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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소림축구> 10년 넘게 이어지는 주성치 코미디의 완벽한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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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소림축구>



<소림축구> ⓒ미라맥스



때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1년 여 앞둔 2001년 언제 즈음. 친구가 기가 막힌 영화가 있다며 꼭 보라고 말한다. 자기는 족히 7번은 계속 돌려 봤다고 한다. 글쎄.. 그 어떤 영화가 아무리 재미있다고 해도 어떻게 그리 많이 돌려 볼 수 있겠는가? 아무렴 당시에는 영화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바, 기회를 져버리고 말았다. 주성치를 영접할 기회를 말이다. 


시간이 많이 지난 어느 때, 우연히 TV를 통해 보게 되었다. 예전에 친구가 꼭 보라고 소개해 준 그 영화를. 제목은 참으로 정감이 가지만 지금까지도 여전히 딱히 믿음은 안 간다. <소림축구>가 뭔가 말인가. 이 영화를 <쿵푸허슬>을 보고 난 후 접하게 되었는데, 흔히 <쿵푸허슬>을 주성치의 정점이라고 말하고 <소림축구>는 주성치의 한계라고 말한다. 또 <소림축구>는 헛점이 많은 영화라고도 한다. 그런데 재미는 따라갈 수 있는 영화가 없는 것 같다. 


직설의 미덕을 잘 아는 영화 <소림축구>


상업 영화의 전형을 따르는 <소림축구>는 제목에 나와 있듯이 소림사 무술로 축구를 한다는 이야기이다. 왕년의 '황금의 오른발'로 불린 스타 플레이어 명봉(오맹달 분)은 승부 조작의 마수에 걸려 들어 지금은 절뚝거리는 다리로 정처 없이 떠돌고 있다. 그리고 과거 명봉의 실력을 시기해 승부 조작을 계획했고 거기에 다리까지 못쓰게 손을 쓴 강웅은 명봉을 끝까지 궁지로 몰아넣는다. 


명봉은 정처 없이 떠돌던 중 쿵푸를 세상에 알린다는 목적으로 헛소리를 해 대는 씽씽(주성치 분)과 마주친다. 쿵푸에 전혀 관심이 없던 그는 씽씽의 강철 다리를 알아보지 못한 채 지나치지만, 오래 있지 않아 다시 만나 그의 진가를 확인한다. 그리고 쿵푸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는 씽씽을 돌려 세워 쿵푸로 축구를 하자는 제안을 한다. 이에 씽씽은 자신의 소림사 사제들 5명을 모으기 위해 하나하나 찾아가서 설득하고자 한다. 



<소림축구>의 한 장면. ⓒ미라맥스



밑도 끝도 없이 쿵푸로 축구를 하자는 이들의 모습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그런데 이는 겉모습에 지나지 않는 다는 걸 알 수 있다. 돌려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하고 행동으로 보여주기에 알아 차리기 어렵지 않다. 비록 씽씽은 청소부 일을 하고 있지만, 그에게는 진짜 꿈이 있는 것이다. 그건 바로 명봉이 헛소리라고 생각했던 '쿵푸를 세상에 알리기'. 그 방법이 어쨌든 무슨 상관인가? 


"소림 쿵푸를 세계에서 발전시키려면 포장을 해야 돼요. 쿵푸에 노래와 춤을 결합하면 어떨까요?"

"언제쯤 정신 차릴래? 화장실 청소부 자리가 비었어. 허망한 꿈 꾸지 말라고."

"사람에게 꿈이 없으면 돼지와 다를 게 뭐 있어요?"

"꿈은 무슨 얼어 죽을 꿈..."


너무나 직설적이어서 민망하기까지 한 이 대화는 씽씽이 사형 한 명을 찾아가서 나눈 대화이다. 꿈을 향한 맹목적인 전진. 진정한 열정을 가진 그의 눈을 보면 잠시 혹 하겠지만, 누구라도 허망한 꿈이라 무시하며 현실을 직시하라고 조언하기 쉽다. 아니, 그보다 요즘에는 꿈을 가지라는, 책임지지 못할 말로 포장을 하곤 한다. 그러기에 이 영화의 직설은 미덕이다. 


직설의 미덕은 영화 곳곳에서 보이는데, 개인적으로 무척 마음에 드는 방식이다. 혹자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장치를 단 영화는 좋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건 답이 정해지지 않았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예 없는 영화가 좋지 않은 영화이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돌려서 말하지 않은 영화가 좋지 않은 영화는 아닌 것이다. 


주성치 코미디의 완벽한 계보


씽씽과 명봉이 하나씩 찾아가는 사제들은 모두 과거는 잊어버린 채 현실을 살기에도 바쁘고 힘들다. 직장이 없고, 직장에서 짤릴 위험에 처해 있고, 직장에 안주해 있고, 직장에 만족을 못하며, 직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렇지만 이들은 하나 같이 과거 소림사 시절의 사진을 보고 동시에 모여 축구 훈련을 시작한다. 이렇게 '소림 축구단'은 상금 100만 달러의 슈퍼컵 우승을 향한다.


명봉은 특훈을 시키고 연습 게임을 치르게 한다. 상대는 동네 양아치들. 그들은 각종 연장을 이용하고 축구를 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팬다. 이는 명봉이 축구가 장난이 아닌 전쟁과 같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테스트였다. 일방적으로 맞을 뿐 공도 만져 보지 못한 소림 축구단은 명봉의 일갈을 듣고 각성한다. 진정한 소림축구를 보여 주는 것이다. 소림 쿵푸를 이용한 축구!


"이건 테스트야! 이걸 통과 못하면 축구 얘긴 다신 꺼내지 마!"

"축구를 하려고 온 거지 전쟁하러 온 게 아니에요!"

"축구는 전쟁이야, 넌 더 배워야 해! 


드디어 대회가 열리고 어김없이 승승장구해 파죽지세로 결승전에 오르는 소림 축구단. 그들의 앞을 가로 막는 건 역시 어김없이 강웅이다. 그는 미국에서 들여온 신약을 투여한 선수들, 돈으로 매수한 주심과 부심과 축구협회와 축구위원회를 이용해 압박한다. 그들이 집중 공략하는 대상은 골키퍼. 결국 부상으로 골키퍼가 두 명이나 교체 되는데... 과연 이들의 운명은?



<소림축구>의 한 장면. ⓒ미라맥스



이 영화에는 유일하다시피 한 여자가 등장한다. 태극권을 이용해 만두 반죽을 하는 아매(조미 분). 그녀는 얼굴에 화상을 입은 듯한 흔적이 있어 자신감이 없다. 씽씽은 그녀에게 계속 예쁘다고 말해주며 용기를 북돋아주는데, 직설적인 것은 그렇다 치고 어떤 특별한 연결 고리도 이유도 없이 예쁘다고 말해주며 용기를 북돋아주는 게 조금 걸리는 부분이다. 이 밖에도 스토리 전개나 배경에 있어 헛점이 많이 노출되는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 모든 걸 덮어주고도 남는 게 바로 '재미'이다. 무표정하게 재미를 유도하고, 반복되는 상황 설정으로 재미를 강요하다시피 한다. 그리고 얼핏 이해하지 못할 애드리브성 행동이 웃음을 유발한다. 결정적으로 그들이 보여주는 소림축구는 어디 서도 접하지 못할 즐거움을 선사한다. B급 무비성 장면들을 너무 과도하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미 10년도 넘게 이어지는 주성치 코미디의 완벽한 계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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