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자칫 웨스 앤더슨만 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것이, 그의 영화에서는 그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오는 최악의 단점은, 그의 차기작이 기대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렇게 예쁜 영화를 또 다른 형식으로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고 당연히 생각할 수 있지만, 어차피 비슷한 느낌일 게 뻔하지 않은가. 


(다분히 의도된 계산에 의한 것이겠지만) 다행인 건 그가 다작을 하는 감독이 아니라는 것. 그가 처음으로 장편을 내놓은 게 1996년, 마지막으로 내놓은 게 2014년, 그리고 지금이 2017년, 20년이 흐르는 동안 내놓은 작품이 8편이니 2~3년마다 한 편씩 내놓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다음 작품은 2018년에 개봉 예정이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정점을 찍은 만큼, 조금은 다른 시도를 해봄이 어떨까 싶다. 물론 '쇠뿔도 당길 때 빼라'는 속담이나 '한 우물만 파라'는 격언도 있고, 그래야 진정한 장인이 된다는 사실도 틀림이 없다. 그렇지만 아름답고 예쁠수록 식상하고 진부하게 되기 쉽다. 


얼마전 <문라이트>를 말하며 '이보다 아름다운 영화는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름다움에는 여러 면들이 있으니, 누군 공감하고 누군 공감하지 않더라도 비교적 쉽게 단언할 수 있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도 한 마디 하고 싶은데 '이보다 예쁜 영화는 없다'라고 하고 싶다. 그야말로 다른 무엇도 아닌 '시각적 예쁨'이다. 이 예쁨에는 절대적 면만 있을 뿐이다. 단언하건대, 가장 예쁜 영화다. 


이보다 예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웨스 앤더슨 자신뿐이다. 앞서 그의 차기작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딱 한 가지 기대하는 게 있다면 이것뿐이다. 아니, 부탁한다. 이보다 더 예쁜 작품을 들고 와달라. 두 시간 동안 눈호강 좀 시켜주고 싶다. 그 전까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달래고 있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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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호프 스프링즈>


노년의 사랑이 특별할 건 없다. 이 영화는 지극히 평범하고 현실적인 노년의 사랑을 코믹하게 그렸다. 특별함 대신 평범함을 선택했다. ⓒ데이지엔터테인먼트



결혼한 지 30년이 갓 넘은 노부부 케이(메릴 스트립 분)와 아놀드(토미 리 존스 분). 그들은 아놀드가 허리를 다쳤다는 이유로 각방을 쓴다. 케이가 큰 맘 먹고 여자로서의 자존심도 버려 가며 먼저 다가가려 하면 아놀드는 피곤하다며 단칼에 거부한다. 단지 허리를 다친 것 때문이 아닌 것 같다. 사랑이 식어버린 게 아닐까. 


그래도 케이는 매일 아침 출근하는 아놀드를 위해 계란과 베이컨을 대령한다. 신문을 보며 당연한 듯 받아먹는 아놀드, 케이는 짤막한 감사 인사와 가벼운 키스를 원하지만 그마저도 이젠 없다. 케이도 출근하는 건 마찬가지, 이런저런 것들을 따져 봐도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이 부부 생활에 말이다. 뭔가가 빠져 있다. 사랑? 섹스? 


2000년대 이후로 노년의 사랑을 그린 영화가 많이도 나왔다. 전에 없는 풍년인데, 급격한 노령화 때문인 것으로 사료된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은 자칫 노년의 사랑이 특별하다고만 느끼게 할 수 있는 바,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반면 역시 노년의 사랑을 그린 <호프 스프링즈>는 전 세계 노부부가 느낄 만한 평범한 주제로 특별함을 배제했다. 일명 '섹스리스 부부'. 노년의 섹스리스와 사랑을 코믹하게 그렸다. 


노부부의 섹스리스 문제 풀기


다름 아닌 노부부의 '섹스리스 '문제. 코믹하게 그려내지만, 들여다보면 굉장히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 이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자못 진지하다. ⓒ데이지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섹스에 사랑이 포함될 순 없지만 사랑에 섹스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랑 없는 섹스는 가능하지만 섹스 없는 사랑은 불가능하다는 말, 동의하는가? 플라톤의 <대화> '항연'편에서 비롯된 '플라토닉 러브'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할 테지만, 일반적인 견해에서 볼 땐 절대적 진리에 가깝다. 


케이와 아놀드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반적인 노부부, 대부분(일 거라고 생각되는) 노부부처럼 그들도 식어버린 사랑과 섹스리스 문제를 겪는다. 특히 케이는 이를 참기 힘들다. 그녀는 질색하는 남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 진행되는 비싼 상담에 신청한다. 자그마치 4000달러나 하는. 


케이는 그곳으로 떠나는 것 자체가 좋다. 이렇게 둘만의 시간을 갖는 게 얼마만인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떠나 일탈하는 게 얼마만인가. 아놀드도 따라왔다는 건 조금이라도 마음을 열었다는 증표가 아닌가. 하지만 순조롭지 않다. 상담박사는 그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내리고, 그들에게 해야 할 '숙제'를 준다. 아놀드는 이에 대노하고는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케이는 충격을 받는데...


문제 풀기의 제1단계는 문제를 직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문제를 직시하지도 못한 채 문제 풀기가 끝나버린다. 문제가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두렵기 때문이다. 그 단계를 지나가면 한층 수월할 터, 영화는 일면 '문제 풀기'의 단계를 하나하나 보여주는 것 같다. 노부부의 섹스리스 문제. 


'우린 문제 없이 잘 살고 있다'고?


우리만 그런 줄 알았다. 뻔히 보이지만 아무 문제 없다고 허풍을 떠는 것 말이다. 특히 '가족'이 된지 오래된 이들에게서 흔히 발견할 수 있다. ⓒ데이지엔터테인먼트



'가족끼리 왜 이래'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꺼내는 말이 더 이상 우스갯소리처럼 들리지만은 않게 만든다. 삶의 질을 위해서, 노년의 행복을 위해서 간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중년, 노년 부부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이 아닌 '정'으로 산다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영화는 중년, 노년 부부들이 '정'으로 사는 게 비단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라는 걸 알려준다. 서양도 마찬가지인 바, 인류보편적인 삶의 진행인가 보다. 하지만 대부분이 그런 방향으로 간다고 해도 그것이 정답은 아니다. 우리나라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 나오는 중년 부부, 비록 현실은 아니지만 박해미와 이준하 부부의 닭살 돋는 모습이 어찌 '비정상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을까. 


부부상담, 노부부의 섹스리스 문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정곡을 찌르고 들어가 오랫동안 계속되어 지치고 곪디곪은 사랑의 상처를 치료하고자 한다. 당연히 반발이 심하다. 누구라도 처음엔 반발이 심할 터, '우린 문제 없이 잘 살고 있다'에서 시작해 급기야 상담사를 욕하게 될 것이다. 그 다음엔 상대방을 질타할 것이고. 


