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광해: 왕이 된 남자>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포스터. ⓒCJ E&M



현재까지 1000만 이상 관객을 동원한 한국영화는 2003년도 <실미도> 이후 16편이다.(조만간 <신과 함께-인과 연>이 이 대열에 합류할 듯하다.) 2010년대에 11편이 나왔다. 이제 매년 한 편 이상 나오는 게 이상하지 않다. 이 영화들은 하나같이 웰메이드 대중영화라 할 만하다. 하지만 이중 '웰메이드'에 중점을 놓고 얘기할 만한 영화는 많지 않다. 즉, 영화 내적인 요소보다 외적인 요소가 흥행에 큰 도움을 주었다는 말이다. 


그 와중에 영화 내적으로도 빛나는 성취를 이룩했다고 평가받고 또 개인적으로 평가하는 작품들이 있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단연 돋보이고, <부산행> <베테랑> <도둑들> <변호인> 등이 눈에 띈다. 이들 작품은 '1000만 영화'라는 꼬리표 아닌 꼬리표를 떼고 그 자체로 영화적 인정을 받을 만하다. 


<광해: 왕이 된 남자>(이하 '광해')를 빼먹을 뻔했다. 개봉 당시가 제18대 대통령선거가 불과 3개월 전으로 다가왔을 때였다. 이 영화가 재조명하는 광해군의 모습이 고 노무현 대통령을 연상케 한다 하여 영화 외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영화 내적으로만 보아도 이 정도의 흥행이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대중영화의 정석이다. 


'성군' 광해를 만나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한 장면. ⓒCJ E&M



조선 제15대 왕 광해 8년, 자신을 노리는 정적들의 술수가 날로 심해짐을 느끼는 광해(이병헌 분)는 도승지 허균(류승룡 분)에게 명해 위협에 대비한 대역을 찾게 한다. 그렇게 끌려온 광대 하선(이병헌 분)은 광해와 얼굴이 똑같을 뿐 아니라 특유의 말투와 몸짓까지 똑같다. 그는 영문도 모른 채 왕이 자리를 비운 하룻밤을 채운다. 


어느 날 광해가 쓰러져 의식을 잃는다. 정적의 술수가 분명하지만 당장 달리 도리가 없다. 허균은 모든 책임을 지고 하선으로 하여금 왕이 깨어날 때까지 그 자리를 대신하게 한다. 왕이 될 수도 왕이 되어서도 안 되는 천민 하선은 왕이 된 것이다. 정녕 아무것도 모르는 그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선은 도승지 허균에게 가르침을 받고 의 말단 기미나인을 살뜰히 챙기고 중전에게 전에 없던 호감을 보이고 내관과도 스스럼 없이 지내고 부장에게 진심을 내보인다. 이 모든 건 원래의 광해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선선함과 솔직함과 여유 덕분이다. 하지만 와중에도 변함없는 정적의 술수는 날로 더해져만 가는데... 


영화는 광해군 8년 2월 28일 '광해군 일기'에 남아 있는 글귀 "숨겨야 할 일들은 기록에 남기지 말라 이르다"를 토대로 영원히 사라진 15일간의 기록을 되살려놓은 것이다. 그 밑바탕엔 '폭군' 아닌 실리외교와 민생안정의 재평가로서의 '개혁군주' 광해가 있다. 그리고 우린 이 영화를 통해 '성군' 광해를 만날 수 있다. 


완벽한 대중 상업 영화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한 장면. ⓒCJ E&M



대중 상업 영화는 당대 대중의 심리를 잘 파악해야 한다. 이 영화가 나왔을 당시 한국은 대선이 코 앞으로 다가왔을 때였는데, 광해 아닌 하선의 행동 하나하나 말 하나하나가 사무치게 다가왔을 것이다. 우리는 "그대들이 말하는 사대의 예, 나에겐 사대의 예보다 내 백성들의 목숨이 백곱절 천곱절 더 중요하단 말이오!"라고 말하는 지도자가 필요했다. 그야말로 완벽한 대중 심리 반영이다. 


또한 안정과 파격의 조화가 필요한 대중 상업 영화다. 이병헌의 180도 달라지는 광해와 하선의 1인 2역과 허균을 비롯한 주요 조연들의 연기는 영화의 안정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고, 천민이 왕의 대역을 넘어서 실제 왕보다 더 왕다운 생각과 행동을 하는 파격 너머 파격의 모습이 신선했다.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시대 반영과 메시지 전달은 과하지 않게, 그렇다고 아예 넣지 않으면 안 될 수준이어야만 한다. 맞는 말을 한다고 하지만 너무 과하거나 과격하면 프로파간다가 되기 십상인데, 그런 함정에 빠지기란 너무나도 쉽다. <광해>는 주로 하선의 말로 전한다. 


광해를 위시한 비주류 대북파가 주장하고 전통적 주류 기득권 서인이 반대한 대동법의 핵심은 "땅 열 마작을 가지고 있는 자에게 쌀 열 섬을, 한 마작을 가지고 있는 자에게 한 섬을 받겠다는데 그것의 어떤 것이 그릇된 말이오?"란 말에 있다. 한 토시도 빠짐 없이 40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대로 반영해도 된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찬성과 반대가 극렬히 싸우는 이 법을 기득권이 받아들일 리가 없다. 


자신의 위치를 알고 지키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한 장면. ⓒCJ E&M



일본의 전설적인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의 <카게무샤>라는 작품이 있다. 일본 전국시대 전설적인 무장 다케다 신겐의 그림자 무사를 통해 정체성과 허무함을 그린 이 영화는 1980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비롯해 전 세계 수많은 상을 휩쓴 명작이다. 소재만 비슷할 뿐 전혀 다른 영화임에도 <광해>를 보는 내내 <카게무샤>가 생각났다. 


영화의 역사에서 <카게무샤>는 그 자체가 하나의 주체가 되어 영원히 명작으로 남을 것이고, 아마도 <광해>는 무엇을 말하고 할 때 소품 또는 도구로서 가끔씩 불려나오는 정도에 그칠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봄에 있어 그게 전부는 아닐 테다. 이 영화는 대중상업영화로서 더할 나위 없는 수준을 선사했다. 자신의 위치를 알고 지켰다. 


이 영화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봤고 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행복했을 게 분명하다. 이 착한 영화는 우리를 박장대소하게 하고 대성통곡하게 하고 종국엔 씁쓸하지 않은 환한 미소를 짓게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영화가 많지 않다. <카게무샤> 같은 영화는 절대 해낼 수 없다. 예술 명작 영화와 대중 상업 영화 사이는 높고 낮음의 기준을 매겨서는 안 될 것이다. 그 둘은 다른 차원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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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아웃사이더>


영화 <아웃사이더> 포스터. ⓒ워너브라더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1970년대 미국 최고의 감독 중 하나이다. 당시 <대부>, <컨버세이션>, <대부 2>, <지옥의 묵시록>을 연달아 내놓으며 그야말로 영화 세계를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어 <카게뮤샤>도 기획 제작했으니 뭘 더 말할 수 있으랴. 


80년대 이후에도 꾸준히 영화를 찍었지만 70년대만 못했다. 최근까지도 주로 기획과 제작에 참여해왔고 괜찮은 작품이 적지 않다. 그의 영화 연출, 그 빛나는 재능은 비록 한때였지만 그 한때가 남긴 흔적이 영원할 것이기에 아쉬움은 적다. 


여기 그의 1983년도 작품 <아웃사이더>가 있다. 아마도 코폴라 전성기 끝자락에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호밀밭의 파수꾼>과 더불어 가장 유명한 성장소설 중 하나인 S. E. 힌턴의 1967년 소설 <아웃사이더>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굉장히 매력적이다. 범상치 않은 스토리 구도에 당대 최고의 청춘스타들이 대거 출연해 흥미로운 조화를 이루었다. 물론 정점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일 것이다. 


부자와 빈민


영화 <아웃사이더>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



미국 오클라호마의 어느 마을, 남쪽에는 백인 부자가 북쪽에는 백인 빈민이 살고 있다. 그들은 서로를 쏘시와 그리저라 부르며 적대시한다. 그리저 포니보이는 어려서 부모님을 사고로 잃고 큰형 대릴, 작은형 소다팝과 함께 산다. 그는 감옥까지 다녀온 댈러스 무리와 함께 다니며 비행을 일삼지만, 소설과 시를 좋아하는 감수성 어린 열네 살 소년이기도 하다. 


위에서 언급하기도 했던 영화의 원작은 S. E. 힌턴의 자전적 이야기로, 그녀가 열일곱 살에 집필했다는 사실로도 유명하다. 한 소년의 성장 이전에 부자와 빈민 마을로 나뉘어진 배경이 인상적이다. 인상적이다 못해 기괴하고 무섭기까지 하다. 자유라는 것이 명백히 존재하지만 눈에 보이는 벽도 존재한다는 게 어떤 의미일지...


