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그녀>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진 인간, 그런데 제목이 인공지능 <그녀>인 이유는 뭘까? ⓒ워너브라더스



'4차 산업혁명'이 새로운 시대의 화두다. 인공지능, 로봇기술, 생명과학이 주도하는 차세대 산업혁명, 100여 년을 주기로 일어난 산업혁명이 4차 때는 50년 만에 찾아왔다. '알파고'는 그 상징 중에 하나가 되었는데, 단순히 인간의 능력을 앞서는 것 뿐만 아니라 인간을 대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사실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기 이전에 인간이 인간을 대체해왔다. 참으로 많은 분야에서 인간이 인간을 대신해 왔는데, '대리사회' '대체시대'라고 명명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을 것 같은 각각의 인간이 가지는 고유한 감정도 대신해주는 것이다. 이 시대가, 이 사회가, 유토피아인지, 디스토피아인지. 


근 미래를 배경으로 한 대체불가 로맨스 영화 <그녀>는 여자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진 한 인간 남자의 이야기를 주로 한다. 그러기 위해선 인간도 인간이지만 인공지능이 '감정'을 지녀야 한다. 나아가 상대방에게 감정을 전달해야 한다. 사랑은 혼자 할 수 없는 것이기에. 어찌 가능할까. 그런데 영화는 나름의 방식으로 기가 막히게 그려낸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신개념 사랑 방식


인공지능 그녀를 사랑하는 인간 테오도르는 너무나도 행복해 보인다. 근미래 누구에게나 도래할 수 있는 사랑의 모습이 아닐까. ⓒ워너브라더스



남들 편지를 대신 써주는 회사에서 일하는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 분), 그의 편지들은 하나 같이 의뢰인과 대상과 상황에 완벽히 부합하는 아름다운 글이다. 현실은 아내 캐서린(루니 마라 분)과 이혼을 준비하며 별거 중. 그렇지만 벌써 일 년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캐서린과의 좋은 한 때가 쉼 없이 그를 괴롭힌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봐도 별 다른 진전이 없다. 마냥 우울하게 방황할 뿐이다. 


테오도르는 호기심으로 최신 인공지능 OS를 구입한다. 이왕이면 여자로. 그저 말동무가 필요했을 거다. 심심하거나 마음 정리가 안 될 때면 언제나 불러내 자기 얘기나 들어줄. 그런데 사만다(스칼렛 요한슨 목소리)라는 이름의 이 OS, 심상치가 않다. 목소리부터가 사람을 끄는 마력이 있고, 무엇보다 '리얼'하다. 금방 친해진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언제나 불러내 얘기할 수 있거니와 아는 것이 많아 어떤 이야기도 잘 통하고 자신의 마음을 잘 다독여주기도 하고 심지어 '본인'의 이야기도 건네준다. 분명 그녀는 인간이 아니지만, 그녀와 사랑에 빠진 게 하등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는 훌륭하게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까? 테오도르는 그녀와의 '사랑'을 잘 지속해나갈 수 있을까? 


그야말로 4차 산업혁명에 걸맞는, 아니 상징하는 신개념 사랑 방식이다. 사람만의, 나아가 생물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던 '사랑'이라는 감정의 궁극체가, 인간이 창조해 낸 비생물에 의해서 현실화된 것이다. 그것도 결정적으로 인간의 일방적인 사랑이 아닌 쌍방 사랑의 모습으로. 이들의 사랑이 너무 예뻐서 지나치기 쉬울 충격이다. 우린 시선을 선택해야 한다. 이들의 '예쁜 사랑'이 우선인지, '충격'이 우선인지. 


인간과 인공지능의 사랑, 충격과 공포


나에게 이들의 예쁜 사랑은 충격과 공포로 다가온다. 아직은 인간들의 사랑을 원한다. ⓒ워너브라더스



감독의 의도는 다분히 이들의 '예쁜 사랑'인 듯하다. 디지털의 최정점에 이른 듯한 전체적 시대상과 사회 모습과 분위기와는 정반대인 듯한 아날로그적 감정선이 영화 전체를 지배한다. 거기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게 영상과 색인데, 배경은 파스텔 톤으로 채도를 높이려 했고 인물은 원색으로 명도를 높이려 한 듯하다. 


거기에 무엇보다 테오도르와 사만다의 대화, 테오도르의 표정, 테오도르의 과거 회상 등의 아날로그에 집중함으로써 완벽한 4차 산업혁명을 이룩한 디지털 사회라는 걸 최대한 알아차리지 못하게 했다. 전반에 깔린 당연한 디지털에 시선이 가는 대신, 테오도르의 감정에 집중하게 된 것이다. 


반면 나는 이들의 '예쁜 사랑'이 오히려 '충격'으로 다가왔다. '씁쓸함'도 함께. 시대가 시대인 만큼, 이런 생각이 굉장히 보수적으로 비춰질 수 있겠다. 인공지능이 인간 삶과 사회를 전반적으로 지배 혹은 함께 하는 시대에, 인간이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는 게 전혀 이상할 것 없지 않은가. 문제는 인공지능이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궁극의 감정을 대신할 수 있게 된 점이다. 인간의 노동력이 아닌, 인간 자체를 대신하는 것이다.


제목이 '그녀'인 만큼, 영화가 부각하는 건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이다. 그녀의 변화, 발전, 진화 등. 그렇지만 나에겐 인공지능이 아닌 인간이 계속 보였다. 심지어 인공지능인 그녀가 아닌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그녀가 보였다. 인간에게 받은 상처를 인공지능에게서 위로 받는 한 인간의 이기적인 면모도 보였다. 그렇다. 나는 최대한 인간을 보려고 애썼다. 그들의 사랑이 '인간과 인간'이면 좋겠다는 무의식의 발로였다. 그렇지만, 결정적으로 그녀는 인간이 아니니만큼 충격은 계속 배로 돌아올 뿐이다. 


더욱더 충격적으로 다가온 건, 그녀가 '인간'이 되고 싶다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몸을 갖고 싶고, 감정을 지니고 싶다고 말했을 뿐이다. 불가능한 게 없는 그녀의 세계에선 그것이 비단 인간 만을 뜻하는 건 아닐 테다. 어디까지 나아갈지 알 수 없을 정도의 그녀, 그 미지가 주는 충격과 공포는 새롭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최고의 영화 <그녀>


이 모든 영화 외적인 논의들을 제쳐두면, <그녀>는 최고의 영화다. 그렇지만 계속 씁쓸함이 남기에, 마음 놓고 또 보긴 싫다. ⓒ워너브라더스



사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백히 알 수 있다. 현대인의 고독과 외로움과 소통일 것이다. 근 미래가 아니라 현재도 과거에도 우린 똑같이 고독했고 외로웠고 소통의 부족을 느꼈다. 다만, 미래의 우리는 훨씬 더 쉽게 훨씬 더 고도의 비인간 대체자를 찾을 수 있다. 오랜 시간과 공력을 들여 나에게 맞게 대상화하거나 나를 상대에 맞게 타자화할 필요도 없다. 바로 나를 내보일 수 있고 아무 걱정할 필요도 없다. 


아직 우리는 '결국 인간'이라는 불편하지 않은 답을 원한다. 아니, 최소한 나는 그렇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감독은 일부러 주체를 인간 '그'가 아닌 인공지능 '그녀'에게 놓고 그녀의 합당한 자가 발전으로 인한 자발적 떠나감으로 인간 그가 결국 인간 그녀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구도를 만들었다. 여기서 나는 충격이 조금 가시는 대신 '씁쓸함'을 느꼈다. 굉장히 인간적인 씁쓸함인데, 결국 모든 건 헤어지는구나. 


이 모든 논의를 제쳐두면, 아니 오히려 이런 논의들과 함께 할 때 <그녀>는 단연코 최고의 영화다. 우선 이 영화가 '아름답다'는 데에 이견을 달 만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시각적으로도, 청각적으로도, 그리고 생각적으로도. 그리고 우린 이 영화로 시대와 사회와 우리 자신을 동시에 들여다볼 수 있다. 보는 이에 따라서 깊게도 얇게도 가능하다. 거기에 가보지 못한 미래를 굉장히 현실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무엇보다 그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형태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 영화 하나로 진행할 수 있는 논의의 깊이와 총량이 어마어마하다. 이렇게 방점을 찍는 바, 심지어 <그녀>는 주인공인 '그녀'가 언제쯤 모습을 내보일까 하는 기대감을 끝까지 가지게 하여 긴장감이 촉발하는 즐거움까지 선사한다. 이 작은 영화가 파도 파도 끝이 없으니, 이보다 더 좋은 영화를 찾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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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케빈에 대하여>


충격도 이런 충격이 없고, 논란도 이런 논란이 없을 영화 <케빈에 대하여>. ⓒ(주)티캐스트



화려한 붉은 물결의 토마토 축제, 그 한가운데 자유로운 영혼의 여행가 에바(틸다 스윈튼 분)가 있다. 하지만 다음 화면에 그 붉은 물결은 끔찍하게 변한다. 더러운 소굴 같은 집안에서 깬 에바는 누군가에 의해 악의적으로 붉게 칠해진 집과 자동차를 마주한다. 이상하리만치 별 반응 없이 차를 타고 에바가 도착한 곳은 한 여행사, 그녀는 화려한 경력에 걸맞지 않은 말단 자리에 발탁된다. 


신나서 집으로 가려는 찰나 길에서 마주친 중년여자가 "좋은 일이라도 생겼나 보네. 신나 죽겠어?"라고 말하더니 대뜸 에바의 뺨을 후려치고는 지옥에나 떨어져 버리라고 악담하면서 가버린다. 지나가던 이가 경찰에 신고한다는 걸 만류하며 에바는 "아니에요. 제 잘못이에요."라고 말하곤 가버린다. 대체 무슨 일인가?


중간 중간 알 길 없는 장면 장면들이 지나간다. 건물을 앞에 두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울부짖고 있다. 반면 에바는 홀로 그 앞에서 멍하니 지켜볼 뿐. 한편, 에바는 교도소에 갇힌 아들의 면회를 간다. 그런데 엄마와 아들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듯? 대략 유추해보면, 엄마와 아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고 아들이 무슨 짓을 저질러 교도소에 갇혔으며 엄마는 그때문에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할 수 없게 된 게 아닐까. 가슴 졸이며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는 비로소 시작된다. 


'모성'은 당연한 것인가?


세상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많은데 그중 하나가 '모성'이다. 이 영화는 모성이 당연한 것인지 충격적으로 묻는다. ⓒ(주)티캐스트



영화 <케빈에 대하여>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모성'의 전모를 날카롭게 때론 섬뜩하고 끔찍하게 드러낸다. 자식을 향한 엄마의 무조건적인 사랑은 그 어느 상황에서도 가능한가? 반드시 가능해야 하는가? 반론은커녕 물음조차 쉽지 않은 명제인 '모성의 당연함'은 이 영화에서 철저히 해부되고 깨어진다. 