서로 자신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속시원히 드러내는 건 정말 쉽지 않다. 30년을 넘게 함께 산 '사랑하는 사람'과 라면 말이다. 그렇지만 일단 1단계를 넘어서면 일사천리다. 그야말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발견한 것. 이제 노력하면 된다. 물론 그 노력이란 게 나이와 세월에 심각하게 가로막힐 수 있겠다. 그러면 '이해'와 '배려'의 2단계에 도달한 거다. 


볼품없는 노부부의 섹스를 응원한다!


우리는 이 영화를 보며 노부부의 섹스를 응원하게 될 것이다. 아니, 궁극적으로는 사랑을. ⓒ데이지엔터테인먼트



영화의 노부부에게도 한 때 서로를 향한 끝모를 갈망이 있었다. 젊었을 때, 지금은 희미한 기억 속에서나마 겨우 존재하고 있는 감정들이 그때는 항상 서로를 감싸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은 남아 있지 않은가? 아니다. 사랑도 나이가 들어 지치고 힘겨워 할 뿐이다. 그래서 본분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거다. 


이 사랑스러운 영화는, 볼품없는 노부부까지도 사랑스럽게 만들고 심지어 그들의 섹스를 응원하게 만드는 이 영화 <호프 스프링즈>는, 그냥 그렇게 자신의 소임을 다한 듯 식어 있는 사랑의 불꽃이 봄에 새싹이 솟아나듯 다시 일 수 있다고 말한다. '정상체위'만을 일삼는(?) 남편에게 아내의 '섹스 판타지'를 선사하고, 자신만이 사랑의 피해자인 줄 알았을 아내에게 남편의 생각지도 못한 피해 사실을 말해주면서. 


현실과 이상은 구분해야 하겠지만, 암울한 현실과 유쾌한 이상 모두를 선사하는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그 구분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적당히 암울한 게 아닌 정녕 암울한 현실을 보여주며, 충분히 실현 가능하지만 보이지 않는 허름한 벽에 막혀 있을 뿐인 이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두 눈 꼭 감고 한 번만 해보자. 산전 수전 다 겪은 부부답게 한 번만 해보면 될 일이다. '가족끼리 왜 이래' '우린 아무 문제도 없어'라는, 만병통치약처럼 군림하는 해괴한 주장은 집어치우고 그저 해보면 된다. 도대체 뭘 하느냐고? 영화를 보면 되겠다. 아주 상세하게 알려줄 것이다. 아마 하지 않고는 못 배길듯, 한 번 하면 또 하고 싶어 할듯. 참고로 영화는 '청불', 상상은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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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고지전>


<의형제>의 장훈 감독과 <공동경비구역 JSA>의 박상연 작가가 의기투합했다. 그들의 전 작과 이어지는 감정선이 자못 예사롭지 않다. ⓒ쇼박스




1953년 2월, 6·25전쟁은 여전히 휴전 협정 중에 있다. 하지만 매일 같이 뺏고 뺏기는 고지 때문에 제대로 선을 긋고 휴전을 할 수가 없다. 방첩대 소속 강은표 중위(신하균 분)는 해서는 안 될 불순할 말을 내뱉어 영창에 갈 위기에 처하지만, 상사의 선처로 동부전선에 배치되어 사건 하나를 조사하게 된다. 최전방 애록고지의 악어 중대에서 죽은 중대장 시신에 아군 총알이 발견된 것. 


애록고지에서 은표는 죽은 줄만 알았던 친구 김수혁(고수 분)을 만난다. 이등병이었던 그는 2년 만에 중위가 되어 있었다. 한편 이제 갓 약관의 나이가 된 듯한 청년 신일영(이제훈 분)이 임시중대장으로 대위 계급장을 달고 있는 걸 보고 기시감을 느낀다. 그는 모르핀 중독 상태였다. 이후 은표는 악어 중대의 비밀을 하나 둘씩 알아간다. 


겁쟁이 수혁이가 어떻게 이리도 매섭고 대범하게 변했는가, 약관의 청년은 어떻게 대위 계급장을 달고 있고 또 왜 모르핀 중독 상태가 되었는가, 죽은 중대장 시신에서 아군 총알이 발견된 사유는 무엇인가, 전쟁통에 술은 어떻게 구할 수 있었는가, 그리고 이들이 쉬쉬 하는 그 예전 '포항 철수 작전' 때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 


전쟁이 주는 참혹함,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참혹함


이 영화가 진정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기 위해선 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참혹함이 아닌, 진짜 참혹함을. 그들은 '왜' 서로 죽이고 죽였어야 했나? ⓒ쇼박스



영화 <고지전>은 <태극기 휘날리며>와 <웰컴 투 동막골> 이후 오랫동안 맥이 끊겼던 6·25 전쟁 배경의 전쟁영화이다. 이 영화는 내적으로 많은 찬사를 받았지만 외적으로 많은 논란이 일며 흥행에 실패했고,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6·25 전쟁영화는 나오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전과 이후에  <포화 속으로>와 <인천상륙작전>이라는 영화가 있었지만, 이 영화들이 맥을 잇는 건 어불성설이다. 공교롭게도 감독이 같다. 비극이다. 


지금에 와서 60년도 더 된 전쟁 이야기를 꺼내 무엇하랴 싶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전쟁을 그저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전쟁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려 한다. 대표적으로 양대 산맥이 있을 텐데, '애국'과 '반전'이 그것이다.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한 방편으로 전쟁을 그린 것, 전쟁을 반대하기 위한 방편으로 전쟁을 그린 것. 


<고지전>은 '반전'에 속한다 하겠다. 그렇지만 그런 영화는 액션이 상대적으로 약하고 감동도 약한 반면 참혹함이 상대적으로 강하고 생각할 거리가 많으며 전쟁의 당사자들에게 일면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요소들이 많아, 논란이 일기 쉽고 외면 받기 쉽다. 어찌하여 모든 걸 파괴하는 '전쟁'에 액션과 감동이 주가 될 수 있을까마는, 그게 그렇지 않은가 보구나 싶다. 


이 영화는 전쟁이 주는 눈에 보이는 참혹함보다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참혹함을 전하려 한다. 6·25전쟁의 특수성이 기인한 것일 수 있다. 사실 이 전쟁은 1951년에 끝났다. 하지만 이후 2년 6개월 동안 휴전 협정이 계속되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이 되풀이 되는 '고지전쟁'으로 50만 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다. 그들은 전쟁을 해야 하는 이유도 모른 채 동포를 죽이고 자신 또한 죽어갔다. 


