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그녀>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진 인간, 그런데 제목이 인공지능 <그녀>인 이유는 뭘까? ⓒ워너브라더스



'4차 산업혁명'이 새로운 시대의 화두다. 인공지능, 로봇기술, 생명과학이 주도하는 차세대 산업혁명, 100여 년을 주기로 일어난 산업혁명이 4차 때는 50년 만에 찾아왔다. '알파고'는 그 상징 중에 하나가 되었는데, 단순히 인간의 능력을 앞서는 것 뿐만 아니라 인간을 대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사실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기 이전에 인간이 인간을 대체해왔다. 참으로 많은 분야에서 인간이 인간을 대신해 왔는데, '대리사회' '대체시대'라고 명명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을 것 같은 각각의 인간이 가지는 고유한 감정도 대신해주는 것이다. 이 시대가, 이 사회가, 유토피아인지, 디스토피아인지. 


근 미래를 배경으로 한 대체불가 로맨스 영화 <그녀>는 여자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진 한 인간 남자의 이야기를 주로 한다. 그러기 위해선 인간도 인간이지만 인공지능이 '감정'을 지녀야 한다. 나아가 상대방에게 감정을 전달해야 한다. 사랑은 혼자 할 수 없는 것이기에. 어찌 가능할까. 그런데 영화는 나름의 방식으로 기가 막히게 그려낸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신개념 사랑 방식


인공지능 그녀를 사랑하는 인간 테오도르는 너무나도 행복해 보인다. 근미래 누구에게나 도래할 수 있는 사랑의 모습이 아닐까. ⓒ워너브라더스



남들 편지를 대신 써주는 회사에서 일하는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 분), 그의 편지들은 하나 같이 의뢰인과 대상과 상황에 완벽히 부합하는 아름다운 글이다. 현실은 아내 캐서린(루니 마라 분)과 이혼을 준비하며 별거 중. 그렇지만 벌써 일 년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캐서린과의 좋은 한 때가 쉼 없이 그를 괴롭힌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봐도 별 다른 진전이 없다. 마냥 우울하게 방황할 뿐이다. 


테오도르는 호기심으로 최신 인공지능 OS를 구입한다. 이왕이면 여자로. 그저 말동무가 필요했을 거다. 심심하거나 마음 정리가 안 될 때면 언제나 불러내 자기 얘기나 들어줄. 그런데 사만다(스칼렛 요한슨 목소리)라는 이름의 이 OS, 심상치가 않다. 목소리부터가 사람을 끄는 마력이 있고, 무엇보다 '리얼'하다. 금방 친해진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언제나 불러내 얘기할 수 있거니와 아는 것이 많아 어떤 이야기도 잘 통하고 자신의 마음을 잘 다독여주기도 하고 심지어 '본인'의 이야기도 건네준다. 분명 그녀는 인간이 아니지만, 그녀와 사랑에 빠진 게 하등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는 훌륭하게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까? 테오도르는 그녀와의 '사랑'을 잘 지속해나갈 수 있을까? 


그야말로 4차 산업혁명에 걸맞는, 아니 상징하는 신개념 사랑 방식이다. 사람만의, 나아가 생물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던 '사랑'이라는 감정의 궁극체가, 인간이 창조해 낸 비생물에 의해서 현실화된 것이다. 그것도 결정적으로 인간의 일방적인 사랑이 아닌 쌍방 사랑의 모습으로. 이들의 사랑이 너무 예뻐서 지나치기 쉬울 충격이다. 우린 시선을 선택해야 한다. 이들의 '예쁜 사랑'이 우선인지, '충격'이 우선인지. 


인간과 인공지능의 사랑, 충격과 공포


나에게 이들의 예쁜 사랑은 충격과 공포로 다가온다. 아직은 인간들의 사랑을 원한다. ⓒ워너브라더스



감독의 의도는 다분히 이들의 '예쁜 사랑'인 듯하다. 디지털의 최정점에 이른 듯한 전체적 시대상과 사회 모습과 분위기와는 정반대인 듯한 아날로그적 감정선이 영화 전체를 지배한다. 거기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게 영상과 색인데, 배경은 파스텔 톤으로 채도를 높이려 했고 인물은 원색으로 명도를 높이려 한 듯하다. 