다 크고 나서 엄마한테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너 아기일 때 너무 많이 울었어. 정말 힘들었다.' 아기라면 으레 다 집 떠나가라 울어야 정상 아닌가 싶은데, 애초에 결혼은 물론 아기를 원하지 않았던 자유로운 영혼 에바에게는 그렇지 않았던 듯하다. 그녀는 아기 케빈의 울음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싫었고, 차라리 공사장 소음 소리가 편했다. 그녀는 애초에 엄마가 되기 싫었고, 스스로 엄마로서의 자격을 박탈해 버린 것이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케빈은 갓난 아기를 벗어나자 엄마를 지극히 적대적으로 대하며 말을 듣지 않는다. 에바는 당연히 케빈이 남자아이라면 다 가지고 있을 성향을 보인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론 케빈이 남들보다 떨어지는 게 아닌가 걱정도 되고. 그렇지만, 그보다 더 커서도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엄마'만'을 향한 적대심이 더 커진 것 같다. 어느 날, 에바는 케빈이 굉장히 똑똑하다는 걸 알게 된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도레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의 현대판이 아닐까 싶다. 전통으로의 회기를 선택해 대가족화를 밀고 나가는 어느 부모, 그렇게 태어난 일가족을 나락의 구렁텅이로 빠뜨린 다섯째 아이 벤, 이들의 처절하고 끔찍하고 슬픈 이야기다. 이 소설이 시대, 선택, 운명 등의 문학적 장치들을 정교하게 끌어들였다면, 이 영화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와 심리 등의 현실적 장치들을 집요하게 끌어들였다. 


비극이 찾아오지 않으면 이상한 일


영화는 내내 비극이 찾아온다. 작은 비극들이 모여 큰 비극이 되는데, 이를 반복한다. 보고 있기가 힘들 정도. ⓒ(주)티캐스트



상황이 이럴진대 비극이 찾아오지 않는 게 이상한 일, 영화에서 크나큰 사건은 3번에 걸쳐 일어 난다. 사실 에바가 엄마가 되고 케빈이 태어난 것 자체가 비극이었을지 모른다. 여하튼 그 비극 중 첫 번째는 영화에서 중요 분기점을 형성하기에 충분했다. 적대의 칼날을 갈고 있던 에바와 케빈 사이에 여동생 실리아가 태어난 것이다. 


케빈이 실리아를 싫어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어느덧 청소년이 된 케빈은 가히 그 똑똑한 머리를 여전히 엄마 에바를 괴롭히는 데 쓴다. 엄마를 직접적으로 괴롭힐 순 없는 노릇이니, 노골적으로 적대적 눈빛이나 행동을 일삼는 건 물론 실리아를 괴롭히는 우회적 타격이나 엄마한테 자위 행위를 들켜도 멈추지 않는 등의 심리적 타격을 일삼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 일이 터진다. 


싱크대를 막히게 해서 에바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독극물을 사용하게 만든 후 실비아가 실수로 독극물을 엎어 한 쪽 눈을 실명하게 된 일이다. 겉으론 실비아의 실수, 나아가 에바의 잘못이다. 하지만 에바는 알고 있다. 케빈이 교묘하게 함정을 파놓은 거라는 사실. 그건 에바를 향한 케빈의 처절한 '복수'다. 결국 케빈의 복수는 에바에게 상상조차 하기 싫은 파국을 안긴다. 


영화는 시종일관 에바의 지옥 같은 현실과 지옥보다 더한 강제적 과거 회상, 그리고 에바와 케빈의 적대적 일상만을 보여줄 뿐이다. 에바의 현실은 무덤덤하게, 과거 회상은 몽환적으로, 에바와 케빈의 일상은 사이코틱하게 그린다. 무엇보다 청소년 케빈을 분한 에즈라 밀러의 연기에 기댄 바가 크다. 틸다 스윈튼은 에바 그 자체였다. 


특히, 에바와 케빈의 사이코틱한 일상은 내내 긴장의 연속이다. 분명 잔잔하고 평화롭기까지 한 가족의 모습인데, 잔잔한 물가에 돌멩이 하나가 일으키는 파문이 엄청난 것처럼 이들의 소소한 듯한 티격태격이 섬찟섬찟하다. 그 가중 큰 이유 중 하나가 적나라함에 있을 것이다. 별 것 없는 평범한 것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때 우린 기괴함을 느낀다.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 언젠가 반드시 큰 일이 있을 것만 같은데 어김없이 큰 일이 일어난다. 생각지도 못한. 


'케빈에 대하여'가 아닌 '에바에 대하여'


이 영화의 주 논란거리는 아마 '케빈'과 '에바'일 거다. 엄마와 자식,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에 비극이 들이닥친다면? ⓒ(주)티캐스트



누구의 '잘못'이라고 밝히기가 매우 어렵다. 둘 다 잘못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냥 서로 맞지 않았을 뿐이라고 할 수도 있다. 재수가 없었다, 운이 없었다고 치부할 수도 있다는 거다. 하지만, 분명한 건 케빈은 에바와 그녀의 남편 프랭클린의 '선택'이었다는 것. 그들이 조심하지 않았던 못했던, 낳자 낳지 말자 등등 무슨 생각을 했든지 간에 케빈을 낳아 기르기로 한 건 다름 아닌 그들 자신이고 에바 자신이다. 그 이후에 엄마와 자식이 서로 맞지 않는 건 또 다른 문제인 것이다. 


'케빈이 그렇게 된 건 엄마 에바의 사랑이 부족했고 제대로 교육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 행간엔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는 그들만의 것들이 있었을 테니까. 그렇지만, 적어도 여기서 '엄마는 사랑할 수 없는 아이, 나쁜 아이를 사랑할 수 있는가'라는 프레임을 적용해선 안 된다. 그 자체로 시선은 '사랑할 수 없는 아이, 나쁜 아이'로 간다. 보다 중요한 건 케빈이 아니라 엄마가 아닐까. 그래서 <케빈에 대하여>가 아닌 <에바에 대하여>가 맞는 것 같다. 


많은 논란이 있을 줄 안다. 내 주장은 형성된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사이코패스의 형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니. 그렇다면, 최소한 에바도 사이코패스일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한다. 케빈이 갓난 아기였을 때 보인 에바의 행동을 달리 어떻게 설명할 건가. 그 행동은 단지 아기가 싫다는 이유로 행할 수는 없을 것이다. 


최근에 나온 한국소설 <아몬드>는, 감정이 없이 태어난 윤재가 감정이 풍부하고 교육 열정이 투철한 할머니와 엄마의 사랑과 교육을 듬뿍 받아 결국 감정을 배우는 이야기다. 반면 누구나처럼 풍부한 감정을 지닌 채 태어난 곤이는 어릴 때 받은 폭력 등으로 얼룩진 어둠의 기억 때문에 괴로워 한다. 올바른 감정을 지니기 힘들다. 결국 선천적인 건 없다는 거다. 


이 영화와 맞닿는 부분이 있다. 선천적과 후천적. 아마 에바는 케빈이 선천적으로 나쁘고 사랑할 수 없는 아이로 태어났다고 생각했을 거다. 내(에바)가 아닌 네(케빈) 문제인 것이다. 과연 그럴까? 그 자신, 풍부한 감성과 열정적이고 반듯한 이성으로 케빈을 대했다면 당연히 충분히 달라지지 않았을까. 아니 달라지는 게 아니라, 애초에 잘 크지 않았을까. 한없이 안타깝다. 영화 또한 안타까움만 남을 뿐이다. 엄마와 아들의 슬픈 사랑 이야기와 다름 아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런 마음이 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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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파이터>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의 2010년대 전성시대 시작을 알리는 작품 <파이터>. ⓒ시너지



21세기 최고의 복싱 경기로 회자되는 미키 워드와 아투로 게티의 WBU 주니어 웰터급 챔피언 3연전. 긴장감을 유발하거나 청량감을 주는 대신, 처절함을 동반한 감동을 선사한다. 이 경기를 보면 스포츠에선 패자는 없고 승자만 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서로를 승자로 인정한다. 


영화 <파이터>는 다름 아닌 미키 워드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아투로 게티와의 챔피언전을 다루진 않았고, 그 이전까지의 인생역전을 다뤘다. 링에는 혼자 올라가지만 링에 올라가기까지는 절대 혼자일 수 없는 법, 영화는 미키 워드와 그의 가족들을 함께 그렸다. 미키 워드의 복싱 인생에서 형 디키와 엄마 앨리스를 비롯해 가족들이 많은 역할을 했다. 


감독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90년대 중반 <스팽킹 더 멍키>로 극찬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한 데이비드 O. 러셀은 1999년 <쓰리 킹즈>로 메이저 무대까지 올라섰다. 하지만 이후 오랫동안 부침을 겼었다. 그러다가 2010년 <파이터>로 단숨에 아카데미가 사랑하는 감독이 되었고, 이후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아메리칸 허슬>까지 성공시키며 대세 감독으로 우뚝 섰다. <엑시덴탈 러브>와 <조이>로 연착륙 했다. 


그의 영화들은 상당히 스타일리쉬한데, 영리한 편집과 파격적인 변신을 앞세운 캐릭터 그리고 영화 전체를 앞서서 끄는 듯한 음악이 키포인트다. 자칫 정신 없이 산만 할 수 있을 텐데(누군가에겐 단연코 그렇게 느낄 수 있겠다), 이를 다잡는 분위기가 마련되어 있다. <파이터>는 이런 요소들이 완벽하다 할 만큼 적재적소에 들어차 있다. 


'복싱', 그리고 '가족'과 '아픈 사람들'


영화의 주된 소재는 복싱, 그러나 말하고자 하는 건 가족과 아픈 사람들, 그리고 희망. ⓒ시너지



미키 워드(마크 윌버그 분)는 서른 살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백업 선수로 전전하고 있다. 돈을 받고 챔피언의 승률을 높여주는 역할. 그 돈 덕분에 일가족이 먹고 산다. 미키에게 권투의 모든 것을 알려준 전 챔피언인 형 디키 워드(크리스찬 베일 분). 하지만 그는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마약에 쩔어 살아 가는 루저다. 심지어 미국 메이저 방송사 HBO에서 그의 다큐멘터리를 찍는데, 그가 생각하고 있는 그의 부활이 아니라 그의 마약 생활을 통해 교훈을 전하려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미키의 트레이너다. 한편 그들의 엄마 앨리스 워드는 미키의 매니저다. 


승리의 기회가 찾아 온다. 이번만큼은 백업이 아니라 자신의 경기를 펼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상대방이 아프다는 이유로 경기 직전 바뀌는데, 체급 자체가 너무 차이난다. 훨씬 더 높은 체급이었던 거다. 미키는 말도 안 되는 이 경기를 피하려 하지만, 형과 엄마가 미키를 밀어 넣는다. 돈 때문이었다. 돈은 벌어왔지만 또다시 처참하게 진 것이다. 선수로서의 회의, 가족들에 대한 실망으로 방황할 때 살린을 만난다. 그러곤 다시 재기를 꿈꾼다. 가족들과는 좀 거리를 둔 채.