'이' 전쟁은 생존의 숙제일 뿐, 애국이 낄 자리는 없다


'이' 전쟁, 6.25는 특수성을 진하게 띠는 전쟁이다. '동포'끼리 '애국'을 걸고 싸우는 모양새. 하지만 이 영화는 '생존'일 뿐이라고 말한다. 단지 내가 죽기 싫어 상대방을 죽이는... ⓒ쇼박스



영화는 사건을 통해서, 캐릭터를 통해서, 대사를 통해서 시종일관 반전 메시지를 드러낸다. 정확히는 '6·25 반전'. 북한군 저격수 '2초'를 잡기 위해 10명의 정예부대를 이끌고 길을 나선 수혁, 17살 막내가 2초에게 당한다. 아무도 그를 구하러 가지 않고 오직 2초를 제거하기 위해 혈안이다. 은표의 분노에 수혁이 날리는 한마디, '네가 전쟁을 알아? 네가 지옥을 알아? 난 아주 잘 알아. 매일 같이 수많은 남상식이 죽어간다고.'


엄청난 수의 중공군이 밀려 오는 상황에서 새로 부임한 대위 유재하 중대장은 상부의 명령에 따라 끝까지 항전할 것을 명한다. 이에 유재하를 쏴죽이고 중대장이 된 수혁은 즉각 퇴각 명령을 내린다. 이 상황을 그냥 넘길 수 없는 은표에게 수혁이 날리는 한마디, '나를 죽이면 네가 중대장이 된다. 그러면 부대를 지휘하게 될 텐데, 네가 우리 부대원들을 살릴 수 있을 것 같아? 자신 있으면 어서 쏴. 시간이 없어.'


허무하고 어처구니 없는 죽음, 그 죽음을 방조하고 실행하는 이들, 그런 그들도 누군가에게 죽고, 그들을 죽인 이들 또한 누군가에게 죽는다. 전쟁에서 죽음은 일상일 테지만 인간이라면 절대 죽음을 일상처럼 받아들일 수 없을 터, 하지만 그들은. 그들은 죽음을 방조하고 죽음을 당연시하고 죽음을 자초한다. 그렇다고 죽음이 친근하지도 죽음을 환영하지도 죽음과 대면하지도 못한다. 죽음의 지옥에서 허우적댈 뿐이다.


문제는 이 전쟁의 근원에 있다. 사실상 끝난 이 전쟁을 '왜' 지속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전쟁터에 있는 이상 '전쟁 자체'에 대한 의문은 치우고서라도, 다름 아닌 '이 전쟁'에 대한 의문은 풀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다. 그들은 그저 최소한으로 내가 죽기 싫고 내 부대원들을 죽게 만들기 싫어 상대방을 죽인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들에게 이 전쟁은 생존의 숙제일 뿐이다. 거기에 애국은 낄 자리가 없다. 


더 이상의 전쟁영화는 안 된다, 하지만 <고지전>은 되새겨야 한다


수많은 전쟁영화를 봐왔다. 이제 더 이상 전쟁영화는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고 누누이 외친다. 하지만 계속해서 만들어지는 바, 그렇다면 차라리 <고지전> 같은 영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쇼박스



전쟁영화는 더 이상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 어떤 이유로든 전쟁영화는 그 자체로 '전쟁'에 대한 미화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상업영화라는 틀로 전쟁을 대하는 이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지금은 평화의 시대, 전쟁은 우리와는 먼 얘기, 아무리 팔다리가 잘려나가고 내장이 튀어나와도 그게 바로 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잘 들지 않는다. 내가 그곳에 있다면 상대방이 그렇게 될 거라는 무의식, 애초에 나는 그곳에 없기에 그곳을 향해 갖게 되는 동경, 그리고 무엇보다 전쟁이 갖는 초유의 액션. 


반전을 지향하는 전쟁영화라고 해도 이 정도인데, 애국심을 고취시키고자 하는 전쟁영화는 어떻겠는가. 전쟁 승리를 상정해놓고는, 어떻게 상대방을 몰살시켜 버릴까 고심하는 전쟁영웅, 거기에 여지 없이 중심축을 이루는 극단의 이데올로기. 우리는 여기서 이데올로기에 따른 애국심이 고취됨과 상관 없이, 전쟁 자체에 대한 동경을 전에 없이 끌어올리게 된다. 이 얼마나 멋진가, 이 얼마나 필수불가결한 전쟁인가. 


지난 이야기지만, <고지전>의 흥행 실패가 주는 씁쓸함과 <인천상륙작전>의 흥행 성공이 주는 참혹함은 앞날을 걱정케 한다. 영화의 만듦새와 극단의 이데올로기를 부추기는 요소들의 향연을 뒤로 한채, 전쟁을 미화하는 본새가 그렇다. 앞으로 전쟁영화는 반드시 또 나올 텐데, 모르긴 몰라도 아마 <고지전>이 아닌 <인천상륙작전>류일 가능성이 크다. 정녕 또 한 번 전쟁을 치르고 싶은 것인가?


영화에 많은 논란이 있음에도, 나아가 전쟁영화가 만들어지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고지전>을 되새겨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우린 진실을 똑바로 마주해야 한다. 거기에 지옥이 있을지라도, 아니 아마 지옥이 있을 가능성이 농후할 텐데 그럼에도 우린 바로 그곳을 주시해야 한다. 지금도 어딘가에선 지옥과도 같은 '고지전쟁'이 펼쳐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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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초록물고기>


'거장' 이창동 감독의 시작 <초록물고기>. 우리는 이 영화에서 지금으로선 기가 막힌 한석규, 송강호의 동반 출현을 볼 수 있다. ⓒ시네마 서비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0년 전, 1997년 2월 초에 영화 한 편이 개봉한다. 한 영화감독의 데뷔작, 심상치 않다. 이런 영화가 이전에 있어나 싶다. 흥행 미풍, 호평 일색이다. 제목은 <초록물고기>, 감독은 이창동. 거장의 출현을 알린다. 당시 그는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 1983년에 데뷔한 중견 소설가였다. 이 작품 이전에 <그 섬에 가고 싶다> 각본과 조연출을 성공리에 마치고,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각본으로 이름을 떨친다.


