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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관을 버리고 이슬람을 쉽게 접해 보자 <반갑다! 이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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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반갑다! 이슬람>


<반갑다! 이슬람> 표지 ⓒ서해문집



이슬람교의 경전 꾸란에는 많은 좋은 말이 담겨 있다. 다음과 같은 말도 있다. 


"너희는 한 공동체가 되어 선을 촉구하고 계율을 지키며 악을 멀리하라."


이 구절이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는 건 하루가 멀다 하고 자행되는 테러 때문이겠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그들을 이슬람 근본주의, 극단주의 세력이라고 부르고 있는 바, 사실 이슬람 내에서는 없는 단어이자 분류라고 한다. 이슬람 내의 급진적인 운동에서 파생된 이념 중 몇몇이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위의 말도 이념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종교와 인종을 떠나 어느 누구든 공동체로 받아들여 선을 촉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 행동을 악이라고 간주할 수 있는 반면, 자신들이 추구하는 노선이나 자신들이 속해 있는 공동체가 아니면 모두 악으로 간주해 없어버리는 게 선을 촉구하는 행동으로 볼 수도 있다. 


지금 전 세계가 상상을 초월하는 이슬람 테러에 떨고 있는 바, 우리는 앞엣것은 보지 못하고 뒤엣것만 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긴 하다. 그래서 이슬람이라면 무조건 멀리하고 두려워 하며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다. 언제 다시 전 세계적인 혼란 속으로 휘몰아 들어갈지 모르는 작금의 세계에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선입관을 조금이라도 버리고 이슬람을 알아갈 순 없는 걸까. 


이슬람교 쉽게 접하기, 그 첫 번째 '계시'


선입관을 버리고 아주 살짝만이라도 발을 담그고자 할 땐, 쉬운 것만큼 좋은 게 없다. 더불어 재미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반면 자기 자랑은 금물이다. 자칫 반감을 살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슬람을 처음 알아가는 이에게 <반갑다! 이슬람>(서해문집)은 괜찮은 책이다. 쉽고, 짧고, 자못 흥미롭다. 은근 알아가는 재미도 있다. 반면, 이슬람 자랑이 보통 이상이라 감안해야 하겠다. 


책은 세 부분 '계시', '공동체', '올바른 길'로 나뉜다. 먼저 '계시'에서는 이슬람교의 탄생을 설명한다. 570년 마호메트, 즉 예언자 무함마드가 태어난다. 그는 마흔 살이 되기 전에 종종 칩거하며 명상에 잠겼는데, 610년 라마단에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알라의 말씀을 계시받는다. 곧 '영광의 밤'이다. 63세에 눈을 감은 그의 삶의 역사적 맥락은 '성 꾸란'의 계시를 더욱 강조하는 것이었다. 예언자의 뒤를 이은 아부 바크르가 칼리프로 선출되어 예언자가 읊은 꾸란의 성스러운 말을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세 번째 칼리프에 이르러 완료되었다. 


이슬람은 다섯 가지 가르침을 근간으로 한다. 이슬람의 정수는 신에 복종하고 무함마드가 신의 사도임을 시인하는 선서문 샤하다, 하루에 다섯 번 알라에 대한 찬미와 감사의 기도 살라트, 규정되어 있는 빈민 구호금인 구빈세 자카트, 라마단 한 달 내내 하는 단식 사움, 무슬림이 최소한 평생에 한 번은 가야 하는 메카의 카바로 순례 하지. 여기에 예언자가 말하고 행하고 승인한 것 전부인 '수나'와 '꾸란'이 이슬람의 토대를 이룬다. 


이슬람의 정수를 알게 해주는 고도 문명의 도시 '공동체'


'공동체'에서는 이슬람이 전파한 고도 문명의 도시 공동체를 설명한다. 이슬람 문명이 꽃피운 다마스쿠스, 최초의 캘리그래피 양식과 법률 연구를 시작한 쿠파, 9세기와 10세기의 이슬람 최대 도시이자 세계 학문의 중심지 바그다드, 서쪽의 지혜 중심 코르도바, 수피 시인 잘랄 알 딘 루미가 머물렀던 이스파한, 아시아의 중심이자 동쪽 이슬람 세계의 문화적 중심 사마르칸트, 이슬람 도시의 탁월한 예 카이로, 이슬람이 북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까지 확산된 증거 젠네, 오스만튀르크의 무슬림 권력 중심이자 수도 이스탄불, 인도 이슬람의 정점 아그라, 그리고 동남아시아와 중앙·남아메리카, 미국, 유럽까지. 신도 수 16억 명의 세계 최대종교 이슬람의 영광스런 역사 속 공동체다.


이들 도시 공동체를 통해서 이슬람의 정수를 알 수 있다. 다마스쿠스 우마이야 모스크를 보면 이슬람에서는 우상 숭배의 위험 때문에 사람이나 동물을 그리는 것을 피한다는 걸 알 수 있고, 민바르라는 설교단을 통해 이슬람에서는 세속적 삶과 종교적 삶이 분리되지 않기 때문에 설교를 할 때에도 사회적, 정치적, 국제적, 교리적 문제들을 논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의외지만 꾸란에는 여성이 남성과 영적으로 '동등'하다는 게 명시되어 있고, 인종적으로 '평등'을 강조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도 있는데, 커피하우스와 체스가 이슬람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이슬람으로 인해 오스트리아인이 크루아상을 만들었다고 하는 점이다. 