거기에 무엇보다 테오도르와 사만다의 대화, 테오도르의 표정, 테오도르의 과거 회상 등의 아날로그에 집중함으로써 완벽한 4차 산업혁명을 이룩한 디지털 사회라는 걸 최대한 알아차리지 못하게 했다. 전반에 깔린 당연한 디지털에 시선이 가는 대신, 테오도르의 감정에 집중하게 된 것이다. 


반면 나는 이들의 '예쁜 사랑'이 오히려 '충격'으로 다가왔다. '씁쓸함'도 함께. 시대가 시대인 만큼, 이런 생각이 굉장히 보수적으로 비춰질 수 있겠다. 인공지능이 인간 삶과 사회를 전반적으로 지배 혹은 함께 하는 시대에, 인간이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는 게 전혀 이상할 것 없지 않은가. 문제는 인공지능이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궁극의 감정을 대신할 수 있게 된 점이다. 인간의 노동력이 아닌, 인간 자체를 대신하는 것이다.


제목이 '그녀'인 만큼, 영화가 부각하는 건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이다. 그녀의 변화, 발전, 진화 등. 그렇지만 나에겐 인공지능이 아닌 인간이 계속 보였다. 심지어 인공지능인 그녀가 아닌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그녀가 보였다. 인간에게 받은 상처를 인공지능에게서 위로 받는 한 인간의 이기적인 면모도 보였다. 그렇다. 나는 최대한 인간을 보려고 애썼다. 그들의 사랑이 '인간과 인간'이면 좋겠다는 무의식의 발로였다. 그렇지만, 결정적으로 그녀는 인간이 아니니만큼 충격은 계속 배로 돌아올 뿐이다. 


더욱더 충격적으로 다가온 건, 그녀가 '인간'이 되고 싶다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몸을 갖고 싶고, 감정을 지니고 싶다고 말했을 뿐이다. 불가능한 게 없는 그녀의 세계에선 그것이 비단 인간 만을 뜻하는 건 아닐 테다. 어디까지 나아갈지 알 수 없을 정도의 그녀, 그 미지가 주는 충격과 공포는 새롭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최고의 영화 <그녀>


이 모든 영화 외적인 논의들을 제쳐두면, <그녀>는 최고의 영화다. 그렇지만 계속 씁쓸함이 남기에, 마음 놓고 또 보긴 싫다. ⓒ워너브라더스



사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백히 알 수 있다. 현대인의 고독과 외로움과 소통일 것이다. 근 미래가 아니라 현재도 과거에도 우린 똑같이 고독했고 외로웠고 소통의 부족을 느꼈다. 다만, 미래의 우리는 훨씬 더 쉽게 훨씬 더 고도의 비인간 대체자를 찾을 수 있다. 오랜 시간과 공력을 들여 나에게 맞게 대상화하거나 나를 상대에 맞게 타자화할 필요도 없다. 바로 나를 내보일 수 있고 아무 걱정할 필요도 없다. 


아직 우리는 '결국 인간'이라는 불편하지 않은 답을 원한다. 아니, 최소한 나는 그렇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감독은 일부러 주체를 인간 '그'가 아닌 인공지능 '그녀'에게 놓고 그녀의 합당한 자가 발전으로 인한 자발적 떠나감으로 인간 그가 결국 인간 그녀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구도를 만들었다. 여기서 나는 충격이 조금 가시는 대신 '씁쓸함'을 느꼈다. 굉장히 인간적인 씁쓸함인데, 결국 모든 건 헤어지는구나. 


이 모든 논의를 제쳐두면, 아니 오히려 이런 논의들과 함께 할 때 <그녀>는 단연코 최고의 영화다. 우선 이 영화가 '아름답다'는 데에 이견을 달 만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시각적으로도, 청각적으로도, 그리고 생각적으로도. 그리고 우린 이 영화로 시대와 사회와 우리 자신을 동시에 들여다볼 수 있다. 보는 이에 따라서 깊게도 얇게도 가능하다. 거기에 가보지 못한 미래를 굉장히 현실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무엇보다 그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형태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 영화 하나로 진행할 수 있는 논의의 깊이와 총량이 어마어마하다. 이렇게 방점을 찍는 바, 심지어 <그녀>는 주인공인 '그녀'가 언제쯤 모습을 내보일까 하는 기대감을 끝까지 가지게 하여 긴장감이 촉발하는 즐거움까지 선사한다. 이 작은 영화가 파도 파도 끝이 없으니, 이보다 더 좋은 영화를 찾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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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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