그러니 초짜가 아닌 중고 신인의 데뷔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이 작품은 한국 영화계의 사건 중 하나였다. 물론 그 중심엔 이창동 감독이 있다. 그는 이후 20년 동안 단 5편의 연출작을 남기는데, 무엇 하나 빠지는 게 없다. <초록물고기>부터 시작해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시>까지, 앞의 세 편으로 이미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올라섰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가 <박하사탕>인데, 때문에 가장 좋아하는 영화배우가 설경구일 때가 있었다. 거장의 눈썰미는 시나리오와 더불어 배우에게도 가 닿아 있는 것 같다. 설경구를 비롯해 송강호, 문소리, 정진영 등은 오로지 그의 눈썰미에 의해 뽑혀 함께 한 배우들이고 하나 같이 대배우가 되었다. 우린 <초록물고기>에서 한석규와 송강호와 문성근이 함께 하는 마법 같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외형은 느와르, 내형은 누구나의 이야기


소시민적 이야기에서, 느와르로, 누구나의 이야기로 흘러가는 리얼리즘 진한 작품. 소설 한 편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시네마 서비스



시작은 제대 귀향 기차. 막동(한석규 분)은 우연히 아리따운 묘령의 여인 미애(심혜진 분)을 만난다. 첫눈에 반한듯, 하지만 그녀의 스카프만 얻었을 뿐 더 이상 인연을 이어가지 못한다. 신도시 개발이 한창인 일산의 옛날 집으로 돌아온 막동, 뭐라도 해보려 하지만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기술도 없다. 큰형, 작은형, 막내여동생을 찾아 다니며 회포나 풀 뿐이다. 계란장사를 하는 작은형과의 한바탕은 그에게 참으로 귀한 재산이다.


와중에 걸려온 여인의 전화, 수소문해보니 귀향 기차에서 만난 미애다. 알고 보니 그녀는 나이트클럽 전속 가수이자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는 보스 배태곤(문성근 분)의 여인이다. 배태곤의 눈에 띈 막동, 곧 그의 아래로 들어가 승승장구한다. 보스 몰래 하는 미애와의 사랑도 꽃피운다. 


그런데, 소싯적 배태곤의 보스였던 김양길이 갑자기 나타나면서 사태는 일변한다. 일대를 주름잡던 배태곤의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든 것. 급기야 배태곤은 김양길에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지만 이대로 있을 배태곤이 아니다. 그는 막동에게 극비리에 중요한 임무를 떠앉기는데... 막동의 앞날은 어떨까. 


리얼리즘의 대가 이창동, 그는 소시민을 잘 그려내기로 정평이 나 있다. 현대사회에서 소외된 또는 중심에 서지 못한 이를 내세워, 그로 하여금 대표성을 띨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초록물고기>는 외형은 느와르이지만, 들여다보면 누구나의 이야기, 드라마이다. 막둥이가 살아가는 동향, 그의 가족들 모습, 그를 둘러싼 환경들이 모두 그렇다. 


조폭 영화? 삶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명작


흔한 조폭 영화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삶의 지독한 아이러니를 리얼하게 보여주는 명작이다. 소시민과 재개발과 조폭. ⓒ시네마 서비스



벌써 20년이 되었으니 기억이 가물가물할 만도 하다. 기억 속 <초록물고기>는 같은 해 개봉해 숱한 화제를 뿌린 문제작 <넘버 3>와 비슷하다. 한석규와 송강호가 나오는 조폭 영화라서 그런지, <넘버 3>가 뇌리에 더 많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초록물고기>를 보기 전에, 현재 한국 배우 빅3인 한석규, 송강호, 최민식을 한 영화에서 볼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건 <넘버 3>인데. 


그런 기대, 조폭 영화를 볼 때면 으레 가지게 되는 그런 기대를 가지고 영화를 보면 이게 무슨 <전원일기>냐 하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영화 초반에서 우리는 그야말로 날것의 소시민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막동이와 작은 형이 함께 계란차를 타고 경찰차와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은 압권이다. 


한창훈 소설가의 <오늘의 운세> 한 장면을 그대로 차용한 것 같은데, 장면으로 보니 정말 많이 웃겼다. 한편 한창훈 소설가가 천착하고 있는 것도 아무도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 이들의 '소외'이니 만큼, 그의 소설에 대한 오마주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회사 사정 상 파주와 일산 쪽을 자주 가는데, 오래전에 신도시가 들어선 그곳이지만 아직도 허허벌판이 눈에 많이 띈다. 2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에 나오는 배경과 완연한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개발이 한창인 당시, 배태곤이 추진하는 게 다름 아닌 재개발 관련 사업. 신도시 개발과는 거리가 먼, 아니 피해를 볼 여지가 있는 소시민인 막둥이가 배태곤을 도와 신도 개발 사업을 하려는 모습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아이러니한 삶이 아닌, 삶이란 아이러니하다 라는 걸 보여주는 것 같다. 


좋은 영화를 다시 보는 의미


'좋은 영화' 접하기가 쉽지 않다. <초록물고기>는 단연코 좋은 영화인 바, 이 기회에 한 번 보심이 어떨지. 당당하게 추천한다. ⓒ시네마 서비스



재개발과 소시민, 그리고 소외를 다루는 한편 정통적인 느와르를 표방하고 있다는 점 또한 이 영화가 갖는 위대함이라 하겠다. 잘 빠진 느와를 한 편을 보는 것도 힘든데, 그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인생 드라마를 엿볼 수 있다니 말이다. 와중에 제대로 된 한국형 느와르인 <달콤한 인생>이나 <비열한 거리>의 만들어진 듯한, 적어도 '내'게 피부로 와닿는 공감은 선사하지 못하는 부분을 <초록물고기>는 채워준다. 


그 중심엔 막동이라는 캐릭터가 있겠다. 배태곤이 그에게 꿈을 묻는다. 그는 가족들이 한데 모여 작은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싶단다. 소박하다면 소박하지만, 가족들이 한데 모여야 한다는 점에선 요원할 수도 있겠다. 그 꿈이 소박할수록 그가 가고 있는 길은 험난해진다. 그리고 비극은 점점 다가온다. 


영화는 말한다. 사람이 허무하게 죽어 나자빠지는 느와르, 절절한 배신이 난무하는 느와르와 소박하기 그지 없는 꿈을 꾸는 소시민의 생각, 행동, 모습이 다르지 않다고 말이다. 느와르는 하나의 장르가 아닌, 먹고 사는 삶에서 파생된 여러 모습 중 하나라는 것이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부분을 이 영화가 말끔히 해소해주었다. 


이 영화는 좋은 영화를 다시 보는 의미를 다시금 일깨워 주기도 한다. 당대의 생생한 모습을 우린 스크린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이런 리얼리즘 작품에서 절절히 확인할 수 있는 바,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반추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데 크나큰 도움이 된다. 우린 알 수 있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이고, 앞으로도 변치 않을 거라는 걸. 그 모습을 어떻게 보여주고, 우린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고민, 또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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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한공주>


압도적일 게 없을 것 같은 연출로 그 어느 영화보다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었다. 영화가 갖는 소재도 소재이지만, 그 소재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무비꼴라주



"전 잘못한 게 없는데요."


어른들에게 둘러싸인 한 소녀, 꾹꾹 눌러왔던 말 한마디를 애써 웃음 띤 얼굴로 내뱉는다. 그런데 이내 그녀는 선생님과 전학 수속을 밟으러 다른 학교를 찾는다. 잘못한 게 없다는 그녀가 떠나는 것이다. 명백한 모순이 아닌가, 이 상황은. 무서워서 피하는 건가, 더러워서 피하는 건가. 아직까진 알 수 없다. 그녀의 앞날을 지켜보는 수밖에. 