서울의 강남, 그중에서도 핵심적인 몇몇 구는 우리나라 전체 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어른이 되어 갈수록 그런 사실 하에서 '계급'의 존재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그런데 그런 느낌을 갖게 되는 시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부자들이 돈을 많이 버는 이유와 돈을 많이 벌고 나서 하는 일이 교육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릴 때 갖는 상대적 박탈감이다. 그건 시작될 당대에도 자신의 세계를 부정으로 잠식하는 심각한 영향을 끼치지만 영원에 가까운 시간 동안 결코 좋을 수 없는 영향을 끼친다. 상대적 우월감도 좋을 수만은 없다. 한 인간을 구성하는 건 결코 한 가지만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가. 


영화의 재미들


영화 <아웃사이더>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



포니보이에게는 친한 친구 쟈니가 있다. 그는 매일 같이 싸우는 부모님 때문에 집에 들어가기 싫어한다. 어느 날, 그 둘이 새벽에 밖에서 배회할 때 쏘시들이 덮친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포니보이를 죽일 듯이 괴롭히는 모습을 보고 쟈니는 칼을 꺼내든다. 정신을 차려 보니 쏘시의 한 아이를 죽인 것이 아닌가. 


영화는 데뷔한 지 4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도 여전히 탑배우의 자리에 있는 톰 크루즈와 지난 2009년 세상을 떠난 90년대 최고의 스타 패트릭 스웨이지, 80년대 최고의 청춘 스타 맷 딜런을 비롯, 지금까지도 꾸준히 연기를 펼치는 배우들이 총출동하다시피 했다. 이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영화의 재미는 쏠쏠하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재미는 시의적절한 OST들이다. 영화의 주제를 완벽히 구현하는 스티브 원더의 <Stay Gold>(황금빛 시절)을 필두로 제리 리 루이스, 엘비스 프레슬리, 칼 퍼킨스의 노래들이 영화를 수놓는다. 


그 정점은 노래가 아닌 시인데, 포니보이가 존경해 마지 않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금빛은 오래 가지 않는다'이다. '청춘은 오래 가지 않는다'라고 바꿔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이 영화의 재미, 그 기저에는 속절없이 빠르고 속절없이 지고 마는 청춘에 대한 찬미와 안타까움이 있는 것이다. 


자연의 첫 푸름은 금빛//붙잡아두기 가장 어려운 빛깔.//자연의 첫 번째 잎사귀는 꽃.//하지만 한 시간은 피어있을까요.//에덴은 슬픔에 잠겨버렸고//새벽은 낮으로 퇴색하는 것.//금빛은 오래가지 못하는 것이지요.


속절없이 흘러가는 황금시절, 청춘


영화 <아웃사이더>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



포니보이와 쟈니는 이런 일에 도가 텄을 것 같은 댈러스에게 도움을 청하고, 댈러스는 그들에게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버려진 교회 건물에 숨어 있을 것을 추천한다. 그들은 곧 야영을 시작한다. 얼마 후에 찾아온 댈러스와 함께 오랜만에 시내에 나가 맛있는 것도 먹고 앞으로의 일을 의논한다. 그리고 돌아왔는데, 교회 건물이 불타고 있는 게 아닌가. 그곳에는 견학온 어린 아이 몇몇이 갇혀 있었다. 포니보이와 쟈니는 주저없이 들어가 아이들을 구하는데, 쟈니는 그만 크게 다치고 만다. 


갈 곳 없는 포니보이와 쟈니에게 도망쳐 온 버려진 교회 건물은 역설적으로 파라다이스에 가깝다. 무엇보다 절대 헤어나올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계급적 배분의 하위 단계 삶에서 멀리 빠져나왔다는 생각이 절대적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새롭게 부과된 굴레는 또다른 되돌릴 수 없는 상황 '살인'. 


그들의 절대 되돌릴 수 없는 또다른 '청춘'은 그렇게 속절없이 흘러갈 뿐이다. 영화는 현실에서 절대 달아날 수 없이 두 발을 디디고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선보이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굉장히 문학적이다. 현실과 맞닿아 있다고 보기에 좀 어려운 면이 있는데, 이는 아이들이 처한 비참한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함이라기 보다 문학적으로 승화 내지는 비참한 현실에 당당히 맞서기 위함이라고 보는 게 맞다. 


쟈니가 포니보이에게 남긴 편지가 이를 증명한다. '황금은 어린 시절을 말하는 것 같아, 우리처럼. 어릴 때는 모든 것이 새롭잖아 새벽처럼. 네가 석양을 보며 생각하는 것이 바로 황금이야. 계속 그렇게 사는 게 좋은 것 같아. 아직도 세상엔 좋은 것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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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


영화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 포스터. ⓒ월트디즈니코리아



스타워즈 시리즈에 온갖 최초와 최고의 수식어를 붙인다 해도 전혀 과장이 아니다. '영화'라는 걸 본다는 사람이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필수코스 중 하나인 것이다. 영화 역사상 최고의 시리즈들인 <007>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쥬라기>, '마블' 등이 모두 영화 아닌 원작이 있는 반면 <스타워즈>는 영화가 원조이다. <캐리비안의 해적> 정도가 완벽한 원작 없이 영화로 만들어진 유명 시리즈이다. 


<스타워즈>라고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고 할 순 없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신화 연구자의 필수코스인 미국의 비교신화종교학자 조지프 캠벨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았으니 말이다. 조지프 캠벨의 신화연구 자체가 <스타워즈>의 원작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역사가 짧아 신화라고 할 것이 마땅치 않은 미국에게 선사한 현대 신화라고 할까. 미국은 <스타워즈>를 시작으로 수많은 현대 신화를 만들고 있다. 


개인적으로 스타워즈 시리즈를 전혀 접하지 않았다. 못한 건 아니니 일부러 접하지 않았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너무도 방대한 세계관에 압도 당해 부담을 느꼈다. 한참 전에 끝난 시리즈를 이제 와서 다시 보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2015년 10년 만에 오리지널로 돌아왔고 이듬해에는 최초로 스핀오프를 선보이며 최소 2020년 이후까지 매년 오리지널과 스핀오프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두 번째 이유는 사라진 것이다. 첫 번째 이유는 오리지널과 세계관은 동일하지만 독립된 이야기를 내세우는 스핀오프를 보는 것으로 해결이 가능할 것이었다.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이하, '로그 원')는 나의 스타워즈 시리즈 입성의 시작이 되었다. 


실패 없는 성공을 위한 작전


영화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코리아



제국이 하는 일이 옳지 않다고 생각해 숨어 살던 제국군 과학자 겔렌 어소 가족은 결국 제국군 크레닉 국장에게 걸리고 만다. 겔렌은 제국으로 끌려가는 한편 겔렌의 아내는 죽고, 겔렌의 딸 진은 탈출한다. 시간은 흘러 15년 후, 겔렌은 제국에서 행성 하나를 파괴해버릴 치명적인 무기 '데스 스타' 개발에 다시 투입되고 반군은 이 사실을 알고는 그의 딸 진을 이용해 저지하려 한다. 


처음엔 거절했지만 이내 설득 당하고 만 진은 호기롭게 실행에 옮기고자 한다. 하지만 완성단계에 있는 데스 스타를 파괴하는 건 한없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 그때 갤런이 극비리에 남긴 비밀 영상을 보고 데스 스타의 설계도 존재와 위치를 알아낸다. 설계도를 탈취할 가능성은 불과 2.4%, 즉 이 작전에 투입된 모든 이들의 죽음을 뜻했다. 


더군다나 반군 의장단 내에서는 그냥 항복하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까지 나온다. 그럼에도, 아니 그럴수록 진은 강경하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그녀를 따르는 일행이 있다. 정보 요원 카시안, 무술 전사 치루트, 전투 전사 베이즈, 전향한 제국군 파일럿 보디, 그리고 새롭게 프로그래밍 된 제국군 안드로이드 K-2SO까지. 이들은 실패 없는 오직 성공을 위해 작전에 투입된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확장


영화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코리아



<로그 원>의 시작은 상당히 중구난방이다. 시리즈 사상 처음으로 오리지널 스토리와 동떨어진 '스핀오프'를 선보임에 따른 딜레마가 존재했을 것이다. 오리지널 스토리를 전혀 몰라도 즐기는 데 큰 문제가 없게끔, 즉 새로운 팬을 위한 영화가 되어야 하면서도, 기존의 스타워즈 팬들에게 다시 없을 선물로 다가와야 했기 때문이다. 


'스타워즈' 시리즈라는 큰 골격과 세계관에 속해 있거니와 스토리를 모르는 이들을 위해서 최소한의 설명이 필요했기에 영화 초반 이곳 저곳, 이 사람 저 사람을 수시로 오가는 것이다. 제국군과 반군, 이 행성과 저 행성. 그것도 모자라 <로그 원>의 주인공들, 즉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처음 선보이는 캐릭터들까지. 


영화는 다양한 종류의 관객들에게 다양한 상황과 관계와 캐릭터를 최소한으로라도 보여주고 난 초반 이후에 비로소 날개를 핀다. 밉상 하나 없는 캐릭터 구성, 누가 봐도 납득할 만하거니와 한없이 직진에 가까운 작전 수행 과정, 이전 스타워즈 시리즈에서도 볼 수 있었다는 소규모 전투신과 볼 수 없었다는 대규모 전투신까지. 압도적이다. 


