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작 열전/신작 도서

하이드리히 암살 작전을 '있는 그대로' 옮긴 역사 '소설' <HHhH>

반응형



[서평] 독특한 소설 <HHhH>


소설 표지 ⓒ황금가지



인류가 낳은 최악의 악마이자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이름, 히틀러. 그가 낳은 이야기도 정말 많다. 나치즘 등장 이후 히틀러 암살 시도만 해도 최소 43건이라고.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하늘이 내린 운을 타고난 사람인가? 물론 얼마 전 작고한 쿠바의 영웅 카스트로를 향한 638번 암살 시도보단 한참 못하지만...


반면 히틀러의 최측근 중 한 명은 단 한 번의 암살 시도로 세상을 떴다. 나치 독일 수뇌 중 한 명인 하인리히 히믈러의 오른팔이었던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다. 그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 한마디. 그는 인류 최악의 범죄인 '홀로코스트' 즉 유대인 대학살의 총책임자 히믈러 밑에서 이를 직접 주도한 인물로, 그 유명한 '악의 평범성' 아이히만의 상관이기도 했다. 너무 유명한 두 인물 히믈러와 아이히만 사이에 끼어 그 이름을 드높이지 못한 비운의(?) 인물이겠다. 


하이드리히 암살 작전을 '있는 그대로' 옮기다


소설 <HHhH>는 하이드리히 암살 사건, 즉 '유인원 작전'을 다룬다. 제목이 원래 <유인원 작전>이었는데, 출판사의 반대와 제안으로 <HHhH>로 바뀌었다는 후문. 'HHhH'는 'Himmlers Hirn heißt Heydrich'의 약자로, '히믈러의 두뇌는 하이드리히라고 불린다'라는 뜻이다. 게슈타포 및 방첩부 수장이자 보헤이마-모라바 보호령 총독을 지내며 '프라하의 도살자' 등의 별명으로 불리는 등 인생의 정점이자 나치 독일 권력의 한 정점에 있던 그, 작전은 그가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직전에 실행된다. 영국의 도움을 받은 체코슬로바키아 망명 정부의 요제프 가브치크 중사와 얀 쿠비시 하사 단 두 명이 작전의 중심이다. 


암살 작전 자체는 흔히 알고 있는 그런 작전과 다르지 않다. 먼 곳을 돌고 돌아 극비리에 잠입해 오랜 기간평범하게 살아가다가 절대절명의 기회에 희생을 각오하고 암살을 시도한다. 물론 그 파장도 각오했다. 당연히 복수라는 이름으로 자행될 피의 학살이 그 파장이겠다. 하지만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가지는 영향은 그를 훨씬 초월한다.  

누군가는 하이드리히 암살 사건을 다룬 걸작 영화 <새벽의 7인>이 생각날 테지만, 개인적으로는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작전명 발키리>가 떠오른다. 히틀러를 향한 최후의 암살 미수 사건인 1944년 7월 20일의 슈타우펜베르크 대령 주도의 작전이 주요 테마다. 아주 스타일리시하게, 영화적 재미를 극도로 끌어올린 작품으로, 탁월한 서스펜스를 선사한다. 


<HHhH>도 그런 서스펜스를 선사할까? 단순히 그게 목적이라면, 영화 <새벽의 7인> 아니 원작 앨런 버지스의 <새벽의 7인>보다 뛰어나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정확히는 이 소설을 지은 작가인 '로랑 비네'가 그 길을 택했다. <새벽의 7인>이 서스펜스와 장엄함, 그리고 실제적 고민과 지어낸 뒷이야기로 영화적 재미와 정신을 완벽하게 구현했다면, 이 '소설'은 실제사건을 있는 그대로 옮겨왔다. 정녕 '있는 그대로'.