그녀의 이름은 '한공주', 하필 공주다. 그녀의 시련은 전 인생에 걸쳐 있다. 부모님은 이혼해서 엄마는 다른 이와 살림을 차렸고 아빠는 일 때문에 몇 달에 한 번 볼까 말까이다. 그래도 알바와 학업을 병행하며 씩씩하게 살아가는 그녀, 편의점 사장 아들, 딸과 친하게 지내며 의지도 되어준다. 이겨낼 수 있을 정도의 시련이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전학을 가게 된 공주, 분위기가 전과는 완연히 다르다. 뭔가 얼이 빠진 느낌이랄까. 그녀에게 남은 건 오직 음악뿐인 듯하다. 음악 덕분에 친구도 생긴다 또 수영을 배우는 그녀, 이유가 살고 싶어질 때를 대비해서란다. 뭔가 그 사이에 크나큰 일이 있었던 것 같다. 전 학교 담임 선생님 집에서 선생님의 엄마와 지내게 된 공주, 운영하는 마트 일도 도와주며 호감을 얻는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실날 같은 희망을 자신도 모르게 품게 된 공주, 하지만 학교로 찾아온 어른들로부터 도망치는데...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왜 도망쳐야 할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피해자가 도망치는 현실, 이게 현실이다


왜 공주가 도망쳐야 할까, 왜 피해자인 공주가 도망쳐야 하는 것일까, 왜 급기야 공주가 가해자처럼 되어버린 것일까.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무비꼴라주


지난 2014년 4월 17일, 세월호가 침몰된 지 하루 뒤에 개봉한 영화 <한공주>는 국민적인 공분을 사며 뛰어난 연출과 연기에 힘입어 흥행과 비평에 성공했다. 독립영화의 영역을 뛰어넘은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당시 보지 못한 건, 대략의 내용을 알고서 도저히 볼 용기가 나지 않았던 탓이었다. 또한 그동안 생각해왔던 가해자와 피해자의 뒤바뀐 양상을 또 다른 시각으로 완벽하게 보여준 탓이겠다. 


영화는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피해자의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보여주었던 기존의 독립영화론에 일종의 반기를 든다. 그동안 피해자는 세상으로부터 사회로부터 개인으로부터 받은 끔찍한 피해를 '가해자'가 되어 되돌려주려 했다. 아니,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방도를 찾을 수 없는,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폭력의 뫼비우스 띠. 


이 영화는 어떤가. 공주가 당한 건 끔찍하다 못해 악마적인 행위. 입으로도 손으로도 언급하기 역겨운 43명에 의한 집단 성폭행. 피해자 공주는 어떤가. 홀로 강하게 큰 그녀이지만, 한없이 약한 그녀이기도 하다. 그녀는 가해자가 되기는커녕 도망 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또 다른 가해자들인 가해자들의 부모, 자기 아들 삶을 망가뜨리지 말라는 협박과 호소와 부탁 때문이다. 차라리 공주가 가해자가 되어 그 악마들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무엇을 남길 수 있다면, 그러면 내 마음이 덜 아플 것 같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건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 현실은 이렇다. 


끔찍한 와중에 다가오는 포근하고 아련한 감성


그 와중에 포근하고 아련한 감성을 선보인다는 건 거의 믿을 수가 없을 지경이다. 아... 공주가 가엽다. 공주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어진다. ⓒ무비꼴라주


이 영화가 대단한 이유는 비단 이것 뿐이 아니다. 마음이 뒤틀리는 공주의 상황을 알게 됨에도 불구하고, 순간순간 지극히 감성적으로 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건 공주가 진정 하고 싶었지만 이제 다시는 할 수 없는 '음악'에서 기인된다. 공주가 음악과 함께 일 때 느껴지는 감성은 한없이 포근하고 아련하다. 


이 감성은 <파수꾼>에서 기태가 함께이고 싶었지만 다시는 그럴 수 없는 친구들과의 즐거운 시간, <해에게서 소년에게>에서 시완이 계속되길 원했지만 다시는 그럴 수 없게 된 가족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수남이 열심히 일해서 장만하고 싶었지만 결국 빛으로 사게 된 집과 궤를 같이 한다. 


그렇지만 <한공주>에서 공주가 보여주는 감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바, 그녀가 당한 짓이 그만큼 강렬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극은 극으로밖에 해결하지 못한다는 걸 말하고자 하는 걸까.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엔 아이러니 하게도 공주의 괴로운 모습이 아니라 즐거운 모습이 뇌리에 남는다. 


우린 공주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공주의 괴로움을 뒤로 하고 즐거움을 취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대수롭지도 않게. 그러면서 그녀 안에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괴로움을 조금씩 치료해주면서 말이다. 아마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공주가 전학 간 학교에서 큰 관심을 보이는 은희도 결국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지 않았는가. 이게 현실이라는 말을 다시금 하게 된다. 


'혼자'라는 사실보다 더 잔혹하고 가혹한 게 있을까


공주의 모든 걸 알고 온전히 그녀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영화에선 아무도 없었던 것 같다. 그 아픔이 너무도 큰 탓에 나도 휩쓸릴 것 같기 때문일 테다. 그렇지만 현실은... 현실도 마찬가지일 터. 과연 나는? ⓒ무비꼴라주


이 영화가 보여주는 현실은, 생각해보고 들여다보면 너무나도 잔혹하고 가혹하다. 백도 없고 집도 없고 부모님도 없고 친구도 없는 어린 여고생이 할 수 있는 게 무언가. 뭐라도 해서 희망의 불씨가 있다는 걸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나, 싶은 게 개인적인 바람이다. 하지만 그건 공염불에 불과하지 않나. 실상은 이런데.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그녀에게는 그녀의 아픔을 가슴 절절히 공감하고 외치고 기억해줄 이가 아무도 없다. 누군가는 다수의 가해자가 한 목소리로 외치는 '개소리'를 듣고 가해자를 옹호하고, 누군가는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며, 누군가는 한순간의 망설임으로 그녀를 떠나보낸다. 그녀는 혼자다. 


많고 많은 사람이 사는 이 크나는 세상에 '혼자'라는 사실보다 더 잔혹하고 가혹한 게 있을까. 더욱이 잘못한 게 없는데, 오히려 피해를 당했는데, 누군가에게는 가해자로 인식되기까지 하다니. 숨이 턱턱 막히고 알 수 없는 소름이 덮친다. 가만히 있기가 힘들다. 세상이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는 것도 귀찮다. 그저 사라지고 싶다.