스타워즈를 모르는 이들과 잘 아는 이들 모두를 만족시킨 결과물이었다고 할까. 이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확장과 관련이 깊다. 스핀오프의 가능성은 스타워즈 팬의 유입을 크게 도울 것이다. 동시에 그동안 비울 수밖에 없었던 구멍들을 메울 수 있게 되었다. 기존 팬들에게 큰 즐거움과 기쁨을 줄 것이다. 


'희망' 하나에의 반란


영화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코리아



로그(rogue)는 악당이라는 뜻이다. 악질적이고 악마적 기질이 있는 류의 것이 아니고 악동에 가깝다고 보면 되겠다. 극 중에서 전 제국군 파일럿 보디가 순간적으로 생각해낸 일당의 이름이다. 이들이 수행하는 건 '반란'이다. 아직 혁명이 일어나기 전, 반대를 무릎쓰고 자신들만의 신념으로 수행하는 반란 말이다. 그래서 이들의 반란은 제국에의 물리적 반란뿐만 아니라 반군연합에의 정신적 반란이다. 


이들의 불가능에 가까운 작전 수행의 원동력은 오직 '희망' 하나다. 제국의 최종병기 데스 스타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작동되지 않게 하지 않는 이상 단순히 반군연합뿐만 아니라 이 은하계에 아무런 희망이 남지 않게 된다는 생각, 그 생각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희망으로 수행한다. 


인간이 이성적 존재라고, 개인보다 집단이 더 이성으로 수렴된다고 하지만, 현실을 바꾸는 건 이성이 아닌 이상이다. 실행되기 어려운 이상의 실행이야말로 그러하다. 한없이 불가능에 가까운 작전을 실행에 옮겨 성공해내고야 마는 그 사람들이 있어서 이 세계는 끊임없이 바뀌고 그래서 지탱해나가는 게 아닐까. 


로그 원 일당은 스타워즈 세계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이들로 남을 것이다. 한국 영화 <아나키스트> <암살>의 주인공들이 생각난다. 자신만의 삶을 살다가 어느 순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죽게된 그들. 하지만 그들은 자신만을 위한 삶이 아닌 자신만의 삶을 살아 왔기에, 죽음도 자신만의 죽음이었을 것이다. 그건 누구도 탓할 수 없는 스스로의 선택과 신념. 사사(私事)와 대의(大義)는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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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인크레더블>


<인크레더블> 포스터.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전 세계 영화판을 뒤흔들며 전례 없는 전성기를 맞이한 '슈퍼히어로', 1930년대 대공황 때 시대적 탈출구로서의 영웅으로 처음 만들어진 후 80년 동안 사랑받고 있다. 1970년대 후반의 슈퍼맨과 1980년대 후반의 배트맨이 크게 성공한 후 1990년대까지 슈퍼히어로는 DC가 책임졌다고 보면 되겠다. 


2000년대 들어서 마블이 득세한다. 2000년대 초 엑스맨과 스파이더맨, 2000년대 후반 아이언맨, 2010년대 어벤져스로 이어지는 라인업은 매우 공고하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슈퍼히어로도 부침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다. 사실 2000년대 초중반까지도 슈퍼히어로는 존재의 이유가 크게 있지 않았다. 


주지했다시피 영웅은 혼란스러운 암흑기에 탄생한다.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전 세계는 대체적으로 활황기였다. 위기가 와도 오래지 않아 자가재생이 가능했다. 영웅이 필요치 않았다. 


2008년 세계 경제 위기 후 거짓말처럼 아이언맨과 인크레더블 헐크를 위시해 수많은 슈퍼히어로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는 건 우연이 아니다. 2004년에 나온 픽사의 6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은 슈퍼히어로가 필요치 않은 시대의 슈퍼히어로 이야기이다. 은퇴 후 일반인처럼 살아가야 하는 슈퍼히어로 가족이 주요 소재다. 


슈퍼히어로 인크레더블과 평범한 직장인 밥


<인크레더블>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인크레더블은 세상 모든 이에게 존경받는 슈퍼히어로다. 사소한 도움이 필요한 곳에서부터 국가적인 도움이 필요한 곳까지 모든 곳에 나타나 해결해준다. 어느 날 뜻하지 않은 일이 연달아 생긴다. 그 날은 그가 엘라스티걸과 결혼하는 날이었는데, 자살하려는 사람을 살려주고 인크레디보이라는 꼬마팬을 살리려다가 밤 보이지를 놓친 것도 모자라 기차선로를 부셔먹는 바람에 기차를 억지로 세워야 했다. 


근데 자살하려던 사람이 인크레더블을 고소한다. 살고 싶지 않았는데 살려놓았고 부상까지 당했다고 말이다. 또 기차 사고 부상자들도 그를 고소한다. 이를 시발점으로 슈퍼히어로를 상대로 한 소송이 쏟아지고 결국 정부는 그들에게 히어로 일을 그만둔다는 맹세를 받기에 이른다. 


그렇게 15년이 흘렀다. 인크레더블은 밥이라는 본래 이름으로 보험일을 하고 엘라스티걸은 헬렌이라는 본래 이름으로 전업주부가 되었다. 그들은 세 아이를 기른다. 그중 두 아이는 그들처럼 초능력이 있다. 막내는 아직 알 수 없고. 밥은 하루하루가 고역이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게 힘들 뿐 아니라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다. 


어느 날, 정부기밀기관에서 일한다는 미지의 여인으로부터 연락이 온다. 그에게 많은 돈을 주고 슈퍼히어로의 힘으로 처리해주었으면 하는 일을 제안한 것이다. 그는 회사를 때려치고 당장 그 일에 착수한다. 하지만 알고 보니 15년 전 그에게 가차 없이 퇴짜를 받았던 인크레디보이가 슈퍼히어로를 척살하고 그 자리를 본인이 차지하려는 수작의 일환이었으니... 인크레더블의 앞날은? 그리고 그의 가족들은?


슈퍼히어로를 향해


<인크레더블>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인크레더블>은 대체로 슈퍼히어로 영화의 범주에 속하진 않는 것 같다. 그저 픽사에서 만든, 그것도 아주 잘 만든 애니메이션 중 하나로 치부하는 인상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2000년대 초반 다시 시작된 슈퍼히어로 전성 시대, 그 초창기에 큰 역할을 했거니와 지금까지 수없이 나온 슈퍼히어로 영화들 중 단연 으뜸으로 쳐야 마땅하다. 


이 영화는 독특하다. 대다수 슈퍼히어로 영화들이 '슈퍼히어로에 의한' 것인데 반해 이 영화는 '슈퍼히어로를 향한' 것이다. 그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보다 그들이 누구인지가 중요하다. 슈퍼히어로라는 '일'을 하지 않을 때 우리와 다름 없이 밥 먹고 싸고 씻고 자는 것 아닌가. 행동주체로서가 아닌 대상주체로서의 슈퍼히어로라고 해야 할까. 


원작으론 '최고'라는 수식어가 영원히 따라다닐 것이지만 영화로선 혹평과 흥행실패를 면치 못했던 <왓치맨>이 어른 거린다. 반면 흔치 않은 소재와 주제를 코믹과 진중함의 탄탄한 조화로 내보인 이 영화는 호평과 흥행성공을 쟁취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 슈퍼히어로를 들이대는 건 각종 위기에 봉착한 전 세계의 일원으로서 알게 모르게 탈출구를 찾고 있는 심리를 이용하려는 수작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우리가 슈퍼히어로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도 있을 텐데, 일종의 대리만족이다. 다름 아닌 내가 슈퍼히어로가 되고 싶은 마음의 발로인 것이다. 평범한(?) 슈퍼히어로 가족이 주인공인 <인크레더블>은 그 지점까지도 나아갔다. 


가족의 의미, 가족의 소중함, 가족과 함께 


<인크레더블>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정작 이 영화의 미덕은 다른 곳에 있을 것이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2편이 나오길 학수고대하고 있는 팬들의 바람도 '슈퍼히어로'의 그것이 아닌 다른 곳에 있을지 모른다. '가족'이다. 영화 시종 일관 내보이고 있는 '가족의 의미'. 밥이 다시금 슈퍼히어로라는 '꿈'이자 '지나간 영광'이자 '위험한 짓'을 꿀 때 헬렌이 말하는 '가족의 소중함'.


영화는 얼핏 헬렌을 두둔하고 있는 듯하지만 밥의 행동을 폄하하지 않는다. 그의 허황된 꿈은 남을 돕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꿈을 꾸지 말고 살아가라는 말 또한 일면 허황된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과 꿈은 옳고 그름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양자택일의 범주에 들어갈 테지만 그리 되면 너무 가혹하지 않는가...