무엇보다 이슬람하면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이 궁금하다. 어째서 그들은 목숨을 걸고 대립하는가. 이슬람이 아랍 지역 밖으로 확장되면서 전에는 없던 문제가 생겨났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네가지 율법학이 생겨났다. 이들 학파는 이슬람의 지적 삶을 형성했는데, 서로를 인정하기에 갈등이 없다. 이들을 수나를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뜻에서 '수니파'라 부른다. 무슬림 대다수를 차지하며 '공동체의 합의'에 의지한다. 반면, '이맘(예배를 인도하는 사람)의 무오성(법적 판단을 내릴 때 절대 틀리지 않음)'에 의지하는 '시아파'는 무슬림 세계를 지배한 네 번째 칼리프 알리의 시아(무리)에서 유례했다. 그들은 알리가 첫 번째 칼리프가 되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며, 알리의 뒤를 이어 열한 명의 이맘이 있었는데 이들이 모두 신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어 무오성이 있다고 믿었다. 수니파와 시아파는 모두 꾸란과 수나를 으뜸으로 생각하지만, 이 두 가지에 나와 있지 않은 문제를 해결할 때 의지하는 바가 다른 것이다. 


이슬람 세계가 가야할 '올바른 길'은?


'올바른 길'에는 이슬람 세계가 가야할 길을 설명한다. 서구 열강에 의해 독립 국가가 수립된 뒤에 무슬림들은 정치적 안정과 근대화를 이루고 종교를 이어나갈 길을 찾으려고 애썼다. 그리하여 네 가지 모델을 실험했다. 세속화 모델, 조화 모델, 사회주의 모델을 지향했었지만 이슬람 사회의 주요 과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623년~632년 메디나의 꾸란 국가모델을 추구하며 정치 사회 질서 안정을 꽤하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이슬람의 단순성과 평등에 이끌려 많은 무슬림이 결집했다. 이 와중에 외부에서 들어온 첨단 기술 문화에 맞서 싸우는 것만을 해법으로 생각하는 일부 호전적 무슬림들이 나타났다. 이들 무장 단체는 서구화와 관련이 있는 문명에 반대하며 오직 이슬람을 정치적·법적 계율로만 보았다. 서양과 서구화에 반대함으로써 역사적 정체성을 찾고 경제적 자율성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19세기 서구 식민화가 시작된 이래 무슬림은 신앙과 영토를 지키기 위해 싸워왔다. 꾸란은 압제에 대해 정신적, 물리적으로 '저항'하라고 명한다. 수많은 무슬림들이 공동체를 결집해 점령에 맞서며 꾸란의 대의에 응답했다. '그들이 너희들을 추방한 곳으로부터 그들을 추방하라' 


알게 모르게 이슬람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 이슬람을 다시 보자


이슬람을 보는 눈이 변질된 건 사실이다. 아무래도 서양의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기 때문에, 더불어 서양의 근간을 이루는 기독교 입장에서 이슬람교는 타종교가 아닌 이단이기 때문에, 여러 의미로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계속되어 온 신앙과 영토를 위한 전쟁은 지금까지도 되풀이 되고 있다. 그 전쟁을 누구는 종교적으로, 누구는 경제학적으로, 누구는 인류도덕적으로 접근한다. 어느 모로 보나 이슬람을 파렴치하게 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알 수가 없다, 이슬람을. 가장 많은 신도수를 자랑하는 이슬람을. 우리 주위에 상당히 많은 것들이 이슬람으로부터 유래되었다는 것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순수한 아랍 기원의 단어들이 영어 어휘에 포함된 게 많은데, 우리가 잘 아는 단어만 해도 sofa(소파), rocket(로켓), banana(바나나), coffee(커피), candy(캔디), lemon(레몬), orange(오렌지), sugar(설탕), alcohol(알코올), cable(케이블) 등이 있다. 스페인어에는 아랍이나 페르시아에서 유래한 단어가 6500개나 된다고 한다. 우린 알게 모르게 이슬람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존중까지는 바랄 수 없을지 모른다. 삶까지 제어하는 종교적 지침이 종교를 믿지 않는 일반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인까지 눈살을 찌푸리게 하곤 하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일반 무슬림들을 무슬림 테러리스트와 같이 생각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건 굉장히 유아적인 발상이자 자기방어적인 생각인데, 한국인들이 모든 일본인을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으로 생각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게 문제인데, 참 신기하기도 하다. 


무턱대고 매도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알고 그래야 하지 않나, 하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얇디 얇은 책 <반갑다! 이슬람>은 꽤 괜찮다고 다시 한 번 전하고 싶다. 아울러 이슬람 전통에 따른 평면적인 실루엣과 음영, 그리고 반복적이고 확장되는 기하학적 패턴이 포함된 일러스트와 캘리그래피를 보는 맛도 괜찮다. 마음의 안정에 도움이 되며 이슬람을 다시 보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조심스럽게, 그러나 강력하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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