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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동성 간의 사랑이 아니야.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거라고." <캐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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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캐롤>



영화 <캐롤> 포스터 ⓒCGV 아트하우스



1950년대 어느 날 미국, 한 남자가 레스토랑에 들어온다. 우연히 한 여자를 발견한다. 그 여자는 어느 여자와 같이 앉아 있다. 여자는 남자와 맞은 편 여자를 서로 소개 시켜준다. 곧 맞은 편 여자가 일어나 가고, 남자가 곧 자리를 뜬다. 그 둘은 자리를 뜨며 여자의 어깨를 살짝 집었는데, 여자가 반응을 보인 건 맞은 편 여자의 손길이다. 여자도 자리를 뜬다. 차를 타고 가면서 회상에 빠져든다.


백화점에서 일하는 테레즈(루니 마라 분), 그 날도 어김없이 개점을 하고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눈앞에 나타난 한 여자 캐롤(케이트 블란쳇 분). 테레즈보다 족히 열 몇 살은 많아 보이는 캐롤. 차림새는 전형적인 상류층의 그것이다. 캐롤을 바라보는 테레즈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그건 캐롤도 마찬가지다. 그 눈빛의 의미는 무엇일까. 서로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일시적 선망이나 부러움일까. 


그렇게 그냥 지나갔으면 되었을 것을, 캐롤은 테레즈의 점포로 와 딸의 장난감을 구입한다. 짧은 대화에 오가는 눈빛. 계속해서 힐끗 거리는 눈빛은 그 농도가 한껏 짙어진 듯하다. 곧 헤어지는 그녀들, 그런데 캐롤이 장갑을 놓고 간 게 아닌가. 테레즈는 고민 끝에 캐롤의 집으로 장갑을 부쳐주고, 전화로 캐롤의 감사 답장을 받는다. 곧 그녀들은 만난다. 오랜 여정의 시작이다. 



영화 <캐롤>의 한 장면 ⓒCGV 아트하우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거라고."


그렇다. 이 영화 <캐롤>은 1950년대 미국의 레즈비언 커플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그런데 그녀들의 생활로 봐선 그런 낌새를 알아차릴 수 없다. 캐롤은 10년 동안의 결혼 생활을 청산하고 이혼 절차를 밟고 있는 중인데, 딸의 양육권이 최대 걸림돌이다. 그녀에게는 '애비'라는 절친한 친구가 있고, 그녀의 남편은 그녀와 애비와의 절친한 관계를 좋지 않게 보고 있는 듯하다. 테레즈는 남자친구가 있는데, 그녀의 의사는 상관 없이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낌새다. 하지만 테레즈는 그와의 관계가 그리 좋지 만은 않다. 그를 엄청 사랑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는 듯하다. 


1950년대, 캐롤과 테레즈, 여자 대 여자. 이 둘은 서로 첫눈에 '반했다'. 곧 '사랑'에 빠진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럽다'. 그런데 나는 왜 위와 같이 말하고 있는 걸까. 왜 위와 같이 강조하고 있는 걸까. 그건 그들의 사랑이 '상대적으로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흔하게 접하는' 형태는 이성 간의 사랑이다. 그런데 이들은 동성 간의 사랑이 아닌가. 그것도 60여 년 전. 참으로 어렵고 조심스럽다. 



영화 <캐롤>의 한 장면 ⓒCGV 아트하우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어렵고 조심스러운 게 사라진다. 마냥 아름답기만 하다. 그들의 사랑이. 이런 사랑이 처음인 테레즈는 캐롤의 요구를 모두 들어준다. 같이 점심 먹을래? 네. 우리 집에 한 번 놀러 올래? 네. 너 네 집에 한 번 놀러 가도 돼? 네. 우리 같이 여행 갈래? 네. (세상이 던질 편견 가득한 눈에 대한) 고민도 없고 (캐롤을 향한 순수한 사랑 또한) 막힘이 없다. 그런 그녀의 결정적 한 마디. 남자친구에게 말한다.


"동성 간의 사랑이 아니야.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거라고."


사랑인지, 일탈인지, 그럼에도 아름답다


고민도 없고 막힘도 없는 테레즈. 반면 캐롤은 다르다. 집안일이 얽히고 설켜 있다. 남편, 딸, 그리고 애비. 그녀의 남편이 계속해서 애비를 걸고 넘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캐롤이 테레즈와 가깝게 지내고 난 후, 급기야 남편이 캐롤의 '비도덕적인' 행동을 이유로 캐롤에게 딸의 양육권 포기를 강제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상황을 미루어보아 캐롤은 동성애적인 기질이 있고, 남편은 그 기질을 비도덕적인 행동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곧 미국의 생각에 다름 아니었다. 


점점 가까워지는 캐롤과 테레즈. 캐롤은 남편에게 뒤통수를 맞고 테레즈에게 여행을 권유한다. 함께 떠나는 여행을. 테레즈는 역시 고민도 없이 '네, 같이 가요'. 그들은 여행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서로를 원하고 서로를 지극히 생각하는, 서로에 대한 사랑을. 그런데 생각해 봐야 한다. 아니, 그들은 생각해볼 수밖에 없다. 과연 사랑인지. 



영화 <캐롤>의 한 장면 ⓒCGV 아트하우스



각각 남편과 남자친구가 자신을 알아주지 않고 자신 또한 그들을 알아줄 마음이 없으며 마음도 이야기도 통하지 않고 공감도 전혀 할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우연히 만난 '영혼의 짝'. 성별의 문제를 제쳐두고, 그건 사랑이 아닌 일탈과 가까운 그 무엇일 수 있다. 결이 조금 다를 수 있지만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생각나기도 한다. 결론을 어떻게 짓느냐에 달라질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영화를 보고 난 후 남는 감정은 '아름다움'이 주를 이룬다. 둘의 격정적 장면도 나오지만, 그마저도 아름답다. 그 덕분인지, '남녀 간의 사랑만 아름다운 게 아니다.'라는 새로운(?) 명제가 머리 속에 자리 잡았다. 이 변화 혹은 깨달음은 인생의 크나큰 변화 혹은 깨달음이 될 수 있다. 부디 그들의 사랑이 모든 이들의 축복을 받았으면 좋겠다. 부디 그들이 서로를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디 캐롤이 자신을 되찾고 당당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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