그런데, 공주는 수영을 배운다. 다시 살고 싶을까봐, 다시 시작하고 싶을까봐. 그러면 너무 억울하니까. 그녀는 알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마지막을 선택하게 될 거라는 걸. 그때를 대비해 수영을 배운 것이다. 이건 치를 떨지 않을 수 없다.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무너져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를 보고 결심한 게 있다. 받아들이겠다고 말이다. 타의에 의해 세상으로부터 버려져 혼자가 된 이들을 받아들일 것이다. 정녕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 한다. 다름 아닌 내가 하고 싶다. 이 영화 <한공주>를 보고 난 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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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좀비 영화의 대부 <28일 후>


현대 좀비영화의 시초격이자 최고의 좀비영화라 할 만한 <28일 후>. 대니 보일 감독만이 선보인 액션과 영상을 집대성하였다. 거기에 인간에 대한 메시지가 훌륭하게 조화되었다. ⓒFox Searchlight Pictures



지난 여름 한국을 강타했던 영화 <부산행>. 한국형 좀비 영화의 새 지평을 열며 흥행뿐만 아니라 열렬한 호평이 잇따랐다. 전 세계적인 호평도 잇따랐다고 하는데, 좀비 영화가 지녀야 할 덕목(?)을 빠짐 없이 갖추었기 때문일 것이다. <부산행>은 기본적으로 '좀비'하면 떠오르는 공포, 공포에 대적하는 액션, 인류애, 그리고 좀비보다 더 무서운 인간의 악랄한 모습을 두루두루 잘 보여줬다. 


좀비물로서 영화는 조지 로메로 감독의 1968년작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 소설로는 리처드 매드슨 작가의 1954년작 <나는 전설이다>가 그 시작이다. 지극히 현대적인 콘텐츠로 인식되고 있는 좀비물의 비하인드 스토리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 좀비물은 2000년대 들어서 대 호황을 이루었는데, 현대 좀비 영화의 대표로는 두 편을 들 수 있겠다. 잭 스나이더의 2004년작 <새벽의 저주>, 대니 보일의 2002년작 <28일 후>. 


<새벽의 저주>는 굉장히 빠른 전개와 그에 맞춘 잔인한 장면의 연속, 호쾌한 액션으로 엄청난 호응을 얻었다. 그야말로 '좀비 영화' 하면 생각나는 가장 대중적인 영화임에 분명하다. 평단보다 관객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고 할까. 반면 그보다 2년 전에 개봉한 <28일 후>는 관객도 관객이지만 평단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작품이다. '뛰어다니는 좀비'를 출현시켜 공포와 액션 두 마리 토끼를 사로잡았으며, '좀비보다 더 무서운 인간'을 출현시켜 인간이란 무엇인지를 심오하게 탐색했다. 


최고의 좀비 영화 <28일 후>


개인적으로 좀비 영화를 그리 많이 챙겨보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28일 후>가 최고의 좀비 영화라고 단정할 수 있는 건 감독이 대니 보일인 이유가 크게 작용할 것이다. 그는 이 길지 않은 영화에서 좀비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걸 보여줬다고 할 수 있는데, 전작 <트레스포팅>으로 보여줬던 속도감 있는 액션과 <비치>로 보여줬던 인간이 주는 실망, 그리고 후작 <127시간>으로 보여줄 감각적인 영상을 집대성하였다. 


총을 든 무장 단체 일원들이 연구시설을 습격한다. 시설 안에는 영장류들만 갖혀 있고, 그들은 하나같이 분노에 휩싸여 있다. 시설을 습격한 이들은 다름 아닌 동물 보호 단체의 일원, 영장류들을 가둬놓고 불법으로 실험을 일삼는 이들을 습격한 것이다. 그들은 연구원의 말을 무시하고 영장류를 풀어주는데, 곧 영장류들은 이들을 습격한다. 일명 '분노 바이러스'의 방출. 불과 28일 만에 영국은 분노 바이러스에 점령당한다.  

영화 초반, 아무도 없는 거리를 활보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꽤 오래 비춰진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무서움이 바로 이 장면이 아닐까 싶다. '외로움'이랄까. ⓒFox Searchlight Pictures



한편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었던 짐은 병원에서 깨어난다. 아무도 없는 병원, 아무도 없는 도로, 아무도 없는 런던. 헤매다가 성당에 들린 짐, 멀리서 다가오는 신부에게 말을 걸려한다. 하지만 신부는 두 눈이 빨갛게 물들어 짐을 쫓아오고, 짐은 영문도 알지 못한 채 도망간다. 그런 그를 도와주는 셀레나와 마크. 


마크도 곧 감염 당해 셀레나에게 죽고, 그들은 길을 떠난다. 길을 가던 도중 만나게 된 부녀, 프랭크와 해나. 이들은 생존을 보장한다는 군인의 방송을 듣고 무작정 맨체스터로 향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알게 되고 겪게 되는 군인들의 끔찍한 실체는 좀비보다 더 무서운 것이었으니... 과연 이들의 앞날은 어떨까. 항상 되풀이되는 좀비 영화 결말의 논쟁을 이 영화는 빚겨갈 수 있을까.


좀비가 주는 공포, 그에 대적하는 액션, 그리고 인간


'좀비'는 되살아난 시체를 말한다. 좀비의 탄생을 비중 있게 다루는 작품도 있는데, 그 원인을 찾아내어 이 사태를 해결하려는 의도에서이다. 한편 <28일 후>를 위시한 많은 작품에서는 좀비의 탄생보다 그 이후를 비중 있게 다루며, 그에 따른 액션과 공포, 그리고 인간을 말하고자 한다. 결국 말하고자 하는 건 좀비가 아니지 않은가. 좀비 같은 인간, 아니 좀비보다 더 한 인간이 이 세상을 활개한다는 것이다. 


영화는 좀비로 인한 공포, 그에 대적하는 액션을 짧고 굵게 보여준다. 좀비보다 더 무서운 존재인 인간이 있기 때문이다. 분노 바이러스에 걸린 인간이 좀비 아닌가. ⓒFox Searchlight Pictures



이 영화는 이에 절반씩을 할애했다. 좀비가 주는 공포와 그에 대적하는 액션, 그리고 좀비보다 더 한 인간들과의 사투. 이 둘 간의 연계가 자연스럽고 또 각기 심혈을 기울여 모난 곳이 없기에 더욱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작품이다. 다만, 상대적으로 뒤엣것보다 앞엣것에서 단순한 영화적 재미를 더 느낄 수 있기에 누군가에게는 뒤로 갈수록 몰입도가 떨어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건 단순히 앞과 뒤를 비교했을 때 순수하게 좀비가 주는 재미 부분이고, 대니 보일이 선사하는 영화적 재미는 영화를 느보는 내내 느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아니, 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장르 영화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장면들이다. 더불어 그 장면들을,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OST는 최고다. 


