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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의 또 다른 원류, 손자 그리고 <손자병법> <손자병법, 동양의 첫 번째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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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손자병법, 동양의 첫 번째 철학>


<손자병법, 동양의 첫 번째 철학> 표지 ⓒ서해문집



일본 전국시대, 전국 통일의 밑거름을 닦은 파천대마왕 오다 노부나가를 위협한 최강의 무장 '다케다 신겐'은 <손자병법 '군쟁편'>에서 유래한 '풍림화산'을 기치로 내걸고 천하를 호령했다. 뜻을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바람처럼 빠르게(풍), 숲처럼 고요하게(림), 불길처럼 맹렬하게(화), 산처럼 묵직하게(산).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군사를 운용하는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는 '풍림화산'를 비롯해, 대중적으로 '손자병법'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두 가지는 '지피지기 백전백승'과 '삼십육계 줄행랑'이다. 하지만 '풍림화산'은 손자병법에 그대로 적혀 있는 반면, '지피지기 백전백승'과 '삼십육계 줄행랑'은 손자병법에 없다. 정확히는 '지피지기 백전불태'이고, 삼십육계 줄행랑은 <손자병법>이 아닌 <36계>라는 병법서에 나온다. 


이는 우리가 <손자병법>를 이해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들이지만, 잘 못 이해하거나 알고 있는 대표적인 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실 <손자병법> 자체에 대한 이해가 잘 못 되어 있다고 보는 게 맞다. <손자병법>을 단순히 병법서, 즉 군사를 운용하여 전쟁하는 방법에 관한 책으로만 알고 있다는 것이다. 


동양철학의 또 다른 원류, 손자 그리고 <손자병법>


<손자병법, 동양의 첫 번째 철학>(서해문집)을 지은 젋은 철학자 임건순은 손자병법이야말로 동양의 첫 번째 철학서라고 말한다. 동양을 논하기에 앞서 서양을 보자. 서양의 첫 번째 철학은 무얼까. '플라톤'이 서양철학의 출발점이라 일컬어진다. 이에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반면 동양철학, 그 중에서도 중국철학의 시작은 '제자백가'라는 여러 학자와 학파들이다. 그 중 가장 유명하면서도 많은 영향을 끼친 학자가 '공자'이고 그의 학파가 '유가'이다. 그래서 공자와 유가를 동양(중국)철학의 시작과 끝이라고들 많이 한다. 


'손자'가 낄 자리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임건순은 공자 이전에 손자가 있었고, 그야말로 노자, 한비자 등 많은 학자와 학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동양철학의 출발점이라고 주장한다. 노자와 한비자는 공자와 더불어 제자백가를 이룬 여섯 개의 조류 중 한 개의 시조들이다. 어찌 하여 철학서나 사상서가 아닌 병법서 따위(?)를 지은 손자가 위대한 성인들이 이룩한 철학 사상의 원류인가, 어찌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가. 


'손자'가, <손자병법>이 중국인의 의식에 끼친 거대한 영향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겠다. 단적으로 말해서 공자보다 손자가 중국인의 현실적·실용적 의식에 끼친 영향이 크다. 중국인의 현실적·실용적 의식은 나날이 그들의 중심 의식이 되어가고 있으니, 공자보다 손자의 영향력이 증대하고 있는 것이겠다. 손자를 다시 봐야 할 이유이다. 여담으로, 2016년 후반기만 해도 '손자병법' 관련 책이 쏟아졌는데, 이에 대한 반증이 아닐까 싶다. 


나아가 손자의 위업은 또 다른 면에서 빛을 발한다. 특히 동양철학의 원류라는 점에서 말이다. 정확히는 원류 중 하나. 그가 살았던 시대는 춘추시대 말. 전국시대가 시작되기 직전이다. 그는 시대의 변화를 정확히 꿰뚫고 선각자·선지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춘추시대의 '전투'에서 전국시대의 '전쟁'으로의 변화를 꿰했고, 그 기본에 '국가'라는 단위를 설정한 것이다. 국가의 전쟁에 필요한 건 '전략', 여기서의 전략은 전쟁의 전략이 아닌 국가 운용의 전략이다. 그렇다. 그가 위대한 가장 큰 이유이자 우리가 손자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부분이 바로 이 부분, '국가 운용'이다. 그는 전쟁을 치름에 있어, 소규모 전투, 대규모 전쟁, 나아가 경제, 군사, 문화, 정치, 외교를 아우르는 국가의 운용 전략까지 생각한 최초의 인물인 것이다.