그렇지만 다시 위기에 빠진다. 미키가 자신과 함께 하려면 생활비를 대 주어야 한다는 말에 형 디키가 어이 없는 범죄 행각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미키는 경찰에 잡혀 가려는 디키를 보호하려다 경찰에 의해 오른손을 심하게 다친다. 감옥에 가는 디키, 풀려난 미키. 하지만 미키는 더 이상 권투를 할 수 없는 몸이 된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 미키의 진가를 알아본 에이전시가 제의를 해오는데, 조건이 있었다. 가족이 관여할 수 없다는 것. 미키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영화는 미키라는 권투선수의 인생역전을 기본 뼈대로 '가족'과 '아픈 사람들'을 주요 요소로 투입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디키 또한 미키 못지 않은 주요 뼈대다. 즉, <파이터>는 미키와 디키 둘 모두를 따로 또 같이 잘 살펴야 하는 것이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가족이 전부인 미키 워드. 하지만 그건 그의 선택이 아니다. 그의 선택이 가족일 때 비로소 함께 나아갈 수 있다. ⓒ시너지



우린 이 영화에서 '권투'를 잘 느끼기 힘들다. 하다 못해 '권투 선수'를 잘 느끼기도 힘들다. 미키 워드의 권투 또는 권투 선수 미키 워드를 잘 보여주려면, 영화에서 보여준 권투 인생 이후를 보여줬어야 했다. 아투로 게티와의 3연전을 하이라이트 삼아 그때까지의 우여곡절을 보여주는 게 맞는 것이다. 대신 <파이터>는 그 외부의 것들을 말하고자 했다. 사실 삶에서는 그것들이 더 중요할지 모르겠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나 <신데렐라 맨>이 생각나게 하는데, '영화'로서의 전체적 만듦새는 <파이터>가 더 뛰어난 것 같다. 미키가 미키일 수 있었던 건, 즉 그의 존재를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권투는, 그 자신도 말하듯이 100% 형 디키 덕분이라 할 수 있다. 매니저 역할을 하는 엄마를 비롯한 많은 수의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어느 누가 해당되지 않겠냐만, 그에겐 그의 가족들이 전부다. 그의 권투는 오로지 가족들에 의한 것이니까. 사실 그는 온전한 어른이 아닌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어른이다. 어른이어야 하는 나이이고 몸이며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런 것들은 연인 살린을 만나면서 뚜렷해진다. 그녀의 조언에 따라 자신과도 같은 가족들과 떨어져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아니, 가족들과 떨어져야만 가족들과 더 잘 지낼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여기서 중요한 건, 가족들은 그가 '선택'하지 않았고 살린은 그가 '선택'했다는 것. 


가족이란 무엇인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가족이면 모든 걸 다 용서하고 받아줘야 하는가. 가족이 원하면 자신이 가고자 하는 인생을 포기해야 하는가. 가족 간에는 모든 게 당연한 것인가. 모든 걸 다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내가 나일 수 있게 한 가족을 저버리는 새로운 방황의 시작일 수 있다. 즉, 함께 가되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변화'가 필요한 바, 영화는 후반부 디키의 변화에 주목한다.  


아픈 이들이 이야기하는 희망


하나 같이 아픈 사람들이다. 심지어 그들이 사는 동네도 아프다. 그런 그들이 희망을 이야기하려 한다. 자신을 인정하고 변화하고자 한다. ⓒ시너지



미키는 아프다. 권투 선수로서 미래가 없다. 형처럼 한때나마 잘 나갔던 적도 없다. 결국 손을 크게 다쳐 더 이상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른다. 디키는 어떤가. 한때 챔피언으로 지역 명사가 되어 더할 나위 없는 삶을 누렸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독이 되어 마약에 찌든 폐인의 삶을 살아간다. 그보다 아픈 사람을 찾기 힘들다. 미키의 연인 살린도 아프다. 꽤 잘나가는 높이 뛰기 선수였지만 지금은 동네 술집에서 일하고 있다. 이젠 그저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미키와 디키 가족은 어떤가? 엄마 앨리스는 이혼한 후 재혼해 살고 있다. 그런데 다 큰 자식들 모두와 함께다. 미키, 디키를 비롯한 자식들은 거의 10명에 육박한다. 또 재혼한 남편도 있다. 그와 자식들은 카리스마 넘치는 앨리스에게 꼼짝도 못한다. 하지만, 그녀에겐 고충도 많다. 이 다 컸지만 능력 없는 자식들을 다 챙겨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미키에게 매달린다. 돈, 돈, 돈!


심지어 이들이 사는 동네도 아프다. 한때 챔피언이었다가 폐인이 된 디키와 결을 같이한다. 디키가 챔피언이었을 땐 이 동네도 잘 나갔는데, 그가 폐인으로의 삶을 걸어갈 때 이 동네도 함께 침체되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는 국가적 침체의 희생양이 된 것이리라. 동네가 아픈데 가족들이 아프지 않을 수 없고, 가족들이 아픈데 동네가 아프지 않을 수 없다. 


아픈 사람들끼리 모여 어떻게 희망을 이야기하는가를 보여준다 하겠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들이 아프다는 걸 인정하는 게 우선이다. 그러곤 상대방의 아픔을 이해해야 한다. 자신이 아프지 않다고 생각했을 땐 상대방의 아픔을 조롱하고 하대 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그 중심엔 디키가 있다. 그렇지만 디키의 변화는 미키와 살린의 선택과 결심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맞물려야 가능하다는 얘기다. 


우린 아픈 시대를 살아간다. 자신이 아픈지 모르고 누군가가 아픈지 관심도 없는 시대를 살아간다. 아는 게 오히려 병일 때도 있겠지만, 이럴 땐 아는 게 힘일 수 있겠다. 아픈 걸 치료하려는 게 아니다. 아픈 걸 아프다고 말하며, 아프지만 그럼에도 살아가는 것이다. 영화에는 그런 시대였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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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제리 맥과이어>


오랫동안 탑스타로 군림하는 톰 크루즈. 그에게 사실 가장 어울리는 옷은 로맨틱코미디가 아닐까? ⓒ피터팬픽처스



1981년 <끝없는 사랑>으로 데뷔하고선 이내 주연으로 올라서 80년대 후반에는 이미 자리를 공고히 한 배우 톰 크루즈. <미션 임파서블>을 위시한 단순 액션 영화를 많이 찍었지만, <레인 맨>이나 <7월 4일생>, <매그놀리아> 등 작품성에 포커스를 맞춘 영화도 많이 찍었다. 모두 톰 크루즈에게 제격이어서,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대대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더 잘 맞는 옷은 따로 있었다고 본다. 다름 아닌 로맨틱 코미디인데, 그 대표적인 예가 <제리 맥과이어>겠다. 그의 필모를 들여다보면, 진지한 역이 반 정도이고 유들유들한 역이 반 정도이다. 이 영화에서 그는 유들유들한 역을 제대로 선보이는 바, 직전에 찍었던 <미션 임파서블 1>이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겠다.

한편, 이 영화는 톰과 함께 한 두 주연급 조연에게도 특별하다. 쿠바 구딩 주니어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와 미국 내 각종 남우조연상을 휩쓸었는데, 이후 2000년대엔 각종 영화로 최악의 남우주연상 후보에 단골로 올라갈 때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르네 젤위거는 당시 무명 배우였는데, 이 영화로 단숨에 유망주 이상의 가치를 지니게 되었고 쿠바 구딩 주니어와는 반대로 2000년대 세계적인 여배우로 우뚝 섰다.

말랑말랑 로코와 감동적인 드라마

<제리 맥과이어>는 기본적으로 로코와 드라마와 합본이다. 말랑말랑하고 감동적인. ⓒ피터팬픽처스



능력과 외모, 성격까지 완벽에 가까운 스포츠 에이전트 제리 맥과이어(톰 크루즈 분), 누구보다 잘 나간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담당하는 선수들에게 여러 가지 일들이 한꺼번에 터진다. 어떤 선수는 10대 소녀를 성추행하고, 어떤 선수는 프로잼 카드가 아니라는 이유로 어린 아이의 사인을 거절했다. 결정적으로 어떤 선수는 몇 번이나 부상을 당했는데도 제리가 만류하지 않았는데, 그의 아들이 제리에게 'FUCK YOU'를 날린 것이다. 제리는 스포츠 에이전트라는 처음으로 직업에 회의를 느낀다.

선수들을 그저 '돈'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게 아닌지 하고 말이다. 그것이 맞다는 생각과 함께, 어느 날 그는 회사에 제출할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 인간이다'라는 요지의 방대한 제안서를 작성한다. 회사에서 환대를 받는 제리, 하지만 곧 해고 통보를 받고 쫓겨나 1인 에이전트를 세운다. 그때 그를 따라온 유일한 동료는 경리과 도로시 보이드(르네 젤위거 분), 그리고 유일한 선수는 미식축구 로드 티드웰(쿠바 구딩 쥬니어 분). 

제대로 된 홀로서기를 위해선 우선 제대로 된 선수를 잡아야 하는 바, 제리는 그저 그런 무명 선수인 티드웰은 제쳐두고 NFL(미국 미식축구리그) 드래프트 1순위가 확실시 되는 커쉬맨을 잡기 위해 총력을 다한다. 이미 잡은 물고기 로드, 거의 잡은 물고기 커쉬맨. 제리는 행복하다. 하지만, 커쉬맨은 막판에 제리를 배신한다. 제리는 전에 없는 실의에 빠진다. 과연 그만을 보고 따라온 도로시와 로드의 운명은?

<제리 맥과이어>는 얼핏 <머니볼>처럼 지극히 직업적인 색채가 강하고 전문적인 영화라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그것들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말랑말랑하고 현실적인 로맨틱 코미디(제리와 도로시)와 감동적이고 진취적인 드라마(제리와 로드)의 합본이다. 영화는 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다. 

현실적인 로코와 진취적인 드라마

하지만 속내는 마냥 말랑말랑하고 감동적이지만은 않다. 굉장히 현실적이고 진취적인 면모도 보인다. ⓒ피터팬픽처스



먼저 제리와 도로시의 로맨틱 코미디, 이들의 사랑은 말랑말랑하지만 굉장히 현실적이다. 제리에겐 잘 나가던 바로 얼마 전까지 약혼녀가 있었으며, 도로시는 아들 하나가 있는 이혼녀다. 이들이 이어지는 이유는 결코 '사랑'이 아닌 듯한대, 외로움을 극도로 잘 타는 성격의 제리가 자신이 힘들 때 상냥하고 친절하게 잘 대해준 도로시에 '의리'를 지킨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가 회사를 나올 때 유일하게 따라왔다. 