그러면서도 인간 세계에 던지는 확고한 메시지도 가려지지 않으니 그야말로 순도 연출 100%의 힘이다. 연출의 신이라고 불러야 마땅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인데, 영화적 재미와 영화적 메시지가 서로 믿기지 않을 만큼 조화를 잘 이루며 상응하고 있다. 


<28일 후>의 '히어로'(?)는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 아닌 분노 바이러스에 먹힌 '뛰어다니는 좀비'에게 돌아갈 듯하다. 그가 아니었다면 속도감 있는 액션도, 감각적인 영상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또 그것들과 상응해야 더욱 빛을 발하는 '인간에 대한 실망'이란 메시지도 없었을 것이다. 탁월한 선택이거니와 대니 보일만이 해낼 수 있을 소재였다. 


작금의 인간 세계에 주는 강력한 경고, 분노 바이러스 좀비


분노 바이러스 설정은 탁월했다. 그 메시지는 이 영화가 단순한 공포액션 좀비 영화의 격을 훨씬 뛰어넘게 해주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Fox Searchlight Pictures



'분노 바이러스'에 걸린 좀비라는 설정은 그 자체로 작금의 인간 세계에 주는 강력한 경고이다. 누군가는 이 세상이 돌아가는 꼴을 보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하며 '분노하라!'를 외치지만, 이 영화를 보면 이미 세상은 분노로 가득 차 점차 헤어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지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할 것이다. 세상을 올바르게 바꾸려는 의도라지만 분노가 가장 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사람들을 조종하게 할 수는 없지 않나.


분노에 휩싸이지 않은 이들을 '사람'이라 하고 분노에 휩싸인 이들을 '좀비'라 하니, 좀비라도 되어서 사람들의 세상을 또는 이미 좀비들의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것인가. 그건 어느 모로 보나 '일단 바꾸고 보자'는 무책임한 말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반대로 분노하지 않으면 이미 분노한 이들이 꾸리는 세상에 승차하게 될 텐데, 과연 그것은 옳은 것인가 하는 의견도 나올 수 있다. 그건 가만히 앉아서 아무것도 못한 채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치는 것밖에 안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영화는 그에 대한 답을 얼핏 던진다. 분노하라, 그러나 사람임을 잊지 마라. 무엇보다 희망을 잃지 마라. 분노는 그 이상의 분노로 다스릴 수 있다고 말한다. 분노가 사람을 조종하는 게 아닌, 사람이 분노를 조종하는 것. 문제는 어떻게 사람임을 잊지 않을 수 있는가. 그것이 숙제라면 숙제겠다. 


애초에 분노에 휩싸이지 않은 세상을 구축하면 되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건 쉽지 않은 일, 아니 사실 이미 당면한 일, 이제와서 그런 생각을 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문제가 있을 때는 해결책을 마련하고, 그와 더불어 훗날 반드시 또다시 생길 동일한 문제의 원인을 생각하며 매뉴얼을 만들어야 하겠다. 그게 안 되서 문제이고, 그게 안 되서 인류사가 반복되는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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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오래된 리뷰] <멋진 하루>


하정우가 아직 신인이었을 당시, 베테랑 전도연과의 만남으로 많은 기대를 받은 작품 <멋진 하루>. 역시, 최고의 한국 영화 중 하나다. ⓒ스폰지 Ent



가끔 '한국 영화'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다. 다른 어느 나라 영화도 아닌 한국 영화가 말이다. 중국이나 일본 영화와는 달리 한국 영화는 '풍'이 확고하지는 않은 것 같다. 미국을 위시한 외세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일까. 굳이 뽑아보자면 한이 서려 있는 풍이 한국 영화의 풍이랄까. 그래서 일명 '국뽕' 영화가 많이 만들어 지고 또 많은 인기를 얻는 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한국 영화의 풍은 섬세한 멜로를 기반으로 멜랑꼴리와 유머와 현실 감각이 조금씩 섞인 장르인 것 같다. 이 또한 영향을 받을 것일 수 있지만, 그래도 가장 한국 영화 같지 않을까. 내가 가끔 '한국 영화'가 보고 싶을 땐 바로 이런 풍의 영화가 보고 싶을 것을 게다. 


전도연과 하정우가 멋들어지게 연기한 2008년작 <멋진 하루>는 비록 원작은 일본 소설이지만 한국 영화 같은 느낌을 자아내는 영화다. 모르긴 몰라도 일본풍이 강할 수밖에 없을 단편 소설을 훌륭하게 재단해낸 각본의 힘이겠다. 이제 막 신인을 벗어난 하정우는 날아다니고, 베테랑 전도연은 자신을 낮추고 모든 걸 받아주었다. 이 둘의 서울에서의 하루를 멋지게 그려냈다. 다시 봐도 정녕 괜찮은 영화다. 


왠지 '멋진 하루'일 것 같은 이들의 하루


영화는 지나가는 행인들의 일상적 이야기를 포착하며 시작한다. 두 번째, 세 번째에 비로소 우리의 주인공 희수(전도연 분)가 등장한다. 카메라는 이제 그녀에게 집중한다. 여타 영화와는 다른, 신선한 시작이다. 희수가 있는 곳은 경마장이다. 그녀는 어슬렁거리며 누군가를 찾고 있는 듯하다. 어디선가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 그에게로 가 반가워하는 그의 얼굴에 대해 대뜸 '돈 갚아'라고 한마디 한다. 


희수의 싸늘한 한마디와 병운(하정우 분)의 천연덕스러운 반응은 이 영화의 앞날을 예견한다. 시종 일관 계속될 이 둘의 티격태격이 눈 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희수가 병운에게 받아야 할 돈은 350만 원, 참으로 애매한 액수다. 병운은 당장 갚을 돈이 없어 빌리러 가야 한다고 말한다. 며칠 뒤에 붙여준다는 병운을 믿지 못하는 희수, 오늘 당장 받아야 한다고 하며 병운을 따라 나선다. '멋진 하루'의 시작이다. 


과연 멋진 하루일까. 굳이 끝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멋진 하루는커녕 우울하기 짝이 없는 하루가 될 거라고. 꿔준 돈을 받기 위해, 돈 꾸는 현장을 따라나서야 하다니. 영어 제목인 'My Dear Enemy'에서도 풍기는 이 정반대 콤비의 모순적인 하루. 그런데 병운의 천연덕스러움, 그가 돈을 꾸러다니는 풍경,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가 생각나게 하는 OST까지, 마치 설렘 가득한 산책을 가는 기분이다. 왠지 이들의 하루가 '멋진 하루'일 것 같다. 싱숭생숭한 기분은 어딘가로 가버리고 설렘만 남는다.


