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스텝포드 와이프>


과격한 프로그램으로 문제를 일으켜 해고 당하는 조안나, 그녀가 가족과 함께 간 스텝포드. 그곳엔 현모양처의 표본들이 즐비하다. ⓒCJ 엔터테인먼트



잘나가는 방송국 CEO이자 방송제작자 조안나 에버트(니콜 키드먼 분), 그녀는 예측불허의 자유인이다. 이번에도 역시 파격적인 페미니즘 프로그램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크게 성공할 것 같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을 초청해 열린 성대한 TV쇼 소개 자리에 한 남자가 출현해 총으로 위협한다. 조안나가 만든 페미니즘 프로그램의 피해자라는 것이었다. 


조안나는 곧 해고되고 정신병원으로 가게 되는데, 남편이 스텝포드라는 곳으로 이주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그곳은 미국 북동부 코네티컷 교외에 있었는데, 평온하기 이를 데 없는 분위기에 친절한 사람들만 사는 것 같았다. 그런데 조안나가 보기에 그곳은 이상했다. 하나 같이 바비인형처럼 차려 입은 금발머리 여자들이 현모양처의 표본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느 파티 자리에서 사단이 난다. 한 여자가 춤을 추다 말고 쓰러진 것이다. 조안나는 그녀를 당장 병원으로 데려가야 한다고 말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아무런 반응 없이 그저 괜찮다고만 할 뿐이다. 그런데 쓰러진 여자의 행동이 뭔가 이상하다. 사람이 아닌 로봇 같은 움직임. 그녀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들은 왜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 마을은?


남자는 이래도 되고, 여자는 이래야 한다?


하나같이 바비인형처럼 차려입고 금발을 한 그곳의 그녀들, 뭔가 이상하다... ⓒCJ 엔터테인먼트



영화 <스텝포드 와이프>는 시작과 동시에 '페미니즘'을 흘린다. 이 영화가 페미니즘을 말하고자 한다는 걸 초장부터 알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인공이 페미니스트라 할 수 있는 조안나라는 것과 무대가 스텝포드라는 걸 알린다. 그곳에 바비인형처럼 차려 입은 금발머리 현모양처들이 즐비하다는 건, 조안나와의 갈등이 심화될 거라는 영화의 앞날을 예고한다. 


'남자는 이래야 한다'는 전통과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전통은 상충하지 않고 조화를 이룬다. 이처럼 서로가 서로를 구속하는 형국이니 얼핏 보기엔 평등한 것 같다. 그런데 한 발만 들어가면 명백한 차원의 다름을 볼 수 있다. '남자는 이래도 된다'는 말은 있지만 '여자는 이래도 된다'는 말은 없고, 무엇보다 여자의 남자를 향한 순종과 복종이 남녀 조화의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하나 같이 바비인형 차림으로 차려 입은 금발머리 여자들의 모습은 '여자는 이래야 한다'의 정본과도 같다. 남자들이 원하는 모습 말이다. 겉모습에 그치지 않고 그녀들은 남편을 극진히 모신다. 완벽한 집안일은 물론 남편이 시키는 사소한 일 하나도 군말 없이 하며 남편의 캐디 역할도 한다. 이쯤 되면 아내가 아니라 비서 또는 하녀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남성 우월 사회는 파시즘일 수 있다


그녀들의 일방적인 모습은 남성 우월 사회의 파시즘을 역설한다. 그곳은 이상한 곳이 아니라 틀린 곳이다. ⓒCJ 엔터테인먼트



남편은 방송국 부사장, 자신은 방송국 CEO. 조안나는 단순히 잘나가는 방송인일뿐 아니라 남편보다 위에 군림하는 여성이다. 그녀는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거니와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아내가 남편을 모시는 모습을 용납할 수 없다. 더욱이 그녀는 갈색 짧은 머리에 검은색 계열의 옷을 주로 입고 다니니 만큼 바비인형 차림의 금발 머리도 용납할 수 없다. 