그런 그들의 사랑이 계속 지속될 수 있을까? 돈보다 인간이 중요하다고 울부짖다가 해고 당한 제리 입장에서 또다시 돈 때문에 대형 선수를 잃어버리고 찾은 안식처가 도로시일 텐데, 역설적으로 그 사랑이나 의리는 사람이 아닌 돈에 상처 받은 마음의 약일 것이다. 사람으로 받은 상처는 사람이 치유해줄 수 있지만, 돈으로 받은 상처를 어찌 사람이 치유할 수 있겠는가. 

제리와 로드의 드라마는 어떨까. 역시 모든 걸 다 잃고 마지막 남은 단 하나의 선수, 'SHOW ME THE MONEY'를 외쳐대는 그저 그런 무명의 선수 로드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제리. 적어도 그와는 비즈니스 관계에 있기 때문에, 돈으로 받은 상처를 치유해줄 수 있는 가능성은 있겠다. 그러기 위해선 로드이 유명해지고 그래서 고액의 연봉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그의 실력이 아닌 그의 인성. 

제리는 로드에게 더 좋은 실력을 보여줄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더 나은 인성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이 지옥같은 경쟁의 장에서 실력이 아닌 인성을 요구하다니? 아무리 이미 출중한 실력을 갖고 있는 로드라고 해도 말이다. 그렇게 제리는 자신이 쓴 제안서가 맞다는 걸 로드를 통해 입증해낸다. 비단 에이전트와 선수 사이의 인간 관계뿐만 아니라, 이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보다 중요한 게 인간 관계라고 말이다. 

자본주의를 벗어나진 못했다

모든 건 자본주의 하에서 이루어진다. 사랑도, 인간 관계의 진전도, 성공한 이후에나 가능하다. ⓒ피터팬픽처스



로맨틱 코미디도 아닌 것이, 드라마도 아닌 것이, 직업인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도 아닌 것이, 영화는 직업인 제리를 중심으로 세 가지 주제가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간다. 거기에 맞는 세 가지 주제는 돈, 사랑, 관계라고 보면 될 것이다. 이 주제와 소재들을 모두 포괄하는 이 '세계'는 자본주의다. 

돈이 모든 걸 지배하고, 돈이 사랑도 관계도 넘어서는 세계가 자본주의일진대, 이 영화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일침을 가한다. '결코' 그렇지 않다고 단호하게 거부하는 게 아니라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툭 건드리는 정도로 다가오는 건, 아마도 조금 불편한 결론 때문일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이자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다. 돈과 관계와 사랑까지 완벽해지는 그때.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게 순서다. 내가 보기에, 돈이 가장 먼저였다. 그보다 앞서 가족의 진심어린 사랑이 있었지만 그게 경우에 따라 돈으로 환원될 수 있겠다. 그 다음이 관계였고, 마지막으로 사랑이었다. 모든 걸 완성시킨 다음에야 비로소 사랑이 보인 것이다. 인간을 가장 인간이게 하는 '사랑'을 말이다. 그래서 난 이 영화가 '자본주의'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넘어선 사랑이 아닌, 자본주의 안에서의 사랑. 물론, 이 영화가 20년 전 영화라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자본주의라는 게 최절정기에 있었던 1990년대 중반에 이런 정도의 영화가 나왔다는 게 신기한 거다. 여러 면에서 유려한, 이미 1990년대를 대표하는 명작 중 하나가 된 <제리 맥과이어>. 언제라도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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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가족의 탄생>


데뷔 20년이 다 되어가는 김태용 감독의 귀한(?) 단독 장편 연출작 중 하나 <가족의 탄생>이다. ⓒ롯데 엔터테인먼트



2015년을 기준, 1인 가구가 27.2%로 전체 가구 중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2인 가구도 자그마치 26.1%로, 1인 가구와 2인 가구를 합치면 전체 가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2035년 경에는 1인 가구가 30% 이상에 육박할 거라는 예측이 가능하다는데, 기이하지만 당연한 사회현상이겠다. 


이에 여러 해석이 난무하고 어떻게든 1인 가구 시대로의 진입을 막아보려 애썼지만, 이제는 받아들이는 분위기이다. 관련 대책을 세우고 관련 사업을 시작하고 상품을 개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 기저에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또는 이미 선행된 '발상의 전환'이 있다. 1인 가구를 '가족'의 한 형태로 받아들였다는 것, 더 근본적으로 '가족'의 형태에 제한을 두지 않게 되었다는 것. 


1인 가구는 얼마 전에 생겨난 개념이 아니다. 인류가 시작되면서 지금까지 존재해왔을 형태다. 그렇지만 '가족'의 한 형태로 인정받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적어도 '정상적인' 가족의 형태는 아니었던 거다. 그래서 새롭지 않지만 새로운 개념의 가족이 탄생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른바 '가족의 탄생'이다. 


가족에 대한 고찰


우린 이 영화를 통해 가족에 대한 고찰을 조금 더 밀고 나갈 수 있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롯데 엔터테인먼트



1인 가구가 단기간에 가장 폭발적으로 증가한 시기는 다름 아닌 2000년대 초반이다. 아마 그때는 심히 우려가 되었을 것이다. 전통의 4인 가구 체제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그 와중에 영화 하나가 뚝 떨어졌다. <가족의 탄생>. 가족의 형태에 대한 고찰이 한창이었을 시기, 2006년이다. 


1999년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로 무시무시한 장편 데뷔를 한 김태용 감독이 참으로 오랜만에 상업 장편을 들고 나온 것이다. 이후 2010년에 <만추>를 찍은 게 김태용 감독 필로에서 단독 장편 연출의 전부이니, 참으로 귀한(?) 작품이다. 작품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정녕 오랜 고심 끝에 좋은 작품을 내놓은 스타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제는 '탕웨이의 남편'으로 살고 있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가족의 탄생>은 제목이 주는 단조로움과 코미디 요소가 섞인 장르가 주는, 자칫 허술하고 별 볼일 없다고 느낄 수 있는 분위기와는 달리 매우 심오하다. 시대의 변화를 캐치해 반영했을 뿐만 아니라, 그 변화를 일정 정도 선도하면서 설득까지 하고 있는 작품인 것이다. 억지 설득이 아닌, 여러 가족의 형태를 그저 보여주며 자연스레 생각이 바뀌게끔 한다. 


다양한 막장 가족을 들여다본 숨겨진 걸작


이 영화에는 다양한 가족 형태가 나온다. 하나 같이 '막장'이라 할 만한데, 영화는 그들도 모두 가족이라 말한다. ⓒ롯데 엔터테인먼트



떡볶이 집을 하며 약해보이나 똑부러지게 살아가는 '미라' 앞에 5년 만에 동생 '형철'이 나타난다. 그는 반건달인데, 오갈 데가 없으니 빌붙으려고 찾아온 것 같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다. 족히 20살은 많아 보이는 '무신'이라는 분을 데리고 온 거다. 사랑하는 사이이고 결혼도 했단다. 얼마 안 가 또 다른 충격이 찾아온다. 무신의 전 남편의 전 부인의 딸이라던가? 이 무슨 듣도 보도 못한 상황인지. 형철은 누나의 결혼을 극구 반대하면서 아이를 거둘 것을 강력히 찬성하는데... 과연 이 '가족'의 운명은?


사랑 찾아 이리저리 오갔던 세월이 수십 년인 엄마 '매자' 때문에 인생이 고달픈 '선경'. 더 이상 엄마를 보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도 매자는 선경을 계속 찾는다. 선경뿐이랴? 선경의 남자친구도 찾아와선 매자가 많이 아프다고 한다. 남자친구 사이에서 아이도 낳은 매자다. 어린 아이를 남겨두고 많이 아프다니. 알고 보니 매자의 남자친구는 엄연히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다 큰 자식도 둘이나 있는. 그럼 어린 아이는 어떻게? 


우연히 만나 사귀게 된 두 연인, '경석'과 '채현'. 곧잘 만나는 것 같으면서도 잘 싸운다. 채현이 너무 '헤프다는' 이유로 경석이 채근한다. 경석이 보기엔 채현이 자신만을 사랑하지 않거니와 그 사랑의 범위가 너무 넓다. 누구나 각각의 사랑 방식을 가지고 있지만, 이 둘은 극과극이니만큼 서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랑을 이어나가기 위해선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 가장 쉽고 정확한 방법은 '가족'을 들여다보는 것일 테다. 


막장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족의 형태들인 만큼, 얼핏 보면 막장 영화네 하며 지나치기 일쑤이다. 그래서인지 개봉 당시 평단에선 상당한 평가를 받은 반면, 20여 만 명에 불과한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망한 거나 다름 없는 수치로, 김태용 감독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을 게 분명하다.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에 설득되지 않아서 일까? 여하튼, 이 영화는 '숨겨진 걸작'이라 하고 싶다. 배우 공효진은 자신의 연기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가족의 탄생>을 뽑곤 한다. 


생각지도 못한 가족의 형태


2006년 당시 이 영화의 '실험'은 실패했다. 즉, 영화가 주장한 가족 형태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은 받아들일까? ⓒ롯데 엔터테인먼트



언젠가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우연히 가족에 대해 대화를 하다가, "가족이 뭐지, 가족끼리는 어떻게 해야 해"라는 질문에 어머니께서 대답하셨던 바다. 어머니는 "가족은 천륜으로 만들어진 거야. 가족이라면 죽을 때까지 책임을 져야 해."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상당한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가족'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던 그때는 어머니의 그 말씀이 크게 와 닿았고 가족의 정의로 정립되었다. 가족은 천륜. 


그런데, 머리가 크고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그 절대적인 정의가 깨졌다. 아마, 지금은 금이 간 정도일 거고 앞으로 언젠가는 완전히 깨질 게 분명하다. '가족은 천륜'이라는, 인류의 오랜 명제가 말이다. <가족의 탄생>에 등장하는 '막장 가족'들은, 분명 전통적인 의미에서 가족이라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명제 자체가 틀린 것이라면? 그들은 더이상 막장 가족이 아니라 그냥 '가족'인 것이다. 


3여 년 전쯤 EBS 다큐프라임에서 '가족 쇼크'라는 제목으로 장장 9부작 짜리 다큐가 방영된 적이 있다. 방송 대상 3관왕에 빛나는 역작으로 나중에 책으로도 나왔는데, 그중 기억에 남는 '쇼크'는 단연 '타인들로 이루어진 가족' 실험이었다. 남녀노소 1인 가구들이 모여 한 가족을 형성한 것이다. 핏줄 하나 섞이지 않은 이들이 모여 '가족'이 될 수 있는가? 결론은 '될 수 있다'였다. 오히려 어느 면에서는 천륜으로 이루어진 가족보다 가족 같은 모습을 보였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이런 게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가족의 탄생>이 보여주는 황당한 가족의 형태도 또한 '실험'이었을 것이다. 물론 나름의 확실한 공증이 끝나고 누구든 설득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풍만한 상태에서의 실험. 플롯, 연기, 배경 등이 완벽했던 이 영화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던 건, 시대를 너무 너무 앞서갔기 때문일 테다. 