'가족과 함께' 꿈을 꾸면 어떨까. 당연히, 다함께 망하자는 건가 하는 말이 나올 테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힘을 얕잡아보는 것이다. 헬렌이 말하는 가족의 소중함이 '돈 많이 벌어 오세요'가 아닌 '혼자 모든 걸 짊어지려 하지 마세요'로 들리는 건 나뿐일까. 가족이란 건 그런 게 아닐까. 


영화의 하이라이트로 가는 길, 강력한 적을 맞아 밥은 헬렌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홀로 가려 한다. 헬렌은 당신은 내 남편이니 죽으나 사나 같이 있을 거라 말한다. 밥은 자신이 강하지 않다고 얼버무리더니 "당신을 또 잃기 싫어. 다신... 절대! 난 그걸 견딜 만큼 강하지 못해."라고 고백한다. 이 대화야말로 이 영화의 핵심이다. 가족의 소중함, 그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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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주토피아>


<주토피아> 포스터.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1930년대 시작된 디즈니 애니메이션, 월트 디즈니 살아생전 황금기를 보냈지만 1960년대 중반 그의 사후 오랫동안 부침을 겪는다. 1990년대 들어 완벽한 부활, 그야말로 디즈니 역사상 최고의 르네상스를 구축한다. 그 시기에 나온 모든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고전이자 명작이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2000년대 들어 암흑기가 부활, 2006년 픽사와 합병하여 존 라세터가 돌아와 디즈니를 진두지휘하기 전까지 계속된다. 


2000년대 후반 들어 존 라세터의 영향력이 본격적으로 뻗치면서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완벽하게 부활한 것도 모자라 제2의 르네상스를 연다. 할리우드 애니메이션하면 픽사였던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할까. 연일 고전 명작에 오를 만한 작품들을 내놓고 있다. <주토피아>는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다. 최소한 디즈니의 두 번째 암흑기와 제2의 르네상스 시대를 통틀어 최고라 할 수 있을 듯하다. 


<주토피아>는 현 시대와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스로에게 던지는 우화로, 애니메이션으로서의 기술적 측면과 스토리와 장르와 캐릭터성의 엔터테인먼트적인 측면, 그리고 최소한 청소년 이상은 되어야지만 제대로 이해해보려는 마음가짐이나마 가질 만한 수준높은 주제의식까지 두루 갖춘 잡식성 완벽함을 자랑한다. 


'멍청하고 약해 빠진 토끼'에게 주어진 임무


<주토피아>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토끼 주디 홉스는 부모님은 물론 아는 모든 동물들에게서 반대와 멸시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토끼 경찰이 되어 세상을 좀 더 살기 좋게 만드는 게 꿈이다. 그는 340km 떨어진 곳에 있는 위대한 도시 '주토피아'로 향한다. 그곳은 동물들의 이상향으로 '누구나 뭐든지 될 수 있다'는 도시이다. 주디는 우여곡절 끝에 주토피아 경찰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최전선 제1구역에 배치된다. 


주디에게 떨어진 임무는 고작 주차 단속. 그가 아무리 경찰 학교 수석이라지만, 그는 멍청하고 약해 빠진 '토끼'였다. 그럼에도 주디는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여 참으로 많은 주차 딱지를 끊는다. 어느 날 수달 오터톤 부인이 남편 실종 건으로 찾아온다. 아무 이유 없이 사라질 사람이 아닌데, 실종된 지 열흘이나 되었다는 것이다. 


주디는 선뜻 나선다. 서장은 그에게 48시간 동안 찾을 것을 명령하고 그렇지 못할 시 주디에게 경찰복을 벗으라고 한다. 주디는 곧 단서를 찾아내는데, 하필 그 단서의 시작점이 되는 주인공이 일전에 안면 있는 사기꾼 여우 닉 와일드였다. 주디는 닉에게 당한 뒤통수 치기를 이용해 꼬득여 수사를 진행하는데... 생각지도 못한 어마어마한 사건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더할 나위 없는 장르물


<주토피아>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주토피아>는 그 자체로 해석의 여지가 필요 없이 훌륭한 장르물이다. 초짜 경찰이 우연히 또는 필연적으로 분수에 맞지 않는 사건을 아무런 지원 없이 홀로 맞서게 되고, 콤비를 이루는 게 경찰이 아닌 범죄자라는 점이 콤비 범죄물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콘셉트인 것이다. 그걸 애니메이션으로 위화감 없이 그려냈다는 점을 높이 살 만하다.


퀘스트를 완료하듯 하나 하나 실마리를 풀어내는 진행 방식 또한 주목할 만하다. 영화적 재미라는 한 마리 토끼를 이쯤에서 완전히 손에 쥔 격이라 하겠다. 여기에 주인공들이 사람 아닌 동물이라는 게 화룡정점이다. 애니메이션으로서, 장르물로서, 반드시 쟁취해야 하는 캐릭터성을 동물보다 더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는 게 있을까. 


특히 양육강식 동물 세계에서 최하층에 속하면서 동물로서의 귀여움은 최상급에 속하는 토끼가 동물들의 낙원인 주토피아를 지키는 경찰이 된다는 설정은, 영화적 해석 즉 영화가 줄 수 있는 영화 외적인 교훈이나 감동 또는 깨달음적인 측면을 차치하고서라도 흥미롭게 다가온다. 토끼의 성장 또는 좌충우돌이 기대되는 것이다. 


토끼와 콤비를 이루는 동물은 하필 여우다. 토끼와 상극이랄 수 있는 여우는 늑대나 하이에나 등과 더불어 가장 미움을 받는 동물 또는 가장 잘못된 상식이나 편견을 지니고 있는 동물이다. 영화에서 토끼가 상식과는 정반대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여우는 편견 그대로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주토피아>가 주는 영화적 해석은 바로 그들, 토끼와 여우에게서 비롯된다. 


차별과 편견에 대한 우화


<주토피아>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명백한 우화 <주토피아>는 그 자체로 더할 나위 없는 재미를 선사함에도 캐릭터와 배경과 대사 모두 인간 세계에 대비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린 이 영화가 다른 손으로 완전히 쥔 또 한 마리의 토끼가 무엇인지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편견과 차별에 관한 이야기, 멍청하고 약한 토끼와 비열하고 믿을 수 없는 여우. 그들은 각자의 타율적 시선을 이유로 세상을 지키고 더 좋은 쪽으로 바꾸는 일을 할 수 없다. 


차별 이전에 편견이 존재한다. 인간 세상에서 전통적으로 약자라고 통칭되는 노인, 아이, 여자는 약하기 때문에 스스로가 아닌 타율적으로 한계가 정해져 버린다. 오랜 시간 고착해 되어온 그 한계는 편견이라는 상대적으로 여지가 있는 두루뭉술한 개념에서 머물지 않고 명백한 행동으로 이어지는 차별로 나아간다. 돌이키기 쉽지 않다. 


영화는 여기에서도 한 발 더 나아가, 약자에의 편견과 차별만이 아닌 강자에의 편견과 차별 즉, 역차별까지도 다루는 광폭 행보를 보인다. 사실, 여우를 투 톱 중 하나로 내세운 것에서 엿보이는 부분인데 여우에의 편견과 차별이 분명 존재하지만 여우가 동물 세계에서 약자에 속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영화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고 있는 '약자에의 편견과 차별' 또한 그 자체로 편견과 차별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편견과 차별에 대응하는 개념이 평등이라고 한다면, 평등을 약자에 대응하는 개념인 강자에게도 적용해야 하는 게 맞다고 주장하고 있다. 너무나도 훌륭한 개념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선 동물 세계에의 우화로서 너무 많이 간 게 아닌가 싶다. 아니, 인간 세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동물 세계에서는 강자가 강자로서의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는 게 당연하다. 인간은 어떤가? 당연하지 않은 게 정설이지만, 당연해졌다. 


동물이나 인간 세계가 똑같다. 완벽한 우화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드는 건 동물 세계에서 역차별이 존재하느냐는 점이다. 태초부터 강자인 상황에서 강자라는 이유로 다수의 약자로부터 어떤 조치를 당하는 건 강자가 주체가 되는 차별의 차원이 아닌 약자가 주체가 되는 생존의 차원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류의 고찰이 직선적이고 일차원적이었던 점이 살짝 아쉬웠던 <주토피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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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미씽: 사라진 여자>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 포스터. ⓒ메가박스 플러스엠



최근 몇 년 새에 여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 한국영화들이 많이 보인다. <차이나타운> <비밀은 없다> <악녀> <소공녀> <당신의 부탁> 등이 기억에 남는데, 남주인공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온전한 여배우 탑 영화라 할 순 없다. 자본의 손이 덜 탄 독립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밤의 해변에서 혼자> <련희와 연희> 정도가 여배우 탑 영화로 기억에 남는다. 


한국영화에서 온전히 여주인공만을 내세운 영화를 찾기란 정말 쉽지 않은 것이다. 반면 해외로 시선을 돌리면 셀 수 없이 많다. 특이할 점은, 상업영화에서도 눈에 띈다는 것이다. 올해 우리를 찾아온 영화만 열거해도 <툼 레이더> <레이디 버드> <스탠바이, 웬디> <미세스 하이드> 등이다. 한눈에도 엄청난 차이이다. 


