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스포트라이트>
영화 <스포트라이트> 포스터 ⓒ팝엔터테인먼트
끔찍한 사건이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더욱이 가톨릭 '성직자'라는 이들이 행한 거라니, 믿기 힘들고 믿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세상엔 수많은 사건·사고들이 터지고 그것들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지 않는가. '사과 몇 알이 썩었다고 사과 상자 전체가 썩었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짓을 일삼은 몇몇을 색출해내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면 된다.
문제는 그런 짓을 일삼은 이들이 단지 '몇몇'이 아니라는 것, 그 행태를 보아하니 상당히 조직적이고 체계적이라는 것, 그리고 다름 아닌 '성직자'라는 것.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성직자들이 행한 그 짓이 무엇인지. 오해 없이 받아들이길 바라지만 결코 그냥 지나치진 마시길. 뿌리 깊은 가톨릭 성직자 '아동 성추행'이다. 그 '역사'는 참으로 오래 되었다고 한다.
믿을 수 없는, 가톨릭 성직자 아동 성추행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대표적 가톨릭 성직자 아동 성추행 사건인 '보스턴 가톨릭 성직자 아동 성추행 스캔들' 폭로의 실화를 다루었다. 무지의 소치라고 해야 하나, 세상에 대한 무관심의 발로라고 해야 할까, 나는 가톨릭 성직자가 아동을 성추행했다는 사실을 이 영화를 통해 처음 들어보았다. 그래서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끝까지 믿을 수 없었다. 몇 십 년 동안 이어져 왔다는 사실과 현재에도 계속 되고 있다는 사실은 아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영화가 단편적인 것만 그린다고 생각했다.
미국 유력 신문이자 보스턴 최대 지역 신문인 '보스턴 글로브'의 스포트라이트 팀, 특종 기사를 발굴해 세상에 내놓는 일을 한다. 2001년 여름, 보스턴 글로브에 새로운 편집장 마티 배런이 부임해온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스포트라이트 팀에게 임무를 내리는데, 30년 동안 수십 명의 아동을 성추행 한 혐의로 기소된 보스턴 지역교구의 가톨릭 사제 '존 가이건'을 취재하라는 거였다. 잘릴 거라 생각했던 스포트라이트 팀장 월터 로비 로빈슨(마이클 키튼 분)은 3명의 팀원 샤샤 파이퍼(레이첼 맥아담스 분), 마이클 레젠데스(마크 버팔로 분), 매트 캐롤과 함께 취재에 들어간다. 특종에 발군의 실력을 자랑하는 그들은, 지나가는 수많은 사건 중 하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편집장 배런은 출판인에게 허락을 받고 추기경을 찾아가고 지역 유지 모임에도 참석하며 동향을 살피는 데 주력한다. 한편 스포트라이트 팀은 존 가이건 사건의 심층 취재에 들어간다. 그런데 쉽지 않다. 주위에서 한 사람, 두 사람 만류하고 저지하는 것은 물론, 사건의 변호사는 기밀사항이라며 말을 아낀다. '생존한' 피해자들도 몇몇만 나설 뿐이다. 어릴 때 심대한 물리적, 정신적 충격을 받은 이들이 '생존'해 있기란 힘든 거였다. 취재는 난항을 겪는다.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한 장면 ⓒ팝엔터테인먼트
성추행 대상 아동들의 공통점은 저소득 계층이거나 오갈 데 없는 이들이었다고 한다. 즉, 가톨릭 교회에 자신을 온전히 맡길 수밖에 없는 이들이었던 것이다. 더욱이 신의 이름으로 자행 되는 짓이었기에 아이들은 거절할 수 없었다. 물리적 충격을 넘어서는 정신적 충격은 아이들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이 이야기는 실화이거니와, 수십 년 동안 계속 되었으며 상부에서는 이를 은폐했고 전 세계에 걸쳐 자행 되었다.