흔히 손자를 전쟁의 신이자 전쟁광으로 아는데, 그 또한 잘 못 인식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엄연히 '전쟁의 신'은 맞지만(그 정도로 전쟁에 관련된 모든 것을 완벽히 습득하고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전쟁광'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국가로서의 전략'에서 파생된 개념인데, 국가 운용이 가장 중요한 만큼 전쟁은 하지 않고 이기는 게 가장 좋은 것이고 전쟁을 하게 되더라도 신중하고 또 신중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부분을 인지하고 이해하지 못하면 <손자병법>과 손자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너무 완벽한 인간, 손자


선각자·선지자로서의 손자, 철학자·사상가로서의 손자, 분명 우리가 생각해보지 못한 손자다. 전투·전쟁의 신으로서의 소인(小人) 손자가 아닌 대인(大人)으로서의 손자 말이다. 저자는 순자, 묵자, 오기 등 역사에 길이 빛날 위대한 이들이지만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잘 못 알려진 이들을 발굴해냈는데, 이번엔 손자를 발굴해냈다. 


문제는 너무 완벽한 인간이 된 손자다. 저자는 손자를 전쟁광이자 전쟁신에서 끄집어 내 다양한 자리에 앉힌다. 춘추시대 말기에 활약하며 전국시대의 시작을 예견하며 전쟁의 패러다임을 바꿔버린 위대한 선각자이자 선지자. 항구적인 안전과 생존을 지키는 것이 모든 행위의 시작이자 이유여야 한다는 이론을 정립시키며 노자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철학자. 철저한 공리주의와 실용정신이 지배하는 중국, 이득이 따르는 길을 취하려 하고 당장 이야기되는 것부터 논의를 시작하고자 하는 중국인, 이 가치관과 사유의 뿌리인 사상가. 


이 완벽한 현자이자 거목을 설명하기 위해서 저자는 '중언부언'을 선택한다. 500쪽이 넘는 긴 분량 안에서, 했던 말을 무한반복함으로서 손자의 위대함을 설파한다. 족히 수백 번은 나왔음직한 '국가의 전략' '신전론'과 '무슨 짓을 해서든 이겨라'는 주문, 그리고 '고구려 이야기'까지. 때론 위대함으로 그의 위대함을 설파하기도 한다. 


분명 저자는 '계' '지' '무' '세' 등 손자가 내세우는 주요 이론들을 나눠 설명하고 있는데, 어찌 이리도 중언부언을 하고 있는지 알 도리가 없다. 너무나 중요한 개념들인 건 알겠지만, 책 중반 이후가 넘어가면 중간 중간 건너뛰게 되는 불상사를 겪는다. 문단 자체가 이전에 말했던 말인 경우가 점점 많아 지는 것이다. 작은 챕터 하나 전체를 큰 챕터를 요약하는 데 할애하는 건, 이 책이 강의를 기반으로 한 것이기에 봐줄 만하다.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고구려 이야기의 예는 얼핏 이해하기 힘들다. 수많은 예 중에서 하필 고구려였을까. 고구려가 <손자병법>을 완벽히 이해해 전쟁을 수행한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도, 이토록 계속해서 예로 드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말이다. 실제 <손자병법>에 이토록 무한히 반복되는 주장과 주문이 있었을까. 도대체 <손자병법>에는 어떤 말들이 있을까. 과연 저자의 생각이 맞을까. 글이 아닌 말이 기반인 강의를 옮긴 만큼 어쩔 수 없었던 부분일까, 고구려 이야기처럼 누차 강조함으로써 주장이나 설파에 힘을 실으려 했던 것일까. 여하튼 이 책에는 <손자병법>을 읽어보고 싶게 하는 묘한 힘이 있다. 


이 책을 손자의 '전략'으로 바라보자


이실직고 말하되, <손자병법>을 거들떠 본 적도 없다. 그런 깜냥으로 <손자병법>과 손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려는 저자와 책에 이런 식의 비판은 가소로울 수 있다. 해석에 대한 비판이 아닌 책 자체에 대한 비판이었던 바, 막돼먹은 짓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만큼 나는 <손자병법>을 잘 모르고, 아마도 우리는 <손자병법>을 잘 모를 게 확실하다. 거기에 해설서를 드리 밀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마 절대 <손자병법>을 찾아보려 하지 않을 거다. 저자가 노린 게 바로 그 점이 아니었을까. <손자병법>을 찾아보게끔 하려는 의도가 저변에 깔려 있지 않았을까. <손자병법>을 잘 모르거니와 잘 못 이해하고 있는 이에게, 새로운 해석까지 전하려면 어쩔 수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손자가 생각하는 전쟁이 단순한, 당면한 전쟁 그 이상의 '국가로서의 전쟁'이니 만큼, 저자가 생각하는 책읽기는 단순한, 당면한 책읽기 그 이상의 '원전 찾아 읽기'일 것 같다. 이 생각은 아니 이 전략은 여타 고전 해설서가 지향하는 '원전 찾아 읽지 않아도 돼, 이 책만 읽어도 충분해.'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저자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노력과 열정을 보다듬어 줄 수 있는 통찰력'을 이런 식으로 발휘해보았다. <손자병법>과 손자, 그리고 고전을 통한 현재의 삶을 향한 저자의 노력과 열정, 그리고 통찰력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남과 다른 고전 이야기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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