그 와중, 한국영화 중에도 감독과 주연배우가 모두 여자인 경우가 비교적 최근에 있었다. 이언희 감독, 엄지원·공효진 주연의 <미씽: 사라진 여자>가 그 영화이다. 이 영화는 앞서 제시했던 한국의 여배우 탑 영화들처럼 자본과 거리가 먼 독립영화가 아니다. 그렇다고 여자라는 '객체'를 앞세워 도구로 이용해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영화는 여자라는 주체가 겪는 지극한 현실을 지극히 잘 짜인 영화적 각본에 끌어들여 어느 하나 모나지 않게 우리 앞에 나왔다. 우리는 그저 즐기고 안타까워하고 분개하고 소름을 돋으며 응원하며 생각할 수밖에 없다. 


사라진 그녀를 찾아라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의 한 장면. ⓒ메가박스 플러스엠



이혼 후 지선(엄지원 분)은 생계를 위한 일은 물론 아이 육아까지 책임지고 있다. 물론 어쩔 수 없이 보모를 두었지만 언젠가 큰 실수로 아이를 다치게 하여 그만두게 하고 버티다가 새로운 보모 한매(공효진 분)을 들였다. 중국에서 건너와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하는 것 같아 미덥지 않았지만, 아이를 돌보는 출중한 능력을 믿고 함께 하고 있다. 


어느 날, 일도 잘 안 풀리고 아이 양육권 분쟁으로 골머리를 앓던 와중에 한매가 아이 다은이와 함께 사라져버렸다. 설마설마 하던 지선은 온동네를 찾아다니다가 경찰서에 신고하려 하지만, 변호사와 시어머니에게 오히려 양육권을 지키려고 벌인 자작극이라는 의심을 받는다. 결국 그녀는 혼자의 힘으로 다은이를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은이 혼자가 아닌 한매와 함께 사라진 만큼 한매의 행방을 찾는 게 맞다고 판단한 그녀, 와중에 보이스피싱까지 당하고 결국 경찰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그런 경찰조차도 지선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데... 다시 혼자가 된 지선은 한매를, 아니 다은이를 무사히 찾을 수 있을까? 한매는 왜 다은이를 데리고 사라진 것일까. 


현대 미스터리 스릴러의 절정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의 한 장면. ⓒ메가박스 플러스엠



영화는 연기와 각본 그리고 미스터리 스릴러로서의 연출력과 분위기까지, 완벽에 가까운 영화적 기술력을 뽐낸다. 최근 몇 년 새에 전성기라고 할 만한 연기력을 폭발시키며 대표 여배우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엄지원과 범접할 수 없는 '로코의 여왕'에서 이젠 그 연기력을 다양하게 뽐내고 있는 공효진의 앙상블은 따로 또 같이 빛난다. 


근래 보기 드문 잘 짜여진 꽉찬 각본은 이 영화의 힘을 대변한다. 그 자체이자 뿌리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웰메이드 실종 미스테리 영화, 할리우드의 <나를 찾아줘>와 일본의 <화차> 등이 생각나게 한다. 하지만 그 안에 완전히 다른, 반드시 생각해봐야 할 메시지를 함유하고 있기에 결코 묻히거나 하지 않는다. 


미스터리 스릴러는, 지극히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미스터리 스릴러는, 현대인이 갖는 불치병과 현대사회가 주는 거대한 압박을 한몸에 동시에 받는 모습과 다름 아니다. 우리는 늘 불안하고 불만에 차 있고 불쾌하기 짝이 없다. 우리 사회는 우리를 제대로 보살펴주지 못하고, 우리가 도움을 청할 때 도와주지 않는다. 


영화는 이혼한 워킹맘 지선과 한국으로 시집온 외국인 한매의 처절함을 통해 현대의 미스터리 스릴러가 보이는 모습에 더 직접적이고 깊숙히 다가간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한국에서 살아가는 여자'이다. 


한국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것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의 한 장면. ⓒ메가박스 플러스엠



모르긴 몰라도, 지선과 한매(와 다은)는 결국 다시 만날 것이다. 그리고 우린 눈에 보이는 지선의 극도의 불안과 불만과 불쾌, 그 위에 덧씌어진 처절과 바람과 허무를 훨씬 능가할 게 분명한 한매의 그것과 만날 것이다. 치를 떨며 소름이 돋고 악에 받힌 울음을 함께 터뜨릴 수도 있고, 못 버티고 눈과 귀를 틀어 막을 수도 있다. 


'한국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건 그런 거다.' 하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사방이 막혀 있는 건 물론, 사방에 도움 청할 이 하나 없으며, 사방에서 자신을 공격하는 것 같은, 그런 현대 미스터리 스릴러 그 자체 말이다. 그들 자신이 겪은 엄청난 일로 힘들어 하는 그들을 보며, 우린 한국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걸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녀들의 울음이 오래 가지 않고 부디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녀들이 서로를 찢어 죽이려 하고 서로의 아이를 팔아 넘기려 하지 않고, 부디 서로를 진정한 이해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우리 모두 평평한 땅을 걸어가고 있다고 하는데, '어불성설' 땅은 이미 오래 전부터 기울어졌고 지금도 기울어져 있다. 


두 여주인공을 제외하곤 주로 남자로 구성된 조연 캐릭터들이 입체적이지 못하고 평면적·도식적이었던 아쉬움 아닌 아쉬움을 남긴 건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남자 쪽으로 기울어진 땅에서 여자가 버티고 서 있으려면 한 없이 입체적인 변신을 시도해야 한다는, 그런 의도가 담겨져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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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슬로우 웨스트>


영화 <슬로우 웨스트> 포스터. ⓒ더 픽쳐스



1870년 미국의 콜로라도 깊숙한 곳, 16살 짜리 소년 제이(코디 스밋 맥피 분)는 사랑하는 애인 로즈를 찾으러 멀고 먼 스코틀랜드에서 왔다. 로즈는 제이의 귀족 친척을 실수로 죽인 아버지와 함께 도망쳤다. 신대륙에서 제이가 처음 마주친 건 마을을 잃고 피신 중인 듯 보이는 원주민들, 그리고 얼마 못 가 마주친 건 인디언 사냥꾼이다. 


발사되지도 않는 총을 가지고 다니는 제이는 그야말로 무방비 상태, 그때 나타난 현상금 사냥꾼 사일러스(마이클 패스벤더 분)가 인디언 사냥꾼을 죽이고는 제이에게서 돈을 받고 '서쪽'으로의 여정을 함께 한다. 미국 서부는 제이에게 희망과 착한 마음이 가득한 곳이고, 사일러스에겐 돈에 눈 먼 악당이 튀어나와 칼을 꽂는 곳이었다. 


이 둘의 여정은 쉬운듯 쉽지 않다. 느긋하기 짝이 없는, 느릿느릿한 속도와 분위기이지만, 가는 곳마다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참으로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을 마주친다. 인디언, 인디언 학살자, 현상금 사냥꾼으로 보이는 백인, 굶어 죽기 직전의 스웨덴계 가족, 학자 같아 보이는 독일계 사기꾼, 그리고 한때 사일러스가 몸 담았던 현상금 사냥꾼 패거리까지. 어려움이란 어려움을 다 뚫고 제이는 로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저 생존하는 게 목적인듯 보이는 사일러스는?


'아름다운' 웨스턴 영화


영화 <슬로우 웨스트>의 한 장면. ⓒ더 픽쳐스



영화 <슬로우 웨스트>는 독특한 웨스턴 영화이자, 버디 로드 영화이자, 성장 영화이다. 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장르를 한데 모은 것 자체가 충분히 독특하다 할 만하지만, 이 장르들 모두의 정통 문법에서 조금씩 빛나가거나 어긋나면서도 그것이 '파격의 부미(不美)'의 길을 가지 않는 묘미가 있다. 


즉, 이 영화는 영화 외적으로 파격의 길을 택했다는 측면에서도, 영화 내적으로 폭력과 고통이 기본 장착(?)되어 있는 곳이 배경이라는 점에서도, 결코 아름다울 수 없음에도 또 아름다움과는 하등 거리가 멀어보임에도 시종일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유지하며 흔적을 남기고 영향을 끼친다. 


그건 다분히 허무맹랑하고 대책 없는 제이 덕분일 것이다. 생존이 전부인 것 같은 곳에서 생존이 전부는 아니라고 하고, 총칼보다 책을 더 소중히 여기고, 남을 죽이지 못하면 자신이 죽는 와중에 남을 죽이고서 죄책감을 느끼고, 보편적인 죽음이 일상화된 곳에서 죽음과 사랑을 동일시하고... 