여성에 대한 천착에서 인간에 대한 섬세한 시선까지


영화는 이윤기 감독이 오랫동안 천착해왔던 여성에 대한 천착을 간직한 채, 인간에 대한 섬세한 시선까지 보여준다. 한국 영화의 발전 양상을 보는 것 같다. ⓒ스폰지 Ent



그럴 때가 종종 있다. 정말 가기 싫은 곳을 어쩔 수 없이 억지로 따라 가서 시종 일관 인상을 쓰며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다는 생각만 하며 있었는데 막상 떠나면서는 뭔가 괜찮았다는 기분이 들 때가 말이다. 희수가 느낀 감정이 그렇지 않았을까 싶다. 내 돈 내가 돌려받겠다는데, 왜 내가 모르는 사람이랑 함께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듣고 있어야 하는지. 병운은 그게 다 너한테 돈 갚으려고 하는 거고 또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고 둘러대니 더더욱 마음에 안 들고 인상이 찌뿌려진다. 


와중에 이윤기 감독은 오랫동안 천착해왔던 여성에 대한 섬세한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 형식은 두 남녀의 좌충우돌 로드무비지만, 병운이 돈을 꾸러 다니는 사람들이 하나 같이 여성이기 때문이다. 골프장을 운영하는 듯한 회장님, 이혼하고 홀로 딸을 키우며 마트 일을 하는 여자, 밤일 하는 여자, 주차요원으로 일하는 여자, 어디를 다쳤는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듯한 여자 등, 그야말로 다양한 여성군이다. 


희수가 보기엔 병운이 여자들의 돈을 뜯어 먹는다기 보다 여자들이 병운에게 돈을 가져다 바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게 역겨워 보였는지 밤일 하는 여자한테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만다. 곧 사과를 하는 희수, 그녀는 여자들을 향한 분노를 병운에게 돌린다. 반반한 얼굴과 사람 기분 좋게 하는 입담으로 여자들 돈 뜯어 먹는 놈. 


그렇지만 그녀가 그에 대해 무엇을 알겠는가. 그들은 그저 오래전 헤어진 연인일 뿐인데. 일 년 사이에도 몇 번이나 180도 바뀌는 게 인생 아닌가. 다시 보니 병운과 그녀들은 서로를 돕고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분명 그녀들이 어려울 때 병운은 두 발 벗고 도와줬을 것이다. 감독의 여성에 대한 천착은 이렇게 인간에 대한 천착, 인간에 대한 섬세한 시선으로 발전했다. 


내 영화 인생에 나타난 특별한 영화 한 편


잘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 개봉한 지 오래지 않아서 이 작품을 봤을 것이다. 당시에는 별 생각 없이 두 주연 배우 때문에 봤을 텐데, 묘하게도 근 10년이 지나도록 가끔 생각이 났다. 이 영화가 풍기는 분위기가 정녕 어디 서도 느끼기 힘들기 때문일 텐데, 묘하게 위로해주는 기분이랄까. 거기에 병운으로 분한 하정우의 천연덕스러운 연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기분을 좋게 해준다. 더군다나 영화가 진행되면서 자연스러워지는 게 눈에 보이는데, 기특하다는 생각까지 들게 만드는 게 아닌가. 


자꾸 떠오르는 영화는 또 보게 마련이지만, 또 보게 되었을 때 실망할 여지가 많다. 그때 그 영화를 봤을 때 나의 상황과 나를 둘러싼 환경과 영화를 둘러싼 환경 등이 변했을 것이기 자명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세상이 변했을 테니 말이다. 하다 못해 예전의 것이기에 촌스럽고 유치하고 예상되고 지루하고 재미 없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기억 속 옛 연인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막상 보고 난 후 실망을 금치 못하느니 안 보는 게 낳다는 느낌이랄까. 


<멋진 하루>는 어땠나. 그런 기시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그때 못 봤던 것들(영화 스킬, 장면, 영화 제목의 반어법)이 보이고, 그때 느끼지 못했던 감정(병운이 돈 꾸러 다니는 여자들의 감정)이 보이는 게 아닌가. 그땐 참 '빈약한' 영화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풍부한' 영화일 줄이야. 살아가면서 보고 또 보게 될 영화인 것 같은데, 몇 년 뒤에 또 보게 되면 또 어떤 것들이 되살아나 내 눈 앞으로 다가올지 기대된다. 내 영화 인생에 특별한 영화 한 편이 나타났다. 


전도연과 하정우에게 특별하게 다가올 영화


영화의 두 주연배우 전도연과 하정우. 그리고 이윤기 감독. <멋진 하루>는 감독뿐만 아니라 두 배우에게도 큰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들의 조합을 다시 보고 싶다. ⓒ스폰지 Ent



이 작품은 무엇보다 두 주연 배우 전도연과 하정우에게, 특히 하정우에게 큰 의미로 다가올 것 같다. 전도연은 2007년 <밀양>으로 역사적인 '칸의 여왕'이 되어 한국 영화계에 깊은 족적을 남겼는데, 바로 다음 작품으로 이 <멋진 하루>를 선택했다. 전작에서 모든 걸 다 바친 듯한 연기를 선보였다면 이 작품에선 모든 걸 다 내려 놓고 후배 하정우에게 모든 걸 다 넘겨준 듯한 연기를 선보인다. 그녀의 필모그래피를 볼 때, 이 작품으로 말미암아 진정한 완성형 연기자가 된 듯한 느낌이다. 


한편 하정우는 2008년이 특별할 것이다. <추적자>로 필모 최고의 연기를 선보이고, <비스티 보이즈>로 윤종빈 감독과 다시 만나 열연을 펼쳤으며, <멋진 하루>로 비로소 '하정우표' 연기를 완성시켰다. 하정우표 연기의 시작이 <용서받지 못한 자>였다면, <멋진 하루>는 최근 <터널>까지 이어진 그의 연기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왠지 그도 이 작품에서의 병운이라는 캐릭터를 가장 좋아할 듯하다. 


연기를 잘하는 건 둘째 치고 배우 필모그래피 전체에서 터닝포인트가 되는 작품들이 있을 텐데, 전도연과 하정우 두 배우에게 <멋진 하루>가 상징하는 바는 남다를 것이 분명하다. 비단 두 주연 배우뿐만 아니라 이윤기 감독에게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2005년 <여자, 정혜>로 데뷔하자마자 많은 주목을 받았던 그, 계속해서 많은 사랑을 받다가 <멋진 하루>로 정점을 찍었다. 이후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로 비평과 흥행에서 참패, 작년엔 <남과 여>로 돌아왔지만 흥행에서 참패했다. 


물론 이윤기 감독의 작품들이 흥행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적은 없지만, 적어도 비평에선 좋은 점수를 얻었던 바 최근의 행보가 조금 아쉬운 건 사실이다. 연출도 연출이지만 그만의 색채가 묻어나는 각본을 다시 접하고 싶다. <멋진 하루>가 생각나는 멋진 이야기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해 11월에 개봉할 예정이었던 <어느날>의 개봉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게 아쉽다. 후반작업 때문이라고 하는데 하루 빨리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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