그런 면에서 얼마 전에 개봉한 <그래, 가족>이란 영화는, <가족의 탄생>의 아류라고 할지언정 시대에 발맞춰 나가는 모양새를 띠었다. 거기에 한국 최초로 '디즈니'에서 배급을 하면서 기대를 모았는데, 참패를 면치 못했다. 영화가 속절없이 저퀄리티였거나, 아직도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한 이유일 테다. 


부디 <가족의 탄생>이, 10여 년이 지난 지금에는 빛을 보기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1인 가구를 가족의 한 형태로 인정했듯, 가족이라 전혀 생각할 수 없는 형태도 가족의 한 형태로 인정하는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 영화를 통해 그런 전환을 만끽할 수도 있겠다. 부디 '가족의 탄생'을 지켜보고 함께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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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열두살 샘>


공고롭게도, 열두살 때 백혈병으로 친구를 잃었다. 영화 <열두살 샘>은 백혈병으로 죽음을 앞둔 열두살 샘의 이야기이다. ⓒ㈜미디어데이



어린 시절, 친구 몇 명을 잃었다. 12살 때 반 친구가 백혈병으로 하늘나라로 갔고, 13살 때 동네 친구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다. 중학생 때는 함께 놀던 다른 반 친구가 무슨 연유 때문인지 기억내지 않는 이유로 죽었다. 12살 때는 증조할머니도 돌아가셨던 것 같다. 그보다 어렸을 땐 외할머니이 돌아가신 모습도 봤고. 그때마다 충격으로 울음을 감추지 못했었다. 그런데, 그 울음은 슬픔이 아닌 공포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 사람을 다신 볼 수 없다는 슬픔이 아닌, 내가 죽음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공포 말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공포는 중학생이 되기도 전부터 나를 괴롭혀 온 것 같다. '죽음이 뭐지, 죽으면 어떻게 되지, 죽으면 어디로 가지' 등, 그 어린 나에게 그보다 두려운 건 아무것도 없었다. 


12살 때 백혈병으로 앓다가 세상을 떠난 친구는 아직도 생생하다. 반에서 함께 공부하던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백혈병으로 학교에 나오지 못했고 상태가 호전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었으며 결국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났다는 소식까지. 우리 반 전체는 친구를 기리며 묵념하고 울었다. 그 친구의 자리에는 꽃이 놓였다. 


죽음을 앞두고도 '용기' 있는 열두살 샘


샘에겐 상상 못할 '용기'가 있다. 삶보다 죽음이 가깝지만, 누구보다 삶과 가까이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미디어데이



영화 <열두살 샘>은 백혈병에 걸려 죽음을 앞둔 12살 샘의 이야기다. 너무 공교롭게도 나의 경험이 반쯤 완벽하게 투영되어 있어 놀라기도 했는데, 한편 그 불편한 기억을 조금은 좋은 쪽으로 희석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 영화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죽음과 처절히 싸워 이기는 내용이 아니라, 죽음에 직면해 오히려 삶에 더 가까이 가고자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 용기가 영화의 포인트다. 


열두살에 불과한 샘, 백혈병으로 시한부 선보를 받은 상태다. 85%의 완치 확률을 자랑하는(?) 백혈병이지만 샘은 세 번이나 재발했고 두 번 항암치료를 받았다. 그는 완치되지 못했고 1년 안에는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샘은 병원에서 만난 절친 펠릭스와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를 만든다. 


세계 신기록 깨기, 에스컬레이터 거꾸로 올라가기, 공포영화 보기, 담배 피기, 술 마시기, 진하게 키스하기, 여자친구 사귀기, 과학자 되기, 비행선 타기, 귀신 보기, 우주선 타고 별 보기. 샘은 펠릭스와 함께, 혼자서, 아빠와 함께, 여자친구와 함께 결코 쉽지 않을 것 같은 이 모든 버킷리스트를 실행에 옮긴다. 


한편, 가장 마음에 걸리는 건 다름 아닌 '아빠'. 아빠는 아픈 샘을 마치 외계인 보듯이 한다. 아빠의 투철한 이성이 반드시 죽음으로 치닫는 백혈병에 걸린 샘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거기엔 이성이 아닌 감성이 필요한 부분이 있을 텐데 말이다. 과연 샘과 아빠는 선을 넘을 수 있을까? 그리고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된 펠릭스, 죽음 앞에서도 명랑했던 샘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잘 이겨내고 끝까지 용기를 지닐 수 있을까?


핵심을 찌르는 한마디, "신파는 아니겠지?"


이 영화, 신파가 아니다. 통통 튀기까지 하는데, 그게 감동을 자아낸다. 묘하다. ⓒ㈜미디어데이



죽어가는 자신의 이야기로 일기를 쓰고 영상으로 남기는 샘, 그 사실을 알게된 아빠와의 단문단답이 의미심장하면서 영화의 핵심을 찌른다. 이런저런 얘기가 끝나고 방을 나가기 전에 아빠가 묻는다. "사랑 무지개로 가득 찬 질질 짜는... 신파는 아니겠지?" 샘이 질색하며 "아니에요."라고 답하니, 아빠가 씨익 웃으며 "다행이다."라고 하고는 나간다. <열두살 샘>은 신파가 아니라는 거다. 


12살 어린 나이의 아이가 죽어가는 데 신파가 아닐 수 있다? 가장 우선적으로 당사자가 대단한 용기를 지녀야 한다. 그런데, 12살이면 나도 그랬듯이 죽음에 대한 공포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나이다. 공포로 벌벌 떨며 잠 못이룰 수 있는 나이인 것이다. 그런데 샘은 어찌 죽음에 초연하다 못해 유머러스할 수가 있을까? 영화라서?


먼저, 시간적으로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세 번의 재발과 두 번의 항암치료를 겪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항암치료는 차라리 죽고 싶을 정도로 극심한 고통을 동반한다고 알려져 있기에, 그걸 뚫고온 샘에게 죽음은 차라리 친숙한 존재일수도 있는 것이다. 그건 펠릭스도 마찬가지. 그래서 옆에서 지켜보는 부모님들이 더 힘들어 한다. 


그리고 학교를 가지 못하는 그들을 위해 특수교육가정교사가 주기적으로 오는데, 그 시간이 그들에게 크게 작용한다.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도, 샘이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고 영상으로 옮기는 것도 다 그 시간 덕분인 것이다. 교사는 그들에게 조심스럽지만 결코 숨기지 않고 말해준다. 삶과 죽음에 대해서 말이다. 


"결국 인류는 영원한 삶이란 불가능하단 걸 깨달았지. 하지만 우리는 뭔가를 영원히 남길 수 있단다. 바로 예술 작품이야."


'죽음'이 아닌 '삶'으로의 강한 끌림


결국, '삶'이다. 죽으면 모든 게 끝나니 사랑도 뭣도 필요 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샘은 첫사랑에 설렌다. 내가 나일 수 있는... ⓒ㈜미디어데이



영화는 일종의 파트가 나뉘어져 있는데, 샘이 던지는 정답이 없는 문제와 그에 대한 나름의 답에 따라서다. 죽음에 대해서 어린 아이답지만 굉장히 원론적이고 진지한 질문이다. 예를 들면, '죽으면 아플까?' '사람은 왜 죽어야 할까?' 등이다. 과학적으로 또는 종교적으로 접근하면 나름의 답을 찾을 수 있는 문제들이다. 하지만 정작 죽음에 직면했을 때 그런 답들이 무슨 소용 있겠는가. 그럼에도 답을 찾으려는, 정답이 없는 줄 알면서도 답을 찾으려는 샘의 행동은 삶으로의 강력한 끌림 때문이겠다. 


우린 이 영화로 '죽음'이 아닌 '삶'을 본다. 어린 아이의 치기어린 호기심으로 별 의미 없고 허접한 죽음 이야기를 듣는 게 아니라, 어엿한 인간의 진심어린 고민과 치열하고 고등한 삶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그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고귀한 삶의 투쟁을 지켜볼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보고 삶 또는 죽음에 대한 정답을 찾을 수는 없다. '정답은 없다'는 정답만 찾을 수 있을 뿐이다. 다만, 방향은 어렴풋이 짚어볼 수 있을 것 같다. 일종의 균형 감각이라고 할까. 삶과 죽음, 죽음과 삶을 그 어느 것도 멀리 하지 않고, 모두 끌어안되 내가 나일 수 있는 방법을 계속 강구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삶에도 죽음에도 매몰되지 않고 '나'를 이어나간다는 게, 추상적이기도 하거니와 인지한다고 해도 굉장히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그게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지 않을까 싶다. 막상 죽음이 닥치면 그게 가능할까 심히 의문이 들지만, 또 못할 게 무언가 싶기도 하게 만드는, 그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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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오래된 리뷰] 왕가위 감독의 <해피 투게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영화 중 하나로 뽑을 만한 <해피 투게더>. 왕가위 감독의 대표작이다. ⓒ(주)서우영화사



벌써 20년이다.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영화 중 하나로 뽑을 만한 <해피 투게더>가 나온지 말이다. 1988년 <열혈남아>로 연출 데뷔를 한 왕가위 감독의 6번째 작품이자 <아비정전>으로 시작된 '왕가위 스타일'의 정점을 보여준 작품이다.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당당히 올라갔다. 왕가위 감독의 수많은 명작 중에 하나만 고르라면 단연 <해피 투게더>를 골라야 할 것이다. 


<해피 투게더>를 말함에 있어 또 한 명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2003년 우리 곁을 떠난 장국영이다. 1978년 영화계에 데뷔한 이래, 1985년 <영웅본색>으로 스타덤에 오르고 1990년 <아비정전>, 1991년 <종횡사해>로 최고의 배우로 거듭났다. 1993년에는 <패왕별희>로 세계적인 스타로 올라섰다. 앞서 <아비정전>과 <동사서독> <해피 투게더>로 왕가위 감독과 함께 했다. 


<해피 투게더>의 또 다른 주인공을 맡은 양조위가 왕가위 감독의 자타공인 페르소나(왕가위와 양조위는 자그마치 7편을 함께 했다)라지만, 장국영이야말로 왕가위의 진정한 페르소나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1983년에 데뷔한 양조위는 홍콩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배우가 되었다. <해피 투게더>가 크게 일조한 건 당연하다. <와호장룡> <적벽대전> <일대종사> 등으로 친숙한 장첸의 앳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야말로 영화팬들에겐 잔치나 마찬가지다. 


