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작 열전/신작 영화

7년 만에 끔찍한 방에서 탈출, 하지만 형벌과도 같은 바깥... <룸>

반응형



[리뷰] <룸>



영화 <룸> 포스터 ⓒA24 필름스


영화가 시작되고 엄마와 아이는 잠에서 깨어 눈을 뜬다. 아이의 다섯 번째 생일, 같이 케이크를 만들어 먹는다. 초도 없이. 아이는 초를 달라고 떼쓰지만 안타깝게도 엄마는 초를 줄 수 없다. 초라니 언감생심이다. 초는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게 아니니까. 좁디 좁은 방에서 살아가기 위해선 초 따위는 필요 없다. 엄마는 미안하다며 아이를 달랜다. 


그렇다. 엄마 조이와 아이 잭은 좁은 방에 갇혀 있다. 엄마가 아이에게 사실을 말해준다. 7년 전 누군지 알 수 없는 이에게 납치 당해 이곳, 헛간으로 끌려 왔고 2년 뒤에 아이를 낳아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고. 정황 상 아이는 납치범 닉의 아이로 보인다. 


잭은 계속 조이에게 묻는다.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천장으로 보이는 하늘로 미루어 보아 이곳과는 다른 곳이 존재할 텐데, 그곳은 어떤지. 그렇지만 잭은 그 좁은 방에 완벽히 적응한 모습이다. 그곳에서 태어나 다른 어느 곳에도 가지 못한 채 5년을 지냈으니, 그곳이 곧 세상의 전부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그게 당연하다. 


조이는 잭에게 벽 너머의 또 다른 세상을 말한다. 납치 당하기 전, 자신이 속했던 세상을 말한다. 그렇게 탈출 시도가 시작된다. 함께 탈출할 수 없으니 잭을 탈출하게끔 하려는 것이다. 처음에는 잭이 아프다는 구실로, 마지막으로는 잭이 죽었다는 구실로. 우여곡절 끝에 결국 잭은 탈출에 성공하고, 조이도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영화 <룸>의 한 장면 ⓒA24 필름스



7년 만에 방에서 탈출, 형벌과도 같은 바깥 생활


영화 <룸>의 초중반부 스토리이다. 이게 초중반부라고? 방에서 탈출하는 이야기가 주된 것이 아니었던가? 영화를 보기 전엔 그렇게 생각하기 쉽다. 7년 동안의 감금을 현실적이고 강렬하게 그리면서, 안에서의 성찰과 깨달음, 그리고 극적인 탈출을 보여줄 거라고 말이다. 그 이후에는 행복한 삶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게 당연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 전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영화 <캐스트 어웨이>가 무인도에 불시착하는 과정과 무인도에서의 삶과 성찰, 그리고 탈출의 경위를 아주 자세히 보여주고 난 후 돌아와서의 삶은 상대적으로 짧게 처리하는 것과는 다르다. 척 놀랜드(톰 행크스 분)가 십자가 모양의 사거리의 한복판에 서 있는 모습으로 처리했다. 굉장히 의미 있고 함축적인 장면이다. 


반면 <룸>은 어떤가. 초중반부에서 이미 탈출에 성공한 모자(母子)는 어찌 보면 훨씬 더 큰 어려움에 봉착한다. 사람들의 지대한 관심, 미디어의 과도한 액션, 잭을 둘러싼 조이와 부모님들 간의 갈등. 그들은 다시금 방에 갇힐 수밖에 없게 되었다. 적어도 전의 그 방에선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가 없었고, 엄마와 아이와의 갈등 이외엔 어느 갈등도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조이는 닉과의 갈등이 있었지만, 닉은 조이와 잭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과연 어떤 '방'이 더 좋을까. 잭은 할머니와의 대화에서 다음의 한마디를 건넨다. 할머니의 가슴을 후벼 파는 한마디이면서, 보는 이의 가슴도 한껏 때리는 한마디이다. 


"가끔 그 방이 그리워요."



영화 <룸>의 한 장면 ⓒA24 필름스


얼마나 바깥 세상이 불편하고 싫었으면, 5년이나 한 발자국조차 내딛지 못했던 그 작은 방이 그리워질까. 한편으론 오직 엄마와의 오붓한 시간을 보냈던 그곳이 그립다는 말이기도 하겠다. 그곳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잭은 더 이상 엄마하고만 지낼 수 없게 되었다. 혼자서, 엄마 아닌 다른 누군가와, 엄마와 다른 누군가와 함께 지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건 잭에게 있어 최악의 형벌과 다름없었다. 


극악무도한 사건 대신 한 아이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다


영화의 배경은 분명 극악무도한 사건이다. 누구라도 그 사건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영화 안에서 모자를 보는 이들이나, 영화 밖에서 모자를 보이는 이들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적어도 영화 자체는 그 사건에 초점을 맞추지 않으려 한다. 그 대신 잭의 시선과 심리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작은 방 안에서의 세상에 대한 생각과 상상, 세상으로 나왔을 때 비춰지는 다양한 사람들과 그 밖의 모든 것들에 대한 심정을 곳곳에 독백으로 처리했다. 그렇게 하니 사건은 가려지고 대신 한 아이의 성장이 자리 잡았다. 


문제는 어쩌면 바로 그 부분에 있다 하겠다. 시종일관 아이의 시선에 초점을 맞추려 한 건 잘한 것 같지만, 사건도 사건이거니와 이 영화를 끌고 나가는 이가 아이만 있지 않다는 걸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아이만큼 중요한 이가 엄마 조이다. 그리고 조이의 부모님. 초점은 아이지만, 다양한 이야기들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에 모자가 세상에 나온 뒤에는 영화가 조금은 어수선해진다.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없고, 조이와 부모님이 갈등을 빚는 요소가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아 답답했다. 



영화 <룸>의 한 장면 ⓒA24 필름스



이 모든 걸 커버하는 요소가 있는데, 배우들의 연기다. 이 영화로 2016년 무수히 많은 유수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휩쓴 조이 역의 브리 라슨, 더불어 생애 두 번째 영화임에도 만만치 않은 영화제에서 수상한 잭 역의 제이콥 트렘블레이, 그리고 조이의 엄마 역의 조안 알렌. 이들은 각자 역할 그 자체였다. 특히 특별한 배경의 캐릭터가 영화 내내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완벽하게 보여준 데에는 여지없이 찬사를 보내고 싶다. 영화는 안 보고 이들만 봤다는 느낌이 든다. 실제로도 그랬고. 배우는 살고 영화는 죽은 그런 사례라고 할까.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