실제였다면 진작 죽음을 면치 못할 게 분명한 제이는, 아름다운 동화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이 웨스턴 영화에서 그 누구보다 눈에 띈다. 그리고 여러 면에서 파격을 택한 영화 또한 제이를 중심에 두고 제이의 여정과 그로 인한 성장을 기본 축에 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소행성 B612에서 지구로 찾아와 가히 그 순수한 영혼으로 여행 중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어린왕자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성장'의 주인공은 제이가 아닌 사일러스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사일러스의 성장


영화 <슬로우 웨스트>의 한 장면. ⓒ더 픽쳐스



성장에는 필연적으로 변화가 수반된다. 생각해보면, 맹목적인 사랑과 희망, 착한 마음에의 찬가를 고수하는 제이에게 성장이 필요한가? 물론 폭력과 고통과 고난이 지배하는 곳에서 가장 필요없는 것들일지 모른다. 여기서 우린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 다른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는 총칼로 '침공'해 무차별로 빼앗고 죽인 백인들, 미국 서부 개척은 곧 과거 수백 년 동안 자행된 학살의 반복이다. 그런 배경 하에서 오직 생존에의 길은 수정되고 변화되어야 하는 성질의 것이 아닌가. 즉 성장이 필요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 모습이 당연하다고 하지만, 당연한 게 되어서는 안 되지 않은가. 


사일러스는 제이와의 여정으로 당연하지만 당연해서는 안 되는 자신의 길을 수정한다. 생존이 전부가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이곳에서 생존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깨달음인 것이다. '당연히' 어리고 어리숙하고 어울리지 않는 제이의 성장 스토리라고 생각했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사일러스의 성장 스토리라고 생각하니 많은 것들이 보인다.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한 발짝 더 들어가볼 필요도 있다. 총칼을 앞세운 무단 통치로 기반은 다질 수 있지만 강력한 저항이 따르는 법, 이후엔 필수적으로 문화 통치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총칼 대신 사랑과 희망과 책의 문화로 서부를 개척해야 하는 것인가. 영화는 제이를 통해 그래야 했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인가. 역사적 배경까지 섭렵하여 성장의 주체 반전을 훌륭히 시도한 영화는, 그 때문에 새로운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점을 인지할 필요도 있었다고 본다. 


삶과 죽음의 얇팍함


영화 <슬로우 웨스트>의 한 장면. ⓒ더 픽쳐스



영화에서 삶과 죽음은 제이와 사일러스의 여정에 따로 또 같이 한다.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주제이기도 하다. 삶은 짧고 죽음은 길다고 했던가. 하지만 이곳에선 삶은 길고 죽음은 짧은 것 같다. 그저 살아가는 것뿐인 생존이야말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인데, 모든 죽음이 하나 같이 허망하거니와 순간이다. 


<슬로우 웨스트>의 죽음은 그래서 전혀 '슬로우'하지 않다. 빠르고 간결하며 피가 난무하는 파티가 벌어지지 않는다. 대신 두 주인공마저 웃음 짓게 하는 죽음도 있다. 그런 죽음은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데, 그런 죽음들은 이곳의 선입견을 바꿔버리기에 충분하다. 죽음을 불사하는 개척정신과 문명을 확대시키려는 탐험정신의 위대함이 사실은 별 게 아니라는 것. 


죽음의 얇팍함은 삶의 얇팍함으로 이어진다. 당연히 이곳에서의 삶을 규정하는 생존 또한 얇팍하기 그지없다는 걸 말한다. 얇팍한 생존을 그저 영위하기 때문에 삶이 길어보인다. 이곳만의 삶을, 생을 지어올려야 한다. 타인을 죽이고 타인에게 죽임을 당하는 와중에 생존에의 삶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 영화의 대리인 제이가 곳곳에 흔적을 내고 영향을 끼치고 남은 이들에게 부여하려는 것이 다름 아닌 삶이다. 생존 그리고 생존과 대비되는 얇팍한 죽음이 판을 치는 곳의 삶이 아닌,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의 보편적 진리 말이다. 그것들을 다시금 이곳에 뿌리내리는 건 굉장히 느릴 테지만,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그 주체와 방법과 방향까지 영화가 제시하진 않는다. 혹은 못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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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일급 살인>


영화 <일급 살인> 포스터. ⓒ워너브라더스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앞바다 한 가운데에 있는 알카트라즈 섬, 1934년 그곳에 알카트라즈 연방 교도소가 문을 연다. 갱들이 한창 위세를 떨치던 때에 선전용으로 문을 열었다고 하는 이곳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교도소라고 할 만한데, 미국에서 활동한 이탈리아계 마피아 거물 알 카포네가 수감되었었고 1963년 폐쇄될 때까지 단 한 명도 탈출하지 못했으며 재소자의 권리보장이 최악이었다.


폐쇄 후 몇 년 간 방치하였다가 1972년 이곳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고 지금까지 관광지로 활용하고 있는데, 생전(?)의 그 유명함으로 소설, 게임, 영화, 드라마, 만화 등수많은 콘텐츠에 등장하였다. 마이클 베이의 유일하다시피 한 명작 액션영화 <더 록>에서 정부에 의해 토사구팽 당한 특수대원들이 탈취해 요새화한 곳이 바로 이 곳이다. '더 록'은 알카트라즈 교도소의 별칭이기도 하다. 


<더 록>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나온 명작 법정영화 <일급 살인> 또한 이곳이 주요 배경이라 할 만하다. 교도소의 기능이 구금과 교정에 있는 만큼, '가장 유명한 교소도' 알카트라즈는 탈옥 절대 불가의 철통 경비와 함께 재소자의 재활과 교육과 교화를 가장 투철하게 시행하는 곳이어야 마땅하겠다. 과연 그랬을까?


일급살인죄


영화 <일급 살인>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



영화는 주인공 헨리 영(케빈 베이컨 분)을 비롯한 4명의 재소자들이 알카트라즈 탈옥을 하다가 실패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로 인해 두 명은 현장에서 사살되고 맥케인은 밀고하여 추가 처벌을 받지 않고 헨리 영은 독방에 갇혀 3년 동안 있는다. 알카트라즈의 독방 정책은 19일 이상 감금 금지였다. 


영은 가끔씩 방문하는 소장의 독방 실태를 점검으로 풀려나 일반 감방으로 이동한다. 하지만 이미 그는 너무나도 오래된 독방 생활로 정신이 이상해져 있었던 바, 식사시간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를 따라 배신자 맥케인을 죽인다. 그는 곧 정상참작의 여지가 없는 일급 살인으로 기소된다. 


초짜 국선 변호사 제임스 스탬필(크리스찬 슬레이터 분)가 영을 변호하게 된다. 스탬필은 그를 돕고자 하지만, 영은 자신이 반드시 죽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알고는 일절 자신을 변호하려 하지 않는다. 아니, 그는 죽는 것보다 완전히 무혐의가 되기 전까지 그곳으로 돌아가 있는 것이 훨씬 더 두려웠던 것이다. 이에 스탬필은 다른 루트로 조사를 이어 나가고, 영이 처참하기 이를 데 없는 환경의 독방에서 3년 동안 있었고 그로 인해 살인을 저질렀다는 결론에 이른다. 


대상과 인간


영화 <일급 살인>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



영화는 '탈옥자 재활을 위한 독방과 참작의 여지 없는 일급 살인자' 대 '규정을 어긴 처참한 독방 환경과 그로 인한 정신 이상 하에서의 살의 없는 살인'이라는 프레임의 대결이라는 외향을 띤다. 교도소 입장에서 재소자는 교화와 재활의 '대상'일 뿐이고, 스탬필 입장에서 영은 엄연히 인권을 지니고 있는 '인간'이다. 


여기에 일절 요지부동의 '옳고 그름'이라는 재단기를 이용할 순 없을 것이다. 이 두 집단이 내세우고 있는 주장의 요지에 '틀린' 말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두 팽행선에는 모든 걸 포괄하면서도 또 다른 개념을 재단기로 써야 한다. 이 실화를 영화로 옮기면서 선택한 궁극적 재단기는 다름 아닌 '존엄성'이 아닌가 싶다. 


스탬필이 주장하는 인권은 교도소가 주장하는 인권 없는 탈옥범의 교화 및 재활이라는 프레임을 완벽히 이길 수가 없다. 반면, 인간의, 생명의 존엄성은 영에게만 적용된, 저지른 죄에 비해 터무니 없는 죗값의 비애와 만나 시너지를 일으킬 여지가 있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어야 할 의무를 지니지 않는가. 개인적으로 동의하진 않지만, 심지어 명백히 인간 이하라 할 만한 인간들에게까지도 말이다. 


더불어 영화가 저격하려는 대상은 영의 살인이 아닌 알카트라즈의 비(非) 교도소적인 생태이다. 이는 극 중에서 스탬필이 (보는 이에 따라선) 영악하게 기존의 프레임 전쟁을 이탈해 새로운 프레임을 만드는 전략이기도 한데, 영은 그 자신은 물론 가정이나 나라나 사회에 의해서가 아닌 알카트라즈 교도소에 의해 살인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사실'만' 맞는 건 아니겠지만, 이 사실 '또한' 맞는 건 분명하다. 