간결한 스토리, 비로소 발휘되는 감독의 능력


누구나 예측할 만한 간결하고 단편적인 스토리다. 왕가위 감독의 능력을 한껏 발휘하기 위해서 일까? ⓒ(주)서우영화사



야휘(양조위 분)와 보영(장국영 분)은 홍콩을 떠나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살아간다. 내성적이지만 책임감 강하게 삶을 영위하려는 야휘에 반해 자유분방하고 즉흥적이기만 한 보영, 헤어졌다가 만나기 일쑤이다. 떠나간 사람은 당연히 보영일 테니, 돌아오는 사람도 보영일 테다. 그렇지만 야휘는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괘씸하지 않은가. 어느 날, 양손에 피를 흘리며 찾아온 보영을 야휘는 받아들여 극진히 보살핀다. 보영도 평소완 달리 얌전히 보살핌을 받는다. 


하지만 손이 낳은 보영은 다시 예전의 보영으로 돌아간다. 바깥으로 싸돌며 야휘를 가슴 아프게 한다. 어김없이 파국을 치닫는 모양새다. 한편, 힘들어 하는 야휘 곁에 식당에서 일하는 동료 창(장첸 분)이 살며시 다가온다. 그의 방식으로 위로를 건네며 가까워진다. 그렇지만 곧 떠나야 할 시간이 임박한다. 각자의 길로 말이다. 야휘와 보영은 함께 가고 싶어 했던 이구아수폭포를 함께 갈 수 있을까. 


만나고 헤어지고, 사랑하고 사랑받고, 힘들어하고 위로받는 절대보편의 간결한 스토리다. 무엇을 더 보여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이 지점에서 비로소 감독의 능력이 발휘된다. 왕가위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 간결한 스토리에 투영되는 당시 사회 상황,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동성애, 그리고 제목과 연결되는 영화의 주제까지. 


이 영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건 황홀하다. 만사를 제쳐두고 그저 왕가위가 구축해놓은 미장센만 감상해도 충분할 텐데, 그 수면 아래에서 편안하게 헤엄치는 것들을 들여다보는 행운을 만끽하다니. 정녕 '해피 투게더'다. 


동성애, 시대상, 그리고 '해피 투게더'


간결한 스토리 안에 동성애, 시대상, 관계의 메시지까지 횡행한다. 하나하나 잘 짚고 지나가자. ⓒ(주)서우영화사



가장 먼저 동성애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정확히는 남자들의 사랑. 영화는 시종일관 세 남자 야휘, 보영, 창만 비춘다. 여자는 단 한 명이 단 한 컷에 등장할 뿐이다. 시작과 동시에 러브신과 섹스신에 돌입하는 야휘와 보영의 모습에 충격을 금치 못하는 것도 잠시, 곧 그 기시감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대신 흔하디 흔한 사랑 싸움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이들의 동성애는 인류보편의 연애인 것이다. 


동성애를 다룬 영화를 많이도 봐왔지만, 이런 느낌은 처음 받아 본다. 아마도 오랜 세월이 지나도 이런 느낌을 받을 영화는 없지 않을까. 심지어 '호모 포비아'도 이 영화를 보고 기시감을 크게 느끼지 않을 거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 그건 다분히 배우들의 연기에 기댄 바가 크겠다. 특히 왕가위 감독이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설득시킨 양조위는 실제 동성애자인 장국영보다 더 동성애자처럼 보였다. 


더불어 당시 시대상을 엿봐야 한다. 1980년대 후반부터 홍콩 영화의 상당수가 1997년 '홍콩 반환'을 주제에 덧입힌다. 1985년작 <영웅본색>도 그러하니, 예견된 큰 사건에 홍콩 사람들의 심정이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1997년에 제작된 <해피 투게더>는 더 말해 무엇하랴. 야휘와 보영의 끝이 헤어짐일 거라고 예상할 수 있는 바, '홍콩'이라는 단일 개체의 사라짐에 대한 불안이 투영된 것일 테다. 반면 창이라는 새로운 대상이 따듯할 것 같다고 예상되는 바, 중국으로 합병되는 불안 속 희망이 엿보인다. 


'해피 투게더'라는 단어가 주는 행복과 더불어 원제인 '춘광사설’(春光乍洩)이 뜻하는 ‘구름 사이로 비추는 봄 햇살'이 주는 희망까지, 중국과 홍콩의 새로운 관계가 시작된 시기에 멀리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보내는 왕가위 감독의 메시지이다. 이는 사람과 사람, 도시와 자연, 국가와 국가까지 어이진다. 우리는 이 작고 짧은 영화에서 대서사와 맞먹는 깊고 넓은 관계의 파노라마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많다!


정녕 <해피 투게더>는 영화팬들의 잔치다. 감독, 배우, 영상, 장면, 메시지, 파격, 해석 등 즐길 게 너무나도 많다. ⓒ(주)서우영화사



왕가위 감독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건 다름 아닌 '미장센'이다. 그는 세계적으로 돋보적인 비쥬얼리스트다. 색감과 카메라 구도만으로 장면이 보여주려는 이면까지 설명한다. 이 영화에서도 단연 압권적으로 보여준다. 그나마 쉽게 인지할 수 있는 건 색의 대비, 흑백과 컬러다. 의도적으로 야휘와 보영의 관계를 색으로 보여준다. 과거와 현재를 구분하는 데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사이가 좋을 때는 컬러로 좋지 않을 때는 흑백으로 처리하며 영화적 기법 사용에 있어 최상의 것을 보여준다. 덕분에 더욱 풍성하게 다각도로 영화를 볼 수 있다. 


독특한 카메라 구도와 슬로우 모션 또는 스톱 모션도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데 한몫 한다. 정확히는 카메라 구도와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이라고 해야 하겠다. 구도만 바꾼다고 해결되진 않기 때문이다. 색의 대비가 관계를 간접적으로 보여준 것이라면, 카메라 구도와 연기 앙상블은 입장 변화를 보여준다 하겠다. 아무런 말 없이 그저 보이는 걸로 상태를 설명하기란 정말 힘들 텐데 말이다. 


예를 하나만 들어보자. 택시 장면 두 컷이다. 영화 초반, 헤어지고 난 후 보영을 본 야휘, 반면 보영은 야휘를 못 본 듯하다. 택시를 타고 떠나버리는 보영, 그때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슬쩍 뒤를 돌아 야휘를 본다. 그때 보영은 야휘가 필요하지 않았던 듯하다. 반면, 보영이 두 손을 다쳐 야휘를 찾아가고 함께 살아갈 때다. 택시릍 타는 둘, 보영은 살며시 야휘에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이때 보영은 야휘가 필요했던 듯하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이 있다. 당대 최고의 감독 위치에 올라선 왕가위 감독에, 당대 최고의 스타 '장국영'과 '양조위'까지. 거기에 아르헨티나 현지 로케와 동성애 소재, 홍콩 반환 정서. 잔치도 이런 잔치가 있을까 싶다. 반면 스토리 자체는 솔직히 볼 게 없으니, 자연스레 속담이 생각날 수 있겠다. 그럼에도, <해피 투게더>로 황홀경을 맛봤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장면, 아니 한 프레임도 놓치고 싶지 않다. 오글거리기 짝이 없는 '한 땀 한 땀 장인이 만들었다'는 어구를 다름아닌 이 영화에 쓰고 싶다. 앞뒤 장면과의 연계를 무시하면서도 오직 최고의 한 장면을 추구하는 '왕가위 스타일'에 딱 들어맞지 않는가. 그렇지만 왕가위 스타일에 함몰되지 않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왕가위 스타일 그 자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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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자타공인 할리우드 최고의 감독으로 우뚝 서게 한 작품 <밀리언 달러 베이비>. 그에겐 이 작품이 정녕 '백만 불짜리 아기' 같지 않을까. ⓒ㈜노바미디어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많다. 연출과 주연은 물론 제작과 음악까지 맡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아카데미가 두 번째로 작품상과 감독상을 안겼다는 건 차치하고라도, 힐러리 스웽크에게 두 번째 여우주연상을, 모건 프리먼에게 첫 번째(!) 남우조연상을 안겼다는 것도 굉장한 이야기거리다.

 

이외에도 뜬금없을 수 있는 복싱 소재라는 점이 눈에 띈다. 굉장히 '전형적인' 라인의 '여자' 복싱이라는 점이 보기도 전에 분위기를 죽이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겠다. 또한 영화가 나오기도 전부터 큰 논란을 일으킨 '안락사' 논란, 가족은 더 이상 '천륜'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는 일면에 대한 논란은 이 영화가 뚫고 나가야 할 큰 난관이었다. 

 

논란거리로 별 거 아닌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방법은 하나, 제대로 된 이야기가 필요했다. 결과적으로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우리에게 '제대로 된 이야기'를 선사한다. 복싱일까? 죽음일까?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일까.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선사하는 놀랍도록 진심 어리고 제대로 된 이야기를 따라가보자. 

 

복싱 영화, 아니 사람과 사람에 대한 영화

 

영화는 다분히 복싱 영화의 정석을 따른다. 그렇지만 우린 이 영화에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 그리고 가족의 의미를 엿볼 수 있다. 굉장한 영화 기술이다. ⓒ㈜노바미디어



한때 잘 나갔던 지혈사라던 프랭키 던(클린트 이스트우드 분)은 딸과 의절한 상태에서 돈도 안 되는 복싱 체육관을 운영하고 있다. 8년째 애지중지 키우고 있는 빅 윌리, 프랭키한테서 모든 것을 배우고는 잘 나가는 매니저에게로 떠난다. 프랭키가 그를 너무 아껴 절대 챔피언전에 내보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혼자가 된 그에게 매기 피츠제랄드(힐러리 스웽크 분)라는 서른 넘은 여자가 매일 같이 찾아와 운동하면서 자기를 키워주라고 조른다. 거들떠도 보지 않는 프랭키, 하지만 그녀의 진심에 두 손 두 발 들고 만다.

 

훈련만 시켜주고 매니저는 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다른 매니저를 소개시켜 주지만, 그의 행태를 보고 직접 매니저로 나선다. 그러곤 그녀에게 '모쿠슈라'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출중한 실력을 뽐내는 매기, 유럽을 휩쓸고 미국에 돌아와 천하에 이름을 떨친다. 급기야 현 챔피언과 맞붙는 챔피언전을 진행한다. 빅 윌리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였을 것이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를 당하는 매기...

 

복싱 영화는 누구나 생각할 만한 전형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복싱 실력만큼 피와 땀으로 이뤄낸 게 없다는 걸 차용해, 수많은 좌절과 절망을 이겨내고 사각 링에 오른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사각 링에는 오직 적과 나 뿐이라는 점을 차용해, 사각 링을 인생의 축소판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유일하게 기댈 사람인 매니저와의 깊은 우정을 보여주며, 복싱 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고 말이다.