정녕 이 소설 <HHhH>를 뭐라고 해야 할까


이 소설에서 '소설적 재미'를 형성하는 그 무엇이라도 바란다면 큰 실망에 빠질 것이라고 말해둔다. 작가의 '하이드리히 암살 작전'을 향한 마니아를 넘어선 오타쿠적인 생각, 아니 신념 덕분에 이 역사소설은 파격적 혹은 혁명적 형식을 띤다. 아마 이런 류의 소설을 접하는 건 극히 힘들 것이다. 


허구적인 이야기 '픽션', 그리고 역사적인 사실에 허구적 상상력을 덧붙인 '팩션'이 있겠다. <HHhH>는 뭐라고 해야 할까. 픽션도 아니고 팩션도 아니다. 오로지 '팩트'만 존재하니까. '실설(實說)'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여기에 작가 자신이 개입한다. 아니, 작가 자신이 이 '실설'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작가 자신이 어떻게 <HHhH>를 쓰게 되었는지 그 경위를 낱낱이 적으며 더불어 실화를 전달하고 있다. 


정녕, <HHhH>를 뭐라고 해야 할까. 당혹스럽다. 이쯤 와서는 더 이상 유인원 작전이고, 하이드리히고, 나치 독일이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당시를 있는 그대로 전달해주는 '소설'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굉장히 포스트모던적이구나 하면서 이해해야 할까, 화자가 소설을 이끌어 가는 방식이 굉장히 독특하구나 하면서 감탄해야 할까, 아예 읽지 말고 역사책을 들춰봐야 할까. 


그래도 다행인 건, 이 소설에서 소설적 재미를 찾는 이에게 다행인 건, '유인원 작전'이 갖는 서스펜스와 감동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작가가 그저 실화를 있는 그대로 전달할 뿐이지만 우리는 거기에서 웬만한 영화나 소설에서 얻을 수 있는 재미를 충분히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의문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내가 왜 이 책을 읽어야 하지.' 로랑 비네의 <HHhH> 쓰기 뒷이야기를 보려고? 다 읽고 나니 남는 게 그것밖에 없다. 유인원 작전에 대해서 알려면 굳이 이 책을 읽지 않아도 되니까. 


이 책의 매력을 찾아 보자


그렇다면 이 책의 매력을 다른 곳에서 찾을 필요가 있다. 이 모든 궁금증과 의문을 넘어서는 매력을 느꼈다면 말이다. 그건 작가의 오타쿠적이고 편집증적이기까지 한 자료 조사와 솔직함과 파격에 있다. 우린 작가 덕분에 유인원 작전이 있기까지의 유럽 정세를 훑을 수 있다. 다양한 모습으로, 특히 작가가 칭송해 마지 않는 '보통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과 시선으로. 그들은 누구나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작가가 특유의 솔직함으로 '예상해 본' 당시의 유럽의 풍경은 어디서도 느끼기 힘든 스산함을 불러온다. 그 스산함은 곧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 공감은 곧 격분을... 또한 우리는 이 작품으로 나치 독일 수뇌들의 디테일한 생각과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왜 그런 악마들의 속사정을 들여다봐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것들이 '유인원 작전'의 합리성을 뒷받침해준다. 아마도 작가의 치밀한 계산이 있었을 것이다. 


소설 속에 작가가 작가 자신의 목소리로 개입하는 건, 소설을 매끄럽게 읽는 데 상당한 방해가 되곤 한다. 현대 소설 중에 그런 소설이 상당히 많은데, 개인적으로 손이 가지 않는 편이다. 아무리 위대한 소설로 정평이 나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파격을 위한 파격으로 비춰지기 때문에. 


이 소설은 어떨까. 파격을 위한 파격, 그 차원을 넘어선 듯하다. 파격의 틀을 넘어서, '파격을 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니 모든 걸 내려놓고선, 모든 걸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읽을 수밖에. 그러니 이 소설이 재미있게 다가올 밖에. 서재에 놔두고 앞으로 더 들여다보고 싶다. 뭔가 더 있을 것 같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