영과 스탬필 이야기


영화 <일급 살인>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



이 영화가 20년의 세월이 지나서도 명작의 칭호를 달고 있는 건, 비단 단순 법정영화에서 보이는 프레임 너머 또는 이면까지를 들여다봐서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거기엔 두 주인공 헨리 영과 제임스 스탬필의 이야기가 있다. 그들은 비슷한 나이에 둘 다 소싯적에 5불을 훔쳐봤지만, 한 명은 교도소에 와 있고 한 명은 변호사가 되어 있다. 


스탬필은 영을 위해, 아니 영으로 투영되는 '정의'를 위해 참으로 많은 것을 포기한다. 영은 자신을 위해, 아니 자신의 3년 독방 생활로 투영되는 '삶보다 나은 죽음'을 위해 삶을 포기한다. 그렇게 영은 자신의 삶을 살릴 스탬필이 아닌 친구 스탬필을 원하지만, 스탬필은 결국 자신이 추구하는 인생관의 열망과 추구를 위해 의뢰인 영을 원하는 것이다. 영화는 그런 피상적인 관계에서 인간적인 관계로 나아가는 이들을 보여준다.


더불어 영화는 스탬필과 영의 성장 이야기이기도 하다. 인생에 있어서 인생관 추구와 함께 모든 이가 추구할 것 같은 정의의 실현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스탬필이 깨닫고, 행동하는 것도 그에 반응하는 것도 심지어 죽음까지도 두려움 없이 본인의 의사에 의해 시행할 수 있다는 것을 영이 깨닫는 것 말이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승리였다. 


영화 내내 시종일관 입을 열지 않았던, 아니 못했던 헨리 영은 스탬필의 바람대로 보는 우리의 기대대로 '왜 맥케인을 죽였는지' '알카트라즈 독방에서 어떤 짓을 당했는지' 자세히는커녕 대략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본인이 직접 증인석에 서서 죽음도 불사하는 엄청난 두려움을 뚫고 위대한 한마디를 입에 올린다. 


"저는 무기 대용이었지만 살인자는 아닙니다. 살인자는 그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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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오래된 리뷰] <트루먼 쇼>


영화 <트루먼 쇼> 포스터. ⓒ파라마운트 픽쳐스



'굿모닝, 미리 인사하죠. 굿 애프터눈, 굿 이브닝, 굿 나이트.' 성격 좋고 무난한 트루먼 버뱅크(짐 캐리 분)는 조그마한 섬에서 살며 보험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그는 대학 동창 메릴과 결혼했고 역시 대학 동창 말론과 절친 사이다. 트루먼은 대학 때 잠깐 만났다가 황망하게 헤어진 로렌을 만나러 피지로 여행을 가려 한다. 하지만 그는 어렸을 때 바다에서 아버지를 잃고 물 공포증을 앓고 있다. 


그런 와중에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하늘에서 조명기구가 떨어지질 않나,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를 만났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와서 끌고가버리질 않나, 차를 타고 가는데 라디오에서 자신의 이동경로를 고스란히 생중계하고 있질 않나. 하지만 엄마와 아내는 그의 말을 전혀 믿어주질 않고, 말론은 그의 말을 믿는 대신 자신을 믿어야 한다며 위로의 말을 함께 건넨다. 


한편, 트루먼은 태어나기도 전부터 전 세계 수백만 명 시청자에게 완전한 리얼리티 삶을 보여주는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다. 그가 사는 섬은 그 자체로 거대하기 이를 데 없는 세트장이고, 그와 관련된 모든 사람과 섬에 사는 모든 사람이 연기자이다. 이를 총괄기획한 크리스토프는 '트루먼 쇼'를 진짜 삶이자 특별한 삶이라 믿는다. 그리고 모든 게 완벽하게 만들어진 그곳을 천국이라 믿는다. 


거장과 최고의 도전이 빚어낸 최고의 작품


영화 <트루먼 쇼>의 한 장면. ⓒ파라마운트 픽쳐스



영화 <트루먼 쇼>는 1990년대 최고의 인기를 구사한 짐 캐리의 대표작 중 대표작이다. 그의 필모에서 <마스크> <덤 앤 더머> <에이스 벤츄라> 등의 코미디와 <이터널 선샤인>이라는 드라마를 잇는 코미디 드라마라고 할 수 있는데, 이후 <마제스틱> <예스맨> 등으로 이어졌다. 


한편 피터 위어 감독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일찍이 70년대에 칸영화제를 섭렵하며 호주의 거장으로 이름 높은 그는 잘 알려진 명작 <죽은 시인의 사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수작 로맨틱 코미디 <그린 카드>로 유명세를 떨쳤다. <트루먼 쇼>라는 코미디가 가미된 드라마로 정점을 찍었고 이후 <마스터 앤드 커맨더>와 <웨이 백>이라는 대작 느낌이 물씬 풍기는 두 작품을 끝으로 더 이상의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영화는 피터 위어라는 거장의 작가정신과 여유, 짐 캐리라는 당대 최고의 '코미디' 배우의 도전 아닌 도전이 빚어낸 최고의 작품이다. 몇 번을 봐도 '재미'를 보장하는 이 영화는, 지금은 일상화되어 있거니와 그래도 여전히 열광하는 몰래카메라 또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와 연결되어 있다. 제작진의 주장에 따르면, 트루먼의 진짜 인생이다. 


몇 번을 보면 보이는 '논란'의 부딪힘은, 트루먼 쇼를 만든 크리스토프의 철학과 믿음과 연결되어 있다. 그는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좌지우지 하는 이른바 '신'과 같은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다분히 '비인간적인' 방송 철학과 맞닿아 있는 그의 '인간적인' 믿음이 현대사회의 모순적인 병폐를 상징하는 것 같다. 


매스미디어 병폐의 우화


영화 <트루먼 쇼>의 한 장면. ⓒ파라마운트 픽쳐스



모든 것이 만들어지고 조작되어진 이 세계, '트루먼 쇼'의 세계에서 트루먼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크리스토프는 말한다. 그가 특별한 삶을 살고 있다고, 우리가 사는 곳은 역겹지만 그가 사는 곳 씨헤이븐은 천국이라고 말이다. 더욱이 트루먼은 가짜가 아닌 진짜 삶을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거기엔 '진실'이 없다. '트루먼 쇼'에서 트루먼만이 진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트루먼(truman)'이라는 이름을 들여다보자. '트루', 즉 진실(true)라는 단어에서 추출했다는 게 명백하다. 트루먼은 진실을 알아야 할 권리가 있고, 결국 이 트루먼 쇼의 결말은 트루먼이 진실을 찾아 가는 것으로 결말이 날 공산이 크다. 그게 비록 그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결과를 초래할지라도 말이다. 


한편, 이 영화를 지탱하는 다른 큰 축 크리스토프(christof)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의 이름은 전지전능하신 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christ)에서 온 게 분명하다. 그는 트루먼의 인생뿐만 아니라, 트루먼이 사는 세계와 그 세계에서 일하는 연기자 모두에게 자신의 철학을 주입시켰다. 그들은 모두, 특히 트루먼의 아내와 절친은 사생활과 사회생활이 따로 없는 인생을 영위하고 있고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오히려 모든 게 진짜 인생의 일부분이고 숭고하며 축복받았다고 생각한다. 


'완벽한 통제'를 '약간의 통제'라고 생각하는 그들의 믿음은 크리스토프의 철학에 기초한 것이고 그 철학에 쉼없이 숨을 불어 넣고 있다. 가히 '방송 예술'이라 칭할 만한 이 작태는, 수많은 광고가 딸려 있는 시청률과도 맞닿아 있는 바 현대사회를 지탱하면서도 파괴시키고 있는 여러 병폐 중 하나인 '매스미디어 병폐'를 신랄하게 꼬집고 있는 우화이기도 하다. 


누구도 매스미디어를 피해갈 수 없다


영화 <트루먼 쇼>의 한 장면. ⓒ파라마운트 픽쳐스



매스미디어 병폐 중에서도 가장 큰 병폐는 통합, 통제 등의 전체주의 잔재들이다. '통합'이라는 긍정적인 단어는 '통제'와 함께 할 땐 더할 나위 없이 악랄한 단어가 되고 만다. 영화에서 그것은 크리스토프가 만들어낸 가상임에 분명한 진짜 세계에 블랙홀처럼 모든 걸 쓸어담아버리는 걸 뜻한다. 


'천국'이라 명명되어진 그곳은 크리스토프의 명명백백한 철학과 그 철학을 뒷받침하는 어마어마한 시청률 아래에서 모든 것이 허용되고 가능하다. 그건 작은 나라의 예산과 맞먹는 엄청난 돈과 인력이 투입되어 철저하게(누군가 생각하기로는 약간의) 통제가 실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매스미디어를 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세상 어딜 가든 매스미디어가 우릴 반기고 유혹하고 협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매스미디어를 피해갈 수 없다. 거기에 아무런 생각없이 그저 즐기기만 하는 사람도, 거기에 그 무엇도 비할 수 없는 심각성을 느끼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크리스토프의 말마따나 우리 모두 거기에 어떤 식으로든 익숙하고 안주하기 때문인 것이다. 