 

이 영화는 굳이 말하자면 '매니저와의 깊은 우정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매니저와 선수의 만남이 참으로 극적이고, 선수의 훈련보다 매니저와 선수의 일상이 더 매력적이며, 선수의 파격적인 승전보보다 점점 더 가까워지는 매니저와 선수의 모습이 더 감동적이다. 이쯤 되면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더 이상 복싱 영화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에 대한 영화겠다.

 

복싱으로 맺어진 가족, 영화는 똑똑하게 보여준다

 

영화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건 '가족'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 가족의 부재->복싱으로 맺어진 인연->가족이 된 그들. ⓒ㈜노바미디어


우정일까, 사랑일까, 복잡한 감정일까. 그전에 들여다봐야 할 게 프랭키와 매기의 가족 관계다. 딸과 의절하고 혼자 살아가는 듯한 프랭키. 그에게 남은 건 오직 체육관과 선수들이다. 매기는 어떨까. 그녀는 가장이다. 아버지를 여의고는 그녀가 아픈 엄마, 여동생과 남동생을 먹여 살린다.

 

그런데 그 가족들이 문제인 것 같다. 필사적인 매기의 노력을 전혀 알아주지 않는다. 오히려 매기를 더 못 부려먹어서 안달이다. 딸과 의절하고 혼자 살아가는 프랭키와 다를 바 없는, 아니 오히려 그보다 못한 가족 관계를 영위하고 있는 그녀다. 그렇게 프랭키와 매기는 가족에 대한 뼛속 깊은 그리움을 안고 살아 간다.

 

그러면서 프랭키는 선수를 키우고 싶어 하고 매기는 선수가 되고 싶어 하니, 이보다 완벽한 궁합이 어디 있겠는가. 그야말로 잘 차려진 밥상이다. 선수와 매니저가 되기로 한 순간, 그들의 머릿속에서 서로는 이미 '가족'이 되어 있다. 영화는 그 과정을 대놓고 보여주지 않는다. 어떤 결정적 사건을 내보이지도 않는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복싱'의 과정으로 보여줄 뿐이다.

 

참으로 똑똑한 영화 문법이다. 그러면 왜 하필 복싱이냐고 할 수 있다. 그건, 복싱이 가지는 특수성이 작용한다. 선수와 매니저의 그 어떤 스포츠보다 끈끈한 관계도 관계지만, 선수가 느끼는 최고의 희열도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직 한 명의 승리자에게 열광한다. '죽음'까지도 불사하고 올라선 '외로운' 사각 링에서 이긴 승리자에게 자신을 투영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는 물론 또 다른 문법이 있지만.

 

영화가 내보내는 이야기와 메시지, 당신은 어떤 의견인가?

 

영화는 가족의 의미를 천륜이 아닌 인연이라 말한다. 또한 안락사를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까지 묻는다. 당신은 어떠한가? ⓒ㈜노바미디어



눈물 콧물을 모조리 쏟아내는 감동을 유발하는 드라마를 신파라고 한다. 신파 자체를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신파가 너무나 활개를 치기에 부담감을 넘어 심적으로 멀리하게 된 게 사실이다. 신파는 사람을 무장해제시켜 제대로 된 관람을 방해할 때도 있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도 분명 신파적인 요소가 존재한다. 그 요소를 극대화 시키면 그 어떤 영화보다 많은 신파적 눈물과 콧물을 끄집어낼 수 있을 것이다.

 

질질 끌지 않았다. 그래서 우린 밖으로 폭발하는 감동 대신 안으로 삭히는 절제의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부담스럽지 않아 또 느껴보고 싶은 그런 감동이다. 삭막하지 않은, 슬프지만 행복한 감동이다. 사막, 가뭄을 연상시키는 마초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활짝 웃을 때나 한 줄기 눈물을 흘릴 때 느낄 수 있는 충격과 의외의 감동이기도 하다. 

 

언젠가 어머니가 말씀하신 적이 있다. '가족은 하늘이 내려준 인연이기에 그 어떠한 경우라도 지켜져야 한다'고 말이다. 지극히 이치에 맞는 말씀이다. 하지만, 현실에 완벽히 들어맞는다고 할 순 없다. 가족은 하늘이 내려준 인연이 아닌 인간이 선택해 만든 인연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는 그렇다고 말한다.

 

누군가를 진짜 사랑한다면, 그(녀)가 원하는 걸 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문제는, 그게 사랑의 차원을 넘어선 '도덕과 윤리'의 차원일 때일 것이다. 한 인간으로서 어떤 선택을 해도 어딘가 완전히 무너질 수밖에 없는. 도덕과 윤리의 잣대만을 들이대 그대로만 따를 수 있다면 편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 세상은 절대 그렇게만 돌아가지 않는다.

 

정답은 없다. 이 영화가 은근히 또는 파격적으로 드러내며 내보내는 이야기와 메시지들은 여전히, 아니 앞으로도 계속 논의를 이어갈 것이다. 이에 나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당신은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가. 생전 처음 보는 이를 '백만 불짜리 아기'라고 말하며 그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삶의 한 축을 내놓을 수 있다고 말하는 이 영화를, 어떤 시각으로 볼 것인가. 나는 상당한 동의의 표시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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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킹스 스피치>


역사상 유명하다고 하지만,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진 몰랐다. '말더듬이' 왕의 진심을 다한 국민으로의 연설을. ⓒ(주)화앤담이엔티



허를 찔렸다. '말더듬이'라는 크게 특별할 것 없는 상태가 이리도 긴장감을 유발할 줄이야. 자신이 말더듬이라는 걸 알면서도,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지극히 중요한 연설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야 하다니.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의 심정은 어떠한가. '이게 뭐라고 이리도 떨리나'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영화 <킹스 스피치>의 짧지만 강렬한 시작 장면에서 느낀 감정들이다. 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부친이자 전임 국왕 조지 6세의 실화를 스크린으로 옮겨 감동을 자아내고자 했는데, 제대로 성공시키며 감격을 주었다. 우린 그 감격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말더듬이 왕 조지 6세의 진심을 다한 연설 하나만으로. 


조지 5세에 이어 왕위에 오른 에드워드 8세는 역사상 유명한 스캔들을 일으키며 하야하고 동생 조지 6세(콜린 퍼스 분)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생각지도 못한 왕 노릇을 해야 하는 처지가 너무 부담스러운 조지 6세, 특히 라디오야말로 왕 노릇의 절대적 기반이 된 시대에 '말더듬이'로서 헤쳐나가야 할 난관이 너무 높다.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언어 치료사 라이오넬 로그(제프리 러쉬 분)로부터 치료를 받아오긴 했지만, 큰 진전이 없는 것 같기도 했거니와 기상천외한 치료 방법에 기가 질려 오다가다 하는 상황이었다. 아버지 조지 5세가 돌아가셨을 때나 형 에드워드 8세가 자신에게 왕위를 물려줬을 때 심리적 위기가 찾아와 관계가 틀어지지만, 로그에 대한 믿음으로 계속해서 찾아가는 조지 6세다. 


정말 잘 만든 웰메이드 일회용 영화


정말 잘 만든 영화다. 더할 나위가 없다. 그렇지만 일회용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주)화앤담이엔티



흔히 무난하고 무탈하게 잘 만들어진 영화를 '웰메이드 영화'라고 하는데, 이 영화가 그렇다. 참 잘 만든 영화란 생각이 든다. 드라마 요소가 적절히 배합된 실화를 바탕으로 꼼꼼히 손 본 듯한 스토리를 중심으로, 프로페셔널하고 충실하게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며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들, 영화에서 그 존재를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자신의 목소리와 색채를 최대한 배제한 듯한 감독, 독특하다기보다 정형화된 안정감이 인상적인 장면 미장센까지, 모두가 영화만을 보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한 느낌이다. 


결과는 흥행과 비평 양면의 완벽한 대박. 단도직입적으로, 제8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을 휩쓸었다. 사실상 여주가 없는 영화로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영예다. 더불어 전 세계적으로 4억 천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며 제작비 대비 26배가 넘는 흥행을 기록했다. 엘리자베스 2세도 극찬을 보냈다고 하니, 누가 보아도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 번이면 족할 그런 영화라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겠다. 두 번, 세 번, 계속해서 보면서 이야기와 숨겨진 이면을 확대재생산하며 새로운 해석과 의미를 부여하는 활동을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영화를 보는 행위 중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활동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처럼 좋은 영화임에도 할 수 없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굳이 찾아보라면, 실제와 영화 속 이야기를 비교해 보는 정도? 하지만 그건 결코 영화가 중심이 될 순 없겠다. 영화의 주요 모토인 조지 6세의 말더듬이 원인과 치료 과정을 다시 들여다보는 건? 그것 또한 의미는 있겠지만 영화가 중심이 될 순 없겠다. 여러모로 <킹스 스피치>는 정말 잘 만든 일회용 영화다. 그렇다고 킬링타임용은 아니다. 


 돌리지 않고 정면만 바라본 선택


이 영화가 가장 잘 한 점이 바로 조지 6세와 라이오넬 로그다. 이 두 사람에 방점을 찍고 다른 곳을 보지 않았다. ⓒ(주)화앤담이엔티



이야기가 산으로 갈 만한 요소들이 도처에 깔렸다. '왕의 연설'이라는 하나의 극점을 향해 치달렸으니 망정이지, 조금이라도 눈을 돌렸다면 영화의 만듦새는 여지 없이 흐트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 유혹이 꽤 강했을 텐데, 그 요소들이 꽤 재밌기 때문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시대극이니만큼 조금만 건드려도 봇물처럼 뿜어져 나올 게 아닌가. 그것도 현존하는 영국 여왕의 직계 선대에 관한 이야기이니.


완전히 바뀐 세상에 대처하는 왕실의 모습, 에드워드 8세의 세기의 스캔들, 스탠리 볼드윈이나 네빌 체임벌린이나 윈스턴 처칠과 같은 역사적 인물,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전황 등 수많은 이야깃거리가 산재되어 있다. 그럼에도 영화는 꿋꿋이 한 길을 걸어간다. 조지 6세의 말더듬이 치료, 그리고 라이오넬 로그. 


시대상을 직접적으로 그려내지 않은 선택, 필자를 포함해 약간의 불만이라도 갖는 이들이 있을 수 있겠다. 너무 한 개인에 천착해 지극한 목적 지향이 된 게 아닌가. 그리하여 대작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음에도 소품의 면모를 띠게 된 게 아닌가. 


영화는 온몸으로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치밀하고 꼼꼼한 각본은 결코 그 부분들을 간과하지 않는다. 한 장면, 한 표정, 한 마디가 눈으로 머리로 가슴으로 와 닿아 꽂히는 것이다. 조주연을 가리지 않고 모든 이들을 잘 살펴야 한다. 어느 영화인들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겠냐만, 이 영화는 그 강도가 조금 더 쎄다고 하겠다. 