반면, 조안나의 남편 월터는 스텝포드에서 신세계를 경험한다. 남성 우월 사회에서 우월한 남성으로서의 지위를 한껏 드러내지 못한 자신을 스텝포드에서 드러내고자, 남성들만의 모임에 참석하고 조안나에겐 홧김에 이혼을 통보하기도 한다. 마을 전체가 똑같이 완벽한 남성 우월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이곳에 사실 조안나와 월터는 완벽한 이방인이다. 그들이 느끼기엔 이곳은 '이상한 곳'이고 '틀린 곳'일 것이다. 


그렇지만 파시즘적인 공동체에서 구성원 한두 명이 할 수 있는 일은 따로 없다. 그저 전체의 생각을 따르는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가 보여주는 가장 큰 깨달음이자 경고는, 남성 우월 사회가 파시즘적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남성 우월'이라는 개념으로 개인 생활 전반을 통제하는 것이다. 


더욱 끔찍한 건, 여기서 여성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에 더해 여성이라는 개인 또한 통제 된다는 점이다. 남성과 여성에서 여성만 퇴색되며, 통제되는 것도 남성이 아닌 여성뿐이다. 조안나와 월터가 힐링의 유토피아이자 파라다이스로 찾은 스텝포드가 그 어느 곳보다 비인간적인 디스토피아로 느껴지고 다가오는 건 이 사실을 깨달을 때다. 물론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유토피아일 거다. 끔찍하기 짝이 없는 유토피아. 


극단적으로 치닫지 않았으면...


영화는 극단적이고 과격한 스토리로 중무장한 채 페미니즘을 외치고 남성 우월 사회에 경종을 날린다. 조금 자제가 필요해보였다. ⓒCJ 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이처럼 보여주고 또 말하고자 하는 바를 과격하게 보여준다. 과격한 스토리와 장면으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투박하기 짝이 없이 직접적으로 보여준다는 뜻이다. 우린 영화를 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스텝포드의 모든 여성들이 '로봇'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로봇처럼 자신의 생각 없이 명령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동일한 행동을 한다는 비유와 상징의 개념이 아니라, 진짜 로봇이라는 사실. 


어떻게 그 많은 이들이 로봇이 될 수 있었는지, 또는 원래 로봇으로 만들어졌는지는 일단 알 길이 없다. 맥락상 사람이었던 이들을 로봇으로 만든 것 같은데, 영화의 전반적 만듦새만을 들여다볼 때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영화가 말하려는 주제를 향해 그저 일직선으로 달려갈 뿐인 스토리에 그것들은 그저 수단일 뿐이기 때문이다. 


조안나처럼 능력있는 여성들을 데려와 로봇으로 개조해 충실한 현모양처로 살아가게 한다는 것. 이 모습은 이전까지 '당하고' 살았던 남자들이 일종의 복수를 하는 형국으로 비친다. 그 자체가 그들이 남성 우월 사회에서 왔다는 방증이다. 남녀 평등 사회였다면, 실력이 아닌 '성'의 차이로 비교할리가 없기 때문이다. 


영화는 극단적인 시작과 과정을 거쳐 끝까지 극단적으로 마무리한다. 선명하고 명명백백한 것과 극단적인 건 비슷한 듯하지만 완연히 다른 것. 영화는 자칫 여자와 남자를 홍해 가르듯 가를 조짐을 보인다. 그건 높지 않은 영화의 만듦새에서 기인한 게 클 것이다. 러닝타임도 평균보다 30분 정도 짧았던 점을 감안할 때 충분히 더 촘촘히 보여주어 극단적이 아닌 선명함을 선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나마 조안나 혼자가 아닌 남편 월터가 끝까지 함께 해준 점이 눈에 띈다. 


우리 사회는 당연히 남녀 평등 사회가 아니다. 여권이 신장되었다고 하지만 평등과는 하등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스텝포드처럼 기괴한 사회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도기 또는 그 중간 어디라고 해도 될까. 아니, 과도기여야 하겠다. 그래야 언젠가는 평등이 실현된다는 뜻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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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