'폭로'가 아닌 '자세'에 집중하다
한편, 취재가 풀리기 시작하는 시점은 우연히 발견한 사실을 이용해서 존 가이건 사제 이외에 아동 성추행을 행한 사제들의 리스트를 만들게 되고 나서 이다. 그들은 비슷한 이유로 그만두었다가 재임용 되었다. 성추행 사실을 은폐하려는 수작이었던 것이다. 이후에 한 번 더 큰 전환점이 있는데, 변호사 미첼 개러비디언이 레젠데스에게 힌트를 주고 나서 이다. 누구도 볼 수 없지만, 이 사건의 결정적 단서가 있는 봉인된 문서였다. 개러비디언의 힌트로 결국 그 문서를 풀 수 있게 된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에 과정 및 결말은 누구나 다 안다. 그런데 영화는 그 충격을 훨씬 크게 다가오게 만든다. 그런 의도로 연출한 것 같다. 사제가 중요한 키워드이기에 몇 번이고 나올 법한데, 초반을 제외하고 찾아볼 수 없다. 일반적인 연출이라면 피해자들이 진술할 때 회상 장면이 나올 법한데, 전혀 나오지 않는다. 대신 언론인의 윤리에 집중한다. 편집장의 보호 아래 최선을 다해 파헤치는 스포트라이트 팀. 파헤칠 수록 너무나 거대해지는 사건은, 언론인의 자세를 견지할수록 자연스레 나타나는 결과에 불과하다. 즉,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폭로'가 아니라 '자세'다. 다만 그들이 자세를 다 잡고 폭로하게 된 그 실체가, 자세를 다 잡는 것 이상으로 너무나 거대하고 중요했다.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한 장면 ⓒ팝엔터테인먼트
그럼에도 이 영화에서 언론인의 자세가 폭로의 수위와 사건의 중요함과 거대함에 묻히지 않는 건, 자세와 사건이 서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전 편집장은 수십 명의 사제가 한 짓을 잘 알고 있었고 스포트라이트 팀장 로비는 오래 전에 신문사로 보내온 가톨릭 성직자 아동 성추행 스캔들 제보를 지극히 가볍게 다룬 적이 있다. 이에 전 편집장은 처음에는 만류하고 저지하고 협박하다가 왜 이제야 왔냐고 한탄한다. 또한 피해자 중 한 명은 오래 전부터 계속 알리고 제보해 왔지만 지금에야 다루는 거에 대해 한탄한다. 로비는 큰 사건은 특종 팀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변명하지만, 언론인으로서 변명 같지도 않은 변명이다.
이런 사건을 알리지 않으면 언론이라 할 수 있을까?
이 거대하고 거대한 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가톨릭 성직자 아동 성추행 파문이 일고 있고, 벌금을 물고 감옥에 가고 사과를 하고 잊혀지고 사건은 다시 일어난다. 뿌리 깊고 광범위한 만큼 발본색원이 힘들다. 그렇다고 그러려니 하고 있는 건 말도 되지 않는다. 종교에 관련된 것이니 민감하고 두렵고 꺼림칙해도 알리고 알리고 또 알려야 한다. 발본색원은 알리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런 사건을 알리지 않으면 언론이라 할 수 있을까? 아니, 이런 사건을 보고도 못 본 채 지나치면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그런 인간들이 곳곳에 상주하며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똘똘 뭉쳐 사건을 은폐하고 있다는 게 영화의 또 하나의 줄기다. 성직자 개인의 성추행, 성직자가 속한 교구의 은폐, 성직자가 속한 교구의 지역 전체의 은폐까지. 영화에서는 이 정도까지 보여주었지만, 사실 그 이상의 은폐도 불가능할 게 없다. 엔딩 크레딧에서 언급한 한 마디가 결정적이었다. '버나드 로 추기경은 사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가톨릭의 중 최상단 교구로 부임 되어 성직자 생활을 계속했다.' 최소한 가톨릭 내부에서는 추기경 급 이상의 힘이 작용했다는 걸까. 영화가 보여준 것도 어마어마하지만, 빙산의 일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한다. 세상이 두렵다. 그래도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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