영화 자체가 가진 압도적 힘


비록 일회용 영화라곤 하지만, 영화 자체가 가진 힘이 엄청나서 계속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소재와 주제가 가진 힘. ⓒ(주)화앤담이엔티



<킹스 스피치>는 계속해서 다시 보며 의미 부여를 할 수 없는 대신, 영화 자체가 가진 힘 때문에 종종 다시 찾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가와 비슷하다고 할까. 이 영화로 지도자의 덕목을 엿볼 수도 있고, 믿음이란 무엇인지 짚어볼 수 있으며, 치료의 진면목을 들여다볼 수도 있는 것이다. 즉, 이 영화가 채택한 소재와 주제가 갖는 힘이 엄청나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상황에 이 영화가 문득 떠오르는 이유다. 다름 아닌 '지도자의 덕목'이다. '조지 6세가 로그와 더불어 믿음과 끈기로 말더듬이 장애를 극복하는 휴먼 스토리'라는 큰 이야기 이면에 있는 여러 이야기들이 우리가 들여다봐야 할 것들이다. 그것들이 이 영화를 찾게 만든 이유일 테다. 


조지 6세, 그는 어렸을 때 강압적인 아버지로부터 '교정'을 당했다고 한다. 안짱다리를 교정하기 위해 부목을 착용했고 왼손잡이였던 그는 오른손잡이로 교정해야 했다. 또 유모의 방치로 위염을 앓기도 했다고. 그 때문에 말을 더듬었는지 선천적으로 말을 더듬었는지는 알기 힘들지만, 왕이 되기에는 힘든 겉모양(?)을 띠고 있었다. 그럼에도 치열한 고민과 노력으로 장애를 극복하고 조금 더 국민에게 다가 갔던 것이다. 오히려 콤플렉스가 '왕'이라는 존재가 가지는 위압감과 오만함을 털어내주었다. 


언어 치료사 로그의 존재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학위도 없고 당연히 정식 언어 치료사라는 타이틀도 없는 로그를 실력 하나로 뽑아 가까이 하는 대범함을 지닌 조지 6세. 그는 지극히 자신의 진심을 자신의 목소리로 전달하기 위해 치료를 받았다. 로그는 그의 말더듬이를 치료하려고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그의 심리를 들여다보며 '안'부터 치료하고자 했다. 말더듬 장애의 근원을 찾는 게 맞다고 본 것이다. 고로 여기서 부각되는 건 '목소리'겠지만, 중요한 건 '진심'이겠다. 목소리는 진심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조지 6세의 진심은 무엇일까. 


"왕은 국민을 대변하기 때문에 왕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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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오래된 리뷰]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예쁜 영화'의 정점에 서 있는 '웨스 앤더슨'의 정점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다. ⓒ이십세기폭스사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는 예쁘다. 파스텔 톤과 원색의 환상적인 색감 조합과 완벽한 좌우대칭형 수평 구도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예쁨을 선사한다. 그 앞에 '예술적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데, 그 정점에 있는 영화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아닌가 싶다. 


세계대전 분위기가 타오르고 있던 1927년, 알프스에 위치한 가상 국가 주브로브카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는 그 화려하기 그지 없는 외관답게 전쟁과는 무관한 듯한 느낌이다. 호텔의 모든 것에 관여하는 총지배인 구스타브, 그가 총애하는 신입 로비 보이 제로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주요 고객이자 구스타브의 연인인 세계 최대 부호 마담 D.가 피살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구스타브와 제로는 그녀를 기리기 위해 떠난다. 마담 D.가 아낀 엄청난 그림을 가족이 아닌 구스타브에게 남긴다는 유언과 함께, 마담 D.의 엄청난 유산을 노리던 아들 드리트리에 의해 용의자로 몰린다. 구스타브와 제로는 살인 누명을 벗고 다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돌아가기 위해 모험 아닌 모험을 겪는다. 


앤더슨 터치, 앤더슨 스타일, 앤더슨 월드


단 8편으로 거장의 반열에 올라선 웨스 앤더슨. 그 옆에 붙는 수식어들이 다양하다. ⓒ이십세기폭스사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명실공히 2014년 최고의 작품으로, 당시 미국 아카데미와 전미비평가, 영국 골든글러브와 런던비평가, 베를린국제영화제 등 전 세계 주요 상을 휩쓸었다. 이 영화와 함께 당시 주목을 받았던 영화들에는 <라라랜드> 데미언 차젤레 감독의 <위플래쉬>, <레버넌트>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버드맨>, 그리고 <보이후드> 등이 있었다.


웨스 앤더슨은 결코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이는 아니다. 특별할 게 없는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들어내는 데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이는 '앤더슨 터치'라고 명명되어 있다. 그 손길의 특별함에는 '앤더슨 스타일'이라고 불리워지는 게 마땅한 그만의 미학(미장센)이 자리하고 있는데, 우린 이 영화를 통해 그 절정을 맛볼 수 있다. 


그는 단 8편의 장편영화를 연출했는데, 이제는 스타일뿐만 아니라 '세계'를 정립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정말 예쁘다'를 연발하지 않을 사람을 찾기 힘들 것이다. 화면이 전혀 역동적이지 않지만 우리의 눈은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한 화면 안에 배치되어 있는 완벽한 구도의 물상들을 쫓아가기 바쁘다. 그러고선, 정물화처럼 보이는 화면 전체까지 훑어야 한다. 모든 화면들이 이러니 달리 도리가 있겠는가. 바쁘게 움직여야지. 


고급진 미장센을 추구하는 감독들은 많다. 화면에 들어가는 모든 물상들을 허투루 하지 않고 완벽하고 꼼꼼하게 배치하는데, <싱글맨>의 톰 포드 감독이나 <장화, 홍련>의 김지운 감독이 바로 생각난다. 하지만 웨스 앤더슨의 경우, 배우조차 화면을 구성하는 여러 물상 중 하나로 보일 정도의 미장센을 보인다. 


그 화면 구성이 사실 현대적이거나 앞서 예를 든 대표적 미장센 감독들과는 다르게 세련되지도 않다. 예쁘다는 걸 빼면, 그 자체로 근현대 또는 근대적이라고까지 할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배경 또한 20세기 초중반이니만큼 더욱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화면 구성뿐만 아니라 화면 구도나 영화를 구성하는 여러 기법과 소품, 하다 못해 캐릭터 특성까지도 그러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는 고전주의자가 아닐까. 


완벽한 미학과 흥미진진한 이야기의 '균형'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경우, 마냥 예쁘기만 하지 않다. 그밖에 이야기나 연기에도 공을 들여 균형을 맞추었다. ⓒ이십세기폭스사



아무리 완벽한 미학을 선보인다 하더라도, 오로지 그것뿐이라면 이와 같은 명성을 획득하진 못했을 것이다. 그는 그가 연출한 모든 영화의 각본을 직접 쓴 걸로도 유명한대, 영화의 모든 것을 완벽히 정형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완벽한 지배인 구스타브의 모습과 흡사하다. 


스토리가 상대적으로 떨어져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그건 배우들의 연기도 마찬가지다. 그와 함께 하는 배우들은 하나 같이 유명한 연기파들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워낙 예쁘고 흐트러짐 없는 화면을 선보이기 때문일 텐데, 전작 <문라이즈 킹덤>에서도 그런 기분을 맛보았다. 아이들의 순수한 사랑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말도 안 되게 예쁜 화면들과 그에 맞는 특이한 캐릭터들이 압도해버려서 거의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경우는 어떨까. 


이중도 아닌 삼중 이야기 구조를 굳이 택해 이야기 자체에 흥미를 북돋고는, 지체 없이 본론으로 들어가 버린다. 물론 그 사이에 계속해서 보여주는 호텔의 황홀한 외관은 한 번 보면 숨이 멋는 듯한 기분을 맛보게 해준다. 그리고 여지 없이 '황금율'까지 생각나게 하는 대칭 구도의 화면들을 쉴 새 없이 쏟아붓는다. 정신을 차리기 힘들다. 그럼에도 빠르고 흥미진진한 이야기 진행 덕분에 이야기와 배우들의 연기도 죽지 않는다. 그 '균형'에 많은 공력을 쏟은 느낌을 주는 영화다. 


전혀 정반대의 스타일을 추구할 것 같지만, 웨스 앤더슨의 영화는 홍상수의 영화를 생각나게 한다. 정해진 틀에서 한 치의 오차도 있어선 안 될 것 같은 앤더스과 모든 것들이 자유로울 것 같은 홍상수가 비슷하다니,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영화에서 감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라는 점과, 반드시라고 할 만큼 각본과 연출을 병행한다는 점과, 정반대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영화적 미학이 하나 같이 좋은 영화를 탄생시킨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완벽히 정해져 있는 미학과 아무것도 정해져 있는 않은 미학은 정반대이자 하나이다. 


이보다 '예쁜' 영화는 없다


'예쁘다'를 연발한다. 황홀할 지경이다. 그냥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더 말해 무엇하랴? ⓒ이십세기폭스사



웨스 앤더슨의 작품을 논할 땐 웨스 앤더슨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자칫 웨스 앤더슨만 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것이, 그의 영화에서는 그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오는 최악의 단점은, 그의 차기작이 기대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렇게 예쁜 영화를 또 다른 형식으로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고 당연히 생각할 수 있지만, 어차피 비슷한 느낌일 게 뻔하지 않은가. 


(다분히 의도된 계산에 의한 것이겠지만) 다행인 건 그가 다작을 하는 감독이 아니라는 것. 그가 처음으로 장편을 내놓은 게 1996년, 마지막으로 내놓은 게 2014년, 그리고 지금이 2017년, 20년이 흐르는 동안 내놓은 작품이 8편이니 2~3년마다 한 편씩 내놓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다음 작품은 2018년에 개봉 예정이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정점을 찍은 만큼, 조금은 다른 시도를 해봄이 어떨까 싶다. 물론 '쇠뿔도 당길 때 빼라'는 속담이나 '한 우물만 파라'는 격언도 있고, 그래야 진정한 장인이 된다는 사실도 틀림이 없다. 그렇지만 아름답고 예쁠수록 식상하고 진부하게 되기 쉽다. 


얼마전 <문라이트>를 말하며 '이보다 아름다운 영화는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름다움에는 여러 면들이 있으니, 누군 공감하고 누군 공감하지 않더라도 비교적 쉽게 단언할 수 있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도 한 마디 하고 싶은데 '이보다 예쁜 영화는 없다'라고 하고 싶다. 그야말로 다른 무엇도 아닌 '시각적 예쁨'이다. 이 예쁨에는 절대적 면만 있을 뿐이다. 단언하건대, 가장 예쁜 영화다. 


이보다 예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웨스 앤더슨 자신뿐이다. 앞서 그의 차기작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딱 한 가지 기대하는 게 있다면 이것뿐이다. 아니, 부탁한다. 이보다 더 예쁜 작품을 들고 와달라. 두 시간 동안 눈호강 좀 시켜주고 싶다. 그 전까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달래고 있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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