방법은 '진실'뿐인가. 매스미디어가 어떤 식으로 만들어져 우리 눈앞에 보여지는지 속속들히 아는 것인가. 아니, 그 이후에 크나큰 절망감을 느낄 게 자명하다. 트루먼이 '트루먼 쇼'의 진실을 알고 그 세계를 탈출하게 된다고 해서 그는 그의 진짜 삶, 스타가 아닌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가 매스미디어의 진실을 안다고 해서 달라질 게 있을까? 


이 재미있는 영화는 끝까지 그 재미를 놓치지 않은 채 거대하고 진지하고 속절없는 물음만 던져놓는다. 우리는 그 막막한 물음 앞에 한동안만 멍하니 생각하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리고 당연한듯이 다른 매스미디어를 찾을 것이다. '트루먼 쇼'가 아닌 또 다른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찾아 채널을 돌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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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5.18을 엿보는 영화 <스카우트>의 거시적 시선


영화 <스카우트> 포스터. ⓒCJ엔터테인먼트


2017년 한국영화계 최고의 발견이자 최고의 히트상품은 <라라랜드> <범죄도시> <택시운전사> <1987> <옥자>도 아닌 <아이 캔 스피크>라고 생각한다. 재미와 감동을 이 영화처럼 과하지 않고 조화롭게 그러면서도 감정선을 최상위까지 끌어내는 영화도 드물었다. 김현석 감독 필모 역사 최고의 쾌거라 할 수 있겠다. 


김현석 감독 필모를 들여다보자. 20대 중반도 되지 않은 약관 나이에 각본으로 영화계에 발을 디딘 후 몇 편의 명작에 각본과 조감독으로 참여해 인정을 받았다. 2002년에 자그마치 송강호, 김혜수, 김주혁, 황정민 등과 함께 <YMCA 야구단>을 연출했다. 이후 <광식이 동생 광태> <스카우트> <시라노; 연애조작단>으로 승승장구했다. 


그는 과하지 않은 코미디 장르에 강점을 보이며 좋은 각본의 힘에 영화를 절대적으로 맡기는 편인 듯하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평타 이상, 최소한 나쁘지 않은 수준의 영화를 선보인다. 점점 믿을 만한 감독이 되어간다. 그의 필모 중 <스카우트>는 가장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기도 했거니와 가장 저평가되어 있는 영화인데, 사실 그의 최고작 <아이 캔 스피크>와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거니와 가장 좋은 작품 중 하나이다. 


99% 픽션의, 광주민주화운동 직전 10일간 이야기


영화 <스카우트>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우리는 영화 <스카우트>를 임창정, 박철민의 단순한 코미디 영화로 알고 있다. 포스터만 보아도 그렇게 인식되고, 영화의 겉모습만 보면 그렇게 인식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가는 사실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알아차리기 충분하다. 영화는 다음의 두 문구로 시작한다. '이 영화는 광주민주화운동 직전 10일간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99% 픽션이다.' 


1980년 5월 초, 신촌골 대학교 야구부 교직원 호창(임창정 분)에게 미션이 떨어진다. 안암골 대학교에 3연패를 당한 치욕을 갚기 위해 당시 국내 최고의 초고교급 투수 광주일고의 선동렬을 스카우트해오라는 명령. 그는 이미 안암골에 내정되어 있었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5월 18일까지의 10일 뿐. 


와중에 호창은 YMCA에 들렀다가 옛 연인 세영(엄지원 분)을 만난다. 이소룡 팬이었던 그녀는 이소룡이 죽던 날 호창에게 이별통보를 했더랬다. 호창은 세영 곁을 멤도는데, 세영을 좋아하는 동네 주먹 곤태가 위협한다. 한편 호장의 선동렬 스카우트 작전은 신촌골 대학교에서 온 스카우트 병환의 방해작전으로 쉽지 않다. 병환은 호창의 대학교 시절 라이벌이기도 하다. 


호창은 선동렬의 얼굴도 보지 못한 상태가 지속됨에 따라 위기감을 느껴, 곤태에게 도움을 청해 납치 작전을 펼치기도 하고 선동렬이 미성년자임을 간파하고 부모님을 노리기도 하지만 잘 먹혀들지 않는다. 와중에 석연치 않게 헤어진 세영과의 옛일이 떠올라 괴로운 호창이다. 호창은 선동렬을 스카우트할 수 있을까? 세영은 그때 왜 호창을 떠났던 것일까, 진짜 이소룡이 죽어 너무 슬퍼서였을까?


5.18과 5.18을 아우르는 거대한 의식, 거시적 시선


영화 <스카우트>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외견 상, 그리고 주요 줄거리 상 그 어디에서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느끼기 힘들다. 최소한 직접적으로는 말이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곳곳에서 느낄 수 있거니와, 행간과 자간과 보이지 않는 이면이 많고 간접적이기에 생각할 여지가 많다. <아이 캔 스피크>를 여러 모로 뜻깊게 봤다면, <스카우트>도 충분히 그러할 것이다. 


감독은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주체를 소시민으로 보았다. 실제가 그러하지만,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북한의 지령을 받은 남한 빨갱이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많은 영화들이 직접적으로 당시를 회상하여 우리 앞에 불러들였고 불러들이며 불러들일 것이다. 그 처참함에 눈물 흘리지 않을 사람이 없다. 


반면 이 영화는 다분히 외부인의 시선이다. 전혀 상관 없거니와, 외려 그런 행위를 반대하는 호창의 시선 말이다. 또한 우리가 흔히 아는 5.18의 생생한 면면을 볼 수 없다. 치가 떨리게 잔인하고, 몸서리 치게 안타까우며, 부들부들 억울한 상황과 사람을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오히려 그 어떤 영화들보다 5.18을 정확히 들여다보는 것 같다. 흔히 선택하는 시선인 미시적이 아닌 거시적으로. 


그렇지만 99% 픽션임을 앞세운 1980년 5월 18일 직전 10일 간의 광주, 전남도청과 더불어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광주YMCA 소속의 세영, 그리고 호창과 세영이 헤어질 당시 있었던 일의 전모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제반 상황과 서사를 들여다보면 당시가 보인다. 


우리는 이 영화로 5.18의 단편만 볼 수 있다. 그 이면의 수많은 과정이 생략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호창의 깨달음과 변화가 극적으로 보이는데, 그것들이 5.18로 이어지는 동시에 그가 그토록 염원해 마지 않던 선동렬을 포기하는 형태로 나간다. 여타 영화였다면 충분히 로맨스가 주가 되었을 텐데, 이 영화는 거기에 역사 의식과 삶의 의식의 변화를 입혔다. 바로 이 부분이 비록 이 영화가 5.18의 단편만을 보여줄 뿐이지만, 5.18과 5.18을 아우르는 거대한 의식까지 다루는 모습인 것이다. 


암울한 '폭력' 시대의 한 가운데


영화 <스카우트>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단편적 팩트 위에 복잡한 픽션을 얹어 완벽하게 짜여진 각본을 바탕으로 <스카우트>가 말하고자 하는 건 당대의 고발이다. 세영과 호창이 헤어지게 된 직접적인 이유가 당대 즉, 1960~80년대 한국의 폭력이었던 것이다. 정부에 의해 시작된 그 폭력은 모든 이들에게 광범위하게 퍼졌다. 


호창과 세영은 그 한가운데도 아닌 외곽 어딘가에 있었지만 인생을 상당 부분 결정 짓는 피해를 입었고, 이후에도 그들을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시간이 흘러 그들이 다시 만난 건 역사의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때와 곳이었고, 또다시 또 다른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는 그들이다. 


1980년 5월 18일 광주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극점으로 수렴되지만, 한편 오래도록 계속되어 왔고 앞으로도 지속될 암울한 폭력의 한 가운데라는 상징을 갖는다. 영화는 그 폭력의 한 시발점 스토리를 간략히 보여줬을 뿐이지만, 그들이 이름 없는 소시민임과 동시에 역사를 구성하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줄기라고 했을 때 굉장한 의미를 지닌다. 


5.18을 생생하게 체험하기 위해서는 <화려한 휴가> <꽃잎> <택시운전사> <박하사탕> <26년> 등을 보아야 할 것이다. 수작도, 평작도, 망작도 있지만 이보다 더 좋은 선택은 없을 줄 안다. 반면, <스카우트>는 5.18이라는 현상을 체험하기엔 역부족이다. 하지만 본질을 이해하기엔 제격일 줄 안다. 


그러하기에 5.18을 최소한으로 알고 있는 분들께 이 영화를 추천한다. 5.18을 또 다른 프레임으로 들여다보길 원하는 분들, 5.18에서 한 발자국 나아가 당대를 구성하는 폭력의 진실이 무엇인지 개인적이고 미시적으로 알고 싶은 분들에게도 제격이다. 선동렬을 스카우트한다는 줄거리와 코미디 장르라는 외견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오히려 그것들이 주는 진한 페이소스를 함께 즐긴다면 더 좋으면 좋았지 나쁘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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